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있는 한영 건설의 빌딩 안,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이사실에 두 명의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명은 한영 후계자 중 셋째인 한대운이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보좌관이다.
“이게 전부입니다.”
한대운의 보좌관은 한대운에게 사진이 첨부된 인물들의 신상명세서를 전달했다. 그들은 모두 한대운의 동생인 한수정이 만든 새로운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총원은 50, 그중에 남자는 모두 38명입니다.”
“……그중 수정이와 친밀한 자는?”
한수정에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는 한대운이다. 이 순간만큼은 보좌관도 한 치의 실수도 보이면 안 된다. 잘못하다가는 불똥이 그에게 떨어질 거다.
“특별한 유대를 보이는 남자는 없습니다. 가장 오래 이야기하는 남자는 김홍택 실장이고 다른 사람은 사촌 오빠인 이정후입니다.”
“그래?”
한대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자료집을 넘겼다. 하지만 저런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인 걸 잘 알고 있는 보좌관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 포식귀라는 놈은?”
놀랍게도 한대운은 이미 송진우가 변장했던 모습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놈은…… 아가씨의 비밀 병기로 보입니다. 누구에게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아가씨 주변 남자들 중에서 그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는 없었습니다.”
“그럼 용병이라고? 수정이가 그렇게 허술하게 사람을 끌어들이지는 않았을 텐데?”
“언제나 그렇습니다만…… 길드 초기에 특별한 강자를 끌어들이는 건 늘 있는 일입니다.”
“실력은?”
“특별한 스킬 없이도 이정후 님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합니다. 3차 승급자로 보입니다.”
“……이놈에 대한 정보도 알아내.”
“알겠습니다.”
포식귀 일로 한대운이 난리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했던 보좌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뒤로도 한대운은 계속 자료를 넘겼다. 그리고는 어떤 자료를 유심히 봤다.
“이놈은…….”
그건 송진우의 사진이었다. 전에 한영 길드 소속의 마을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원래 한영 길드 소속의 짐꾼이었습니다. 이번에 아가씨가 자신의 길드로 데려간 것 같습니다.”
“이놈을? 전에 마을에 허가증도 주더니 왜 이놈만 특별 취급하는 거지?”
전에도 신경 쓰여서 특별히 마을까지 찾아갔었다. 별 볼 일 없는 놈인 것을 알고 그냥 돌아섰지만 새로운 길드까지 데려갈 줄은 몰랐다.
한대운의 눈빛이 스산해지자 보좌관의 말도 빨라졌다.
“도축 실력이 뛰어나고 전에 아가씨 퀘스트에도 큰 공을 세웠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정 사정이 딱해서 수정 아가씨가 편의를 봐준 것 같습니다.”
“가정 사정? 그게 어떤데?”
“부모님 두 분 다 사고로 돌아가시고 짐꾼 일을 하며 동생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 앓은 소아마비 때문에 아직도 한쪽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름발이라 이거군.”
“그렇습니다.”
절름발이라는 소리를 듣자 한대운도 삐딱하게 사진을 본 후에 자료를 넘겼다. 동생인 한수정이 이런 놈에게 특별한 감정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목발을 짚고 다니는 송진우의 연기가 헛되지 않은 거다.
대충 다 훑어본 후에 자료를 옆에 던지며 말했다.
“계속 감시해.”
“알겠습니다.”
***
송진우는 1차 승급을 마친 후부터 중앙 대륙에 살다시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길드의 합류 없이 보스를 만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예상대로 경험치는 쑥쑥 올랐다.
붕~
스톤 골램 무리 안에 들어간 송진우는 거침없이 낫을 휘둘렀다.
땅! 땅! 땅! 땅!
말랑말랑한 살이 아닌 딱딱한 돌로 된 스톤 골램을 공격하면 낫이 튕겨 나가는 기분이다. 다른 동급의 몬스터보다 배는 더 많이 공격해야 골램이 쓰러졌다.
“헉~ 헉~”
아무리 포식의 힘을 지닌 송진우라도 500이 넘는 몬스터와 싸우는 건 쉽지 않다.
“역시 이런 놈들에게는 낫이 별로네.”
오직 베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낫이다. 스켈레톤이나 골램 같은 몬스터에게는 검 같은 날붙이 무기보다는 둔기가 훨씬 효율이 좋다.
“여긴 좋은 사냥터가 아니야.”
더군다나 이놈들은 먹을 수도 없으니 체력 회복 수단이 되지 못 한다.
“포식아, 나 고블린 다리 좀.”
송진우가 말하자 포식이가 아까 저장했던 고불린 다리를 뱉었다. 송진우는 그것을 뜯어먹으며 생명력과 기력을 회복했다. 모습은 끔찍하지만 소갈비 맛이 나서 일부러 몇 마리 잡아서 포식이에게 저장할 정도다.
우걱! 우걱!
반은 송진우가 먹고 반은 포식이가 먹었다.
먹는 순간에는 사이좋은 친구 같다. 사실 혼자 다니는 송진우라서 포식이의 존재가 꽤 도움이 된다.
“내일은…… 엘프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유사 인간을 먹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는 뒤로 미룰 수는 없겠지.”
언데드니 인간이나 유사 인간도 먹을 수 있다. 맛도 인육 맛이 아닌 다른 고기맛이 날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육 같은 것이 몸에 들어가는 것이 좀 꺼려졌다.
하지만 다음 날까지 계획은 결국 짜지 못 했다. 다른 더 중요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서 씻고 머리를 말리기도 전이었다.
[들어라. 내 계약자여.]
오랜만에 정체불명의 신의 음성이 들렸다.
[다음 과제를 이행할 때가 왔다.]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조금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직 자신에게 자신의 정체도 알려주지 않은 신이지만 그래도 이 신 덕분에 많은 것을 얻고 위기도 넘길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내린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신은 말로 하지 않았다. 대신 미래 예지를 보여줬다.
지잉~
“큭!”
다시 왼쪽 눈이 충혈되고 아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대한 양의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원정은 무척이나 중요한……]
[비밀의 문을 찾았습니다.]
[이곳에 왕가의 증표가……]
[이 일로 우리 길드는 정식으로……]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커어억!”
이번 환영은 유난히 길었기에 뇌와 눈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그것을 네가 얻어라.]
“그걸 제가요?”
[큰 힘이 될 거다.]
“……알겠습니다.”
정체불명의 신은 마치 길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우라는 듯이 쉽게 말했지만 환영으로 나타난 예지에 따르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디멘션 특성으로 빠르게 힘을 얻은 송진우지만 아직 능력은 2차 승급자와 3차 승급자 사이쯤에 있다.
물론 불과 몇 달 전에는 레벨 100도 안 돼서 짐꾼 생활도 겨우 했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지만 이번 퀘스트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막무가내로 덤벼들면 안 돼. 정보를 조합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해.”
송진우가 가진 최고의 힘은 포식귀가 아니라 미래 예지다. 이 방법으로 이전에 절대 이길 수 없었던 트윈 헤드 오우거와 숲 지기 트롤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고스란히 송진우의 것이 되었다.
“에휴~ 일단 전략을 짜야겠네.”
송진우는 정해진 날이 올 때까지 전략 전술을 세웠다고 고치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신이 알려준 날이 되었다. 송진우는 아침 일찍부터 중앙 대륙으로 갔다.
《크리프 성도》
이곳은 판타지 대륙에 있는 10개의 나라 중의 하나인 켄타디언 왕국의 수도다. 다른 왕국에 비해서는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수도라서 도시는 컸다. 농지를 포함하면 서울만 했다.
그 도시의 중앙 광장에서 화려한 복장을 입은 남자가 군중에 둘러싸여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뒤에는 병장기를 갖춘 수많은 병사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중요한 임무를 맡을 용병을 구한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 있는 자들은 모두 응하라!”
그는 플레이어도 아니고 성에서 나온 NPC다. 그런 그가 용병 길드도 아닌 광장에서 소리친다는 건 일종의 돌발 퀘스트라는 뜻이다.
그 소식이 플레이어 사이에 퍼져서 순식간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몰렸다.
“돌발 퀘스트다!”
“이건 꼭 해야지.”
퀘스트를 얻기 위해서는 용병 길드 같은 데서 의뢰를 받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당연히 돌발 퀘스트가 보상이 더 좋다. 가끔 유니크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얻을 때도 있으니 플레이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몰려든 거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자 단상 위의 남자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왕가의 임무를 위해 용병을 뽑을 거다. 총 200명을 뽑을 생각이니 실력을 증명해라.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에게만 임무를 주겠다.”
그의 말에 모두 눈을 빛냈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중앙 대륙에서 활동하는 고렙의 헌터들이다. 다들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서쪽에 있는 회색의 언덕에 가서 오크의 쓰러트리고 그 증거로 머리를 가져와라. 능력을 증명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겠다.”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광장에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에게 퀘스트가 생겼다.
《돌발 퀘스트 발생! - 회색 오크의 징표를 가져와라.》
퀘스트를 확인한 플레이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서쪽으로 빠르게 뛰었다.
“오오오! 퀘스트는 내 꺼다!”
“오크 정도 잡는 건 쉽지.”
“아쭈! 밀지 마!”
“앞에서 알짱거리지 마!”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송진우였다. 그는 퀘스트를 받기 전부터 회색 언덕으로 가는 가장 빠른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광장을 벗어나면 퀘스트를 못 받기에 최대한 외각에 서 있다가 퀘스트가 뜨자마자 확인도 하지 않고 뛰었다.
다들 발바닥에 땀이 나게 뛰었지만 그중에는 잔머리를 굴리는 자들도 있었다.
“오크 대가리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
그들은 빠르게 뛰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슬쩍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회색 오크의 머리를 사기 위해서 도축장으로 뛰었다.
그것을 송진우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과 합류하지 않고 속으로 비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바보들.’
그렇게 허술한 퀘스트가 아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적당한 때까지 기다린 후에 관리 앞에 나설 생각이었지만 곧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거다. 퀘스트용 오크는 지금 막 생성되었다. 다른 오크의 목은 가져가 봤자 소용없다.
다다다닥!
원래 스탯도 뛰어나고 바이콘의 다리도 있는 송진우였기에 다른 헌터들과의 거리를 점점 벌어졌다. 쉬지 않고 열심히 뛴 결과 송진우는 목적지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회색 언덕》
이곳에 퀘스트 몬스터인 회색 오크가 있다. 벌써 육안으로 오크들이 몰려다니는 것이 보였지만 송진우는 그들을 무시하고 더 앞으로 갔다.
다른 퀘스트는 서로 오크를 먼저 죽이기 위해서 엄청난 사투를 벌일 거다. 그것을 피하는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반 오크를 죽여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퀘스트를 준 관리는 실력을 증명하라고 했지 선착순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가장 먼저 온 플레이어에게 가산점이 있지만 그것으로는 최고 점수를 얻을 수 없다.
‘족장을 찾아야 해.’
신이 준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최고 점수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안쪽에 있는 족장의 머리를 가져가야 한다.
휙! 휙!
송진우는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불필요한 싸움을 피했다. 이미 오기 전부터 오크와 전투하며 전투 패턴을 익혔다. 물론 족장은 일반 오크와 다르겠지만 다른 오크 족장과 만난 기회는 없었다.
회색 오크는 일반 오크보다 몸집도 더 크고 피부가 돌처럼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속도는 조금 둔하지만 방어력만큼은 뛰어나다. 대신 마법 방어력이 취약하다.
미로처럼 얽힌 언덕길이었지만 가는 길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신의 눈에 붙은 지식과 지혜 스택 덕분인지 환영으로 봤던 길이 똑똑히 기억난다.
《회색 오크 부락》
거대한 언덕을 등지고 회색 오크들의 부락이 보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오크들은 일반 오크보다 더 강한 전사 등급이다. 그들의 목을 가져가도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겠지만 송진우가 원하는 것은 1등이다.
턱!
미리 가지고 온 등산용 장비를 이용해서 옆 벽을 기어올랐다. 힘으로도 그냥 오를 수 있지만 소리가 안 나게 움직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곳에서 오크에게 걸리면 부락에 있는 모든 오크들이 몰려들 거다.
“끙차!”
밧줄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린 곳에는 오크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 역시 예지를 통해서 본 안전지대다. 여기서 오크 족장이 있는 곳은 멀지 않다.
밧줄은 회수해서 포식이에게 저장하고 다시 앞으로 이동했다. 배를 긁적이며 하품하고 있는 보초를 지나가니 언덕에 있는 동굴이 보였다. 저곳이 회색 오크의 족장이 있는 곳이다.
슬금슬금 이동해서 들어가니 술과 고기들이 사방에 나뒹굴고 있고 그 안에 거대한 체구의 오크 족장이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크으으으으으!!!”
처음에는 들어온 것이 들킨 줄만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건 족장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것이었다.
‘깜짝이야.’
송진우는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지금 싸우면 동굴 밖에 있는 보초들이 눈치채고 바로 들어올 거다.
구석으로 가 가만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땡! 땡! 땡! 땡!
밖에서 종이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락의 위치를 알아낸 플레이어들이 힘을 모아 공격한 것이다.
‘지금!’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오크 족장도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며 침대에서 막 일어나려 할 때였다.
“데스 사이드!”
스킬을 외치자 송진우의 낫에 검은 기운이 스며들며 사신의 낫의 모양으로 변했다.
“쿠엉?”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오크 족장이 뒤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그때는 늦었다.
스앗!
송진우의 낫이 그의 목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