"너네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그럼 태온이 꼴 안 날 테니까."
호재는 마지막 말을 김혁에게 남긴 후 대표실을 나갔다.
그런 호재의 말에 좌절하며 대표실 책상을 주먹으로 한번 내리쳤다.
책상 위에 깔려 있던 유리들이 깨지면서 김혁의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흩트려 놓고는 대표실을 나오는 김혁이다.
대표실에 나왔을 땐 호재와 시현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열 받았고 도저히 호재와 시현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무리 회사 대표와 이사지만 이렇게까지 회사를 키워준 아티스트한테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터덜터덜 걸으며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는 회사를 나오는 김혁이었고
회사 앞에는 언제 왔는지 매니저 민호가 김혁의 검은색 스포츠카 운전석 창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하랑아..."
"형.. 미안.. 현우 말이 맞았어.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네가 미안해할 거 아니야... 막지 못한 내 잘못이지."
"주환이... 어떡하지? 나 진짜 내가 해결해주고 싶었는데 나도 힘이 없네..."
"......."
"정말 내 아버지이지만... 도저히 그분 생각을 모르겠네."
곰곰이 생각해보다 이내 김혁의 손을 발견한 민호였고
김혁의 손에서는 여전히 피가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민호였고 병원을 가자며 난리를 치지만 손에 별 관심이 없는 김혁이다.
억지로라도 끌고 가지 않으면 안 간다는 걸 알기에 김혁을 검은색 스포츠카에 태운 후 태온이 있는 레인병원으로 다시 향한다.
차는 한참을 달렸고 그저 창문만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 듯한 김혁이 보인다.
김혁의 모습을 힐끔 쳐다보고는 운전에 집중하는 민호였다.
그렇게 차는 한참을 달려 태온이 입원해 있는 레인병원 앞에 도착했다.
먼저 운전석에서 내리는 민호였고 뒤이어 조수석에서 내리는 김혁의 모습이 보인다.
김혁의 손에서 흐르던 피는 어느덧 멈춰 굳어 있었다.
"너는... 아이돌인데 몸을 이렇게 함부로 쓰면 어떡해?"
"......."
"활동 끝난 게 다행인 줄 알아!"
그리곤 김혁을 데리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 접수를 하고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중이다.
혹시나 사람들이 알아볼까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대로 한참 동안 있는 김혁이다.
그런 김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를 그저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다.
"김혁 환자분 1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간호사 부름에 1 진료실로 들어가는 김혁의 마지막 모습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민호의 모습이 보인다.
한참을 통화하지만 표정이 굳어버리는 민호였고 이내 김혁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급하게 전화를 끊어 버린다.
"어.. 다 됐어?"
"응."
다친 손에는 붕대가 감겨있고 다친 손을 민호에게 보이곤 애써 웃어 보이는 김혁.
그런 모습에 괜히 안심되었는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민호다.
그리곤 다시 표정이 굳어지는 민호였고 그 표정의 이유를 알일 없는 김혁은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고는 이내 다시 태온의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김혁이고 한참 뒤에야 병실로 돌아오는 민호.
마지막 스케줄을 마치고 바로 달려온 탓에 많이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워 자는 한울, 지후, 그리고 막내 다온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멤버들의 모습을 그저 침대에 앉아 바라볼 뿐인 태온이다.
이미 병실에 돌아왔을 때는 멤버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상태였고 김혁이 먼저 병실에 들어가면 태온과 둘 사이에서 어색한 공기만 흐를 뿐이다.
이미 김혁과 한윤의 사이를 알고 있는 태온이었지만 그 일을 알 리 없는 김혁이다.
그가 무척 밉고 원망스럽고 보기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4년 동안 참고 함께 일해왔다.
그래도 같은 멤버로서 리더로서 항상 챙겨주고 희생만 했던 하랑이었기에.
"저..."
"어...?"
수많은 바늘이 꽂혀 있는 태온의 팔을 보면서 김혁은 말한다.
"미안..."
"형이 왜 미안ㅎ..."
"거짓말해서 미안..."
미안하다는 김혁의 말에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태온이지만 이내 결굴은 모든 걸 털어놓는 김혁이다.
그 말에 의아해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괜찮다며 그의 어깨를 토닥이는 태온이다.
"난.. 이미 다 알고 있었어. 아주 오래전부터."
"......."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그치?"
"....... 응."
"하지만.. 앞으로 나도 안 질거야. 형한테."
김혁을 바라보며 선전포고하듯 말하는 태온.
그런 말에 김혁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근데 그거 알아?"
"응...?"
"작가님... 공모전 당선됐대."
한윤의 이야기가 나오고 표정이 굳어지는 김혁이다.
사실 그녀가 작가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그늘에서 벗어나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길 원했으니까.
"기쁘지 않아?"
"..... 잘됐네.."
애써 웃어 보이는 김혁이고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태온.
그리곤 태온의 눈빛조차도 슬프게 변해버린다.
"내가 원하던 거였는데.. 이제 활동도 못 하고 작가님이랑 같이 드라마 못 하겠네..."
태온의 말 한마디 한마디 미세한 떨림이 존재했고 슬픔도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이러고 꾸준히 투병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는 태온이 안타까운 김혁.
무언가 다짐한 듯 굳었던 표정을 풀고는 태온이 안 들리게 혼잣말로 김혁은 말한다.
'..... 난 괜찮으니까.'
그렇게 둘은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때 병실 문을 열고 민호가 들어온다.
민호의 표정은 평소보다 심각했고 그런 민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눈빛인 태온과 김혁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소파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는 생각에 빠진 민호다.
그런 민호를 바라보며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는 태온이 말한다.
"혹시... 나 때문에 매니저 형이 저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
태온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해주지 못하는 김혁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분명 호재와 관련된 게 분명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도와줄게."
".... 응.. 고마워."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말을 하다 말곤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한 김혁.
그리고 이내 표정을 풀고는 애써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나간다.
"우리가 널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자신들만 믿으라며 든든한 편이 되어 주겠다는 김혁.
그런 그의 모습에 감동한 태온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동안 꾹 참고 있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진 듯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태온을 말없이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가루비의 리더 하랑이다.
그동안 병실에서 외롭게 병과 싸워 혼자 지냈을 태온이 안쓰러웠고 미안했다.
그래서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이렇게 옆에서 조용히 위로를 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형.. 나 진짜 너무 힘들었어..."
"알아..."
"정말... 형들이랑 애들이 부러웠어... 나도 멋진 의상 입고 팬들 앞에 서고 싶었는데.."
"......."
"진짜 이번 컴백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한 달 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태온이다.
그 이야기를 말없이 그저 들어주면서 얼마나 그가 힘들었을지 생각하며 결국, 김혁의 눈에서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파에서 고개를 떨구고 생각을 하고 있던 민호와 피곤했는지 소파에 누워 자고 있던 3명의 멤버들도 태온의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고 그의 눈물을 보고 왜 그러냐며 안절부절 못한다.
"흐흡... 나도 무대에 서고 싶어... 나도 팬들 만나고 싶어...!"
누구보다도 끔찍하게 팬을 아끼던 태온이었다.
가식적이지 않고 누구보다도 더 팬들에게 진심이었기에 인기가 많았던 태온이다.
그런 그에게 활동 중단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태온의 울부짖음에 하나둘씩 가루비 멤버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평소에 눈물이 없던 지후 조차도 태온이 안타까웠는지 조용히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도대체 왜..."
가루비는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는 한참을 서로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민호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못 버티겠는지 병실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병실 밖 의자에 앉아 눈물을 한 방울 바닥으로 뚝뚝 흘리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병원을 나와 자신의 차를 몰고는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땐 마침 퇴근을 하려던 이사 시현과 대표 호재가 보였다.
차 시동도 끄지 않은 상태로 차에서 내려 시현과 호재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갑자기 나타난 민호였지만 놀라 하는 반응도 보이지 않는 호재다.
그런 호재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민호.
"무슨 일이냐?"
"이사님이랑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요."
"네가 이사랑 이야기 할게 뭐가 있지?"
"잠시만 시간 좀 내주세요."
그냥 가자며 차에 먼저 타는 호재였지만 잠깐만 기다리라는 시현이었고 민호와 함께 다시 회사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차는 호재다.
호재를 뒤로하고 회사 회의실로 들어온 민호와 시현.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으며 말하는 시현이다.
"무슨 일이니? 더 할 말이 남았어?"
"이사님.. 제발 태온이 좀 도와주세요."
"혁이가 말 안 했니? 내가 더 할 수 있는 건 없어."
"역시 이사님도 대표님이 무서우신 거죠?"
"..... 그게 무슨 소리니?"
"이사님이 대표님을 이길 수 있었다면 애초에 혁이한테 그러시지 않았겠죠."
민호에 눈에 보이지 않도록 책상 아래로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시현이다.
민호가 시현의 아픈 곳을 건드렸나 보다.
"너..."
"제가 잘리는 한이 있어도 전 태온이 끝까지 지킬 겁니다."
"주민호!!"
"이사님이 그러셨죠? 원래 사회생활이 이런 거라고."
"........"
"전 사회생활을 그렇게 배우지 않았거든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마지막 말을 하곤 회의실에서 나가려는 민호였지만 시현의 한마디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민호의 눈동자는 하염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말 괜찮다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