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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히어로 테일즈
작가 : 두번째준돌
작품등록일 : 2018.11.1

마법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헤쳐 나가며 성장하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 (누구나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장대한 시리즈물로 기획된 '히어로 테일즈'는 마법세계, 특히 블루마법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현실감 있게 담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진정한 영웅(Hero)이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무적의 존재도 완전무결한 신도 아닌 그들은, 그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뿐입니다.

 
3 - 4화. 호, 호, 혼탕이라고?!
작성일 : 18-11-20 17:18     조회 : 23     추천 : 0     분량 : 6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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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호, 호, 혼탕이라고?!

 

 

 

 나무 선반으로 된 옷장에 입고 있던 교복을 벗어 던져 넣는 네파리안.

 이곳 탈의실에는 자물쇠가 달린 라커도 없었다.

 그저 주욱 늘어선 직사각형 모양의 나무 옷장들만 있을 뿐.

 

 네파리안은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어차피 옷을 훔쳐갈 다른 손님들도 없었기 때문에 옷을 다 벗어 놓고는 탈의실 끝에 이어진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문을 열고 온천탕으로 들어간다.

 

 <후욱>

 

 두꺼운 뭉게구름 같은 수증기가 그의 얼굴을 덮친다.

 곧 수증기에 익숙해지자 온천탕의 모습이 슬슬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탕은 총 3개였다.

 맨 가운데 탕은 굵은 대나무 통에서 콸콸 쏟아지는 폭포수와 연결된 '폭포탕', 그 양 옆에는 녹차색을 띈 웰빙 '쑥탕'과 살얼음이 낄 정도로 차가운 '냉탕'이 각각 자리잡고 있었다.

 

 네파리안이 뻥 뚫린 천장을 올려다 보며 중얼거린다.

 

 "집 외부에다가 온천을 만든 건가? 하늘이 다 보이는군."

 

 밤하늘에 설탕가루처럼 뿌려진 무수한 별들과 둥그런 찐빵 모양 달을 보고 있자니 흑발청년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그는 마르고 호리호리하긴 하지만 어깨나 팔, 다리에 잔근육들이 잘 발달한 의외로 좋은 몸을 이끌고 제일 먼저 폭포탕 안으로 들어간다.

 

 "후우~"

 

 체온보다 살짝 높은 뜨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푸는 네파리안.

 온몸이 끓는 냄비 위의 달고나(설탕과자)처럼 노골노골해 지는게 아주 시원하고 좋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머리에서 복잡한 고대자료나 핏빛 가득한 옛날의 상념들이 씻은듯이 사라져 버린다.

 흑발 청년은 기분 좋은 간만의 휴식을 즐긴다.

 

 쑥탕과 냉탕, 그리고 폭포탕을 왔다갔다하며 재밌게 온천욕을 한 그는 향기로운 쑥 향이 나는 쑥탕에 몸을 담갔다 깜빡 잠이 들어 버린다.

 

 "Zzz..."

 

 

 

 

 꿈속에서 네파리안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유일한 친구이자 보호자인 아버지와 마당에서 놀이 겸 마법 연습을 한다.

 자그마한 몽당연필만 한 얼음 화살촉을 만들어 과녁인 얇은 송판을 향해 쏘아보내는 어린 네파리안.

 

 <파삭>

 

 그러나 마법은 채 과녁에 도달하기도 전에 공중에서 바스라져 버린다.

 울상을 지으며 아버지를 올려다보는 어린 네파리안.

 

 "왜 내가 쏜 아이스 볼트(얼음 화살)는 도중에 부숴져 버리는 거죠?"

 

 "음... 어디보자 시전 과정 자체는 아주 좋았어."

 

 밀짚색 머리와 수염을 가진 소년의 아버지가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말한다.

 

 그는 아들의 얼음 마법이 왜 도중에 부숴지는 건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네파리안은 아버지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단 욕심이 너무 컸던 것이다.

 

 마법의 크기나 파워보다 안정적인 형태가 중요한 얼음 계열의 마법에서는 차분한 마음이 제일 우선시 된다.

 소년의 아버지가 그 기본적인 사실을 아들에게 다시금 깨우쳐 준다.

 

 "마음을 편안하게 비우고 다시 해보렴. 분명 성공할 거야."

 

 "좋아요, 아빠!"

 

 흑발소년이 큰소리로 대답한다.

 그리고는 말 잘 듣는 똑똑한 소년답게 아버지의 말대로 맘을 차분하게 비우고는 다시 마법을 시전한다.

 

 "아이스 볼트."

 

 <슈욱- 퍼억>

 

 작지만 단단한 얼음화살이 송판의 정중앙을 멋지게 꿰뚫는다.

 네파리안이 기뻐서 아버지를 돌아보며 소리친다.

 

 "아빠! 봤어요?"

 

 "굉장하구나 네파리안! 역시 최고라니까! 내가 뭐랬니, 분명 너라면 성공할 거랬지? 하하하!"

 

 아들이 마치 10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오기라도 한듯 박스터 윈터칠이 굉장히 기뻐한다.

 어린 네파리안의 가슴이 뿌듯함으로 팽귄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행복한 순간, 갑자기 누군가의 거슬리는 목소리가 네파리안의 꿈 속을 뒤흔들어 놓는다.

 

 

 

 

 "오오, 자네 온천욕 중이었구만!"

 

 "!!!"

 

 다시 차가운 흑발남으로 되돌아온 네파리안이 번쩍 눈을 뜬다.

 꿈의 잔상은 마치 손바닥 사이의 모래처럼 사르르 사라지고, 대신 바위같은 현실이 그 자리를 뚜렷하게 꿰차버린다.

 

 네파리안은 자신을 부른 사내를 향해 눈길을 돌린다.

 건장한 체격의 여관주인 오자키 카자쿠라가 육포처럼 시뻘개진 근육질 등판에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끼얹고 있다.

 

 <촤아- 촤아->

 

 "으어~ 시원타! 그래, 네파리안군 우리 온천탕은 마음에 드시는가?"

 

 "맘에 듭니다."

 

 입가를 살짝 비틀며 대답하는 네파리안.

 뜨거운 물이 몸을 채찍처럼 휘감을 때마다 괴상한 탄성을 내질러 대는 오자키만 없었어도 더 맘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초 아저씨들이 그렇듯 아스나의 아버지도 눈치라고는 전교 1등의 교과서에 쌓인 먼지 만큼도 없어서, 호탕하게 "크하하핫!" 웃으며 또다시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뿐이다.

 

 검은 어떻게 잡아야 한다는 둥, 요즘 젊은것들은 영 심기가 약하다는 둥, 자기는 뒤에서 습격하는 비겁한 놈들을 제일 싫어하는 사나이라는 둥...

 이건 아까 전 저녁식사 시간의 되새김질에 불과했다.

 

 '시끄러워서 더는 못 들어 주겠군.'

 

 귀찮은 게 딱 질색인 흑발의 청년이 거대한 녹차를 연상시키는 쑥탕을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 여자 탈의실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온천에 들어온다.

 

 네파리안이 흠칫하더니 마치 누군가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뻣뻣하게 굳어져 버린다.

 

 '아직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네파리안이 방금 온천으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는 생각한다.

 

 탐스럽게 찰랑거리는 기다란 보라색 생머리를 허리까지 풀어 헤친 늘씬한 알몸의 여고생... 아스나 카자쿠라가 욕탕에 나타난 것이다.

 

 멍하니 자신을 응시하는 흑발청년의 회색 눈동자를 의식한 그녀가 가지고 들어 온 수건과 바가지로 중요 부위 두 군데를 가린다.

 정말로... 정말로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흐른다.

 

 이건 뭐 어릴 때 같은 반 이성 친구를 목욕탕에서 만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다.

 네파리안과 아스나는 둘 다 2차 성징을 모두 마친 신체 건강한 고등학생인데, 그런 두 남녀가 알몸인 상태로 온천탕 안에서 만났으니 무지하게 뻘쭘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수밖에 없다.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챈 아스나의 아버지.

 그런데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따위다.

 

 "뭐야? 두 사람 아직 서로의 '참모습'을 본 적이 없는 거야? 크하핫!"

 

 네파리안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오자키를 노려본다.

 그러나 눈치없는 오자키 아저씨는 신경 쓰지도 않고 계속 웃으며 흑발 청년에게 설명한다.

 

 "표정을 보아하니 네파리안 자네, 아직 우리 온천탕이 '혼탕'인 걸 몰랐나 보군. 크하하!"

 

 "크윽... (호, 호, 혼탕이라고?!)"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만 알았던 혼탕이라는 위기에 빠진 네파리안.

 그에겐 적흑집이나 디스트로이어, 타르탄 보다도 알몸의 여자가 더 위협적인 존재다.

 

 네파리안이 창백해진 얼굴을 푹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아스나의 아버지가 드렁통 두드리듯 우렁찬 목소리로 그를 만류한다.

 

 "어이, 네파리안 군! 괜히 우리 딸 땜에 자리를 피할 필요 없소. 동부식 혼탕을 운영하는 우리 여관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니까... 오히려 여기서 도망가는게 더 웃기는 일이요."

 

 "으윽."

 

 "우린 우리대로 목욕을 할 테니, 네파리안군은 네파리안군 대로 편하게 목욕을 하면 되는 거요."

 

 "그, 그런 겁니까?"

 

 다시 쑥탕 안에 주저 앉는 네파리안.

 오자키의 말 때문에 괜히 일어날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대신 얼굴만 물 밖으로 내민 채 먼산을 바라보는 척 애써 아스나쪽을 외면하려 한다.

 

 한편 당혹스러운 건 보라머리의 아스나도 마찬가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네파리안이 봤을 거라 생각하니 그녀의 얼굴이 고춧가루로 볼 터치를 한 것처럼 시뻘개진다.

 

 아스나가 몸을 가린 채 부끄러워하고 있는데, 호탕한 그녀의 아버지가 딸의 가냘픈 어깨를 '턱'하고 붙든다.

 

 "자, 그럼 나도 우리 딸래미랑 목욕이나 해볼까?"

 

 "아, 아버지... 오, 오늘은 좀..."

 

 보라머리 여고생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인 채 머뭇거린다.

 그러자 오자키의 투박한 오른손이 아스나의 흰 복숭아 같은 알궁둥이를 '찰싹' 올려붙인다.

 

 "꺄악!"

 

 "왜이래 아스나? 아빠랑 목욕하는 건 매일 하는 일과잖아? 자아, 어서 이리로 오라구."

 

 오자키는 딸의 손을 끌고 폭포탕 앞의 넓직한 바위 침대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부끄러워서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알몸의 다 큰 딸을 자기 손으로 직접 씻겨 주기 시작한다.

 

 <촤아 박박박>

 

 큰 바가지로 김이 펄펄 올라오는 뜨거운 물을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끼얹고, 사포처럼 까칠한 때밀이 수건에 비누를 묻혀 아스나의 몸을 문질러 주기 시작하는 오자키.

 

 네파리안은 지금 심장이 터져나가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는 반세기 이상을 금욕하며 살아 온 수도승의 마음을 갖고 극도의 자제심을 발휘해 눈을 꽉 감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신경쓰지 않으려 한다.

 

 '나는 지금 홀로 에버라스트 산(행성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서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나는 내 자신과 마주할 뿐이다.'

 

 그러나 온갖 소리가 그의 뇌를 자극해 댄다.

 

 "꺄악! 아, 아버지 너무 아파요!"

 

 "크하하핫, 엄살은!"

 

 "아악! 거, 거긴 안돼요!"

 

 나체의 보라머리 여고생의 입에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신음과 비명소리가 새어 나온다.

 네파리안의 명상은 점점 선홍빛 망상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에, 에버라스트 산맥에... 여성의 유혹스런 몸짓이... 아니아니, 나 홀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흩날리는 치마... 안 돼! 집중해라 네파리안, 넌 산 위에 홀로 서있다고!'

 

 "으음... 아, 아버지 사, 살살 해줘요."

 

 "껄껄껄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느냐?"

 

 계속되는 번뇌의 소리.

 뜨거운 온천에 있는데도 흑발 청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점점 더 창백해진다.

 

 그리고 그의 고막을 파고드는 '온천탕에서 아버지와 딸이 avi.'(?)의 수위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수준까지 올라가자, 네파리안이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지, 지금 대체 뭘하는 겁니까?!"

 

 "???"

 

 "아, 아버지가 다 크, 큰 딸하고 다 벗고 '그렇고 그런 짓'을 하다니, 이건 그, 근친... 아니 아니 어찌됐껀 요즘 같은 세상에 대체 무슨..."

 

 네파리안이 흥분해서 삿대질을 하다가 침대에 앉은 보라머리 여고생과 그녀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말을 뚝 그친다.

 둘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린 채, 흑발 청년의 허리 아래부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아무런 가림수단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 네파리안의 '그곳'.

 뜨거운 온천의 열기로 인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해룡을 연상시키는 그의 심벌을 경배한다.

 

 "크윽!"

 

 전에 없이 크게 당황하며 얼른 양손으로 아랫부분을 가리는 네파리안.

 그런 그를 향해 오자키가 변태 아저씨 같은 음흉한 미소를 띤다.

 

 "이야~ 내 살다살다 저런 거시기는 또 처음 보는구먼! 네파리안 군, 자네 아랫도리가 아주 튼실하구만! 껄껄껄!"

 

 "......(화끈)"

 

 아스나는 애써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린 채 자기는 못 봤다는 듯 딴청을 부린다.

 입가가 거의 번개 모양으로 뒤틀린 네파리안을 향해 오자키가 웃음을 꾹꾹 참으며 차분하게 묻는다.

 

 "그나저나 자네, 내가 아스나랑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었나?"

 

 "그, 그렇습니다. 이상한 퇴폐적인 행위를 하고 있던 거 아닌가요?"

 

 그러자 아스나의 아버지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다.

 

 "푸하하하하핫! 이보게 네파리안, 퇴폐적인 행위라니? 우린 그저 카자쿠라 가문의 관습대로 부녀간에 서로 등을 밀어주고 있었을 뿐이야. 예와 효를 중시하는 카자쿠라 가의 오랜 관습일 뿐이라네. 하하핫!"

 

 "등을... 밀어주고 있었을... 뿐이라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카자쿠라 부녀를 자세히 번갈아 보는 네파리안.

 아스나의 아찔한 S라인 등짝에 가득 묻은 비누 거품과 오자키의 손에 들린 초록색 때밀이 수건이 그 말을 증명해 주고 있다.

 

 둘은 정말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있었던 것뿐이다.

 19세 흑발청년의 이상한 망상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네파리안이 치명적인 헛다리를 짚은 이 쪽팔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데, 목욕탕의 아저씨 오자키가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거이거, 내가 혹시 우리 딸래미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는 걸까 봐 전전긍긍했던 거로군! 껄껄껄, 아스나! 아무래도 저 헤비급 거기를 가진 청년이 널 마음에 두고 있나 보구나.

 이거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아니지, 얼마 뒤면 내가 할아버지가 되는 거잖아? 이게 경산지 아닌지 모르겠구만! 크하하핫!"

 

 "아버지!"

 

 <찰싹>

 

 얼굴을 붉히고 변태 아빠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때리는 보라머리 소녀.

 아직 열일곱의 꽃다운 그녀는 더 이상은 온천탕 가득한 변태, 아저씨, 마초 같은 우락부락한 분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등의 비누기도 닦지 않은 채 탕 밖으로 뛰쳐 나가 버린다.

 

 오자키가 딸의 섹시한 뒷모습을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얘, 아스나! 비누기는 씻고 나가야지! 아, 네파리안 군. 혹시 자네가 저 애를 데려와 주겠나? 여자 탈의실에서 한 30분쯤 이따가 와도 특별히 눈감아 주겠네. 우하핫!"

 

 "크윽... 됐습니다!"

 

 오자키에게 질려 버린 네파리안도 성큼성큼 화가 난 걸음걸이로 남자 탈의실로 걸어가 버린다.

 뒤에서 자기 자신의 농담에 탄복한 오자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지만, 그것은 흑발청년의 짜증을 더욱 돋굴 뿐이었다.

 

 

 

 

 방에 돌아온 네파리안은 씩씩거리며 다다미 바닥에 이불을 깔고 드러눕는다.

 익숙지 않은 동행 보라머리 여고생과 그녀의 가족 때문에 머리가 엉망진창이다.

 

 속으로 계속 구시렁거리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옆으로 돌리는 네파리안.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파괴신의 벽화가 그려진 장소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서 자야 하는데...

 

 '제길... 잠이 오지 않아.'

 

 잠을 청하면 청할수록 계속해서 몸(?)과 맘이 각성되는 흑발청년.

 눈을 감으면 자꾸 아까 전 온천탕에서 봤던 장면이 떠오른다.

 

 긴 보라색 생머리, 둥그렇고 부드러워 보이는 가슴께, 개미같이 날씬한 허리, 그리고 늘씬하면서도 왠지 애를 잘 낳을 것 같은... 아니 아니 풍만한 엉덩이까지...

 

 자꾸만 아스나의 알몸이 떠올라 네파리안의 잠을 방해한다.

 

 "크아아악! 내가 이런 시각적인 잔상 따위에 질 것 같으냐?!"

 

 허벅지를 꼬집으며 번뇌와의 사투를 벌이는 흑발청년.

 그러나 떨쳐내려 하면 할수록 매끄럽고 탱탱한 피부를 가진 늘씬한 몸의 보라머리 여고생의 나체는 더욱 더 고화질의 영상이 되어 다가올 뿐이다.

 

 성적 욕구가 가장 충만할 때인 19세 남자, 네파리안의 밤은 그렇게 점점 더 선홍색 망상으로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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