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일행이 빠져나가자 다시 폭음이 들렸다. 입구에 깔아놓은 마지막 폭탄이었다. 이것을 위해 포식이에 폭약을 꽉꽉 채워 운반했다.
‘처음이 훼이크였지.’
두 번째 폭발이 진짜였다. 처음에는 먼지만 났지만 두 번째는 폭약을 꽉꽉 담았기에 폭발력이 훨씬 뛰어났다. 덕분이 병력이 달려오는 속도의 몇 배 빠른 속도로 뒤로 날아갔고 죽은 병력도 있었다.
우르르!
폭발력 때문에 통로 위에 돌이 떨어졌다. 통로 자체가 무너진 건 아니지만 저걸 치우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다.
충격 때문에 날아간 이 왕자가 무너진 통로를 보고 이를 갈았다.
“큭! 어서 저것을 치워라!”
“네!!”
이제 의식과 헌터들의 처리가 문제가 아니다. 만약 왕세자가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완전히 판이 뒤집어질 거다.
그 사이에 왕세자 병력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 금방 밖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밖도 아수라장인 건 마찬가지였다.
챙!! 챙!!
“죽여!!”
밖에 대기하고 있던 병력들은 둘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역시 기습에 성공한 이 왕자 세력이 유리했다.
그걸 본 왕세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저들을 도와라!”
왕세자의 직속 기사단은 거의 다 이곳에 있다. 전장에서 지휘관의 유무는 전투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니 이들이 합류하면 큰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송진우는 왕세자를 말렸다.
“왕세자 저하!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일단 후퇴하셨다가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내 어찌! 혼자 살겠다고 몸을 내뺄 수 있단 말이냐?!”
“적의 숫자는 아군의 배가 넘습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일단 성으로 퇴각했다가 병력을 다시 집결한 다음에 이 왕자에게 복수해도 늦지 않습니다.”
송진우의 만류에 기사단장도 합세했다.
“그렇사옵니다. 왕세자 저하! 이곳에서 싸우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지금은 저 용병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큭!!!”
왕세자는 분한 듯이 주먹을 꽉 움켜쥐고 전투를 지켜보았다. 전투는 그들의 말대로 자신들 편이 완전한 열세에 놓여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이 왕자 세력이 저 통로를 뚫고 빠져나올 겁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왕세자는 잠시 고심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의 말에 따르겠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여기는 이 왕자 세력이 장악했지만 성으로 가면 왕세자의 세력이 훨씬 크다. 만약 무사히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번 일을 빌미로 이 왕자 세력을 뿌리부터 뽑을 수 있을 거다.
잘만 살리면 전화위복의 기회다. 물론 실패의 대가는 처참할 거다.
“이쪽입니다.”
송진우가 길을 인도했다. 전투에 정신 팔린 병력들을 피해 언덕을 끼고 돌아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고 나니 눈앞에 보이는 건 광활한 평야였다.
“이제 뛰셔야 합니다.”
이곳에 말이라도 대기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여기는 평소에는 드나들 수 없는 왕가의 비역이다. 말은커녕 조랑말도 숨길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일행은 때 아닌 마라톤을 하기 시작했다.
철컹철컹
기사단은 뛰기에는 부적합한 두꺼운 판금 갑옷을 입고 있다. 그래도 워낙 스탯이 높고 중갑옷 스킬도 있어서 제법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왕세자였다.
“헉~ 헉~”
평소에 무예 수련을 게으르게 한 건 아니지만 밥 먹고 훈련 만하는 기사단과 같을 리 없다. 몇 미터 뛰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송진우가 뒤를 보이 뽀얀 먼지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필시 일행을 쫓는 이 왕자 세력이다. 훨씬 늦게 출발했지만 말을 타서 곧 따라잡을 기세였다.
두두두두~~~
“놈들이 온다!”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에 다른 일행들도 추격대를 알아차렸다. 곧 따라잡힐 것을 직감한 기사단장이 검을 빼 들었다.
“치잇!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 네가 왕세자님을 안전하게 모셔라!”
왕세자를 위해서 대신 죽겠다는 소리였지만 송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방도가 있으니 믿고 따라와 주세요.”
“방도가 있다고?”
“그렇습니다.”
기사단장은 쉽게 믿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만약 송진우가 말한 방법이라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 결과가 어떨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진우는 기사단장의 말을 듣기도 전에 왕세자에게 다가가 급하게 소리쳤다.
“죄송합니다만, 왕세자님 옥체에 손을 대겠습니다.”
“헛!”
그렇게 말하며 송진우는 왕세자를 번쩍 들어서 등에 업었다. 그리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빨리 따라오세요!”
왕세자를 업고도 바람처럼 달리는 송진우의 모습에 주저하던 기사단장도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모두 그를 따라라!”
다시 일행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비역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병력이 대기하고 있지도 않았다. 역시 그곳도 허허벌판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행의 의구심은 짙어졌지만 송진우의 목소리는 밝아졌다.
“거의 다 왔습니다!”
송진우의 자신만만한 말과는 달리 앞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기사들과 송진우 등에 업힌 왕세자의 얼굴빛이 어두워졌지만 뒤따라오는 이 왕자의 병력들은 웃었다.
“저기 있다!”
말을 타고 온 이 왕자의 병력들이 이곳까지 따라 온 거다. 다급해진 왕세자는 업힌 상태에서 송진우를 재촉했다.
“뭐, 뭔가 방도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사실 송진우도 처음에는 이곳에 말을 대기해 놓았다가 탈출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러려면 말을 사야 하는데 말값이 현실 돈으로 해도 몇 백만 원이 넘고 풀무장한 기사가 탈 수 있는 말을 사려면 천만 원 넘게 내야 했다. 그것도 한 필당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계약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날릴 위기여서 전략을 바꿨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됩니다!”
“으으!”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다. 그냥 송진우를 믿고 무작정 뛰어야 했다.
두두두두!!!
하지만 말발굽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이제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모두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갈 때였다. 갑자기 변고가 생겼다.
히이이잉!!!!
변고는 사람에게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거품을 물고 날뛰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 마리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었다. 이 왕자 세력이 타고 있던 말이 모두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 이거 왜 이래?!”
우당탕탕!!!
흥분한 말이 앞발을 번쩍 들고 날뛰니 병력들이 달리는 속도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우당탕탕!!
병력들은 땅에 떨어진 충격과 거대한 전마의 발굽에 밟힌 탓에 크게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왕세자 측도 어이없어했다. 기세 좋게 다가오던 병력들이 삽시간에 전투 불능 상태가 된 거다.
이건 당연히 송진우의 작품이다.
“좋았어!”
저들이 쫓아오는 길에 흡입하면 광증을 일으키는 풀들을 곱게 갈아서 깔아놓았다. 땅에 뿌려진 가루가 말이 바닥을 차면서 달리니 자연스럽게 공중에 떠서 말과 사람이 동시에 흡입하게 되었다.
고렙의 헌터들에게는 소용없는 풀이었지만 후각이 예민한 말에게는 효과만점이었다. 그 때문에 말이 미쳐서 날뛰게 된 거다.
저들은 대부분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이제 가던 길로 도망치기만 하면 성공이다. 여기까지가 송진우의 계획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번 일도 송진우의 생각처럼 흘러가지는 않았다. 분기탱천한 왕세자가 송진우의 등에서 뛰어내리더니 큰소리로 외친 것이다.
“이때다! 저들을 끝장내라!”
“넵! 왕세자 전하!”
왕세자의 말에 기사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검을 빼서 쓰러진 병력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병력에게 휘둘렀다.
“크악!!!”
이미 큰 충격을 받은 병력이다. 거기에 왕세자의 친위기사들의 강력한 공격을 받으니 당연히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순식간에 병력들이 정리되기 시작했지만 송진우는 당황했다. 기사들은 강력하고 추격자들 상태는 좋지 않지만 아직 적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저들이 정신을 차리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복수에 눈이 멀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왕세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받은 수모를 갚아주겠다는 듯이 흥분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송진우가 그런 왕세자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왕세자님!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일단 도망쳐서 다른 병력과 합류해야…….”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도망친 곳에 다른 병력이 또 대기하고 있지 않다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
그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예지에서는 왕세자가 여기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모두 잡혀 죽어서 뒤의 이야기는 알 수 없었다.
“……으~ 할 수 없나? 데스 사이드!”
이렇게 된 이상 저들과 합류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송진우는 낫을 아직 비틀거리는 병력을 향해 휘둘렀다.
스앗!
공격력은 기사들 못지않은 송진우다. 빈사가 된 병력이 송진우의 낫질 한 번에 추수되는 벼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직업 레벨이 20이 되었습니다.》
《스킬 획득》
소울 트랩
(액티브)
(LV 1)
바닥에 마법 함정을 만들어 상대에게 소울 데미지를 주고 환각 상태로 만든다.
고렙의 플레이어들과 NPC 유닛을 쓰러트리니 경험치가 무지막지하게 들어왔다. 직업 레벨도 올라 특이한 액티브 스킬까지 얻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나중에는 피에 채찍을 소환하고 그곳에 낫을 매달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확도는 높지 않지만 어차피 빈사가 된 병력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으니 크게 상관없었다.
‘아무나 맞아라!’
붕~ 붕~
붉은 채찍에 연결된 낫이 움직일 때마다 적들이 두세 명씩 쓰러졌다. 생각지 못한 광렙을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다.
“제길! 왕세자를 죽여!”
쓰러진 병력들이 몸을 추스르고 반격을 개시한 거다. 생명력은 이미 많이 줄어든 후였지만 숫자는 아직 훨씬 더 많았다.
“반역자들을 처단해라!”
“저놈들도 지쳤어! 여기서 왕세자를 끝내지 않으면 우리가 당한다!”
숨 막히도록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번 전투로 왕세자와 이 왕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원한 세력들의 운명도 결정이 될 거다.
챙! 챙!! 챙!!
전황은 엎치락뒤치락했다. 처음에는 기세가 오른 왕세자 쪽이 밀어붙였지만 나중에는 고렙의 헌터가 지휘하는 이 왕자가 더 유리하게 전투를 진행했다. 그 상황을 다시 뒤집은 것이 송진우였다.
휘리릭!
송진우의 낫이 적재적소에 던져져 기사들을 지원했다.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이미 송진우의 무술 실력은 일취월장해 삼류를 훌쩍 넘어 일류에 가까워졌다. 물론 초절정, 절정에 닿은 사저들과 비교할 수는 없는 수준이지만 단 몇 달 만에 일류까지 오른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모두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끊임없이 훈련한 대가다.
이제는 채찍 끝에 단 낫의 움직임도 능숙해졌고 회수하고 던지는 시간도 전보다 훨씬 줄었다.
붕! 붕! 붕!
송진우의 낫이 원거리에서 기사들을 지원했다. 기사들은 방어력과 체력이 상대적으로 높고 송진우는 공격력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기사들이 탱킹하고 송진우가 딜러 역할을 맡으니 환상의 짝꿍이 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막타는 모조리 송진우가 주워 먹고 있다. 덕분에 레벨이 미친 듯이 올랐다.
“저놈을 막아!”
이 왕자 측도 송진우의 존재감을 느끼고 그를 먼저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탄탄한 기사들의 벽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말을 타고 왔기에 승마 스킬이 없는 궁병이나 마법사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모두 근접 무기밖에 들고 있지 않아 송진우를 공격할 수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것이 3차 승급자다.
“블레이즈 스탭!”
누군가가 현란한 이동 스킬을 사용해 기사들을 뚫고 송진우에게로 다가왔다.
“쥐새끼!”
그는 플레임 길드의 길드장인 염상섭이었다. 3차 승급자답게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고 백작 버프로 스탯도 높았다.
그는 뒤에 왕세자가 있었지만 송진우에게 먼저 다가왔다. 일단 공격수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넌, 그 언데드 용병! 설마, 왕세자의 세작이었냐?”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용병이다.”
“뭐? 내 말만 잘 들으면 좋은 기회를 준다고 하지 않았나?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거지?”
“그냥 항복하라고? 항복한 헌터들을 죽일 생각이라는 걸 모를 것 같나?”
예지에서 헌터들을 잔인하게 죽인 것을 본 송진우다. 설사 진짜로 자신을 영입할 생각이었대도 저런 남자의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뭐?!”
염상섭도 찔리는지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검을 송진우에게 겨눴다.
“그럼 그냥 죽어!”
염상섭의 아이템은 최소가 유니크고 좋은 건 에픽 등급까지 된다. 아이템, 스탯, 스킬, 엠블럼 등이 모두 송진우를 압도했다.
시간이 없는 건 염상섭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가진 스킬을 모두 압박해서 송진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스타 폴!”
“피닉스 파이어!”
“하트 오브 라이언!”
“스트라이킹 어택!”
염상섭의 스킬은 모두 최고 레벨에다가 남들은 하나 얻기도 힘든 희귀 스킬을 스킬북으로 통해 얻은 거다. 피해량과 회피 난이도가 모두 최상위 스킬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모든 스킬이 적중되지 않았다.
“뭐, 뭐야? 어떻게 그걸 다 피한 거지?”
송진우가 같은 3차 승급자라도 이렇게 모든 스킬을 피하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이건 사용하는 자신도 예측 불가능한 공격이다.
놀란 염상섭처럼 송진우도 놀란 상태였다. 송진우가 그의 공격을 다 피한 건, 그동안 배운 무술도 아니고 운 덕분도 아니었다.
‘보인다.’
단지 염상섭의 다음 움직임이 보인 거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검이 어디로 날아올지 모두 눈에 보였다.
정체불명의 신이 준, 미래 예지와는 다른 힘이다. 이 힘이 어디서 왔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카이로스!’
이것이 카이로스가 준 ‘시각’의 힘이다. 인과에 따른 미래 예지가 아닌 짧은 전투에서 적들의 몇 초 후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엄청나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무적에 가까운 힘이다. 속도와 힘은 염상섭이 더 뛰어났지만 그의 공격은 송진우를 전혀 스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신이 특별히 명령을 내린 것도 다 이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모든 공격이 빗나가니 염상섭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빨리 송진우를 죽이고 왕세자를 죽여야 하는데 마치 늪 속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선 왕세자를 공격했을 거다.
“고작 너 같은 놈에게!”
다급해진 염상섭은 아껴놓았던 스킬을 사용했다. 이건 3차 직업 마스터 스킬로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비장의 무기다.
“원탁의 기사!”
그 순간 주변 공간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기사들이 소환되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3차 승급자를 훌쩍 뛰어넘는 힘을 지닌 전설의 기사들이다. 그런 기사가 무려 다섯 명이나 소환되어 송진우를 포위했다.
이번에도 송진우의 눈에 몇 초 후의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무적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취소해야 할 상황이다.
‘피할 수 없어.’
무슨 수를 써도 이 공격은 피할 수 없다. 무적으로 변하는 쉐도우 스탭을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3초의 무적이 풀리면 바로 기사의 검이 송진우의 목을 벨 거다.
절제절명의 위기의 순간, 카이로스의 두 번째 권능이 발동되었다.
“……멈췄어?”
순간 세상의 모든 사물이 멈췄다. 이곳에서 움직이는 것은 오직 송진우밖에 없었다.
절대 권능 중 하나인 ‘시간 정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