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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왕총아
작가 :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7.6.4

스무 살의 꽃같은 나이에 백련교의 난을 이끈 불세출의 여걸 왕총아!
동시대 전쟁 영웅 나폴레옹을 능가하는 천재적인 전략으로 불과 2만의 병력으로 열배가 넘는 청나라 관군을 연전연파하고 서안으로 진격하는데......
여자 제갈공명으로 해도 과언이 아닌 불세출의 여걸 왕총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다!

 
착각에 빠진 화림
작성일 : 17-06-17 17:34     조회 : 131     추천 : 2     분량 : 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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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거사를 중단시킨 유지협은 다그치듯 요지부에게 물었다.

 

  "왕낭자가 어찌하여 소림의 승려들과 함께 있는 것인가?"

 

  요지부는 스스로를 자책하듯 망연자실한 얼굴로 탄식했다.

 

  "아, 왕낭자에게 양양으로 돌아가라 신신당부하였건만, 나를 뒤쫓아오다 관군의 검문에 붙들린 듯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왕낭자를 데리고 오는 것인데......"

 

  유지협이 소림의 승려들 사이에 있는 왕총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왕낭자를 행렬에서 빼내야 거사를 도모할 수 있네. 무슨 일이 있어도 왕낭자를 빼내게."

 

  요지부는 왕총아가 소림의 승려들과 함께 있는 것이 자의 반 타의 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미 제자인 왕총아로서는 소림 승려들이 살상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으리라.

 

  요지부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선을 다해보겠으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듯하옵니다."

 

  이때 수백의 서천 백련교도들을 이끌고 온 교사 왕응호가 나섰다.

 

  "대체 왕낭자가 누구길래 왕낭자 한 사람 때문에 이번 거사를 중단할 수 있단 말입니까? 유교수께서 거사를 중단하시겠다면 우리 서천 형제들만으로 거사를 단행하겠습니다."

 

  유지협이 말도 안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왕낭자는 총교수 지위를 이어받은 내 사제 제교수의 아내될 여인일 뿐만 아니라, 관군에 사로잡힌 나를 구한 은인이오. 왕낭자를 다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니, 왕교사는 내 뜻을 따르시오."

 

  유지협 역시 왕총아가 제림과 혼담이 정해진 사이로 오해하고 있었다.

 

  유지협의 말이 믿겨지지 않는 듯 왕응호가 요지부에게 물었다.

 

  "요형제, 왕낭자가 총교수님의 사모님이 될 여인이란 말인가?"

 

  요지부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하옵니다."

 

  백련교에서 교수의 아내는 교수에 버금가는 지위였다.

 

  왕총아가 유지협으로부터 백련교 총교수 지위를 이어받은 제림의 아내될 여인이라는 말을 들은 이상, 왕응호는 더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유교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왕응호가 수긍하자 유지협이 요지부에게 다급히 말했다.

 

  "지부, 자네만 믿겠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왕낭자를 빼내도록 하게."

 

 

  이 시각 팔기군 대장군 화림이 소림 승려들 틈에서 왕총아를 발견하고 반가운 듯 소리쳤다.

 

  "그대는 왕낭자가 아닌가!"

 

  화림이 말을 몰고 소림 승려들 행렬 쪽으로 다가오자 왕총아가 급히 몸을 돌렸지만, 화림은 백의를 입은 날씬한 그녀의 자태만 보고도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왕총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화림에게 인사했다.

 

  "대장군을 다시 뵈옵니다."

 

  왕총아의 말과 행동거지가 왠지 어색해 보였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화림을 마주대하다 보니 그런 것이었지만, 화림은 실로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왕낭자를 만난 것도 결국은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올해로 마흔인 화림은 얼마전 아내 풍씨를 여의어 신붓감을 물색하던 중이었는데, 때마침 선녀처럼 아리따운 왕총아를 알게 된 것이 하늘의 뜻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주족이라면 치를 떠는 왕총아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지만, 만주족 여인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신랑감인 화림으로서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왕총아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왕낭자가 여긴 어인 일인가?"

 

  "소녀, 소림의 장문인께 용무가 있어 온 것이옵니다."

 

  "마침 잘 왔군. 지금 소림 승려들이 팔기군에 합류하여 백련교도들의 수괴를 호송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니, 아미 제자인 왕낭자도 합류하여 호위토록 하라."

 

  자리를 뜨고 싶은 왕총아는 눈빛으로 혜명 대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혜명 대사는 이러한 왕총아의 마음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왕낭자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왕총아는 문득 자신이 떠나면 혜명 대사를 비롯한 소림 승려들이 백련교도들의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군의 명에 따르겠나이다."

 

  바로 이때였다.

 

  "멈춰라!"

 

  누군가 관군의 행렬을 향해 말을 몰아 다가오자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소란이 일어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왕총아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창검을 든 관군에 포위된 사내는 다름 아닌 요지부가 아닌가!

 

  '지부!'

 

  요지부를 보자 하마터면 '지부'하고 외칠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낸 왕총아가 요지부를 가리키며 화림에게 말했다.

 

  "저 사내는 요포졸로, 소녀의 일행이옵니다!"

 

  깜짝 놀라 외친 왕총아의 목소리는 요지부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요지부를 알아본 화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포졸이군."

 

  화림은 요지부를 포위한 병사들을 손짓으로 물리치고 나서 요지부에게 물었다.

 

  "요포졸, 자네가 여긴 무슨 일로 왔는가?"

 

  요지부는 임기응변으로 혜명 대사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소인, 소림의 장문인께 용무가 있어 왕낭자와 함께 동행하여 소림사를 찾아갔사온데, 길이 엇갈려 왕낭자와 헤어졌다가 소림의 장문인께서 팔기군의 행렬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옵니다."

 

  화림은 중경에서 왕총아와 동행했던 요지부가 이곳 하남에서도 왕총아와 동행했다는 말에 문득 요지부와 왕총아의 관계가 의심스러워졌다.

 

  화림이 의혹의 눈초리로 왕총아에게 물었다.

 

  "왕낭자와 요포졸은 무슨 관계인가?"

 

  왕총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무 사이도 아니옵니다."

 

  화림이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자 왕총아가 요지부와 눈짓을 교환하더니 말을 이었다.

 

  "다만, 소녀와 소녀의 어미가 백련교도라는 누명을 쓴 적이 있사온데, 그때 요포졸이 지현 나리를 뵐 수 있도록 주선하여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터, 요포졸은 소녀의 은인되는 분이시옵니다."

 

  화림은 이제서야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

 

  왕총아의 해명은 가뜩이나 착각에 빠져 있는 화림을 부추겼다.

 

  '은혜를 입은 왕낭자로서는 자신과 어미의 누명을 벗겨준 제림의 혼담을 부득이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게야. 여인의 마음이란 권력을 쫓기 마련이니, 천하의 병권을 쥔 내가 왕낭자에게 큰 호의를 베푼다면 왕낭자의 마음이 나에게로 움직일 것이다.'

 

  이 무렵 건륭제는 화신으로부터 화림이 유지협을 잡았다 놓쳤다는 보고를 듣자 격노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라? 백련교 수괴 유지협을 잡았다 놓쳤단 말이냐?"

 

  건륭제가 격노한 목소리로 되물었음에도 화신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청산유수처럼 막힘없이 대답했다.

 

  "비록 소신의 아우가 하남 백련교 수괴 유지청을 잡았다 놓쳤기는 하나, 그 대신 서천 백련교 수괴 송지청을 사로잡아 북경으로 압송 중일 뿐만 아니라 백련교 근원지인 서천과 하남 백련교도를 일망타진하였으니, 이제 백련교의 뿌리를 뽑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오니, 심려치 마옵소서."

 

  올해로 여든두 살의 건륭제는 자신의 손자뻘 나이대인 마흔세 살의 화신의 능수능란한 화술에 마음이 움직였다.

 

  화신의 말에 건륭제는 노기가 가라앉음은 물론 오히려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짐이 다스리는 이 땅에서 백성들을 혹세무민하는 백련교가 뿌리뽑히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비록 경의 아우가 하남 백련교 수괴 유지협을 잡았다 놓치는 과오를 범하였기는 하나, 서천 백련교 수괴 송지청을 잡는 공을 세웠으니, 더는 문제삼지 아니하겠노라."

 

  화신은 자신의 세치혀로 건륭제의 노여움을 풀었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제를 불렀으나 내색하지 않은 채 무릎을 꿇으며 감사를 표시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경의 아우는 지금 어디있는가?"

 

  "이미 낭방(지금의 랑팡시)에 이르렀다 하오니 조만간 북경에 당도할 것이옵니다."

 

  "북경에 당도하는대로 짐의 처소에 들라 하라."

 

  건륭제의 처소에서 물러난 화신은 곧장 옹염 황자의 처소를 찾아갔다.

 

  당시 고령으로 정무를 돌보기 힘들었던 건륭제는 자신의 아들 중 가장 총명한 옹염 황자에게 대리청정토록 하였다.

 

  옹염은 화신이 오기를 벼루고 있었다는 듯 화신의 인사를 받자마자 매섭게 질책했다.

 

  "경의 아우가 백련교 수괴 유지청을 잡았다 놓쳤다 하던데, 경의 아우 뿐만 아니라 경의 아우를 팔기군 대장으로 추천한 경 또한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옹염은 부정축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으며 국정을 농단해 온 화신을 이 참에 제거할 생각으로 매섭게 질책한 것이다.

 

  "소신은 황제 폐하와 황태자 전하의 뜻에 따를 뿐이옵니다."

 

  건륭제가 살아았는 한, 옹염이 자신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화신은 옹염의 호된 질책에도 조금도 동요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화신의 마음을 꿰뚫어보듯 옹염이 매섭게 다그쳤다.

 

  "말로만 책임질 생각이 아니라면 당장 이 자리에서 사직서를 쓰게."

 

  화신이 난처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렸다.

 

  "황제 폐하께서 황공하옵게도 소신에게 사력을 다하여 황자 저하를 보필하라는 명을 내리셨사온데, 소신이 어찌 황제 폐하께서 소신에게 내리신 명을 저버릴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말로는 화신을 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옹염은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 아바마마께 경과 경의 아우의 죄를 아뢰어 파직시킬 참이니 그리 알고 물러가라."

 

  옹염의 처소에서 쫓겨나듯 물러난 화신은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나에 대한 황제 폐하의 신뢰가 반석처럼 견고하거늘, 황자 저하께서 어찌 나를 파직시킬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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