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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오늘만 백만번째
작가 : 박재경양
작품등록일 : 2016.8.22

키다리 아저씨 같은 남자를 만나기는 애초에 글러 먹었고, 회사에서 만난 남자친구라는 놈은 등쳐먹고 사기나 치고 다니고. 하는 일 하나없는 여자 나이 서른. 진서는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제주도로 내려왔다. 이렇게 된 바에 한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었던 일이나 하면서 엄마옆에 있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웬걸, 차주혁, 할리우드에서는 크리스라고 불리는 뮤지컬 배우가 제주도에 찾아왔다. 그것도 진서의 집에! 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가 왜 우리 집에 있는거지?

 
11. 절대 밀착, 떨어지지 않기
작성일 : 16-09-26 13:37     조회 : 496     추천 : 0     분량 : 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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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은 상전 주혁을 데리고, 동네 마트에 오게 된 진서.

 ‘좀 심한말 한 것 같아서 잘해주려고 했더니… 왜 세상에서 가장 번거로운 걸 하고 싶다고 하냐고…’

 엄청나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고기를 구워서 같이 먹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있는 잘 익은 김치에 쌈채소, 고기만 있으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주혁과의 고기 파티가 아닌가.

 뭐 호밀빵인가 뭔가에 우유만 드시는 양반, 고기 하면 스테이크 말하는 그런 남자랑 고기를 먹으면 뭘 먹어야 하는건지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아니, 그럼 도대체 뭘 구워 먹어야 하는거야. 비싼 소고기 꽃등심? 아놔…’

 벌써부터 까다로운 주혁의 입맛을 맞춰줄 생각에 진서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 진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혁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여태 속으로 늘어놓았던 불평과 불만이 무색할 정도로, 주혁의 목소리는 멋있었다.

 ‘뮤지컬 배우라더니 허밍도 멋지네…’

 잠깐 넋을 놓을뻔한 진서, 정신을 다잡았다.

 진서는 마트 입구에 있는 카트를 빼어서 주혁에게 건넸다.

 “이런 건 남자가 하는 거예요.”

 굳이 남자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주혁에게 괜히 심퉁을 부리고 싶었다.

 “오케이.”

 주혁은 군말없이 카트를 건네 받았다.

 ‘말은 잘 듣네.’

 “쌈채소는 뭘로 해요. 로메인? 이런거 드시나요?”

 “쌈채소? 샐러드 말하는 건가요?”

 “허…”

 샐러드라니… 어떻게 하면 쌈채소를 샐러드라고 생각할 수 있지?

 “이렇게 상추를 올려놓고, 고기 한점에 쌈장 그리고 마늘 한조각을 넣고 이렇게 싸서…”

 진서가 정성스럽게 시범을 보여 봤지만 주혁은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 됐어요. 그럼 알아서 살테니까 나중에 딴말 하기 없기에요!”

 진서는 닥치는 대로 쌈채소를 넣었다.

 상추, 깻잎, 케일… 진서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넣었다.

 주혁은 잠자코 진서가 하는 대로 카트를 끌며 가만히 따라왔다.

 옆에서 온갖 잔소리를 다 해댈줄 알았던 주혁이 의외로 가만히 있는 것도 놀라웠다.

 ‘저럴때 보면 참 착하고 좋아 보인단 말이야.’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온순해지니 진서는 괜히 으쓱해졌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나온 트레이닝복에 모자까지 깊숙히 쓰고 있는데도 주혁의 몸에서는 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다른 남자가 입었으면 부랑자처럼 보였을 테지만, 주혁이 입으니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신상 옷 같았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주혁과 진서를 번갈아가며 쳐다 보며 수군거렸다.

 ‘다들 내가 여자친구인 줄 알겠지?’

 진서는 약간 우쭐해졌다.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코 흘린 말을 듣기 전까지는.

 진서 또래의 한 여자가 한참이나 주혁과 진서를 번갈아가면서 보더니 함께 온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돈이 많나? 아무래도 남자가 좀 아깝지? 그렇지?”

 그래, 주혁이 심하게 잘생기기는 해.

 진서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징어처럼 생긴 여자한테 저런 말을 듣자 짜증이 치솟았다.

 ‘아니, 나는 저런 남자한테 관심도 없다고 남자친구는 개뿔.’

 아까까지 들떠 있던 마음은 저멀리 날아가버리고, 진서는 괜히 짜증을 부렸다.

 ‘저 남자를 꼬실 돈이 있으면 읍내 가서 엄마 옷이라도 한번 사주겠다. 에잇.’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혁은 고개를 더 깊숙히 숙였다.

 아마,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주혁이 밀고 있는 카트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진서의 팔꿈치를 툭툭 쳤다.

 ‘아 짜증…’

 진서는 팔꿈치를 손으로 감싸며 뒤를 돌아보았다.

 제대로 카트를 밀어야 할 주혁은 사람들 눈을 피해서 모자를 눌러 쓰느라 바빴다.

 주혁은 자꾸 뒤를 돌아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그깟… 아, 아파 죽겠네.’

 “뭐, 파파라친지 뭔지는 마트까지는 못 따라오나보죠? 흥.”

 진서의 말에는 가시가 들어있었지만, 주혁은 그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대신 주혁은 긴 팔을 뻗어서 진서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조심해요!”

 주혁은 진서를 자신의 몸으로 더 바싹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반항하고, 뺨을 때리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다.

 마치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한 주혁의 가슴이 진서의 가슴에 밀착되었다.

 ‘어머…’

 주혁은 진서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한치의 틈도 없이 밀착돼 있는 결혼 적령기의 두 남녀!

 진서의 귀에 힘차게 박동하고 있는 주혁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두근두근두근두근…

 그 소리에 맞춰서 진서의 심장도 세차게 뛰고 있었다.

 목이 늘어난 얇은 셔츠 안에 감춰진 주혁의 어깨, 가슴을 따라 보기 좋게 근육이 붙은 배까지…

 진서는 저 셔츠를 찢고 그 안으로 파고 들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안돼, 오오오… 잡혀가고 싶으니? 경찰서에 붙잡혀 갈래? 안돼!!! 정신차려!’

 진서는 혼미한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주혁은 너무너무너무나 섹시했다.

 어떻게 남자가 취향을 안탈 수가 있지?

 어떻게 모든 여자의 이상형이 될 수가 있냐고오~

 남자 따위가 왜 저렇게 은은한 향이 나는건지.

 이 아찔한 향은 무슨 비누를 쓰길래 그런건지.

 어지러웠다.

 

 

 진서가 마음 속의 짐승과 싸우고 있을 때,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카트 한대가 지나갔다.

 무거운 짐을 잔뜩 실은 카트였다.

 가속도가 붙은 카트는 전속력으로 마트를 질주했다.

 “어어어… 안돼요!”

 그제야 달려온 마트 직원 서너명이 붙어서야 카트는 멈춰섰다.

 “다친데 없죠?”

 주혁은 카트가 멈춰선 것을 보고 나서야 진서를 놓아주었다.

 진서는 그간 참고 있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주혁의 품에서 떨어지자, 달콤한 꿈에서 깬 듯 정신이 몽롱했다.

 꿈이었다면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두근거리던 심장은 계속 뛰었다.

 ‘아… 진정진정…’

 진서는 두근거리는 소리가 주혁에게까지 들릴새라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급기야 애국가까지 부르는 진서.

 자신이 한 짓이 지금 처녀 마음에 불을 질렀다는 것도 모른 채 주혁은 태연히 카트를 밀었다.

 진서는 고개를 들었다.

 종이도 베어 버릴 것처럼 날렵한 주혁의 콧날이 조명에 비쳐 반짝거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마트를 나온 진서.

 두 손에는 먹을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많이 먹어요?”

 두손 가득 봉지를 든 주혁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아, 뭘 많이 사요. 셋이 먹으려면 그득그득하게 한상 차려야지요.”

 하지만 진서는 자신이 뭘 샀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쌈채소를 사고, 버섯 까지 산 건 기억났지만, 주혁의 품에 안긴 후로는 뭘 집었는지 몰랐다.

 주혁은 봉지 안에 든 포장지 하나를 꺼냈다.

 “흑돼지 후지? 후지가 뭔가요?”

 주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후지? 어머, 뒷다리살을…!”

 정신없이 담다보니 찌개용 고기를 사 버리고 말았다.

 진서는 주혁을 세워놓고 다시 마트로 들어갔다.

 “미쳐, 내가 미쳐.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고기 궈 먹자고 해놓고는 뒷다리살을… 아, 삼겹살 어디지? 삼겹살이…”

 진서는 미친 여자마냥 마트를 헤매었다.

 분명 수십번도 와본 마트니 길을 헤매고 말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아직도 진서의 콧가에서는 주혁의 향이 맴도는 것 같았고, 귓가에서는 두근두근거리던 주혁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정신차려 이 기집이야… 한두번 남자한테 안겨보니… 아 그깟 연예인이 뭐라고. 아아아악!”

 

 

 “왜그래요?”

 주혁은 채 숨을 고르지 못하고 있는 진서에게 물었다.

 ‘그걸 모르니, 이 멍청한 남자야. 다 너 때문이야 너!’

 진서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빨리 가야죠. 엄마가 기다리시겠네.”

 벌써 주위에는 어둠이 내려 앉았다.

 진서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 트럭을 몰았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이거.”

 주혁은 진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네?”

 천천히 진서에게 다가오는 주혁.

 ‘키스 타임?’

 진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뭐지?’

 주혁은 진서 쪽으로 천천히 팔을 뻗었다.

 진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 뭔가요?”

 ‘응?’

 당연히 키스를 할 거라 생각했던 진서, 눈을 떴다.

 주혁은 운전석 에어컨에 꽃혀 있던 방향제를 눈앞에서 흔들었다.

 ‘어, 뭐야. 난 또… 십년 감수했네.’

 “아, 이건. 방향제에요.”

 “그래요?”

 주혁은 손톱보다 조금 큰 곰 모양의 방향제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싸구려 향이 나는 걸 보니, 그렇게 비싼 건 아닌가 보네요. 흠… 한국에서는 이런걸 쓰나보군요. 디퓨저를 쓰거나, 차 전체를 세차해주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죠?”

 “네?”

 뭐야, 저 쓸데없이 구체적이고 듣기만 해도 비싸보이는 저 말은.

 “그래요. 뭐, 싸긴 하니깐요.”

 “귀엽긴 하네요. 헤일리한테도 하나 사줘야지.”

 “헤일리? 여자친구?”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주혁.

 ‘뭐지, 진짜 여자친군가?’

 아무 생각없이 말했던 진서, 왠지 짧은 침묵이 어색해졌다.

 주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비밀. 비밀로 해줘요. 네?”

 “뭐… 정 원하신다면. 저야 뭐 말할 사람도 없어요.”

 “다행이네요. 탱큐.”

 주혁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진서는 적잖이 실망했다.

 ‘뭐야, 여자친구도 있잖아?’

 기사에서는 싱글이라고 하던데…

 아닌 모양이었다.

 진서와 주혁이 탄 트럭은 천천히 마트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때였다.

 진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엄만가?”

 진서는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차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아, 지금 가는 중이라고!”

 “…”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젠장, 엄마가 아니었다.

 구 남친 정태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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