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16화. 액자공장.
작성일 : 20-09-29 14:15     조회 : 52     추천 : 2     분량 : 1188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6화. 액자 공장.

 

 

 

  “ 주민아. 집에 언제 올 거야?”

 

  “ 어. 엄마. 저녁때 가야지.”

 

  “ 다름 아니라 미용실 손님이 너 그림 보더니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셔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었다.

 

  “ 그래? 뭐하시는 분인데?”

 

  “ 그건 나도 모르지.”

 

  말을 들어보니 근처에 친누나 집에 왔다가 누나 말을 듣고 머리를 자르러 오신 분이라고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이따가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전화 주시면 온다고 했단다. 가만 내 그림이라면 얼마 전에 완성해서 미용실에 걸어놓은 그 수채화를 보신 것 같았다.

 

  “ 그래?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면 빨리 가야지.”

 

  화실에서 펼쳐놓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집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계절은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스산하게 내리는 봄비는 개나리가 피워나기에 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우산을 받쳐 들고 길을 나서는데 제법 내린 비덕에 오늘도 내 신발은 흠뻑 젖게 생겼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상가를 지나 반대편 차선으로 가야 한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지하상가에서는 습해서인지 이상야릇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다. 늦은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지하상가는 한가하다. 계절이 바뀌는 탓인지 옷들도 봄을 입고 있다. 저마다의 색이 최고인양 빛을 발산하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하상가를 지나 건너편으로 넘어왔다. 앞에 보이는 구름 다릴 지나면 버스 정류장이다. 학원을 다닐 때도 늘 이 정류장을 이용했는데 화실을 오갈 때도 이 정류장을 찾게 된다. 한 정거장 정도를 더 걸어와야 하지만 나는 이 정거장이 좋다. 나와 함께한 지 4년이 다 되어가기에 너무도 친숙해져 버린 터미널이 되어 버린 나의 정류장.

 

  구름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저기 멀리 우리 집 가는 버스가 보인다. 저 버스 역시 나와 4년을 넘게 함께해 준 반가운 버스다.

 

  버스에서 내려 엄마가 있는 미용실로 향한다. 정류장에서 100미터 정도 거리에 있는 미용실로 향한다. 미용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처음 보는 아저씨가 소파에 앉아서 엄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 다녀왔습니다.”

 

  “ 쟤가 이 그림을 그린 우리 아들이에요.”

 

  아까 말했던 그분인가 보다.

 

  “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를 건넨다.

 

  “ 네, 반가워요. 젊은 친구가 그림을 참 잘 그리네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처음 보는 사람이 칭찬을 해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 아니요. 뭘요. 그냥 모작입니다.”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수원에서 액자 공장을 하는 사장님이었다. 내 그림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 주민 씨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해요.”

 

  “ 아니. 아직 유화를 충분히 다뤄보지도 못한 걸요.”

 

  “ 수채화를 이 정도 하시는데요 뭘. 수채화가 더 어려운 건 아시죠? 제가 보기에는 그냥 하시면 될 거 같은데요.”

 

  아직 그리지도 않은 그림에 대한 저 확신은 무엇일까?

 

  많은 화가들의 액자를 해봤다는 사장님은 내 그림에 대한 확신이 있어 보였다.

 

  “ 제가 액자를 만든 화가가 수 백 명은 될 겁니다. 근데 주민 씨 같은 그림은 처음 봐요.”

 

  “ 과찬이십니다. 저 그림 그냥 책 보고 똑같이 그려 본거라니까요.”

 

  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저 그림이 모작이라고 해도 저걸 그린 사람은 주민 씨라는 거죠.”

 

  어떻게 나보다 내 그림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계셨다.

 

  “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우리 공장에 가서 공장 구경도 하고 사업 얘기도 하고 그럽시다.”

 

  “ 네. 저도 한 번 구경 가보고 싶네요.”

 

  못 이기는 척 말하긴 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공모전에 그림을 출품하려면 액자가 필요하기는 했다. 무슨 사업인지는 모르지만 액자공장 사장님을 한 분 정도 알고 지내는 것도 나로서도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따라간다고 하자 신나 하며 액자공장 사장님은 미용실을 나가셨다. 무슨 일 인가 싶었다. 사장님이 가시고 엄마하고 얘기를 하는데 저분 누나랑 엄마하고는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남편과 함께 미용실과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출판사를 한다고 했다. 시집 같은 것을 출판하는 작은 출판사.

 

  다음 날이 됐다. 점심을 먹고 액자공장 사장님과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 사장님 차에 몸을 실었다. 큰 액자를 실을 수 있는 스타렉스 3번이었다. 엉겁결에 공장 구경을 하게 생겼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했다. 내가 그림을 그려서 공장으로 보내면 그림 값을 치러주고 그 그림을 캔버스에 출력해서 여러 개를 팔려고 하는 것이 사장님의 계획이었다. 말 그대로 원화가 필요한 것이었다.

 

  공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직원도 여럿 있었는데 모두 친척들이라고 했다. 본인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 직접 운영하는 공장도 보여 주는 거라고 했다.

 

  “ 아직 유화를 많이 그려보지 못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 같아요.”

 

  공장을 둘러보던 내가 사장님께 말했다.

 

  “ 많이 안 해봐서 그렇지. 분명 잘하실 거 에요.”

 

  벽에 기대지 있는 정물화를 들어 보이며 말하신다.

 

  “ 이런 느낌으로 그리면 돼요. 주민 씨 수채화 같은 느낌도 좋고요.”

 

  공모전도 개인전도 없는 무명작가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한 부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 좀 해보겠다고 사장님께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현재 국전에 출품하는 그림이 더 급했다. 출품까지 5개월 정도 남았지만, 그림이 어떻게 나올지는 나 조차도 모를 일이었다.

 

  공장을 둘러보고 사장님이 미용실까지 다시 태워다 주셨다.

 

  “ 주민 씨. 생각해보고 연락 주세요. 연락 기다릴게요.”

 

  “ 네. 연락드릴게요.”

 

  “ 또 봐요. 그럼.”

 

  “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인사를 나누고 차는 점점 멀어져 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중에 액자도 해야 하고 관계를 계속 갖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그림을 잘 그려줄 자신은 없었지만 못할 일도 아니었다.

 

  미용실에 도착해보니 엄마는 손님을 맞아 파마를 마시느라 바빴다. 이렇게 손님이 있을 때는 소파에 잠깐 앉아 있다가 이내 일어나 밖으로 나선다. 자판기 커피나 빼먹으러 가야겠다. 밤새 내린 비에 아직 땅이 젖어 있었다. 신발이 젖으면 안 된다. 집에 가서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겠다. 비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은 지금이 낮 시간 인지 의심까지 들게 만들었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까 우산도 챙겨서 나가야겠다.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은 선생님과 화실 옆에 위치한 목공소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제작하려면 패널을 직접 짜야한다. 합판 한 장을 사면 100호 사이즈 하나와 조금 작은 사이즈지만 50호 정도 되는 사이즈도 하나 나온다. 쫄대로 쓸 나무도 두 묶음 사기로 했다.

 

  전화가 걸려왔다.

 

  “ 유 선수 어디야?”

 

  선생님이다.

 

  “ 네. 거의 다 왔어요.”

 

  이른 아침인데 선생님의 마음이 분주하신가 보다. 오늘 패널을 짜기로 했는데 우리 것뿐만 아니라 취미로 그림을 그리시는 아주머니 두 분 것도 오늘 같이 하는 김에 같이 짜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 어서 와. 오늘 할 일이 많다.”

 

  여성들이 나무를 다루기가 어려우므로 하는 김에 다 같이 패널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서양화 같은 경우는 정 왁구를 사서 짜야 더 견고한데 비용도 아끼고 만드는 경험도 하고 싶었던 탓에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 선생님 저 왔습니다.”

 

  화실에 도착했다. 벌써 청소까지 다 하신 모양이다.

 

  일단, 나는 화실에 도착하면 커피를 타서 발코니 쪽으로 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러면 선생님도 따라 나와 같이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면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를 한다. 오늘은 패널을 짜기로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갈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운 나는 똥을 싸러 화장실로 향한다. 배가 아파서 라기보다는 일종의 습관이다. 그림을 그리는 중에 배가 아프면 집중력이 깨지고 다시 집중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앉아서도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 유 선수. 이제 내려가 볼까?”

 

  볼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나를 향해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 그럼. 가볼까요?”

 

  패널이 필요한 사람은 오늘 총 4명이다. 패널도 4개를 사야 하고 쫄대용으로 쓸 1인치 나무 다발을 두 개를 사야 한다. 선생님과 내가 오늘 수고를 해야 하기에 비용은 아주머니들께서 내시기로 하셨다. 패널의 길이는 가로가 2400센티미터이고 세로는 1200센티미터다. 100호 F형 사이즈의 기준은 가로가 1622 * 1303이다. 정확한 사이즈는 아니지만 패널에서 1600 * 1200만 한 크기로 자르면 F형보다는 작고 P형보다는 큰 사이즈가 된다. F형은 인물 화형이고 P형은 풍경 화형을 의미한다. 규격에 꼭 맞출 필요가 없기에 이렇게 자르면 적당하다. 공모전 요강을 보면 100호 이하라고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정이 그렇다 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100호를 그려서 출품을 한다. 그림이 작으면 그만큼 정성이 덜 들어가 보이는 탓이다.

 

  목공소에 들어가서 나무를 살핀다. 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결이 조금씩 다르다. 건축내장재로 쓸 것이 아니다 보니 잘 살펴야 한다. 쫄대도 최대한 가스 레기가 없고 옹이가 많지 않은 다발로 골라야 한다.

 

  “ 사장님. 이거 하고 이거 이렇게 주세요.”

 

  선생님이 패널들 사이에서 상태가 양호한 것들로 고르신다. 선생님은 패널을 많이 짜 보셨기 때문에 선생님만 잘 따르면 된다.

 

 잘 고른 패널들은 한 번 잘라서 가져가야 한다. 100호 만들 사이즈로 동시에 네 장을 사장님께서 잘라 주신다. 잘라주신 나무를 들고 옆 건물 화실로 옮긴다. 100호 크기의 패널을 옮길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계단을 올라갈 때에는 윗부분에 긁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한 층을 다 올라가 패널을 돌릴 때 문고리나 벽에 부딪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패널의 두께가 얇기 때문에 부딪 치거나 걸리면 패널이 찢어지거나 부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손이 불편하셔서 짐은 내가 다 올려야 한다. 50호 사이즈 패널은 옮기기가 수월하다. 마지막으로 쫄대를 올릴 때는 두 사람이 같이 해야 한다. 길이가 많이 길기 때문에 층 계단에서 받아쳐주는 형태로 올려야 한다. 내가 들고 올라가면 선생님이 밑에서 올려주고 쭈욱 올리다가 3층에 다 달으면 쫄대를 4 층 계단까지 올렸다가 반대편을 문 쪽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이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해서 짐을 다 옮기고 나니 이마와 목 쪽에서 땀 방울이 흘렀다. 짐을 옮기는 모습을 지켜보던 영숙이 아주머니께서 그새 언제 사 왔는지 시원한 음료수를 건넨다.

 

  “ 주민 씨. 고생이 많아요.”

 

  “ 아뇨. 뭘. 다 같이 잘되자고 하는 건데요.”

 

  땀을 닦아 내며 주시는 음료수를 받는다. 선생님도 올라오셨다.

 

  “ 땀도 흘렸고, 배도 고프고 하니까 모이세 가서 점심 먹고 시작합시다.”

 

  모이세는 안양 일 번가에 새로 생긴 식당이다. 모든 메뉴는 2500원이다. 돈가스만 3000원이었는데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픈 행사로 냉면을 1500에 팔고 있었다. 가격이 너무 착하다 보니 식사 시간에 가면 기다림이 너무 길어진다. 그래서 선생님은 조금 이른 점심을 먹자고 하시는 것이다. 땀을 흘렸더니 시원한 물냉면이 먹고 싶어졌다.

 

  모이세에 왔다. 다들 물냉면을 선택했다. 봄 날씨 같지 않게 날씨가 오늘은 좀 더웠다.

 

  “ 냉면 먹으면서 돈가스 하나 시켜서 나눠먹을까?”

 

  냉면만 먹으면 금방 배고 고파질 것 같았는지 선생님이 제안하신다.

 

  돈가스를 추가해서 먹어도 10000원이 넘질 않는다. 모이세 사장님은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시킨 음식들이 나왔다. 돈가스는 내가 자르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모이세 돈가스는 다른 집과 소스가 조금 다르다. 색깔도 맛도 다르다. 조금 더 밝은 브라운 색을 띠는 소스는 짜지 않아서 좋은데 다른 집보다 소스의 양도 많다. 많은 양의 소스지만 짜지 않아 돈가스를 듬뿍 찍어 먹다 보면 궁합이 잘 맞아 다 먹게 된다.

 

  냉면도 1500원짜리지만 맛있다. 식초와 겨자는 각자 기호가 맞게 추가해서 먹는다. 일하고 걸어오느라 달아올랐던 체온이 시원한 국물을 마시니까 급하게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 맛에 냉면을 먹는 거지.’

 

  적당히 질긴 냉면 면발은 여러 번 가위로 잘라야 먹기 수월하다. 평양식도 함흥식도 아닌 모이세 식 냉면을 올여름에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냉면 전문점에서 냉면을 먹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첫 냉면이었다. 돈가스까지 먹어서 인지 배가 제법 부르다.

 

  화실로 돌아오는 길은 시장을 관통해서 왔다. 시장을 통해오면 시장 구경을 해서도 좋고 내리쬐는 햇볕을 피 할 수 있어서도 좋다. 봄이 와서 인지 각종 야채와 과일들이 싱그럽다.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시켜 연신 튕겨내는 파프리카의 빛들이 사방에 쏘아져 시선을 방해한다. 신선한 생선들로 가득한 수산물 집을 지나는데 비릿한 냄새에 살짝 몸이 움츠려 든다.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의 팔자는 늘어져 보인다.

 

 시장을 지나올 때는 바쁜 마음도 잠시 내려놓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오는 길은 언제나 생기가 넘쳐 좋다.

 

  화실에 도착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을 해보니 계산이 나오는 사이즈들은 먼저 잘라 놓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1600짜리는 8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쫄대 두께를 뺀 1150짜리가 12개가 필요하겠다. 패널이 크기 때문에 중간에 나무 하나를 대줘야 패널이 휘지 않는단다.

 

  잘라놓은 나무들은 한 군대 놓아놓고 고른 면을 찾아 목재용 접착제를 바른다. 이 일은 쉬운 일이고 힘이 들지 않는 일이다 보니 아주머니들이 몫으로 주기로 했다.

 

  이제 쫄대들을 패널에 붙여야 한다.

 

  장도리가 달린 망치를 손에 쥔다. 이제부터 조금 시끄러워질 게다. 아주머니들께서 접착제 작업을 한 나무를 합판 밑에 면이 잘 맞도록 맞춘다. 한 10 센티 간격을 두고 잔못으로 못질을 한다. 못을 잡고 있는 손을 때리지 않게 살짝 치다가 어느 정도 들어갔다 싶으면 적당한 힘으로 내리친다. 너무 세게 치면 안 된다. 자칫 세게 쳤다가는 합판에 망치 자국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장갑을 끼고 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나무 가스 레기가 손에 박힐지 모르게 때문이다.

 

  100호 네 개의 가로 면에 나무를 다 붙였다.

 

  “ 주민아. 담배한테 피우자.”

 

  선생님이 뒤에서 말씀하셨다. 담배를 피우러 베란다로 향한다.

 

  “ 작품 구상은 조금 해 봤어?”

 

  “ 네. 거의 다 나온 거 같은데. 그려 봐야죠.”

 

  “ 주민이가. 100호를 한다니까 기대되는 걸.”

 

  “ 저는 걱정이 앞섭니다. 완성이나 할 수 있으려나.”

 

  “ 무슨 소리야. 충분히 할 수 있어.”

 

  솔직한 말이었다. 유화의 성질도 아직 파악이 안 된 상태 인 데다가 캔버스에 그려보는 것도 학교에서 두 번 밖에 안 해봐서 기름의 농도나 물감의 성질 같은 것도 파악이 안 되어 있던 탓이다. 유화 붓은 종류도 다양했는데 붓도 잘 알지 못했다.

 

  다시 패널을 짠다. 이번에는 세로 면에 쫄대를 잇는다. 패널을 뒤집어 세로 면에 나무를 끼우고 타카로 먼저 댔었던 가로면 쫄대와 이어 붙인다. 그리고 자로 재서 가로면 가운데를 찾는다. 찾은 가운데에도 쫄대를 댄다. 다시 패널을 뒤집는다. 가로면 쫄대를 미리 대논 합판 윗면에 못을 쳐야 한다. 역시 10센티 간격으로 못을 친다. 못이 조금이라도 튀어나오게 되면 천이나 종이를 댄 뒤에 표가 나기 때문에 손으로 하나하나 만져가며 쳐야 한다. 앞면도 가운데를 자로 재서 찾는다. 찾은 가운데에 못을 정확하게 치기 위해 연필로 금을 긋는다. 합판이 얇기 때문에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못을 쳐 나간다. 가운데 못을 다치고 나면 다시 패널을 뒤집는다. 가운데로 지른 쫄대에서 사선으로 가로 모퉁이까지 쫄대를 질러야 한다. 이렇게 대각선으로 쫄대를 질러줘야 패널이 뒤틀어지지 않는다. 사선으로 나무를 잘라야 하기에 톱질의 정교함도 필요하다.

 

 쫄대를 대각선으로 올려놓고 이쪽저쪽 다니며 나무 사이에 쏙 들어가게 자르기 위해 눈으로 폭을 본다. 금을 잘 그어서 쫄대를 대각선으로 잘 자른다. 이때 나무의 결을 잘 봐야 한다. 결이 역결이면 잘리는 과정에서 나무가 뜯길 수가 있기 때문에 나무의 결 방향을 꼭 체크해야 한다.

 

  잘 잘린 쫄대를 역시 타카로 고정해서 다시 뒤집는다. 앞면에 연필로 사선으로 고정해 놓은 쫄대 위에 선을 긋는다. 선을 긋지 않고 못을 치게 된다면 대번에 못을 잘못 칠 수 있기 때문에 이 작업도 귀찮지만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앞으로 7번 반복해야 한다. 100호가 네 개 50호가 네 개이기 때문이다.

 

 

 

  패널을 다 짜고 나니 시간이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 선생님, 주민 씨 모두 고생 많았어요.”

 

  “ 다들 고생 많았어요. 품앗이로 같이 하니까 수월했어요.”

 

  “ 오늘은 목공 접착제가 잘 마를 때까지 이렇게 포개 놓고 내일 배접이랑 천 씌웁시다.”

 

  목공용 접착제가 다 마르는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탓이다.

 

  “ 다들 작품 잘해서 국전에 내보아요.”

 

  영숙이 아줌마는 작년 가을부터 화실에 나오시는 분인데 요 앞에 있는 가락국수 집 사장님이다. 남편이 대기업을 다녔는데 희망퇴직을 받고 직장을 나온 상황이라 준비가 많이 안 된 상황에서 부랴부랴 가게를 차리게 되었단다. 최근에야 제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탓에 기본적인 그림을 그리실 줄은 알았지만 유화의 경험은 전무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한국화를 하시는 선생님 밑에서 제대로 된 유화 교육은 받을 수가 없었다. 그냥 닥치는 대로 해보며 독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도 늦고 해서 아주머니들은 집으로 향했고 나와 선생님은 중앙시장 순대국밥 집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고생한 몸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다.

 

  “ 들어와. 주민이 오늘 고생 많았다.”

 

  종종 정말 배가 고플 때 들르는 곳인데 맛과 양 모두 최고다.

 

  “ 선생님도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선생님도 이렇게 많은 양을 짜 보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순대국밥 집 안으로 들어선다. 지친 하루의 일상을 소주 한 잔으로 털어 내려는 사람들로 자리는 꽉 차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조금 쌀쌀해진 날씨 탓에 순대국밥 집안은 국을 연신 끓여낸 큰 들통 안에서 피워진 김으로 가득 차 있다. 피워진 김 사이로 저마다 할당된 순대국밥을 앞에 놓고 소주잔을 기울인다.

 

  “ 사장님. 여기 곱빼기 같은 일반 두 개요.”

 

  선생님이 두 손을 모으시며 주문을 한다.

 

  “ 소주도 주세요.”

 

  돌아서 김 속으로 사라지는 아주머니 뒷모습에 주문을 이어 붙였다.

 

  “ 요즘 세종이가 안 보인다.”

 

  “ 그러게요? 요즘 군대 갈 날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가? 기분이 꿀꿀하겠죠.”

 

  “ 공모전 한다고 두 달을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리더니.”

 

  세종이는 영장이 그렇게 빨리 나올지 몰랐다. 그래서 국전에 낸다고 두 달 정도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온 영장에 공모전에 낼 수 없게 된 걸 알자 그날로 붓을 놨다.

 

  “ 전화 한 번 해볼까요?”

 

  “ 내가 한 번 해볼까?”

 

  내 핸드폰을 받아 드신다. 참고로 선생님은 아직 핸드폰이 없으시다.

 

  “ 어. 왜?”

 

  세종이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 나야. 선생님. 오 박사 어디야?”

 

  선생님은 세종이를 오 박사라고 부른다.

 

  “ 네에. 선생님. 여기 안양 시낸데. 술 한 잔 하고 있었어요.”

 

  락신에서 승희 형하고 술 한 잔 하고 있다고 했다. 세종이 밴드도 세종이도 세종이지만 승희형의 대체 복무로 인해 사실상 해체한 거나 다름없었다. 당장 공연도 연습도 없었지만 종종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는 거 같았다.

 

  “ 오 박사. 여기 중앙시장인데 이리로 넘어와.”

 

  “ 일행이 있어서. 나중에 화실로 갈게요.”

 

  “ 일행도 같이 오면 되지.”

 

  승희 형이라면 아마도 올 성싶었다. 술자리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빼는 일이 없었다.

 

  “ 그럼. 여기서 남은 술마저 마시고 갈게요.”

 

  역시나 예상이 적중했다.

 

  이내 순대 국이 나왔다. 뽀얗게 하얀 국물에 빨간 다진 양념을 풀어야 한다. 얼큰한 국물을 만들어야 소주 안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얼큰한 국물 한 모금은 소주를 부른다.

 

  “ 선생님 한 잔 받으세요.”

 

  다진 양념을 풀은 국물에 얇게 슬라이스 쳐진 청양 고추를 적당량 넣는다. 휘 휘저어서 밥을 한 번에 말아 넣는다. 들깨 가루는 기호에 맞게 넣는데 나는 별로 안 좋아한다.

 

  “ 안 실장이 전화 왔었는데. 많이 힘든가 봐.”

 

  “ 안 실장 님. 건강은 어떻대요?”

 

  사실 안 실장님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다. 몸이 서서히 굳어 가다 보니 건강이 제일 걱정이 됐다. 몸은 그런데도 술을 달고 사시는 것도 문제였다.

 

  “ 난치병이다 보니 병이 낫는 것보다 목구멍에 풀칠을 하는 일이 더 문제야.”

 

  “ 여동생 집에 아직 계신 거 에요?”

 

  “ 아직 여동생 집에 같이 지내나 봐.”

 

  캐드를 배운다고 했는데 캐드 일이 많은지 모를 일이었고 몸이 불편하시다 보니 직장생활이 가능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실장님을 떠올리니 술맛이 더 쓰게 느껴졌다. 술에 기대서 살아가시는 삶. 그 삶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첫사랑의 실패가 지금의 안 실장님을 만들었다고 했었다. 안 실장님의 첫사랑은 잘 살고 있을까?

 

  “ 주민아. 우리 왔다.”

 

  세종이와 승희형이 어느새 순대 국 집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9시를 향하고 있었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승희형이 선생님께 인사를 한다.

 

  “ 아. 그 기타 잘 친다는 형. 반가워. 반가워.”

 

  서로 얘기만 들었지 초면이었구나.

 

  승희형은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대를 대신하고 있었다.

 

  “ 효민이는?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 어. 같이 있다가 들여보내고 우리만 온 거야.”

 

  “ 그래. 웬일이래. 주당께서.”

 

  내가 혀를 찼다.

 

  “ 감기 기운 있다고 해서 들여보냈지.”

 

  “ 그럼 그렇지.”

 

  시답지도 않은 안부를 묻고 있다. 세종이는 이제 군대 입대까지 한 달여 남겨놓은 상태였다.

 

 “ 애들 왔으니까 안주하나 더 시킬까?”

 

  선생님께서 물으신다. 메뉴판을 보니 아바이 순대가 적당할 듯싶다.

 

  “ 선생님. 아바이 순대가 괜찮겠는데요.”

 

  내가 메뉴를 정했다. 맥주를 마시다가 왔으니 적당히 배들은 찼을 테니 안주삼아 씹을 것 정도면 족할 것이다.

 

  술잔이 오간다. 그래도 이렇게 둘러앉아 그림 얘기, 예술 얘기할 때가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 나는 피카소 같은 화가가 제일 싫어.”

 

  세종이는 추상화 같은 비구상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가 보다.

 

  “ 왜 싫은 건데?”

 

  “ 예술은 사기라고 말했잖아. 그건 너무 주관적이면서 재수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해”

 

  세종이가 조금 취해 보인다.

 

  “ 백남준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백남준한테 관심이 없으니 세종이는 알 리가 만무했다.

 

  ‘기라성 같은 화가들은 왜 다 예술은 사기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또 다른 이면에는 아직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무엇이 존재하는 것일까?

 

  “ 난 샤갈 그림이 좋더라.”

 

  의외의 대답이었다. 승희형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림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 그 사람 날아다니는 그림.”

 

  아주 단순하지만 명확한 대답이었다.

 

  “ 샤갈 그림은 조금 유치하지 않아?”

 

  나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 대가 반열에 오를수록 그림은 유치해야 되는 거야.”

 

  선생님이 말씀을 이어 나가셨다.

 

  “ 운보 김기창 선생님 그림 일대기를 봐봐. 젊어 서는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시던 양반이 나중에는 바보 산수라고 아이같이 그림을 그리셨지.”

 

  선생님 말씀은 이랬다. 젊은 시절에는 어렵고 잘 그린 그림을 지향해서 유명세를 타지만 나이를 먹어 가다가 보면 순수한 마음에 때가 타게 된단다. 그러다 보면 유년시절 본인이 가장 순수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그러다 보면 그런 그림들이 나오게 되고 그림을 관람하거나 수집하는 사람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지금 나는 무엇을 그려야 하는 것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게 됐다. 일단, 국전에 내려고 구상하고 있는 그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 보면 분명 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안녕하세요.독자님들. 2021 / 9 / 14 444 0 -
공지 감사합니다. 2020 / 10 / 29 610 1 -
36 36화. 작업실. 2020 / 9 / 29 76 2 7182   
35 35화. 설비. 2020 / 9 / 29 46 2 6476   
34 34화. 연인. 2020 / 9 / 29 50 2 6648   
33 33화. 전역. 2020 / 9 / 29 47 2 2859   
32 32화. 그녀. 내 마음에 들어오다. 2020 / 9 / 29 50 2 9186   
31 31화. 훈련과 휴가. 2020 / 9 / 29 44 2 6926   
30 30화. 그녀와 소고기. 2020 / 9 / 29 46 2 12471   
29 29화. 2002년 월드컵. 2020 / 9 / 29 46 2 6299   
28 28화. 재회. 2020 / 9 / 29 47 2 6026   
27 27화. 100일 휴가. 2020 / 9 / 29 50 2 10805   
26 26화. 신병. 2020 / 9 / 29 48 2 5681   
25 25화. 군대. 2020 / 9 / 29 42 2 3959   
24 24화. 입선. 2020 / 9 / 29 39 2 4934   
23 23화. 고기부페. 2020 / 9 / 29 43 2 10747   
22 22화. 국전. 2020 / 9 / 29 50 2 7129   
21 21화. 신철이 아저씨. 2020 / 9 / 29 48 2 7979   
20 20화. 시화집. 2020 / 9 / 29 45 2 3678   
19 19화. 세종이 군대 가다. 2020 / 9 / 29 51 2 4161   
18 18화. 인사동. 2020 / 9 / 29 49 2 3568   
17 17화. 하얀 캔버스 앞에 서다. 2020 / 9 / 29 54 2 6678   
16 16화. 액자공장. 2020 / 9 / 29 53 2 11885   
15 15화. 작품을 하라. 2020 / 9 / 29 55 2 5044   
14 14화. 화실 이사 가는 날. 2020 / 9 / 29 52 2 9588   
13 13화. 다시 만난 그녀. 2020 / 9 / 29 54 2 7258   
12 12화. 뼈 해장국. 2020 / 9 / 29 55 2 4799   
11 11화. 헤비메탈. 2020 / 9 / 29 56 2 7312   
10 10화. 화실생활. 2020 / 9 / 29 59 2 5332   
9 9화. 노량진 학원가. 2020 / 9 / 29 56 2 4840   
8 8화. 화실가는 길. 2020 / 9 / 29 59 2 4407   
7 7화. 해부학수업. 2020 / 9 / 29 66 2 5287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