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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오늘만 백만번째
작가 : 박재경양
작품등록일 : 2016.8.22

키다리 아저씨 같은 남자를 만나기는 애초에 글러 먹었고, 회사에서 만난 남자친구라는 놈은 등쳐먹고 사기나 치고 다니고. 하는 일 하나없는 여자 나이 서른. 진서는 오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제주도로 내려왔다. 이렇게 된 바에 한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었던 일이나 하면서 엄마옆에 있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웬걸, 차주혁, 할리우드에서는 크리스라고 불리는 뮤지컬 배우가 제주도에 찾아왔다. 그것도 진서의 집에! 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가 왜 우리 집에 있는거지?

 
취향은 아니지만, 여자친구입니다
작성일 : 16-10-26 13:54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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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만나는구나.”

 민현우는 사근사근하게 주혁에게 말하고는, 옆에 딱 붙어 있는 진서를 노려 보았다.

 눈빛이 얼마나 살벌한지, 얼어붙을 것 같을 지경이었다.

 “여자…친구?”

 민현우는 주혁의 귀에 속삭였다.

 주혁은 진서를 힐끗 보았다.

 진서는 양 손에 킬 힐을 들고 민현우에게 이미 혼이 팔려 있었다.

 ‘나는 누구인지도 모르더니만 민현우는 한번에 알아보네…’

 민현우보다 주혁 쪽이 훨씬 유명한데도 말이다.

 주혁은 잠시 뭐라고 답해야 할까 고민했다.

 민현우에게 아니라고 말하면, 안될 것 같았다.

 주혁이 왜 제주도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모두 다 민현우 때문이었다.

 “뭐, 일종의.”

 그 말에 민현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서를 보는 눈빛은 방금 전보다 더욱 살벌해져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민현우가 여자보다 남자한테 관심이 많다는 걸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까?

 티브이에 나와서도 굳이 그걸 숨기지 않는 민현우였다.

 민현우가 원한다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것 같은 전국의 백만 소녀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차라리 어디서 여우같은 계집애한테 우리 현우 오빠를 뺏기느니 차라리 멋진 남자한테 뺏기는게 낫다는게 그 백만 소녀들의 공통적인 답이었다.

 그런 민현우에게 어떤 여지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주혁을 연인으로서 좋아해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주혁의 취향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그러니 뭐…

 기자들만 신났다.

 “이거 잘됐습니다. 차주혁씨도 제주도에 계시다니, 두분이 함께 촬영해주시면 저희 잡지가 확~ 살것 같네요 허허허허.”

 “무슨 촬영이길래 기자가 이렇게 많아?”

 “잡지 표지, 그리고 인터뷰. 그리고 신문기자. 이번에 영화가 개봉하거든. 어쩔수 없지.”

 민현우는 친절하게 답하였다.

 기자들이야 완전 럭키였다.

 여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남자 둘이, 그것도 그냥 남자 둘이 아니라 완전 핫한 남자 둘이서 열애설을 터트려놓고 제주도에서 이렇게 마주쳤는데 말이다.

 둘이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여자들이 정줄놓고 달려들 지경이었다.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건 주혁 뿐이었다.

 ‘또 한번 난리가 나겠군.’

 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망할 스캔들, 저 망할 민현우…

 “정말 신기합니다. 스캔들 터지고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시더니 몸은 좀 어떠십니까? 제주도는 요양하러 오셨습니까?”

 저 하이에나같은 기자들이 달려들어 질문을 퍼부었다.

 주혁은 입을 다물었다.

 한마디라도 잘못했다가는 모든 약점이 드러나니까.

 그런 기자들을 상대하면서 잔뼈가 굵은 주혁이 쉽게 입을 열 리가 없었다.

 “아직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하신 건 아니잖아요? 저희 매니저와 한번 스케줄을 잡고 연락 주세요.”

 주혁은 몸을 돌렸다.

 무슨 백마탄 왕자도 아니고, 진서 하나 도와주려 했다가 호되게 당할 것 같았다.

 주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에이. 질문 하나에 뭐 그러십니까. 네? 제주도에는 스케줄 때문에 오셨나요? 제가 확인해보니까 주혁씨 스케줄은 쭉 비워져 있던데, 현우씨와 밀회를 즐기러 오신 겁니까?”

 기자 한명이 주혁 앞에서 깐죽거리며 질문을 해대었다.

 ‘안돼… 차주혁 참자… 여기에서 말 잘못하면 인생 골로 간다.’

 “매니저와 먼저 약속을 잡으시죠.”

 주혁은 이를 꽉 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후문에서 차를 대기하고 있을 데이빗 형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형, 빨리. 기자들 몰려왔어.’

 이 상황에서 주혁을 빼내줄 사람은 데이빗 형 하나 뿐이었다.

 

 *

 

 하지만 데이빗 형도 주혁의 편은 아니었다.

 “차주혁씨는 지금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라, 뭐라 확답은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데이빗 형은 주혁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말했다.

 ‘안돼, 형. 안돼… 절대 안돼!’

 주혁은 강한 거부의 눈빛을 보냈다.

 “인터뷰 정도는 얼마든지 응해드릴 수 있죠. 단, 질문은 제가 검토하겠습니다.”

 ‘젠장.’

 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기 싫어서 데이빗 형한테 떠 넘겼건만 이렇게 날 배신하다니…

 “하하하하. 좋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저희도 준비를 해야하니, 죄송하지만 한 한시간 후에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죄송할게 뭐 있나요. 인터뷰에 응해 주신다니 저희가 더 황송하지요 하하하하.”

 저 능글맞은 기자놈 같으니라고…

 주혁은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괜찮아요?”

 진서는 주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뭐가요.”

 아까와 다르게 주혁의 말투가 친절할 리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민폐녀 진서 때문인데!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서는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주혁의 옆에 서 있었다.

 그 마저도 주혁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민현우를 보려고 하는거야? 참… 저 여자도 진짜. 가지가지 한다.’

 “안 가요?”

 진서의 구 남친도 어디론가 사라졌겠다, 이제 진서도 볼일은 없어진 것 같았다.

 “안 가려고요.”

 “왜요? 민현우가 그렇게 좋아요? 거 참...”

 “아니요.”

 진서는 주혁을 올려다 보았다.

 여전히 두 손에는 킬힐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남자랑 스캔들 났었잖아요. 근데 주혁씨는 여자친구가 있잖아요. 여자인 내가 주혁씨 옆에 좀 얼쩡거리면 나을까 해서요. 뭐, 내가 민현우 팬이기는 해요. 그렇다고 해서 꼭 사심 때문에 이렇게 안가고 버티는 건 아니고요.”

 ‘응…?’

 생각보다 진서는 속이 깊었다.

 그냥 술먹고 민폐나 끼치고 구 남친 어깨에 킬힐이나 꽂는 망나니는 아닌 모양이었다.

 민현우를 한번에 알아본 게 좀 서운하긴 했지만 진서 말이 맞았다.

 옆에 낯선 일반인이 있으면 민현우가 함부러 옆에 서 있을 수는 없을 거였다.

 그러면 기자들이 이상한 기사를 쓰지는 않을 거고.

 그 편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을 거였다.

 민현우가 싫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몇 년을 지낸 민현우이니 매너도 기자들을 대하는 것도 능수능란했다.

 주혁 못지 않게 프로라면 이 정도 스캔들 쯤이야 일도 아닐 거였고, 헤일리야 이런 스캔들 같은 것 신경도 쓰지 않았다.

 누군가와의 열애설이 나서 기분이 나쁜 것보다 그 오해 때문에 헤일리가 조금이라도 상처받을 까봐 걱정이 되었으니까.

 “왜요, 진짜 저 민현우가 취향이에요? 그렇다면 내 조용히 빠져주고…”

 진서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주혁은 진서의 손을 꽉 잡았다.

 왠지, 이 순간 진서가 필요했다.

 “취향 아니에요. 그러니까 옆에 좀 붙어 있어줘요.”

 

 

 *

 

 촬영 장소는 이 호텔의 스위트 룸이었다.

 ‘아마 협찬일 테고, 촬영이 끝나면 민현우와 차주혁이 묵었다 간 방이라고 하고 비싼 값에 빌려주겠지.’

 뻔했다.

 그 어느 누구도 조그만 이득 없이는 아무 것도 선뜻 내어주지 않았다.

 “자자 두 분 단추 두개 풀어 주시고요… 네네 좋습니다. 네 좀더 가까이, 좀더… 네네. 자 한번 더 찍겠습니다.”

 연이어 터지는 플래쉬들.

 오늘 촬영 컨셉은 나른함이라나 뭐라나.

 그래봤자 민현우와 주혁을 거의 벗겨놓고 섹시한 사진이나 찍는 것 뿐이었지만.

 진서는 쳐다보는 둥 마는 중,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데이빗 형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여자였다.

 촬영이 끝난 다음에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그때가 되서야 데이빗 형과 진서는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느리적 느리적 주혁 곁으로 다가왔다.

 ‘뭐야 저 인간들… 나는 뼈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고급 호텔에서 늘어져 있는다고?’

 정말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꾹 참았다.

 진서 덕분인가 민현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참 다행이었다.

 절대 싫은 건 아니었지만, 스캔들 같은 것으로 지저분하게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기자는 데이빗 형과 함께 있는 진서가 신경쓰였는지 계속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

 아마 주혁과 무슨 사이인지 보려고 하는거겠지.

 진서는 기자가 뚫어지게 자길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수다 떠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긴, 대낮부터 저렇게 화려하게 옷입고 다니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말입니다… 저기 앉아 있는 여자분은… 누굽니까? 방송계 분은 아닌 것 같고, 스타일리스트라고 하기에는 좀 콜걸같은 느낌도 나고… 혹시… 진짜 콜걸입니까?”

 그 말에 주혁은 가뜩이나 좋지 않은 기분이 확 안좋아졌다.

 뭐? 콜걸? 구남친한테 연락이 온 것 하나 때문에 온 마당을 막걸리 전으로 만드는 유리멘탈 여자가?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네…’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어이쿠야, 제가 실수 했나요? 혹시 여자친구라도 되십니까?”

 기자는 여전히 깐죽거렸다.

 감히 진서한테 그런 말을…

 저 기자라는 인간 면상부터 한대 쳐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주혁은 입을 열었다.

 “네. 여자친구입니다. 기분 나쁘니까 사과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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