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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인코그니토
작가 : BD번
작품등록일 : 2019.9.1

추기경 살해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귀족 청년 에드먼드. 무죄를 증명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그의 이야기.

 
5. 가희(1)
작성일 : 19-10-15 12:28     조회 : 61     추천 : 0     분량 : 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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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저녁. 커다란 극장 안에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가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객석을 가둔 메운 이들의 시선은, 지휘자나 악단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 무대의 가운데에 서 있는 붉은 드레스의 가희에게 향해있었다.

  웅장하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악보의 데크레셴도 표시에 따라 점점 여리게 연주하며, 피아니시모 정도의 조용하고 잔잔한 연주로 이어졌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가희의 독창이 시작되었다.

  잔잔하고 애달픈 그녀의 목소리가, 객석의 모든 이를 매료시키며 극장 안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황홀함에 빠져, 그 음색에 자신들의 모든 감정을 맡겼다.

  곡이 점점 절정으로 나아가면서, 몰아치는 감정의 파도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때로는 화려하고 경쾌하게, 그리고 또 애절하고 간절하게. 그녀가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노래를 부르는게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그녀의 노래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주가 되어지는 것만 같았다.

  마치 원래부터 이 노래가 이 가희의 마음을 담아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아무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곡이 절정에 치닫고 터져나오는 고음부는, 그녀의 애절한 눈물을 목소리로 담아 흘려보내는 것만 같았다.

  가희의 노래가 끝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끝났다. 노래의 여운의 잊지 못한 이들의 침묵이, 잠시동안 이어져갔다.

 

 "브라보! 제시카!"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와 함께, 제시카의 이름을 제창하며 무수한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다.

  제시카 헤이즈. 브리카 왕국 제일의 가희를 꼽는다면, 누구도 망설이지 않고 입에 올릴 그 이름. 오늘 그녀의 마지막 무대가 막이 내리고 난 뒤에도, 객석의 이들은 여운을 잊지 못해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제시카! 위대한 제시카! 오 세상에 신이여! 그녀의 재능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정말이지 완벽한 공연이었어!"

 

 이곳 브리카 왕립 극장의 관장은, 여느 때와 같이 주접스러운 찬사와 함께 그녀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을 내뱉었다. 하지만 제시카는 그의 칭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매니저가 건네주는 물병을 받아 나른한 얼굴로 마시고만 있었다.

 

 "내일은 평소대로 일정이니 그렇게 알아주세요."

 "잠깐만, 제시카. 요즘 그 지역에 흉흉한 얘기들만 나돌던데, 조금은 조심을 하는 게..."

 

  관장은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왕립 극장의 관장 자리까지 올라온 건, 제시카를 이곳으로 데려온 공로로 앉은자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그의 기반이었고, 그렇기에 엄연히 그녀의 고용주 형태면서도, 그녀에게 설설 기는 모습을 보였다.

 

 "햄필드는 제 고향이에요. 관장님보다는 제가 거기를 더 잘 알죠."

 "아니, 잠깐만. 제시카! 제시카!"

 

  제시카는 관장의 말을 딱 잘라 끊고는 자신의 대기실로 향했다.

  그곳은 그녀만의 영역. 평범한 극장의 대기실이 아니라, 최고급 호텔의 특실처럼 꾸며진 그 방은, 제시카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관장이래도 들어오지 못했다.

 

 "제시카, 오늘도 선물 공세가 굉장해요."

 

  제시카의 매니저는 대기실 안쪽 테이블에 놓인, 수많은 꽃다발과 선물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서로를 경쟁하듯 값비싸고 희귀한 것들이, 자신의 가치를 자랑하듯 놓여 있었다.

 

 "저 대신 옮겨줘서 고마워요. 그럼."

 

  제시카는 매니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대기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테이블 위의 선물에는 전혀 관심을 주지도 않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온갖 비싼 장식들로 치장한 머리를 풀어 해쳤다. 붉은 벨벳 드레스를 벗어서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곤, 그냥 편안하고 수수한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보석 장식도 드레스도 모두 어지간한 회사원들 몇 달 월급에 호가하는 값비싼 것들이었지만, 그 어디에도 그녀의 취향은 없었다. 단지 비싸기만 할 뿐, 그저 일할 때 입는 작업복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

 

 "신이 내린 재능 좋아하네."

 

  제시카는 관장이 했던 칭찬을 비웃으며, 찬장 안에서 작은 위스키병을 꺼내어 한 모금 들이켰다.

  피로 섞인 한숨을 내쉬며, 소파 위에 드레스를 던져놓은 그대로 풀썩 앉았다. 그녀의 옷을 담당하는 직원이 보면, 경기를 일으키고도 남을 광경이었지만, 그녀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제시카는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기대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무대에서 부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조금 경박하다 싶을 정도로 경쾌하고 즐거운 재즈풍의 노래. 그녀 진짜 진심이 담긴 노래를, 편안한 마음으로 흥얼거렸다.

 

 -짜증 나는 인간들과도 엮이지 않고,

  마음대로 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도 않는 게 인생이야.

 

  제시카는 흥얼거리던 노래를 진심을 담은 가사로 개사까지 하며 불렀다.

  그녀는 도무지 밖에 있는 사람들과 생태적으로 맞지 않았다. 이른바 상류층의 인간들. 그녀는 단지 노래가 좋았고, 어쩌다 이 자리에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녀가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도 싫지는 않았다.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류 인간들의 마음에 들기 위한 일들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모습은 절대 좋지 않았다.

  그 때문에 종종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런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대기실에서 죽치고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곤 했었다. 그런데도 가끔 그녀와 인사 한번 나누겠다고, 한참을 기다리는 인간이 있긴 했다. 그 정도까지 열성적으로 나오면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정말로 인사 정도는 받아주었다.

  그녀는 귀족이나 사업가들이 모이는 상류층의 사교장에 종종 초대되어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때마다 전혀 가식 없이, 늘 냉랭하게 사람들을 대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것이 그녀만의 매력이라고 말하는 저들을 대체 그녀가 어찌할까?

  그녀가 상류층의 인간들은 변태만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주기적으로 그녀의 고향 햄필드로 가서, 자선활동 등을 하는 건 그 반동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피해,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보러 가는, 그녀에게 일종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휴가 같은 행위였다.

 

 "뭐 그래도 선물은 죄가 없지."

 

  그렇다고 그녀가 완전 속물적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결국 이런 괴로움을 다 감내하면서까지, 상류층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건 다 돈 때문이었다. 명예와 부.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라온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기엔, 그녀는 가식과 거리가 멀었다.

 

 "별 쓸데없이 비싼 것밖에 없네."

 

  제시카는 선물 상자와 꽃다발을 뒤져 보며 투덜거렸다. 선물의 기준은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저들의 사고방식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에게도 취향이란 게 존재한다는 걸 생각이나 하는 걸까?

  그녀가 받은 선물을 팔아서 돈으로 바꿀 정도로 모가 난 성격이라면 또 경우가 다르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정도의 성격은 아니었다. 그냥 그녀에게 있어 선물이라 마음대로 내버리지도 못하는, 그저 비싼 쓰레기에 불과했다.

 

 "어라? 설마?"

 

  제시카는 선물 더미들 사이에서 편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물론 그 밖에도 수많은 팬레터가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한 장의 편지가 유독 그녀의 눈길을 끄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검은색 편지 봉투에 금색 잉크로 적혀있는 하나의 서명. 그 편지는 제시카가 6년 동안 몇 번이고 받아왔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어떤 한 사람의 편지였다.

 

 [친애하는 카라바스 후작이]

 

  그녀의 목소리만큼이나 아름다운 얼굴이 한순간에 구겨졌다.

  카라바스 후작. 자유혁명군의 숨겨진 조력자이자, 제시카가 이렇게 상류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녀의 후원자. 하지만 제시카에게 있어선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름이었다.

 

 "이 빌어먹을 이름은 이제 안 보는가 했는데..."

 

  지난 3개월 넘도록 후작에게서의 연락이 뚝 끊겨 있었다. 라나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후작의 소식이 끊긴 건 그녀에게 있어 희소식이었다. 그녀 자신은 후작의 도움 없이도 성공할 대로 성공한 뒤였으니, 그저 이제는 감추고 싶은 그녀의 어두운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라나의 존재가 싫은 건 아니었다. 자유혁명군의 활동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대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라나의 비극을 잘 알고 있고, 또한 그녀의 사상에 동조하는 다른 이들이 안고 있던 아픔들도 알고 있다. 그저 제시카에게 있어 그들은 조금 가슴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어디까지나 자유혁명군의 활동은 단순히 불법을 넘어 반란 행위였고, 거기에 엮이고 싶진 않았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피까지 흘리며 투쟁하는 라나의 방식은, 결코 제시카와 공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제시카는 거기에 자신이 엮이게 만든 후작의 존재가 불편했었다.

 

 "하아... 그래도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한숨이 절로 나와버렸다. 약속을 지킨다는 신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칫 후작이 제시카가 자유혁명군과 후작 사이를 연결해 주고 있던 걸 폭로라도 하면 그녀에겐 큰일이었다.

  제시카는 혹시 몰라 선물 더미를 더 뒤져보았다. 이번에는 후작의 표식이 있는 다른 상자 같은 건 없는 것 같았다. 그저 달랑 편지 한 장이 끝이었다.

 

 "당신들과의 관계를 끊겠습니다. 그 정도의 내용이면 딱 좋을 텐데."

 

  제시카는 무의미한 희망 사항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굳이 편지의 뜯어 내용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것은 자유혁명군의 활동에 가능한 엮이지 않으려는, 그녀의 마지막 발악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단지 자신은 메신저의 역할만 한다. 굳이 그 내용을 알려고 들 필요는 없었다. 또한 그것을 알았다간 인생이 더욱 꼬일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후작의 편지에는 대부분, 귀족 사회나 교회의 중요한 기밀 등을 담은 내용이 많기 때문에 적절한 행동이었다.

  제시카는 편지를 자신의 손가방 깊숙이 집어놓고는, 손가방 채로 구석에 처박아 버렸다. 어차피 집에 갈 때 챙길 물건이지만, 당장은 저 물건을 시야에 두고 싶지는 않았다.

 

 -라리라.

  인생은 굉장히 엿 같은 것.

  내 맘대로 인생을 살아보려 해도,

  인생이 제 좆대로 구는구나.

 

  제시카는 또다시 맘대로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고운 목소리와 서정적인 기교가 담긴 음색은, 가사에 점점 험한 욕이 붙는 노래를, 아름다운 아리아처럼 들리게 하는 마법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또 한 모금의 위스키로 입술을 적셨다. 오늘 밤에 진탕 마시고 그냥 뻗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저녁이 제시카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아아! 그렇다고 같이 마실 사람도 없네!"

 

  제시카는 절규하듯 한탄했다. 내일 햄필드에 가면 라나와 베네딕트를 붙잡고, 싸구려 술집에서 싸구려 맥주와 싸구려 감자튀김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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