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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27화. 100일 휴가.
작성일 : 20-09-29 14:42     조회 : 50     추천 : 2     분량 : 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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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100일 휴가.

 

  나는 상무대에 파견을 가는 바람에 100일 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다. 부대 훈련 상황 때문에 계속 미뤄지던 100일 휴가가 마침내 잡혔다.

  후임병들의 휴가가 잡히면 같은 내무 실을 쓰는 고참 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경험치가 높은 고참 들이 전투화를 닦아주는가 하면 1계장이라고 불리는 휴가 때 만 입는 옷을 각을 잡아서 다려 주기도 한다. 군인이 멋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투화와 전투복 밖에 없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봤을 때에는 그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군인들은 서로 알아 볼 수 있다. 얼마나 멋을 냈는지.

  “ 주민이. 휴가 날짜 나온 거 알고 있지? 김 병장.”

  분대장님이 김 병장을 부른다. 아마도 내 전투화를 물 광 내주라고 할 것이다. 김 병장님은 상병 때부터 후임들 휴가가 잡히면 전투화의 물 광을 내준다. 그의 보직은 당번병인데 대대장님 비서 같은 역할이다. 그러다보니 전투복을 다리거나 전투화를 닦는 일을 귀신같이 잘한다. 대대장님을 수행하다보니 본인 시간도 내기 힘든데 그래도 짬짬이 후임들의 위해서 꼭 전투화를 닦아준다.

  “ 그래? 막내야. 전투화 줘봐.”

  김병장님이 나를 찾는다.

  “ 이병. 유주민. 여기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영광스럽게도 나에게도 그 시간이 왔다. 전투복은 감 상병님이 다려 줄 것이다.

  설레기 시작했다. 휴가를 나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일단 짜장면을 한 그릇 시켜 먹고 밀린 잠이나 실컷 자는 것이었다. 상황 근무를 섰던 나는 근무시간이 2 시간이여서 언제나 잠이 부족했다.

  우리 부대는 가평에 위치해 있다. 사격장이 있는 우리 부대는 파라다이스라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부대 내 환경도 좋고 간부들도 각성되있어서 구타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부대였다. 군대가 아니라 무슨 학교 같았다.

  현리까지 휴가자들끼리 같이 택시를 불러 타고 나온다. 네 명이 타면 버스비보다 싸기 때문이다. 안양까지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니 현리에서 청평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청평터미널에서 안양 가는 버스로 갈아타면 안양시내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집을 떠나 처음으로 집으로 향해 가는 길이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산 밑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 줄기가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어느새 쌓여있던 눈들은 녹아 강 물속에 스미고 굽이쳐 흐르는 강물은 진한 생명력을 증명하듯 거대하게 흘렀다.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지 버스는 거침없이 달렸다.

  빠르게 내 달린 버스가 드디어 안양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을 그리워 해본 적이 있었던가? 군대 생활은 아주 사소했던 것들까지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양에 도착을 하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일단, 선생님께 가 보자. 터미널에서 200미터 남짓 거리에 있는 화실을 향해 힘차게 걷는다.

  군인은 평소에도 사회에 나왔을 때도 입수보행을 하면 안 된다. 입수보행 즉, 걸을 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밖에 돌아다닐 때 모자를 벗어서도 안 된다. 휴가를 나가기 전에 선임들에게 배운 군대 규율이었다.

  입수보행을 하지 않고 늠름한 모습으로 걸어 화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컴퓨터에 앉아 계시던 선생님이 나를 반긴다.

  “ 아이고. 주민이 아니냐? 어서와. 어서와.”

  “ 안녕히 잘 계셨어요? 진작 나왔어야 했는데 부대 내에 일이 많아서 늦어졌네요.”

  오랜만에 온 화실이 좀 낯설다. 내가 그림을 그리던 자리는 다른 분이 자리를 잡고 100호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그만뒀다고 했다.

  “ 주민이 휴가 나왔으니까 이따 저녁때 파티라도 해야지?”

  선생님도 오랜만에 나를 보니 좋으신가 보다.

  “ 그래야죠. 집에 가서 좀 씻고 옷도 갈아입고 다시 나올게요.”

  “ 그래. 오랜만에 회포 좀 풀자. 주민아.”

  “ 그럼. 집에 갔다가 해 넘어갈 때 쯤 다시 올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화실을 나섰다. 어제 엄마한테도 휴가 나온다고 전화로 알려놓은 상태라 엄청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군대에 있는 나에게 거의 매일에 가깝게 편지를 쓰셨다. 뭐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편지에서는 엄마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때그때 답장을 해 드렸었다.

  “ 엄마. 나왔어.”

  미용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엄마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 아이고. 주민이 왔구나. 얼마만이니?”

  엄마가 반겨준다.

  “ 누나들은? 어디에 있어?”

  편지로 근황을 들어보니 큰 누나는 다니던 전기업체 사무실을 나와 미용을 배우고 있다고 했고 작은 누나는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 큰 누나는 미용실 나가. 너 화실 있는 곳이랑 가까운 곳이야. 이따가 가봐. 작은 누나는 어린이집 교사 자격증 딴다고 공부하고 있고.”

  그랬구나.

  “ 그래. 다들 결정 잘했네.”

  진로에 대한 결정을 오랜 시간 동안 해오지 못해서 이일 저일 하던 누나들이었는데 이제 좀 길을 정한 것 같았다.

  “ 그럼 집에 아무도 없는 거네?”

  “ 그치. 집에 아무도 없어. 근대 주민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엄마가 사줄게.”

  “ 먹고 싶은 게 한두 가지는 아니지만 지금은 짜장면이 제일 먹고 싶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짜장면, 치킨, 햄버거 이런 것들이 제일 먹고 싶었다. 입대당시 85킬로그램 정도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었었는데 지금은 72킬로그램이었다. 예민한 성격인 나는 군대에 입대를 하면서 역류성 식도염을 심하게 앓게 되었다. 입대하면서부터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몸무게가 많이 빠져 있었다. 참고로 내키는 186이다. 심했던 역류성 식도염은 상무대를 갔다 오면서 상태가 많이 호전 됐다. 그제야 군 생활이 적응이 된 모양이었다.

  “ 그럼. 엄마. 나 집에 가서 씻고 옷 갈아 입고 나올게. 그때 시켜서 먹자.”

  집으로 향한다. 얼마 만에 집인가? 기분이 이상했다. 우편으로 보냈던 내가 언제나 들고 다녔던 열쇠 꾸러미를 엄마에게 돌려 받았다. 오랜만에 온 집은 그 자리에 여전했다. 내방도 거실도 주방도 나만 없어졌을 뿐이지 다른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 있었다. 군대 와있는 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친척형네가 따로 집을 얻어 나가며 이사를 한 점이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는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목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목욕탕을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던 나는 집에서 씻는 것을 좋아했다. 다 같이 탕에 들어가서 있는 공중 목욕탕의 위생 상태도 못 믿을 따름이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안경을 쓰게 된 나의 안경도 문제였다. 쓰고 들어가자니 김이 서리고 안 쓰고 들어가자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불편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씻게 됐다.

  부대에서 주어지는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목욕 시간은 너무 짧아서 씻는 건지 물을 묻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 평소 잘 씻던 나에게 힐링 타임이 필요했다.

  뜨거운 물이 차있는 욕조에 몸을 눕힌다. 아. 정신이 아득해진다. 군대에 있으면서 그간 긴장됐던 근육들의 긴장이 풀리면서 몸이 노곤해진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아. 진짜 편안하다.’

  속으로 생각하며 깜박 잠에 빠졌다. 마치 엄마의 자궁 속에서 잠든 태아처럼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집 전화기로 전화가 온다. 아무래도 엄마인거 같다. 이제 그만 나가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대충 씻고 나가야 될 거 같다.

  “ 엄마. 씻느라고 전화 못 받았어.”

  미용실에 도착했다.

  “ 그랬구나. 난 주민이 너 자는 줄 알았지.”

  목욕으로 피로가 조금 풀린 거 같았다.

  “ 윤짜장에 전화해서 짜장면 시켜놨거든.”

  “ 먼저 시켜서 급했구나.”

  “ 그럼 집으로 갈까도 생각했다니까.”

  우리 엄마는 평소에 성질이 보통 급한 게 아니다. 엄마와 통화를 하다보면 그냥 대화중에 전화를 끊는 경우가 많은데 미용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다 보니 생긴 습관인 것 같았다.

  엄마의 미용실에는 내가 군대를 가고 나서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미용실 앞에 있던 대 단지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엄마의 미용실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힘든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분명 힘이 들었을 것이다.

  “ 음식 왔습니다.”

  이내 배달원이 짜장면을 들고 왔다.

  “ 부대에서도 가끔 짜장면이 나오기도 하고 짜장도 나오는데 맛이 형편없거든.”

  쇼파 테이블에 짜장면과 단무지를 배달원이 내려놓았다.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윤 짜장과 우리 미용실과의 거리는 약 20미터다. 거의 홀에서 먹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배달을 시켜 먹어도 전혀 불지 않은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

  방금 채친 오이에서 향긋한 향이 올라온다. 윤 짜장의 짜장면은 옛날 짜장으로 감자가 큼직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야무지게 비벼서 한입 먹는다. 역시 상상했던 그 맛이다.

  “ 근데 엄마. 아파트 공사하는 것 때문에 손님 많이 줄었지?”

  “ 안 그래도 걱정이다. 아직 공사 들어간지 한 달 밖에 안 됐는데 더 지켜봐야지.”

  “ 큰 누나는 교제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랬지?”

  “ 응. 백화점 다닌다는데 내일 모레 우리 가족 다 같이 해서 모이기로 약속했어.”

  “ 그래. 그날은 시간 빼 놔야겠네.”

  출출했는지 짜장면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부대에서도 가끔 짜장면이 나오기는 하는데 짜장은 그렇다 치고 면이 너무 불어서 면을 먹는 건지 떡을 먹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 엄마도 아들이랑 오랜만에 먹으니까 더 맛있네.”

  실은 엄마도 짜장면을 좋아 하신다. 외식하는 걸 아빠가 너무 싫어해서 아마 자주 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음식을 먹고 나니 나는 급 피곤해 졌다. 어차피 화실도 저녁때나 나가야 하니 집에 가서 한숨 자야겠다. 다시 집으로 옮겨 거실에 이브자리를 깔고 누웠다.

 

  군대 가기 전에 나는 내방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수맥이 흐르는지 내방에서 자는 날이면 악몽을 자주 꿨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거실은 거의 내방수준이다.

  거실에서 자다 보면 부모님께서 새벽에 하시는 대화도 많이 엿들을 수 있었는데 소개를 하자면 이렇다.

  “ 여보. 요즘 은수가 남자 만나고 다니는 거 같은데 따끔하게 일러주세요.”

  안방에서 이야기를 하면 거실에서 들리는지 알지 못하는 부모님들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 아니. 이 녀석이 학생신분에 남자를 만나?”

  “ 만날 수 는 있는데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지니까 하는 말이에요.”

  “ 알았어. 이 녀석을 내가 혼구녕을 내줘야지.”

  이런 대화가 오고간 새벽이면 어김없이 작은 누나를 아빠가 쥐 잡 듯 잡았다. 회초리까지 불사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엄마와 아빠의 자식을 훈육하기 위한 연기였다. 이렇다 보니 마치 독심술을 발휘하는 사람처럼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본의 아니게 헤아리게 되었었다.

  빌라 1층인 우리 집은 볕이 잘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낮잠을 자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몸이 방바닥 안으로 끌려 들어가듯이 잠에 빠져든다. 이게 얼마 만에 낮잠인가? 밤 새워 그림을 많이 그렸던 시절에 집에 와서 낮잠을 청했던 그때가 생각난다.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소진하고 탈진하듯 쓰러져 자던 그때의 그 잠을 다시 또 청한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소스라치듯 잠에서 깨어났다.

  ' 얼마나 잔거지?'

  밖을 보니 해가 넘어가는 듯했다.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안양 화실로 간다. 차창 밖으로 안양천이 보인다. 하천 정비 사업을 하고 나서 부터는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그간 얼마나 많은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많이 방류됐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 하천에서 물 놀이를 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아토피 같은 것에 걸리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싶다.

  안양시내에 도착을 했다. 차에서 내려 걷는데 화실 근처에 내가 늘 담배를 사러가던 마크사가 이제는 정겹다.

  ‘ 나도 저기를 드나드는 군인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이끌리 듯 들어선다. 마크를 달려고 하는 군인들 둘이 보인다.

  ‘ 진급을 했나 보군.’

  보통 군인들은 진급을 하면 본인이 바느질로 계급장을 단다. 대충 달아놨던 계급장을 휴가 나왔을 때 이런 마크사에 와서 오바로크를 단단히 친다.

  “ 디스 플러스 하나 주세요.”

  “ 아니. 자네? 한 동안 안 보인다 했는데 군대 갔었구나.”

  평소에는 눈 인사만 서로 했었는데 내가 군인으로 돌아오니까 반가우신가 보다.

  “ 네. 이제 100일 휴가 나왔습니다.”

  “ 한참. 남았구나. 그래. 고생햐.”

  싱긋 웃어주신다.

  “ 네. 또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왔다. 여기서 화실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그 사이 화실 앞에 있던 오락실은 망했나보다. 그 오락실에서 펌프 하던 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 일부러 샤워하기 위해 여름철에 그렇게 땀을 흘리기 위해 펌프를 했었다. 그 위치에 있던 오락실은 그새 편의점으로 변해 있었다.

  화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 사이에서 안 실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 안녕하세요? 안 실장님 정말 오랜만이에요.”

  얼마만인가? 화실이사하고 처음 인거 같았다.

  “ 어. 주민아. 김 선생하고 전화 통화를 했는데 네가 휴가 나왔다고 해서 궁금해서 보러왔지. 어찌 건강하게 잘 생활하다가 나온 거 같다.”

  밝게 웃으시며 인사를 건넨다.

  “ 네. 이제 부대 생활도 많이 적응했죠.”

  우리가 다 군대를 가고 철이랑 세옥이가 화실에 다니게 됐다는데 얼마 안 있다가 작업실을 따로 얻어 나가는 과정에서 학원출신 애들이 다 따라 나가면서 화실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 있었다. 선생님은 조금 힘들어 보였다. 부정 할 수 없는 것이 젊은 사람들이 빠져 나가고 나니 화실은 활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 선생님 저하고 장보러 가시죠? 오늘은 제가 쏩니다.”

  “ 오늘은 삼겹살 말고 다른 걸로 찾아 볼까요?”

  시장 통에 완성 돼서 팔고 있는 먹거리들이 많았으니까 돌아다니며 좀 찾아볼 참이다.

 

  구석구석 다녀 보니 안주할 만 한 것들이 많다. 닭 뼈가 들어있는 음식을 싫어하시는 선생님을 배려해서 닭 뼈가 없는 강정을 좀 샀다. 그리고 사람들이 줄서서 먹는 만두집에서 찐만두 두 팩을 사고 족발 집 들려서 족발도 한 팩 샀다. 이 정도면 될 듯 싶었다.

  안주랑 술이랑 한가득 들고 화실로 향한다.

  “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한다.

  “ 금방 왔네. 어서와.”

  안 실장님이 반겨 주신다.

  “ 군 생활 하느라고 고생이 많았겠어.”

  도영이 아저씨가 그새 합류해 계셨다. 샷시 일을 하시는 도영이 아저씨는 화실에 나오신지 일 년이 다 되어 가시는 분이다.

  이렇게 남자들이 술판을 벌 일거 같으면 으레 여성들은 조용히 자리를 뜨신다. 다른 것보다 술을 마시면 끝장을 보시는 선생님 탓이 가장 큰데 아무튼 그렇게 된다. 나갔다 와보니 그림을 그리던 여성분 두 분은 정리를 하고 자리에 없었다.

  “ 이리로 와서 앉아. 주민아.”

  안 실장님이 옆으로 오라신다. 이렇게 안 실장님과 같이 술을 마시는 것이 얼마만인가?

  “ 어떻게 잘 지내셨어요?”

  “ 캐드일 하는 사무실에 다녀. 적성에 맞는 거 같구나.”

  “ 그래요? 다행이네요. 늦게 시작하신 일이라 걱정했거든요.”

  “ 안 실장이 얼마나 꼼꼼한 성격인데. 뭐든 배우면 잘할 스타일이야.”

  “ 자. 자. 잔들 채우시고 한 잔 합시다.”

  “ 자, 모두들 반갑습니다. 건배!”

  휴가 나와서 이렇게 화실 식구들이랑 술을 한 잔 하니 좋았다. 그간 살아온 얘기들로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 그래서 군대에서도 그림 그리는 보직을 받았다는 말이야?”

  “ 아뇨. 따로 그림만 그리는 보직은 아니에요. 그림 그릴일이 있을 때 저한테 시키려고 작전과로 보낸 거죠.”

  각종 계원들과 같은 내무 실을 쓰기 때문에 부대 내 행사 때나 필요한 그림도 그리고 지도 그리기 등등 내가 그림을 그려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 그래도 .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보직이라니까 좋네. 그림 실력도 녹슬지 않고,”

  “ 운이 좋았죠. 대대장님 면접 당시에 제가 요구했는데 그게 먹힌 거 같아요.”

  화실 문이 열린다. 효민이가 왔다. 내가 휴가 나오는지 알고 온 것이다. 휴가 나오기 전에 효민이와 통화를 했었다.

  “ 선생님. 저 왔어요.”

  “ 효민이 왔구나. 어서와. 어서와.”

  “ 오랜만이구나. 효민이. 갈수록 예뻐지는구나.”

  효민이와 세종이가 화실을 열심히 다닐 때 늘 옆에서 카드작업을 하시며 같이 밥도 먹고 가족 같이 지낼 당시가 떠오르셨는지 전하는 인사에서 애정이 묻어 나신다. 효민이가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조금 밝아졌다.

  “ 어린이집 일은 이제 할 만해?”

  적성에 안 맞는지 만나기만 하면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던터다.

  “ 그냥. 다니는 거지 뭐. 나 자격증도 따야 돼.”

  “ 자격증? 무슨 자격증?”

  “ 보육교사 자격증. 3급부터 있더라.”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야 정부에서 보조해 주는 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 적성에 안 맞아 힘들어 하는 거 같은데 계속하려는 거야?”

  “ 아. 몰라.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그냥 하는 거지.”

  힘들어 하는 거지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주변에 학부모들한테 소문이 잘나서 산본 아파트 단지에 교습소도 작게 임대해서 그림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학원 다닐 때 선생님들이 효민이 그림을 참 좋아했었다. 손이 느려 정해진 시간 내에 완성을 못해서 문제였지 감은 좋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었다.

  술자리는 깊어지고 있었다. 효민이와 도영이 아저씨는 내일 일찍 일을 간다며 먼저 일어났다.

  “ 김 선생. 우리도 이제 일어납시다.”

  “ 그래. 그래. 이제 갑시다.”

  “ 이제 들어가야겠네요.”

  나도 일어났다. 언제나 북적거리는 안양시내는 새벽이 되면 그나마 한산해 진다. 시내 안쪽은 아직도 불야성이겠지만 화실 앞만 해도 인적이 드물다.

  “ 김 선생. 조심히 들어가.”

  선생님은 집 방향으로 비틀 비틀 거리며 어둠속으로 사라지신다.

  “ 안 실장님은 어디 방향으로 가세요?”

  “ 주민아. 내가 자주 가는 술집에 가서 한 잔만 더하고 갈까?”

  “네?”

  나는 지금까지 안 실장님과 독대로 술을 마셔 본적은 없었다.

  “ 여기서 멀지 않아. 한 잔만 더 하자.”

  “ 그래요. 어차피 차는 끊겨서 택시 타고 가야 해요.”

  파킨슨병을 앓고 계시는 안 실장님은 걸음걸이가 보통 느린 게 아니다. 몸이 점차 굳어가다 보니 관절들을 자유롭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슨 병인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서야 병명을 알 수 있었다.

  안 실장님 걸음걸이 속도에 맞춰 천천히 길을 걷는다. 새벽녘이라 이슬이 내리는지 공기가 차고 습하다.

  “ 저기 골목에서 돌아가면 금방이야.”

  “ 여기. 이 골목 정말 많이 온 곳이에요.”

  대농단지라고 불리 우는 곳인데 식당들과 술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길을 찾아 가다보니 화실에서 간혹 가다가 사람들과 왔던 매운 갈비 집 옆집이었다.

  “ 여기에요? 오며가며 본 곳이네요.”

  “ 어. 여기 주인이랑 친해져서 자주 와.”

  “ 신기하네요. 옆집이랑 여기 앞집에서는 종종 먹어 봤는데 여기는 한 번도 안 와봤어요.”

  “ 들어가자 주민아.”

  안으로 들어와 보니 시간이 늦어 손님은 없었다.

  “ 박 사장. 나왔어. 맥주 줘”

  많이 와 보신 곳이 맞나보다. 친숙하게 사장을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술집 여사장님은 권태로워 보였다. 기본 안주와 맥주 3병을 내어 오셨다.

  “ 실은 말이야. 내가 주민이에게 꼭 해줄 말이 있었거든.”

  맥주 한 잔을 시원하게 드시곤 이내 말을 꺼내셨다.

  “ 무슨 말씀인데요?”

  궁금했다.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동이 틀 시간이었다.

  “ 어. 일단 미술대전 입선 한 거 정말 축하한다. 소식을 늦게 접해서 몰랐거든.”

  “ 하실 말씀이 그거였어요. 에이. 아무튼 고맙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한해에 여러 가지 공모전이 있지만 그래도 최고의 권위와 공신력을 자랑하는 공모전은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미술대전이었다.

  “ 그리고. 이건 좀 쑥스러운 말인데.”

  “ 네? 뭐가요.”

  “ 주민아.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네가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더 최선을 다해서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가 되어다오.”

  어리둥절했다. 무슨 고백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 네. 칭찬 고맙습니다. 너무 부끄럽네요.”

  진심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나에게 너무 과분한 칭찬 같았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여 말씀하셨다.

  “ 나처럼 상업적인 그림 그리지 말고 진정한 화가가 되어 다오. 화가가 돈을 쫒으면 안 된다. 그거는 디자이너나 하는 일이야.”

  어떻게 무슨 그림을 그려야 그런 화가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번에 미술대전에 낸 그림은 사고 팔수 있는 그림은 아니었다. 그냥 그런 뜻으로 이해했다.

  “ 네. 뭐 지금처럼 그림을 열심히 그리라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 그래. 열심히 해서 네 뜻을 펼쳐 봐.”

  “ 네. 군대에서도 시간 나는 대로 노력할게요.”

  오늘 안 실장님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이었는데 지금 하시는 말씀을 보니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서 이 시간까지 단둘이 되는 순간을 기다리셨구나. 고마운 말씀에 숙연해졌다.

  “ 안 실장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제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까 들어가 보셔야죠.”

  “ 그래. 나도 할말 다 했으니까 이제 들어가 봐야지.”

  그 말을 해주고 싶어서 지금까지 기다린 게 맞나보다.

  안 실장님을 들여보내고 나니 해가 뜨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 술을 마셔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속에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와 불타오르고 있었다. 한 동안 군 생활 하느라. 죽어있던 예술 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랄까? 빨리 제대해서 마음껏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날을 위해 몸과 마음을 건강히 해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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