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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인코그니토
작가 : BD번
작품등록일 : 2019.9.1

추기경 살해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귀족 청년 에드먼드. 무죄를 증명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그의 이야기.

 
2. 거래(4)
작성일 : 19-10-03 12:39     조회 : 67     추천 : 0     분량 : 5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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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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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방안에 들어온 라나는 겉옷을 벗어 팔 사이에 끼웠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옷과 함께 올려뒀던 종이봉투를 에드먼드에게 내밀었다.

 

 "네가 방에서 한 발짝도 안 나왔다길래 저녁거리도 같이 준비해왔어."

 

  당연한 거긴 했지만 역시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에드먼드는 확실히 깨달았다. 감시를 받는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요 몇 달간을 생각하면 또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다.

  라나가 들이 내민 종이봉투 안에는 호밀빵으로 만든 샌드위치가 들어있었다. 샌드위치라고 하나 신선한 야채라곤 찾아볼 순 없고, 온통 절여놓은 채소밖에 없었다. 거기다 조금 딱딱해 보이는 햄이 호밀빵의 퍼석한 식감과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맹물과 함께 샌드위치의 절반을 먹어 치운 에드먼드는,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라나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봉투에 들어 있는 게 아침에 얘기했던 암호로 된 문서인 건가?"

 "응. 전부는 아니지만 일단 당신이 해독이 가능한지 확인은 해야 하니 몇 장 추려봤지."

 

  에드먼드는 별 생각 없이 문서를 넘겨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웃으며 고개를 젓고는 서류 봉투를 뒤로 쑥 뺐다.

 

 "일단은 먹던 거나 마저 먹고 나서 얘기하자고?"

 

  문서의 내용이 그도 무척이나 궁금했던 터라, 자기도 모르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마치 자식 돌보는 엄마 같은 태도가 못마땅한지 라나를 흘겨보면서도, 깔끔하게 식사를 끝마치고서 다시 서류 봉투를 넘겨받았다.

  문서라고는 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문서를 찍어놓은 흑백사진이었다. 액자용 사이즈의 커다란 사진은 살짝 흐리긴 했지만, 문서의 글자를 알아보는 데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사진 속 문서를 읽어내려가던 에드먼드는 제법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제 와서 솔직히 얘기하는 건데, 처음엔 당신들이 평범한 문서를 암호로 된 문서라고 지레짐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러면 당연히 해독하려 들어도 해독할 내용이 없을 테고."

 

  확실히 그랬다. 에드먼드의 손에 있는 사진 속 문서의 내용은, 어딜 봐도 그냥 평범한 공문서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알아볼 수 없는 기호들로 적혀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 안 되는 단어들이 뒤섞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문서의 내용을 몇 번 더 읽어 내려가던 에드먼드의 눈에는 기묘한 광채가 느껴졌다. 호기심과 분노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그 무언가였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이걸 암호로 된 내용인 걸 용케 알아봤다고 칭찬하고 싶어지는군. 짐작건대 이 문서를 수중에 넣은 정보원은 공작의 비서실에 있던 인물인가?"

 "탐정 놀이 같은 건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제법 예리하네?"

 "물론 그런 취미는 없어. 단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좋아할 뿐이지."

 

  에드먼드는 짧게 심호흡 한 번 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문서의 문장을 하나하나 잘 뜯어보면 어딘가 어색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긴 하지만, 곧바로 암호로 연결될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그 내용을 잘 보면 이게 암호로 된 문서라는 걸 알 수 있어. 물론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평범하게 소니힐 사원에서 진행하는 왕실 행사들에 대한 업무 연락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행사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이뤄지지 않는 행사를 담은 이 내용이 이상하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겠지. 나도 왕실 행사는 모두 파악하고 있지 못해. 왕가의 분들로만 진행하는 행사도 있으니까. 만일 그걸 모두 파악하고 있을 사람이 있다면 공작의 비서들밖엔 더 없지. 추기경 쪽은 당신들이 스파이를 심어두기 힘든 환경이고."

 

  벽에 삐딱하게 기대서서 에드먼드의 추론을 듣던 라나는 꽤 놀랍다는 듯 눈이 커졌다. 그냥 그에게선 문서의 암호 해독만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추리해 나가는 걸 보며 흥미로운 눈으로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이 내용이 외부에 새어나가는 걸 방지하고자 했다면, 보안문서로 처리해서 비서들조차 그 내용을 못 봤을 거야. 하지만 이 문서는 아무 보안등급 없는 행정 서류로 처리했어. 어차피 왕실 내에서 이동하는 행정 서류는 어느 정도 보안이 유지되니까. 어차피 소니힐 궁전과 맞붙어있는 소니힐 사원과 주고받는 문건도 행정상 의사당의 내부문건으로 처리되고. 그러니 문서의 보관도 파기도 자유로우려면 오히려 보안등급은 방해가 된단 거지."

 

  아무리 라나라고 해도 왕실 행정까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기에, 에드먼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혀를 찼다. 그냥 똑똑하고 돈 많은 귀족 청년 정도로 여겼는데, 그는 생각보다 왕실이 돌아가는 구조를 속속들이 아는 것 같았다.

  문서에서 잠시 눈을 떼고 라나의 표정을 살핀 에드먼드는, 별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적으로 이 문서에 대해 에드먼드가 관심을 갖길 바랐다면 그녀의 완전한 성공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에드먼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즉, 공작과 추기경이 이 문서를 진짜로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는 외부보단 왕실 쪽이란 거야. 최고등급의 보안문서라 해도 왕가의 사람이라면 모두 열람 가능할 테고. 분명히 이 문서의 원본은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파기했을 거야."

 "흠. 그 정도까진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그 말인즉 그 문서의 내용이 엄청난 정치 스캔들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단 건가? 이를테면 역모 같은..."

 

  역모라는 단어를 말하는 라나의 입가엔 매우 흡족하다 못해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만일 공작과 추기경이 반란을 꾸미고 있다면, 다방면으로 이용이 가능했다. 그자의 역모를 교묘히 이용해 어부지리를 노릴 수도 있고, 이 사건 자체를 터트려 지도층 전체를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다.

  라나의 생각을 모를 리 없는 에드먼드는 애써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이 문서의 내용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 정작 중요한 암호 해독은 해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이 문서의 존재 자체가 공작과 추기경 두 사람이, 왕실 몰래 뭔가를 꾸미고 있단 건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것 같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암호의 해독은 가능할 것 같아?"

 "적어도 당신들이 중세 왕실 언어가 필요하다는 결론까지 도달한 걸 보면, 어느 정도 암호의 패턴은 파악한 건 아닌가?"

 

  하지만 라나는 에드먼드의 기량을 시험하고 싶은지 말없이 빙그레 웃음으로만 답했다. 에드먼드는 그녀의 반응이 심히 못마땅한지 혀를 찼다. 하지만 이내 군말 없이 서류 봉투 안에 같이 담아놨던 노트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그리고 문서를 살펴보며 펜으로 뭔가를 끄적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암호의 패턴이야 다양하지. 은어를 사용한 암호는 중세 왕실 언어가 필요하단 결론까지 도달했다면 제외해도 될 거야.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문자의 배열을 이용한 암호인가? 자세히 보면 겉보기엔 정상적인 문장으로 보이도록 노력했어. 하지만 중간마다 억지로 집어넣은 듯한 단어도 보이고,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너무 자주 보여. 아무래도 이 부분은 의도했다고밖에 볼 순 없겠지. 특정 순서에 특정 알파벳이 들어가야 할 테니까."

 

  라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먼드는 자못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자신의 추론을 계속 얘기해나갔다.

 

 "그러니까 이 암호는 원래의 문장을 한 글자씩 따로 떼어서, 그사이에 다른 철자를 메꾸어 넣어 정상적인 문장처럼 보이게 만든 거야. 꽤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다소 완전한 문장을 포기한다면 못할 정도는 아니야."

 

  에드먼드는 노트에다 직접 암호를 만드는 방식에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자신의 이름을 예시 단어로 사용하는 걸 보며, 이 남자의 자기애는 어느 정도인가 싶어졌다. 하지만 라나는 굳이 설명의 흐름을 끊을 그런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 라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드먼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여 새로운 암호문을 만들어 갔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식으로만 작업했다면 찬찬히 읽어보면 숨어있는 글자가 보이기 마련이야. 하지만 그런 게 한눈에 보이지 않는 단건, 각 철자를 단일치환 암호로 바꿔놓아서 그렇겠지. 두 가지 패턴을 섞어놔서 조금 까다로워도, 일단 개별적으론 고전적인 암호 방식이야.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해독하지 못할 건 아냐."

 

  천천히라는 단어에 미묘하게 악센트가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설명해가던 에드먼드는 펜 끝으로 노트를 톡톡 두들기며, 잠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술술 얘기하는 것 치곤 심드렁한 얼굴로 설명을 마친 에드먼드를 보며, 라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에드먼드가 자신이 필요로한 인재라는 판단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완전 기대한 것 이상인데 에디. 솔직히 우리 쪽 암호 전문가들도 거기까지 파악하는 데 며칠 걸렸는데, 그렇게 금방 알아채다니."

 "오히려 전문가니까 그런 거야. 전문가라는 부류는,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것엔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 이 암호를 쓴 공작과 추기경은 암호의 전문가가 아니야. 그들은 너무 복잡한 암호는 쓰기 힘들어. 그냥 고전적인 것을 좋아하는 나이 든 양반들일 뿐이야."

 "하긴. 바꿔 생각하면 오히려 그들에 대해선 당신이 전문가라 이거지."

 

  에드먼드의 말들에 납득했다는 듯 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벽에 기댄 몸을 일으켜 한껏 기지개를 켜고, 들고 있던 겉옷을 몸에 걸쳤다.

 

 "그럼 천천히 암호 해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린 이만 가보도록 할게."

 

  라나와 베네딕트가 나가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에드먼드는 두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한참을 얘기한 덕에 못이 탔는지 물잔에 남은 물만 쭉 들이켰다.

 

 "아 참 베니! 넌 한동안 낮엔 에디 곁에 있어 줄래?"

 

  에드먼드는 하마터면 마시던 물을 모조리 뿜어낼 뻔했다. 어떻게든 입속에 물을 삼켰지만, 그 덕에 사레가 들렸는지 양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연신 기침이 나왔다.

  라나는 그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며 웃었지만, 베네딕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어두워졌다.

 

 "제가 왜 저 녀석 옆에 있어야 하나요?"

 

  얘기를 꺼낸 건 라나였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베네딕트의 매서운 시선은, 아직도 콜록거리고 있는 에드먼드를 향해 있었다.

 

 "아침에 말했잖아? 둘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일단 에디는 우리의 중요한 조력자니까, 그를 옆에서 지켜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어?"

 "잠깐만! 어차피 난 여기서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할 텐데, 굳이 저 녀석이 옆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동의한다."

 "이것 봐. 둘이 마음이 잘 맞네. 그럼 한동안 수고해, 베니."

 

  라나는 베네딕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하듯 강압적으로 밀고 나갔다. 베네딕트는 괜히 에드먼드만 노려볼 뿐, 그 이상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그런 시선에 에드먼드는 어이가 없어 마주 노려봤지만, 안타깝게도 라나의 막무가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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