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지나 그 일이 있고 일주일이 지났고
여전히 공모전 마감일로 바쁜 한윤.
그 일이 지나 일주일간 아무런 연락은 오지 않았고
괜히 신경 쓰여 핸드폰만 바라보는 한윤이다.
"앗..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이내 자신의 두 볼을 손바닥으로 치고는 아픈지 두 볼을 어루만진다.
그 모습이 그저 안타깝기만 한 수진이다.
공모전에 결국 미쳐버려서 제정신이 아닌 듯해 보인다는 표정이다.
그리곤 한윤에게 다가가며 어렵게 입을 떼고 말을 하는 수진이다.
"저기 윤아."
"네, 작가님."
"너도 여기 있기 이제 지겹지?"
알지 못하는 말을 내뱉는 수진을 바라보며 고개만 갸우뚱하고는 대답하는 한윤.
"네..?"
"여기보다 더 환경 좋고 페이 좋은 곳 있으면 거기로 가."
"아니요. 전 여기 있을 거에요."
"어제 뮤직 시크릿에서 작가 계약 들어왔지?"
수진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영문을 모르는 한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제 일은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수진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혹시 그 사람이 이야기를 벌써 한 건 아닐까?
매우 불안한 티를 내며 눈동자는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 모습에 수진은 애써 웃어 보이며 말한다.
"사실 그때 둘이 이야기하는 거 우연히 다 들었어."
"작가님..."
"거기 가면 더 많은 기회가 너한테 찾아올 거고 미래는 여기에 있는 것보단 안정적일 거야."
오히려 수진이 더 가라고 떠미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제 계약을 하지 않고 무작정 뛰쳐나왔다는 말은 하지 못하는 한윤이다.
그 말에 실망할 수진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후배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게 당연한 거였지만
오래 함께했기 때문에 마음은 쉽게 보내지지 않는 수진이다.
아쉬움에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반달 모양인 눈의 작은 눈동자 속 맺힌 물들이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2년 넘게 가까이 일했던 곳은 떠나긴 싫은 건 한윤도 마찬가지였다.
수진의 처음 보는 모습에 울컥했고 덩달아 눈물을 흘리는 한윤이다.
"제가 작가님 버리고 어딜 가요..."
"진짜 나이 먹고 주책이다. 그치?"
늘 옅은 미소만 짓던 수진은 잇몸까지 보이며 크게 웃어 보였다.
헤어짐의 슬픔을 티를 내기 싫은 듯하다.
"그동안... 여기서 일하느라 고생했어."
"작가님..."
"거기 가서도 꼭 잘할 거야. 나중에 시간 될 때 놀러와."
마지막으로 꼭 안아주는 수진이고
수진 품에 안겨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한윤.
언젠가 여기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할 날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갑작스럽게 이별을 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너무 빠른 이별에 더더욱 이곳에 미련이 남았다.
때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벨소리는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고
발신자 번호에 가루비 매니저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한참을 받을까 말까 전화와 사투를 벌이면서
마지막 벨소리 울림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아보는 한윤이다.
"여... 보세요?"
"가루비 매니저 주민호입니다."
"네, 무슨 일로...?"
"지금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지금... 요?"
갑작스럽게 만나자는 말에 당황했지만 할 말이 있던 차에 전화가 왔기에
오늘 꼭 이 일에 대해서 마무리를 짓겠다는 생각에 괜찮다는 말을 남긴 후
짐을 챙겨서 작가실을 나와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매니저라는 사람은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심호흡을 하는 한윤.
그렇게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는 도중에 도착한 민호다.
손을 흔들지 않았는데도 딱 찾아서 자리에 앉는다.
민호의 등장에 전보다 더 긴장하는 한윤이고
그때의 일들이 머릿속으로 한순간에 빠르게 지나간다.
그때의 일이 생각나 쪽팔리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참을 고개를 들지 못하는 한윤이고
그 모습을 보는 민호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오늘 제가 보자고 한 이유는..."
"아, 잠시만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손바닥을 내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 쪽으로 달려가는 한윤이고
그 모습에 당황한 듯 저 여자 도대체 뭐야? 라는 표정을 짓는 민호다.
화장실로 피신을 온 한윤.
거친 숨을 내쉬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정신이 확 깨는 차가운 물로 얼굴을 한번 씻고는 말한다.
"정신 차리자. 오늘은 말리면 안돼, 한윤!"
갑자기 큰 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화장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다.
애써 아무 일 없었던 듯 당당함을 유지하며 화장실에서 나온다.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에 돌아갔을 땐 자리는 비어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민호.
이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민호가 보인다.
누구와 급하게 전화를 한 듯 핸드폰을 한참 들여다본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자리로 돌아온 민호의 표정은 매우 굳어져 있었다.
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의 민호다.
그 상황에서 오히려 민호보다 더 불안하고 안절부절 못 해하는 한윤이다.
"저..."
"..... ㄴ... 네?"
지금 무슨 한마디만 하면 벌벌 떨면서 말을 더듬는 한윤이다.
하지만 진짜 상황이 급해졌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가는 민호.
"오늘 제가 보자고 한 이유는요. 저번에 얘기한 그 제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 주세요. 제가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하거든요."
"아, 저..."
"죄송합니다. 할 말 있으신 것 같은데 그건 다음에 들을게요. 진짜 급해서요."
그리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짜 급했는지 가게 문을 향해 달려가는 민호였다.
결국, 오늘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다.
무언가 찜찜한 기분만 남았다.
또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다니...
한참을 그렇게 자리에 앉아 민호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또 오늘도 할 말을 하지 못해서 기분이 좋지 않다.
문득 어쩌면 지금 벌어진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급한 일이 생겨서 뛰어간 민호가 신경 쓰이는 한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은 난리가 난 상태였고
그때야 매니저가 급하게 나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돌에게 치명적이라는 열애설이다.
열애설의 주인공은 가루비의 태온과 배우 주민영이었다.
기사 제목은 '가루비 태온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모의 여성은 배우 주민영?' 그 자체였다.
제목 하나 참 유치하게 지었다.
딱히 태온의 열애설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아직도 가루비의 하랑을 12년 전 만난 옆집 오빠라고 생각하기에
그에게 영향이 가지 않을까 걱정할 뿐이다.
모른다고 했지만 분명 12년 전 옆집 오빠가 분명하다.
꼭 어떻게든 그 단서를 잡겠다는 한윤이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도 오빠를 찾기 위해서 였으니까.
"꼭 다시 찾을게."
***
다음 날 아침.
태온의 열애설로 온종일 인터넷은 시끄러웠다.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태온과 주민영이라는 배우가 차지하고 있었고
가루비 태온 측은 부정을 배우 주민영 측은 긍정을 내보이며
한쪽만의 인정으로 연예계는 더 난리가 난 상태이다.
끊임없이 기사는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 열애설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않았다.
점점 상황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모든 것들이 이 사건으로 인해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한윤이고
그저 조그맣게 부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면서 벌어질 일들이었다.
그 시각 가루비의 회사인 뮤직 시크릿 직원들은 사건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루비의 첫 열애설의 주인공은 태온이었다.
이미 이 열애설이 터지기 직전 팬들 사이에서는 소문으로 남은 사건이었다.
그동안 자신들을 속였다며 더 분노하는 팬들이었다.
누구도 이 열애설을 반기지 않았다.
열애설을 부정하긴 했지만, 사실이라는 것을 팬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너 진짜 아직도 주민영이랑 사겨?"
"기사 안 봐? 아니라고 했잖아."
"그럼 걔는 이미 헤어졌는데 왜 그러는 거래?"
"나도 그 이유를 몰라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거잖아."
가루비 멤버들은 모두 기사를 보고 놀라 태온을 찾아왔다.
하지만 태온의 대답은 기사 제목과 같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묻는 가루비의 막내 다온이다.
"형."
"응?"
"그럼 그 작가님이랑은... 완전히 끝난 거야?"
갑자기 뭔 소리냐면서 되묻는 태온이지만 그 와중에 표정이 굳는 리더 하랑이다.
몹시 당황하며 괜히 헛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태온이다.
"꼭 작가님이랑 내가 뭐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아... 아니야?"
"그럼 맞겠냐?"
"나는 형이 작가님 쳐다보는 눈빛이 평소랑 다르길래 둘이 뭐가 있나 싶었지."
막내 다온의 말에 한번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이다.
이내 툭 치면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는 허공을 바라보는 태온이다.
그 모습을 보는 멤버들은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은 태온을 바라보며
덩달아 한숨을 쉬기 시작한다.
허공을 바라보던 태온의 눈길은 어느새 리더 하랑을 향해 있었다.
그리곤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걔는... 형만 바라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