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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인코그니토
작가 : BD번
작품등록일 : 2019.9.1

추기경 살해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귀족 청년 에드먼드. 무죄를 증명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그의 이야기.

 
6. 완숙(2)
작성일 : 19-10-21 15:23     조회 : 68     추천 : 0     분량 : 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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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앞으로 내 쪽에서 자네를 찾아갈 테니, 이 일로 이곳에 다시 올 필요는 없네.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면, 의뢰비나 전해주러 오게나."

 

  그렇게 말을 남긴 스페이드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앉았던 자리엔 아직 불붙은 짧은 시가릴로가, 재떨이 위에서 천천히 마저 타들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패터슨도 그 광경을 처음 본 것이 아니기에,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저 사내가 무슨 수로 매번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지는 몰랐다. 제대로 볼 수도 없는 그의 모습을 보면, 가끔 정말로 유령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정말로 파내려 해선 안 될 부분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사건성이 없는 호기심엔 괜히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현재로서 유일한 아군을,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잃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상의 모든 비밀이 반드시 밝혀져야 할 필요는 없었다.

  패터슨도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절룩이는 걸음으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가 마시던 병에는 아직 절반 정도 맥주가 남아있었다.

 

 "얼핏 들으니 꽤 위험한 일인 거 같은데, 진짜로 맡으시려고요?"

 "위험은 피하고자 하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법일세. 때로는 위험을 피하기보단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 법이라네."

 

  만일 이 광경을 보는 다른 이가 있었다면, 처음엔 바텐더인 레베카가 혼잣말하는 줄 알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녀 옆 카운터 자리에 앉아있는 스페이드가, 혼잣말 같던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레베카는 자연스럽게 유리잔에다 브랜디 한 잔을 따라, 스페이드 앞으로 내밀었다. 스페이드는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입안에 머금었다. 그리고 뭔가에 고민에 빠진 듯, 손가락으로 유리잔 끝을 튕기며, 첼로의 4번 줄 같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페럴 추기경의 죽음... 안 그래도 나도 어딘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네. 상식적으로 에드먼드 모젤은 추기경을 죽일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보네. 아마 정말로 죽이고 싶었다면, 더욱 머리를 써서 증거도 남기지 않았을걸세. 귀족들 사이에서 그의 총명함은 정평이 나 있거든."

 

  스페이드는 에드먼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이 비밀스러운 남자는 패터슨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교회와 귀족 사회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베카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는 있는지, 스페이드가 그러한 사정에 밝은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생각을 돕기라도 하듯, 그가 듣고 싶어 할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그럼 그가 추기경을 죽인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뭐든지 속단해선 안 되네, 레베카. 속단은 시야를 멀게 하고, 눈앞의 가능성을 놓치게 만드네. 그가 살해범인 가능성도, 아닌 가능성도 모두 품고 있어야 할걸세."

 

  스페이드는 레베카에게 타이르듯 말을 했지만,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속단하는 행위는 어리석었다. 우선은 모든 가능성을 열고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를 진행해야 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탐정의 태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터슨의 의뢰는, 에드먼드보다 페럴 추기경에 초점이 잡혀있었다. 지금의 스페이드에겐 에드먼드는 부가적인 조사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한동안 내게 오는 의뢰는 거절해주겠나? 아무래도 이번 의뢰는 해결하는 데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군."

 "안 그래도 보통의 손님이 잘 오지도 않는 가게인데, 가게 문도 그냥 한동안 닫을까요?"

 "그건 안될 얘기일세. 여기가 아니면 난 어디서 마시라고 그러나?"

 "애초에 스페이드의 취향대로만 진열장을 채워놓으니, 그냥 마시러 오는 손님이 오지도 않는 거라고요."

 "그래서 맥주 정도는 허락하지 않았나?"

 

  레베카는 말없이 패터슨이 마시다 남긴 맥주병을 쳐다봤다. 스페이드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물론 요즘의 젊은이들이야 즐겨 마실 병에 든 맥주였지만, 정작 이 가게의 분위기는 젊은 사람이 찾아올 장소가 아니었다.

  안과 밖을 화려한 네온과 신나는 스윙재즈를 틀어놓은 주크박스가, 러스트베인을 대표하는 젊은 주점의 모습이었다. 이런 어둑한 조명과 온통 다갈색의 목제 실내장식만 가득한 다이아몬드 클럽을 찾아올 이들은, 정작 러스트베인에 찾아오지도 않고 병맥주도 마시지 않았다.

  스페이드는 말없이 시선을 다시 돌리며, 손에 든 유리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어쨌든 가게 문을 닫는 건 안될 얘길세. 자네에겐 나와 같은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자들을 위해, 그 터전을 지킬 의무도 있는 걸세."

 "월급이나 좀 더 올려주면 생각해볼게요."

 "한 시간 정도 가게 문을 늦게 여는 건 재고해보겠네."

 

  레베카는 스페이드의 대답에 코웃음 치며, 패터슨 경감이 앉았던 자리를 치우러 갔다.

  스페이드는 조용히 혼자 카운터 앞에 앉아, 자신의 앞으로 재떨이를 끌어다 놓았다. 품속에서 양철 케이스를 꺼내다, 새로운 시가릴로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스페이드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등의 빛이 그의 얼굴을 직접 비추고 있지만, 그의 얼굴을 가린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그의 존재가 그림자 그 자체라고 말하듯, 여전히 어두운 실루엣만 드리워져 있었다.

  한 모금 가득 담배 연기를 들이켜고는, 천장의 조명을 가리려는 듯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계란껍데기가 잘 벗겨지지 않는다 싶더니, 이런 의뢰가 올 거란 의미였나 보군."

 

  솔직히 패터슨이 들고 온 의뢰는, 그로서는 영 반갑지가 않았다. 사실 스페이드가 아니더라도 누가 이 의뢰가 반가울까? 이 나라에서 국왕 다음으로 강한 권력을 가진 자와 부딪히게 될지도 몰랐다. 사실 원래라면, 패터슨이 전 재산에다 빚까지 얹어 내밀어도 받아주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의뢰를 승낙해버렸다. 과연 무슨 자신감인 걸까? 그것은 스페이드 본인도 잘 설명하지 못할 부분이었다.

 

 "자네는 너무 삶아진 계란과도 같네, 경감. 이제 와서 껍데기를 부수고 나와봤자 병아리는 태어나지 않을걸세. 그저 너덜너덜해진 삶은 계란만 남을 뿐이네. 뭐, 지나친 완숙도 가끔은 나쁘진 않지만. 후후후"

 

  스페이드는 마치 건너편에 패터슨이 있는 것처럼 혼자 중얼거리더니, 이내 낮은 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레베카가, 테이블을 치우다 말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손에 든 시가릴로를 재떨이에 올려놓고, 브랜디가 담긴 잔을 들어 빙글빙글 돌렸다. 짙은 갈색의 브랜디가 투명한 유리잔에 부딪히며 찰랑거리는 것을, 감상하듯 조용히 응시했다. 이따금 짙은 빛깔만큼이나 진한 브랜디 향이, 잔 너머로 흘러나왔다.

 

 "참으로 좋은 빛깔이야... 레베카! 이 술의 숙성연도가 얼마라고 했었나?"

 "아마 50년쯤 될 거예요. 갑자기 그건 왜요?"

 "딱, 경감과 비슷한 나이로군 그래."

 

  영문모를 소리나 중얼거리는 상사를 바라보며, 레베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스페이드의 저런 모습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그 이상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서 유의미한 것을 찾아내는 것. 이 말도 하나의 말버릇처럼 그가 종종 하던 얘기였다.

  스페이드는 남은 브랜디를 비우고, 재떨이에 올려둔 시가릴로를 다시 집어들었다. 그리고 카운터로 돌아오는 레베카의 모습을 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는 먼저 들어갈볼 테니, 자네는 계속 수고해주게."

 "네 들어가세요, 스페이드."

 

  스페이드가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자, 이내 허공에 담배 연기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레베카는 자기 외엔 아무도 남지 않은 가게 안을 멀뚱히 지켜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솔직히 이딴 장사 안되는 가게 따윈 일찍이 문을 닫고, 얼른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맘이 가득했다. 다만,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상사를 두고 있어, 차마 그러지 못하는 게 한이라면 한이었다.

 

 "역시, 이딴 직장은 그만둬 버릴까."

 

  레베카는 한숨과 함께, 자기도 모르게 본심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가게의 안에는 그녀 말곤 아무도 없었지만, 괜히 그 말을 스페이드가 들었을까 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사라졌다고 생각해도 아직 사라진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유령탐정이란 스페이드의 별명은, 비단 신출귀몰한 출현 때문만이 아니란 걸,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도 레베카의 걱정과는 달리, 어느새 스페이드가 있는 장소는 그의 방 안이었다.

  그는 중절모와 롱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는, 곧장 자신의 침대로 가서 드러누웠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방이었지만, 그에게 어둠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다. 방안의 빛이라곤 그의 손에 들린 시가릴로의 작은 불빛과 창문 너머의 희미한 빛이 전부였다.

  이따금 커튼 너머로 창밖의 네온 조명들이 형형색색으로 색깔을 바꿔가며 비추었다. 스페이드는 아직 잘 생각은 아닌지, 그렇게 여러 색으로 빛을 비추는 창가로 고개를 향해 있었다. 그는 침대 위에 담뱃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침대 옆 보조 테이블 위의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샤를로테, 당신의 죽음에는 관여치 않으리라 결심했건만, 결국 운명이 이렇게 장난을 치는군."

 

  스페이드는 죽은 추기경의 이름을 부르며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들었으면 추기경과 그의 관계를 궁금해할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는 분향을 올리듯, 불붙은 시가릴로를 재떨이에 비스듬히 거꾸로 세워놓았다. 천천히 타들어 가며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가만히 쳐다봤다. 마치 그 연기에 자신의 목소리가 담겨 하늘로 올라가길 바라듯, 연기의 움직임에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또한 신의 뜻일지도 모를 일이지. 그러니 당신의 명예롭지 못한 부분을 들춰낸다고 원망하지는 말아주게. 이것은 신께서 날 이렇게 만드셨을 때부터 결정된 내 사명일지도 모르니까."

 

  그의 두 어깨가 살짝 흔들렸다. 자신이 말해놓고도 뭐가 우스운지 그는 혼자서 피식 웃어버렸다.

  이내 스페이드는 침대에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자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팔짱을 끼고 기대어 섰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바깥의 풍경은, 늦은 시간에도 쾌락을 찾아 떠도는 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땐, 영혼의 무게에 죄라는 추를 늘려가는 사람들의 모습.

  스페이드는 얼굴의 표정을 읽을 수 없기에, 그 풍경을 어떤 기분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신이 만든 법률을 어긴 타락한 영혼은, 어차피 신께서 알아서 심판을 내릴 테니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

 

  한참이나 바깥의 풍경을 지켜보던 스페이드는, 의미 모를 코웃음을 치며 창가에서 떨어졌다. 그는 다시 침대 옆으로 다가가선, 재떨이에 세워둔 시가릴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입에 가져가는 대신, 재떨이 위에다 남은 불씨를 비벼 꺼버렸다.

 

 "하지만 인간의 법률을 어긴 자를 심판하는 건 인간의 책임이라네. 과연 당신이 받아야 할 심판을 모두 마땅히 받은 건지 궁금해지는 건 역시 어쩔 수 없군, 샤를로테."

 

  스페이드의 얼굴은 여전히 실루엣 말곤 알아볼 순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표정은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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