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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반전을 사랑한 남자
작가 : 샤뚜르
작품등록일 : 2017.7.5

강지원, 29살의 젊은 사장은 얼음 왕자라는 별명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직원들도 피해가는 그에게, 회사의 햇병아리가 어느 날 찾아와 태클을 건다. 그는 그녀가 만만했었다. 이세희, 24살의 인턴 사원. 상상 속 50대 사장과는 다른 조각미남이 나의 상사라니! 사랑 때문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남자와 귀엽지만 반전 있는 그녀의 좌충우돌 연애 이야기.

 
제 15 화. 그들의 출발점
작성일 : 17-07-13 21:08     조회 : 25     추천 : 0     분량 : 8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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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을 사랑한 남자

 

 

 

 

 

 제 15 화. 그들의 출발점

 

 

 

 지원은 도진의 문자 공격에 백기를 들고 그들이 자주 찾는 고급 술집으로 향했다.

 

 외롭다는 둥 애정이 식었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도진을 떠올리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빠서 한동안은 못 만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친구 좋은 게 뭐라고. 의리 하나는 잔소리만큼이나 끝내주게 잘 지키는 지원이었다.

 

 "강 사장님 오셨어요?"

 

 "도진이는 아직 안 왔어?"

 

 그가 들어가자 반겨주는 바텐더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지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도진을 찾았다.

 

 "곧 오실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 난 늘 마시던 걸로 줘."

 

 지원과 도진이 이 술집의 단골이 된 지 5년이 넘었다. 하도 많이 드나들다 보니, 바텐더와도 자연스럽게 아는 사이가 되었다. 바텐더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가 따로 빼둔 술병과 얼음이 담긴 그릇을 그에게 내밀었다.

 

 안 그래도 술이 생각나던 한 주였는데.

 

 코앞에 있는 술병들을 보니 더 간절해진 지원은 바에 앉아 먼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세희라는 여자. 맛있고 비싼 밥을 사주며 이야기를 나눈 노력 덕에 조금 분위기가 풀렸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일식집을 다녀온 후 받은 돈 50만원을 끝으로 그녀는 더 이상 야근수당을 받아가지 않았고. 돈을 주기도 전에 얼른 차에서 내려 도망 가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쉽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 웃음조차 보기 힘들었으니.

 

 한 번도 목표한 바를 이뤄내지 못 한 적이 없었던 지원이었기에, 지금 느끼는 패배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 씁쓸한 기분은 그로서도 난감한 것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잔을 앞에 두고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있는 그의 뒤에서.

 

 "친구야~. 얼굴 한 번 보기가 왜 이렇게 비싸냐."

 

 도진이 그의 어깨에 툭 하고 손을 올리며 그의 옆에 앉았다.

 

 "나도 늘 마시던 걸로 부탁해."

 

 장난스럽게 지원에게 인사를 건넨 도진은 바텐더에게 술을 부탁한 뒤, 지원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먼저 분위기를 띄워 말을 걸지 않으면 끝까지 몇 마디도 하지 않고 헤어질 것이다. 평소에도 진지하고 말수가 별로 없는 지원은 오늘따라 더 과묵하기만 했다.

 

 "야, 회사에 무슨 일 있냐? 왜 이렇게 애가 멍 때리고 있어?"

 

 오늘도 장난치기 위해 씨익 웃으며 지원을 돌아본 도진은 그런 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물었다. 도진이 한량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지원이 힘들어 할 때는 유독 제 형만큼이나 살뜰하게 챙겼다.

 

 지원은 술을 마시며 줄곧 자신의 계획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하고 생각 중이였다.

 

 

 

 문제라면 있지.

 

 세희를 진심으로 대하라는 장 비서의 충고를 무시하고 웃음을 보겠다는 목표 하나를 향해 그녀에게 음식을 사준 것.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사업가로서 가지고 있는 철두철미함이나 일방통행은 내려둬야 한다는 것을 둔한 지원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가볍게 생각했던 진심이 빠진 것이 문제인가 싶어서 도진의 부름에 지원은 그를 쳐다보았다.

 

 술에 풀려버린 그의 날카로운 분위기가 은은한 조명과 함께 뒤섞여, 그의 갈색머리와 함께 섹시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아~ 자식. 여기에 화보 찍으러 왔냐. 내 친구지만 왜 저렇게 잘 생긴 거야. 내가 여자였으면 작업 걸고 싶을 정도로.'

 

 도진은 지원이 왜 갑자기 저런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나 싶어 의아했다가, 새삼 다시 느낀 그의 잘난 외모에 감탄하는 중이였다.

 

 

 

 "야."

 

 "응?"

 

 "너 네가 원하는 목표를 이뤄보지 못한 적 있냐?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 그러다 최근에 그럴 일이 있었거든? 한 번도 목표에 닿지 않았던 적이 없어서 지금 이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얘 뭐래니.

 

 도진은 지원의 고민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들어주는 편이였지만 지금 그가 본 지원은 항상 자신에게 딱딱한 모습으로 고민을 털어놓으며 얘기하던 지원이 아니었다.

 

 마치. 실연당한 남자의 모습과 흡사하달까.

 

 실연.. 실연?!

 

 자신이 알기로는 지원에게 여자란 금광에서 금을 캐는 것보다 더 보기 힘든 존재였는데.

 

 무슨 큰 고민이길래 저런 얼굴을 하나 했는데 회사와 관련된 일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1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한 그의 고민이 대부분 일에 관련된 이야기였으니까.

 

 웬일로 저러나 했더니.

 

 씨익.

 

 어느새 도진은 다시 능글거리는 미소로 무장한 남자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눈치가 빠른 도진은 지원의 분위기를 통해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대놓고 '너 그거 여자 때문이야.'라고 했다간 그의 얼굴을 당분간 못 볼 것이 뻔했기에.

 

 도진은 지원이 원하는 해답을 사업에 관련한 단어들로 둔갑 시키는 장난을 쳤다.

 

 역시, 내가 사는 낙(樂) 중의 하나가 너라서 정말 좋구나!

 

 '둔탱이에게는 직접 깨우칠 수 있는 방법이 최고지.'

 

 

 

 "그래? 나야 뭐. 첫사랑에게 고백하겠다는 목표도 실패했고. 아버지한테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도 실패했잖아. 실패 했다고 포기하면 안 되지! 나는 내가 못 해 본 일들에 대해서는 꼭 해내겠다는 오기가 들끓어 올라, 꼭 해내고 말거든. 너도 포기하지 마라. 근데 내가 충고 해주고 싶어도 무슨 일인지 감이 안 와서 그러는데. 살짝이라도 알려주면 안 되냐? 일이야, 사람 문제야?"

 

 "후.. 사람 문제."

 

 '얼씨구~! 월척 하나 큰 거 낚겠구나~!!'

 

 도진은 속으로 몹시 즐거웠다.

 

 자신이 낚으려는 물고기께서 몸소 미끼를 물어주신다.

 

 "내가 너랑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냐. 그런데 지금의 너를 보아하니 사업적인 사람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자고로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소박하게 다가가야지. 소박하게!"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라, '여자'지만.

 

 얘는 또 뭐가 즐거운 거야?

 

 지원은 도진의 실실 웃는 얼굴을 보며 그가 말한 소박하게라는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 못 한 건가 싶어 갸우뚱했다.

 

 나는 최소한으로 조용하게 다가갔는데. 사업적으로 세희를 대했다면 야근수당이며 식사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시하며 거래를 하고자 했겠지. 대체 저 놈이 말하는 '소박하게'는 무슨 뜻이야?

 

 "그 소박하게가 무슨 뜻인데?"

 

 "응? 음.. 뭐. 그래! 영화도 보고, 여기저기 놀러도 다니고. 일상에서 쉽게 해볼 수 있는 것들 있잖아. 네 기준에서 소박하게가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에서."

 

 '후유~.'

 

 도진은 평소 같으면 자신의 말 한 마디를 바로 이해하는 그가 되물어오자, 앞으로 그를 어떻게 골려줄까 고민하느라 잠시 멍 때리다 당황했다.

 

 자신에게서 능글거림과 장난끼를 빼면 내가 아니지!

 

 다행히, 특유의 능청으로 완벽한 장난을 칠 수 있었다.

 

 자식, 이제 연애도 좀 하고 주변도 돌아보며 살아봐.

 

 놀러가서 일이 생기면 더 좋고.

 

 도진은 자신이 아는 연애와 남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상상하며 속으로 싱글벙글 웃었다.

 

 

 

 도진은 혜빈과 재회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유분방한 한량이었기 때문에, 그가 알고 있는 수준 높은 연애 지식들은 초보인 지원에게 전혀 쓸모없는 것에 불과했다.

 

 어찌됐든. 그의 장난이 지원과 세희가 가까워지는 데 한 몫을 한 것은 맞지만.

 

 '좋을 때다.'

 

 그가 지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세상을 통달한 하얀 수염도사의 눈빛과 비슷했다.

 

 도진은 며칠 전에 다시 만났던 혜빈을 떠올렸다.

 

 조만간 연락 준다고 했는데. 술기운에 들은 거라서 기억 못 하고 있겠지?

 

 술은 잘 깼으려나.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혜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얼굴에서 웃음이 피어오르려고 했다.

 

 "지원아."

 

 지원은 자신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도 들어본 적 없는 도진의 다정한 목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

 

 "너도 이제 연애 해 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넌 아직 모를 거야. 내가 전에 대학생 때 얘기한 거 기억 나냐? 내 첫사랑."

 

 "어."

 

 "나 그 사람 다시 찾았다. 여전히 그 사람만 보면 몸이 아닌 가슴에서부터 먼저 반응이 와서. 나.. 한량 놀이 그만하려고. 너도 그런 사람이거든 꼭 잡아라."

 

 도진의 말을 들은 지원은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원은 아직까지도 본인이 냉정하고 단단한 가면으로 무장했다고 생각하는 천하의 둔탱이니까.

 

 

 

 지원이 본 도진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았다. 장난스러움을 꿈처럼 쫓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 도진의 눈빛은 한없이 진지했고. 따뜻함이 가득했다.

 

 한량 놀이를 그만 한다니. 그 정도로 그 여자가 좋나?

 

 그가 지원에게 얘기하기 시작한다.

 

 

 

 혜빈과 도진의 못 다한 이야기.

 

 

 

 

 

 ***

 

 

 

 

 

 소예고등학교는 지원이 다녔던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고 보다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손꼽히는 학교였다.

 

 윤 회장의 제안이자, 명령으로.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했던 도진은 아버지에게 대학생 이후의 누릴 자유를 침해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형의 유학을 보장 받는 조건으로 소예고에 들어갔다.

 

 형의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위해 형이 타지에서 외로워 할 때마다 채팅으로나마 함께 했고. 아버지가 형이 아닌 자신을 선택하실까봐 성적도 적당히. 남들이 얘기하는 중간 정도로 공부하며 지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공부보다 더 즐거웠던 그는 매일을 무료하게 보냈고. 그러다 보니, 이뤄야겠다는 목표 역시 없었다. 그렇게 그의 고등학교 1학년은 끝이 났다.

 

 

 

 2학년이 된 그는 아침에 늘 상 있는 등교 길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어머, 언니. 안녕하세요?"

 

 "그래. 좋은 아침~."

 

 평소보다 일찍 아버지의 차를 타고 등교한 그는 하품을 하며 교문을 지나왔다. 그런 그의 곁으로 그녀. 혜빈이 후배들의 인사를 받으며 지나갔다.

 

 누구지?

 

 자신이 바라봐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작지 않은 키에, 길고 찰랑이는 생머리를 가진 여학생은 정말 씩씩했고. 해맑았다.

 

 고등학교 생활이 재밌나?

 

 도진은 철창처럼 굳게 닫힌 철문을 넘어 하루라도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랬기에, 지금 그의 눈앞에 지나가던 해맑은 여학생이 특이해 보였다.

 

 어떻게, 공부에 찌들어 있어야 하는 고3 수험생이 저렇게 밝을 수 있지?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이동 수업을 위해 복도를 걸어가던 그의 눈에 액자 하나가 들어왔다.

 

 "어?"

 

 혜빈의 그림이었다.

 

 "야, 너 뭐 해?"

 

 "이 그림. 누가 그렸어?"

 

 자신들의 관심사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무심하게 지내는 남자의 특성 때문에. 그 남학생도 도진의 답에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어 지나가던 여학생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어이. 너 이거 누가 그린 건지 아냐?"

 

 "어? 이거? 헐.. 너희 이거 그리신 분이 누군지 몰라?"

 

 "누군데?"

 

 "3학년에 강혜빈 선배잖아! 우리 학교에서 그림하면 혜빈 선배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걸? 어떻게 유명하신 분을 모를 수가 있어? 이 그림 봐. 너무 아름답지 않아?"

 

 

 

 혜빈이 그린 그림은.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서로를 품에 안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남녀였다.

 

 도진은 푸른 녹음이 주는 분위기가 왠지 따뜻하게 느껴져 본능적으로. 끌리듯이 그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가 손을 갖다 댄 그림이 주는 청량함과 따뜻함이, 마치 그림 속의 남자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너. 혜빈 선배 어디 있는 지 알아?"

 

 "응? 응. 미술부 회장이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미술실에 계신대."

 

 도진의 물음에 그의 얼굴을 잠시 본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얘기했다.

 

 도진은 그 여학생의 말을 끝으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정신없이 뛰쳐나간 그에게 한 친구가 소리 질렀다.

 

 "어! 윤도진!! 곧 수업 시작이야 임마!!!"

 

 

 

 

 

 ***

 

 

 

 

 

 "헉.. 헉... 헉...."

 

 자신의 시선을 끈 그 그림에 모든 정신이 빼앗긴 도진은 혜빈의 행방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미술실로 달려왔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끌림이 있고, 사람은 그 끌림이 무엇이 됐든. 끌리기 마련이라는데. 그럼 지금 자신이 그녀의 그림을 보고 충동적으로 달려온 행동 또한 자연스러운 끌림인 걸까.

 

 왜 나는 그 그림에 끌린 걸까.

 

 도진은 숨을 가다듬고 미술실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을 통해 보게 된 혜빈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푸른색 앞치마를 앞에 두르고 이젤(그림을 그릴 때 그림판을 놓는 틀)에 고정한 스케치북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도진은 미술실 안으로 들어오려다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해맑고 씩씩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한 얼굴로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여자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하지 않은가.

 

 하얀 스케치북 위에서 노니는 그녀의 손길을 따라 피어나기 시작한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문득, 그녀가 인기척과 함께 달라진 미술실의 분위기를 느끼고 그가 있는 쪽에 시선을 주었다.

 

 "어..."

 

 "안녕? 미술 수업 때문에 왔니?"

 

 "아니요. 어.. 음... 저기,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왔어요!"

 

 도진은 자신이 얘기 해놓고도 민망해서 혀를 깨물고 싶었다.

 

 '누나가 그리신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왔어요.' 라든지 '미술부에 가입하고 싶어요.' 라는 말들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 정신이 나간 나머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응? 그림이야 언제든지 가르쳐줄 수 있는데. 그것보다, 곧 수업 시작하지 않아?"

 

 혜빈은 손으로 시계를 가리키며 물었지만, 도진은 상관없다는 듯. 그녀의 곁으로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았다.

 

 "상관 없어요. 전 항상 단 한 번만이라도 제 마음대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지금이 그 한 번이라고 생각할래요."

 

 "뭐? 불량 고등학생이구나?"

 

 그의 말에 혜빈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바르게 생활하는지 모르시잖아요!"

 

 도진은 그런 그녀의 말에 저도 모르게 발끈했다.

 

 "킥킥. 장난이야~. 나도 알아. 이 학교에 있는 애들 중에 사연이 없는 애들이 어디 있겠어. 다들 너처럼 한 번쯤은 그런 일탈을 꿈꿔 봤을 거야. 그러니까 한 번은 봐줄게. 대신, 나한테 그림을 배우고 싶다면 앞으로 다시는 수업 빼 먹지 않겠다고 약속해."

 

 혜빈은 웃으면서 도진에게 새끼손가락을 걸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와 그녀의 맞물린 손가락에서 피어나는 온기가 정말 따스해서 풀기 싫을 정도로 좋았다.

 

 "그럼. 나는 지금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려야 하니까. 너는 옆에서 네가 그리고 싶은 걸 그려 봐. 그린 걸 바탕으로 내가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 지 판단해야 하니까."

 

 '저는 누나를 그리고 싶어요. 누나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도진은 그의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녀를 힐끗힐끗 훔쳐보며 반드시 그녀의 저 모습을 담아내고자 마음먹었다.

 

 

 

 도진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주말마다 학교에 나온 지 몇 주가 지났다.

 

 혜빈의 곁으로 다가온 도진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나는 수업 안 들으셔도 괜찮아요?"

 

 "응. 나는 내가 꼭 들어야겠다는 과목이 아니면 안 들어."

 

 "왜요? 그렇게 하면 성적은 어떡해요?"

 

 그의 물음에, 혜빈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음.. 나... 사실 유학 가. 아버지가 반대하시는 걸 무릅쓰고. 몰래. 그래서 그쪽 대학에서 요구하는 조건만 신경을 쓰느라..."

 

 

 

 쿵-

 

 이제 조금 그녀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유학이라니.

 

 도진은 처음 마음을 줘 버린 첫 사랑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싫었다. 매주 주말마다 그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자신이 가지 말라고 잡을 자격은 없는 걸까.

 

 "누나는 그림 그리는 게 좋아요?"

 

 "응. 아버지는 그림 그리는 건 그만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걸 배웠으면 하시는데. 나는 그림 그리는 게 좋아. 그림을 그릴 동안은 마음이 정말 편안해."

 

 도진은 그녀의 확고한 대답에, 시무룩해졌다.

 

 자신이 그녀의 옆에 있으면 안 되는 걸까. 그렇다면 애초에 이런 끌림은 왜 있는 걸까.

 

 그는 지금의 이 상황이 쓰라렸다.

 

 그래도 그녀가 행복하다니까. 보내주는 것이 맞겠지. 보다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올 수 있도록.

 

 

 

 도진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진."

 

 "?"

 

 "도진이에요. 윤도진. 제 이름."

 

 "......"

 

 그리고 도진은 혜빈에게 허리를 숙이며 꾸벅 인사 했다.

 

 "누나한테 그림을 배운 지 며칠 안 됐지만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저.. 이제 그만 배울래요."

 

 "그게 무슨..."

 

 "저 사실. 누나 좋아해요! 처음에 누나를 찾아온 것도 누나가 그리신 그림에 끌려서 온 거고. 누나가 그림 그리시는 모습이 정말 예쁘셔서... 그런데 더 이상은 누나를 누나로 못 부르겠어요. 누나 유학 준비하시는 데 방해되면 안 되니까 저는 이제 안 올 거예요. 대신."

 

 "?"

 

 "한국에 와서 다시 나랑 만나면 누나는 내 여자에요."

 

 !!!!!!

 

 

 

 도진은 그녀의 입술에 쪽하고 뽀뽀한 뒤 그녀와 눈을 맞추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잘 다녀 와. 혜빈아."

 

 도진은 그 말을 끝으로 미술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발길이 닿는 걸음걸음마다 투명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가 그렇게 그녀를 떠나보낸 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그는 그녀가 프랑스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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