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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밤의 아이들
작가 : 어설트
작품등록일 : 2017.6.17

이곳은 죽은 자들의 세계, 사자(死者)의 세계다.
동화 같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

 
5. 얼룩 (2)
작성일 : 17-08-11 01:53     조회 : 100     추천 : 0     분량 : 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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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일은 한동안 산 자들의 세계에 내려가지 못했다.

  그날 이난의 존재는 수치스러움 그 자체였지만 할 말이 있다던 그가 들고 온 건 꽤나 중대한 문제였다.

  그것을 처리하고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산 자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사자들의 세계에도 언제나 사건 사고가 끊임없다. 그저 형태만 다를 뿐, 여기도 저기도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음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그 욕망 또한 변함없다. 보고 싶지 않음에도 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마음은 형태만 달라질 뿐 질리도록 반복되고 있다.

  차일이 다시 소년을 찾았을 때 소년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를 만나는 소녀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밝았지만 그것이 무색하게도 소년의 표정은 무정했다.

 그럼에도 소녀는 모르는 척하며 웃었다.

  그러나 소년의 차가운 고백에 웃음은 무너졌다.

  다른 사람이 좋아졌다는 그, 그리고 소년이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누군지 알고 소녀는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소년은 쌀쌀하게 그녀를 밀어냈고 소녀는 그를 어떻게든 헤아리려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다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소년은 더 참아줄 수 없었다.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끈덕지게 매달리는 소녀가 점점 지겨워졌기에.

  -그 애가 좋아.

  어떻게든 그를 이해해보려고 했던 소녀는 쿵 떨어지는 마음을 애써 잡으며 말했다.

  -왜 하필 그 애야?

  소년이 실토한 그 애는, 하필 그 애는 소녀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였다. 소녀를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일은 없었지만, 맞고 넘어지는 소녀를 보며 그 애는 분명 웃고 있었다.

  -나도 몰라.

  그래서 소년의 대답은 오히려 잔혹했다.

  -난 너밖에 없는데.

  그들에게 그렇게 처절하게 괴롭힘 받고 힘들어 하는 걸 뻔히 알면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통보하는 그는 정말 잔인했다.

  소녀가 아파하며 중얼거린 말에 소년은 얼굴을 찌푸렸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미 마음이 다른 곳으로 가버린 그는 차가웠다.

  -네가 불쌍하니까 네 옆에만 있어야 돼?

  -내가 불쌍해?

  -그러니까 도와준 거잖아.

  예전의 그라면 괜찮다는 말부터 해줬을 텐데, 그는 이제 여과 없이 속마음을 드러냈다. 비로소 그의 마음이 전해진 탓에 소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듯 눈을 질끈 감았다.

  -고마웠어. 잘 가.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졌다.

  차일이 다시 소년을 본 건 다른 여자아이 옆에서였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그들이 말하던 ‘그 애’인 모양이었다. 그 애 역시 차일이 사랑하던 여자와 닮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를 버린 소년은 행복해보였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소년과 소녀는 다시 만났다. 소년이 내려다봤고, 소년은 바닥을 내려다봤다. 소녀를 넘어뜨렸던 우악스러운 손길이 소녀의 머리를 휘갈겼다. 익숙한 욕설이 소녀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다.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았다. 몇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그 애’ 옆에서 묵묵히 그녀를 보고 있던 소년. 소년은 자신을 원망하는 그 눈이 못내 불편했다.

  -너 어딜 보는 거야?

  -야, 얘가 너 째려보는데?

  소녀의 시선을 발견한 아이들의 시선이 소년을 향했다. 아이들의 조롱에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소녀의 앞으로 갔다.

  -뭘 봐.

  -네가 미워.

  실은 그렇게 묻지 않아도, 부러 듣지 않아도 소녀의 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내 앞에 있는 거야.

  소녀를 냉랭히 바라보는 그 시선에 진저리내며 말했다. 너만은 그러지 않았는데.

  -너야말로 뭘 봐. 내 앞에서 사라지지는 못할망정.

  -미쳤어?

  소년은 아주 잠깐 좋아했던 소녀를 방관자가 될지언정 이 아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

  -너야말로 제정신이야?

  하지만 소녀에게 소년은 이미 누구보다도 잔인한 사람이었다. 한때 좋아했던 소녀를 지독히 괴롭히는 무리와 어울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그것도 모자라 이런 광경마저 무심하게 바라보는 소년이,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내 앞에서 당장 꺼져.

  -우와, 이 미친년 봐.

  아이들이 소녀를 비웃으며 날카롭게 웃었다.

  -내 앞에서 사라지라고!

  -이 미친년 뭐라는 거야.

  반쯤 울부짖은 그 외침에 아이들이 다시 비웃었다. 그리고 주위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소녀의 얼굴에 던졌지만 소녀는 꿋꿋하게 소년을 노려봤다.

  그때 ‘그 애’가 소년의 옷깃을 붙잡았다.

  저 애, 왜 저러는 거야?

  그 애의 나지막한 물음에 소년은 이를 아득 물었다. 그녀에게만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소년은 소녀를 잡아 일으켰다. 애들 앞에서가 아니라 둘이서 이야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럴 생각도 없었다.

  -놔!

  소녀가 그의 손을 뿌리치며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소년은 소녀가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한때 잘해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고 있다. 이 애들 앞에서, 그 애 앞에서.

  소년에게 뺨을 맞은 소녀가 다시 넘어졌다. 소년은 소녀를 다시 일으키고 끌고 가려고 했다.

  소녀가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기 전까지는.

  -나쁜 새끼!

  소년에게 맞은 뺨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지만 소녀의 눈은 도리어 활활 탔다. 소년은 아이들을 의식하며 그녀를 막고 끌고 가려고 했다.

  근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정강이에서 전해지는 충격에 허리를 구부린 순간 소녀가 그의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쓰러진 소년을 소녀는 주먹으로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헀다.

  -또라이 아니야? 왜 이래?

  벙 찐 아이들이 뒤늦게 소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성을 잃은 소녀는 그들을 뿌리쳤다.

  -이제 그만해!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며 다른 반 아이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니들이 날 싫어한다고 해서 내가 만만한 존재는 아니야! 또라이도 아니고 미친년도 아니고 썅년도 아니라고! 내 옷이 뭐! 내 얼굴이 뭐! 내가 대체 뭐!

  쌓이고 쌓이다 못해 굳어지고 부서진 마음을 가지고 소녀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니들이나 잘하란 말이야!

  소년은 쏟아지는 주먹과 발에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난 너희한테 무시 받을 이유 하나도 없어. 니들한테 그런 소리 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이렇게 맞고만 있을 이유도 없다고!

  울분만큼 내려치는 손이 얼얼해지면 발로, 그리고 다시 손으로.

  -알겠냐, 이 쓰레기들아!

  소년은 날아온 소녀의 팔을 잡고 막으려다 한대 맞고 다시 팔 속에 얼굴을 가두었다.

  -쓰레기는!

  소녀는 있는 힘 없는 힘 전부 쥐어짜내 엎드린 소년의 등을 내리쳤다.

  -쓰레기통에!

  온힘을 다해 내리친 소녀는 숨을 몰아쉬며 벌떡 일어났다.

  -그거 알아?

  소녀는 둘러싼 아이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나도 니들이 싫어.

  그리고 소녀는 몸을 돌려 잽싸게 도망쳤다.

  -저, 미친, 야! 잡아!

  누군가 소녀의 쫓아 달렸지만 얼마 안가 차가운 복도 바닥에 호되게 넘어졌다.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 소녀는 멀어지고 없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말이네. 길바닥도 깨끗해지고 인생도 깨끗해지고.”

  이난은 내밀었던 발을 슬쩍 거두며 너덜너덜해진 소년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누구보다 더 나쁜 놈이었잖아.”

  차일은 말없이 소녀가 사라진 복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괴롭힘 당하고 무시 받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소녀는 꽤 씩씩했다. 그대로 집으로 달려가 방문을 걸어 잠군 소녀가 숨도 못 쉴 정도로 우는 걸 보기 전까지 차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뒤 차일은 소년을 관찰하는 것을 관뒀다. 다만 가끔 궁금해져 찾아가보면 소년은 여전히 ‘그 애’와 소녀 앞에서 웃었다. 그 이후 소녀의 괴롭힘은 더욱 지독해지면 소녀는 악바리처럼 버텼다.

  소년과 ‘그 애’가 헤어진 건 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그 애’는 약속이나 한 듯 미련도 없이 소년에게 이별을 고했다.

  오랜 세월 그가 지켜본 것 중 하나는, 사람이 받는 고통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다는 것이다.

  세월이 치료해줄 수 있을지언정, 상처는 아무는 시간마저 쓰라리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아프다.

 

 

 

  그는 많은 죄를 지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해왔다.

  시대에 따라 죄는 그 무게를 달리한다.

  그 시절 그가 택한 죄는 모두 은밀해 아는 이가 몇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많은 이들에게 옳은 일이라 여겨졌고, 부정이 아닌 정의였다. 그 시절 그의 죄는 가벼웠을지언정, 죄가 범했던 가치는 엄중하였다. 그는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결국은 짐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죄는 얼마만큼의 무게가 걸렸을까.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웠다.

  죽어서 큰 벌을 받게 될 거라 생각했으나, 막상 도달한 세계는 모든 것을 뒤엎었다. 형태만 다를 뿐, 저 세계와 똑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 그는 다만 더 이상 죄를 택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면 마땅한 벌은 어디에?

  시대에 따라 죄는 그 무게를 달리한다.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던 듯 긴 세월이 지났다.

  빛으로 부서져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차일은 이곳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때가 되면 그도 떠나리라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처벌이라면 가소롭기 짝이 없는 징계였다.

  우연히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소년을 보았을 땐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쫓아다니며 지켜본 소년에게서도 뭔가를 발견할 순 없었다. 그저 기막힌 우연이었으며 그것으로 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뒤늦게야, 차일은 그토록 의심하던 신을 원망했다.

  죽은 자들의 세계애서 소녀를 만난 순간,

  그는 처음으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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