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인코그니토
작가 : BD번
작품등록일 : 2019.9.1

추기경 살해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귀족 청년 에드먼드. 무죄를 증명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그의 이야기.

 
1. 유죄(3)
작성일 : 19-09-04 10:22     조회 : 82     추천 : 0     분량 : 724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수고했어, 베니."

 

  라나는 골목 안에서 기다리던 남자에게 미소를 보이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베니라고 불린 그 남자는 흑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만, 그렇다 해서 수수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충 뒤로 넘긴 그의 머리는, 어두운 곳에서 봤다면 회색이나 백발이라 생각했을 만큼 옅은 금색이었다. 거기다 흰 셔츠에 완전히 검은 정장. 어디 장례식장이라도 갔다 왔냐고 묻고 싶었다. 심지어 한 손에 들린 건, 해군에서나 쓸 법한 커틀러스 한 자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몸 주변에서 일렁이다 사라진 검은 안개였다. 경관들을 무력화한 그 검은 안개가, 분명 그 남자의 몸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에드먼드의 그것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이 일순간 짜증이라도 난 듯 일그러졌다.

 

 "그래 망보느라 수고가 많네, 베니."

 

  에드먼드는 뭔가 언짢은 구석이 있어 보였지만, 굳이 검은 안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남자는 에드먼드의 괜히 비아냥거리는 말투에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시선만 한번 주고는 끝이었다. 그리곤 자신의 검을 이제 쓸 일은 없을 거라는 듯, 검은색 천으로 둘둘 말아버렸다. 라나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고, 걸음을 재촉했다.

 

 "어서 움직이지 않고 뭐해, 에디. 베니."

 

 라나는 골목 한 귀퉁이 놓여있던 손가방을 집어 들고, 그 안에 피스톨 두 자루를 넣었다.

 

 "잠깐만, 에디라니. 내 이름을 줄여서 불러도 된다고 말한 기억이 없는데?"

 

  에드먼드는 멋대로 이름을 줄여 부르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고 반문했다. 하지만 라나는 손가방 안에 넣은 손을 빼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거로 대답을 대신에 했다. 에드먼드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별 말 없이 다시 발걸음을 움직여야만 했다.

  세 사람이 부둣가 창고 사이의 복잡한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길가엔 검은색 택시가 한 대 서있었다. 택시 옆엔 담배를 물고 있는 한 남자가 기대고 서 있었다. 남자는 헌팅캡을 눌러쓰고,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있었다. 얼핏 손님을 기다리는 평범한 택시기사로 보였지만, 굳이 이른 시각에 부둣가 근처 도로에서 이러고 있는 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남자의 발밑에 떨어진 여러 개비의 꽁초에선, 남자의 여유로운 모습 뒤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아니라 다를까, 남자는 골목에서 나오는 세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얼굴에서 금방 화색이 돌았다. 그는 곧장 손에 들려있던 담배를 발로 밟아 비벼 끄고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운전석에 올라탔다.

  라나는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는 에스코트하듯, 손짓으로 에드먼드에게 택시에 오르길 청했다. 에드먼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차피 그에겐 순순히 지시를 따르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었다.

  에드먼드를 뒤따라 라나도 뒷좌석에 앉고, 베네딕트도 곧바로 앞 좌석에 올라탔다. 모두가 탑승하자 운전석의 기사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택시 앞에 달린 에테르 수정이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택시는 그 빛에 끌려가듯, 고요한 새벽길을 달렸다.

 

 "솔직히 말하면 방금 피우던 거 마저 피고 나면, 그냥 가버리려 했다고? 이런 미친 짓을 진짜로 성공할 줄 누가 알았어? 아무리 너랑 베니라고 해도 단둘이서 경찰들을 상대하다니!"

 

  차 안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택시기사였다. 그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지만, 얼굴은 반대로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의 손가락도, 절로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하지만 라나의 얼굴은 반대로, 무척 쓴 약이라도 삼킨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안타깝게도 경찰 쪽에 사망자가 한 명 생겼어."

 "패터슨 경감을 쏜 건 의도적으로 보였는데?"

 

  에드먼드의 지적에 한순간 라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어딘가 분노가 섞인, 옅은 미소로 바뀌었다.

 

 "그건 사실 머리에 쏘고 싶었어."

 

  차 안이 무거운 공기로 가득해진 것 같았다. 어째선지 건드려선 안 될 이야기를 꺼냈단 분위기였다. 하지만 에드먼드의 표정도, 굳이 모르고서 그런 얘길 꺼낸 느낌은 아니었다. 마치, 라나가 경감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갖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은 긍정한다는 표현을 내보였다.

 

 "굳이 그 얘길 꺼낸 건,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단 눈치네?"

 "당신은 내 사진을 본 적 없겠지만, 난 당신의 사진을 본 적 있거든. 라나 스콧."

 

  물론 그녀의 행동들을 보고서 유추한 게 먼저였지만, 굳이 그 얘기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뭐, 서로 소개할 시간은 줄어서 좋네. 운전하는 쪽은 잭. 저쪽은 베니. 아까 들었지?"

 "베네딕트."

 "뭐야, 말이 없길래 벙어리인줄 알았는데, 말을 할 줄 알았었네, 베니."

 

  베네딕트는 애칭으로 불리기 싫다는 의사를 적극 표명을 했지만, 불행히도 에드먼드는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아니었다. 베네딕트 역시 에드먼드의 괜한 시비에 무시로 일관했다.

  에드먼드는 짧게 한숨을 내쉬곤, 팔짱을 낀 채로 좌석에 늘어져 버렸다. 이제는 만사가 귀찮아진 기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상황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현실에, 이제는 체념한듯싶었다.

 

 "그래서 당신들의 목적을 내게 말해줄 타이밍이 언제쯤 오는 건지, 알려 줄 사람?"

 "그전에 구해준 거에 대해서 감사 인사가 너무 늦는 거 아냐?"

 "이런, 참으로 실례를! 이렇게 나를 탈옥수 신세로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모젤 가문의 이름으로 감사를 표하지!"

 

  에드먼드는 삐딱하게 좌석에 눕다시피 한 자세 그대로 코웃음 쳤다. 라나는 그의 대답 일부엔 동의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다시 교도소로 향할 수 있게 해 줄순 있어. 물론 우리가 원하는 걸 들은 다음에 결정해도 늦진 않겠지?"

 "어차피 지금 내가, 가만히 앉아서 당신 얘길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한 건가?"

 "좋아, 그럼 동의하는 거로 받아들일게! "

 

  라나는 가볍게 손뼉을 치며 씩 웃었다. 에드먼드는 굉장히 불쾌한 얼굴로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렸다. 창밖의 풍경은 어느덧 부둣가 근방을 빠져나와, 번화가로 바뀌고 있었다. 아직은 사람들이 출근하기엔 이른 시간인지, 길가에 사람들의 모습은 드물게 보였다. 이런 이른 시간에 바삐 움직이는 사람은 거리를 청소하는 미화원이나, 신문 가판대를 정리하는 직원 정도의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변해가는 풍경의 모습도 그렇고, 그가 바라보는 풍경 너머로 보이는 아침 해가 지금 향하는 방향이 어딘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출발한 직후를 제외하고 줄곧 해의 방향이 바뀌지 않은 걸 보아, 계속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단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들이 누구던가? 랭커튼의 대표적인 슬럼가인 햄필드 자치구가, 자유혁명군의 주요 활동지역인 건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그런데 에디, 혹시 카라바스 후작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남의 이름 좀 멋대로..."

 

  라나는 조용히 무릎 위에 둔 손가방을 열어 손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에드먼드는 하려던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탄식만 내뱉었다.

 

 "아 제발 좀!"

 "그래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 그야 알고는 있지! 정부에서도 너희들에게 대해 손을 놓고 있기만 한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애들 동화에나 나오는 이름으로 너희를 돕고 있는, 그 숨겨진 재력가에 대해서도 파악은 해두고 있어. 그자 덕분에, 다른 도시에선 유언비어를 담은 유인물이나 뿌리며 시민들을 선동하는 정도의 활동이, 랭커튼에선 유인물 대신 총탄을 뿌리고 있으니까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에드먼드는 유독 수도인 랭커튼에서만 과격한, 자유혁명군의 활동에 대해 면전에 대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도 라나는 딱히 기분 나쁘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든 건지, 또다시 손가방에 손을 넣는 행동대신, 만족스러운 미소로 답했다.

 

 "그래서 그 정체까지도 알고는 있고?"

 

  다시금 물어오는 라나의 질문에, 곧바로 에드먼드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목에 뭔가 걸리기라도 한 듯,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저 짜증이 난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에드먼드의 반응에 라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줄곧 이런 정신없는 상황에도, 계속 당당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가, 이 질문에서 이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당신들이야말로 그자의 정체는 알고 있는 건가?"

 

  에드먼드는 대답 대신에 반문하는 걸 택했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회피였다. 그 모습에 되려, 무언가 의도를 갖고서 일부러 연기를 하나 싶었다.

 

 "솔직히 우리도 몰라. 그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으니까. 그자의 연락책이 돼주고 있는 사람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는걸? 언제나 일방적으로 편지와 함께, 자금이나 유용한 정보 등을 넘겨줄 뿐이었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한 라나는, 에드먼드의 두 눈을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약 3개월 넘도록 카라바스 후작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오고 있지 않아. 흥미롭게도 이 기간이 마침 어떤 사건이랑 딱 겹치지 않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알겠지만, 어차피 일방적인 연락이라면서? 조금은 차분하게 더 기다려보는 게 어때?"

 "뭐, 정말로 당신 말대로 그냥 한동안 연락이 없는 걸 수도 있지. 하지만 여태껏 이 정도로 아무 연락이 없었던 적은 없었거든."

 "그래서 추기경이 그 가짜 후작의 정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뭐 어느 정도 납득은 가는걸. 인민의 성녀라고 불리던 추기경이면, 꽤 그럴싸한 인물이지."

 

  에드먼드는 자신을 응시하는 라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날 선 눈빛으로 마주했다. 라나 역시 그 시선에 여유로운 미소로 답했다.

 

 "당신 날 바보라고 생각해? 아무리 교회 최고 권력자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성직자의 사유재산은 금지하고 있잖아. 그런 자가 우리에게 금전적으로 후원을 해줄 수 있단 건 기본적으로 말이 안 돼. 그리고 무엇보다 페럴 추기경... 그자가 인민의 성녀라고 불리는 거에 대해선 난 동의하지 못하거든. 차라리 당신이 카라바스 후작이라는 게 더 신빙성이 있어 보여."

 "어처구니없는 얘길 잘도 하네. 내가 왜 너희들을 후원하지?"

 

  에드먼드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이 재미있는지 라나는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충분히 부유하고 꽤 힘 있는 귀족 가문의 장남이니까. 거기다 지난 3개월 동안 당신의 행동은 자유롭지 못했고. 하지만 당신 말대로 당신이 우리의 후원자가 되어줄 이유가 부족한 게 이 가설의 결함이겠지."

 "그래서 뭐, 도망자 신분이 된 나한테서 그 후원자 노릇을 바라는 건 아닐 테고, 이 애길 꺼낸 이유가 뭐지?"

 "내 결론은 추기경의 죽음과 당신, 혹은 당신 가문의 몰락. 그것으로 모든 목적을 달성한 인물이 카라바스 후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도 카라바스 후작이란 인물에 관해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싶었지만, 에드먼드의 표정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기대와는 다른 반응에 라나의 눈썹 끝이 살짝 내려갔다. 물론 그의 사고로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었기에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라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짧은 한숨과 함께 내려놓았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지금껏 카라바스 후작의 원조를 받아 실행해온 파괴 공작과 암살. 그리고 최종적으로 추기경의 죽음과 당신의 몰락으로 가장 이득을 본 인물이 카라바스 후작의 정체가 되겠지. 어때? 꽤 그럴싸한 추리지 않아?"

 "그래서 그런 탐정 놀이하려고 나를 경찰에게서 빼내온 건가?"

 "물론 탐정 놀이하는 취미는 없어. 그러니까 뭐랄까. 당신이 좋아할 만한 단어로 고르자면... 그래! 간단한 비즈니스를 제안하자는 거지!"

 

  에드먼드의 표정은 비즈니스라는 단어에는 조금 반응을 보인 것 같았다. 합리성이란 원칙으로 행동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비즈니스라는 단어는 굳게 닫힌 마음의 첫 번째 자물쇠 딱 들어맞는 열쇠였다.

 

 "당신이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면, 카라바스 후작을 찾아내고 진실을 밝히는 데에 협조할게. 정말로 카라바스 후작이 우릴 더 이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버린 거라면,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자와의 신의를 지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어때? 나쁘지 않은 거래치 않아?"

 

  라나는 정말로 제법 괜찮은 제안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제안을 건네는 그녀의 표정은 제법 의기양양했다. 제안이 못마땅한 건지 라나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못마땅한지, 에드먼드의 표정은 반대로 점점 불쾌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 말을 꺼냈다는 건, 추기경 살해의 진범이 그 카라바스 후작이라 자칭하는 작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뭐 일단은 당신이 재판 내내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당신이 진범이 맞는다면 이 거래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겠지만, 자신이 정말로 무죄라고 주장한다면 어때? 솔깃하지?"

 "그렇게 말해도 결국 나더러 살해 혐의를 벗기 위해서, 반란에 동조하라는 웃기지도 않은 꼴이 된다만?"

 "뭐 어때. 우리가 입만 다물고 있어 준다면 당신이 우리에게 협조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거야. 그리고 어차피 우리가 원하는 혁명이 이루어진다면, 당신이 한 모든 행동은 오히려 자랑이 될 거라고!"

 

  형편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궤변이었다.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여봤자 약점을 잡혀 이용당하기만 할 선택지였다. 단지 에드먼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 제안을 거절해봤자 남는 게 무어냐는 거였다.

  자발적으로 교도소로 가겠다는 꼴도 웃기지만, 저들이 교도소로 보내준다 한들 살아있는 채로 보내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이 제안을 거절하는 건 살인범이란 멍에를 쓰더라도, 저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귀족으로 당당히 남겠다는 의미니까.

  라나도 에드먼드의 그런 고민을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의 에드먼드는 한 장의 카드만으로 상대와 포커를 겨뤄야 하는 처지나 다름없다. 이런 기회를 잃고 싶진 않은 라나는 밀어붙이듯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끝을 흐리는 라나의 표정은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분위기에 묘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당신의 유죄에 만장일치의 표를 던진 자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거야?"

 

  웃고 있던 얼굴 뒤에 감춰둔 깊은 증오심이 눈동자 너머로 기어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묘한 살벌함에 에드먼드는 괜히 위축됐다. 하지만 덕분에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졌다. 지금의 제안은 사실상 라나에게 있어, 에드먼드가 증오의 대상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애초에 내겐 선택지란 없는 거 같은데. 억지로 하느냐 자발적으로 하느냐 그 차이 아닌가? 뭐 그렇게 따진다면야 내 자존심은 자발적 행위를 선택하라고 말은 하지만."

 "그럼 거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지?"

 

  라나는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에드먼드는 그런 라나의 손을 시큰둥한 얼굴로 한번 쳐다보기만 할 뿐, 그의 손은 팔짱은 낀 채로 요지부동이었다.

 

 "악수는 사양하지."

 "정말이지 고집불통이네."

 

  내민 손을 도로 거뒀지만 라나의 입가에 스민 웃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공지 1부 완결 안내 2019 / 12 / 16 610 0 -
공지 연재 주기에 대한 안내 2019 / 11 / 5 699 0 -
10 3. 직감(3) 2019 / 10 / 6 53 0 5314   
9 3. 직감(2) 2019 / 10 / 5 53 0 5374   
8 3. 직감(1) 2019 / 10 / 4 50 0 5126   
7 2. 거래(4) 2019 / 10 / 3 67 0 5199   
6 2. 거래(3) 2019 / 10 / 2 64 0 5936   
5 2. 거래(2) 2019 / 9 / 25 71 0 5479   
4 2. 거래(1) 2019 / 9 / 11 67 0 5963   
3 1. 유죄(3) 2019 / 9 / 4 83 0 7242   
2 1. 유죄(2) 2019 / 9 / 1 96 0 5670   
1 1. 유죄(1) 2019 / 9 / 1 357 0 7769   
 1  2  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