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날 저녁, 코넬과 송진우는 최고급 여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그곳에 머물렀다.
마탑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인데 코넬을 영입하고자 하는 학파들이 금전도 두둑하게 챙겨주어서 앞으로는 전처럼 궁핍하게 생활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우히히!!”
코넬은 커다란 침대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너무 심하게 구르다 바닥에 떨어져 이마에 피까지 났지만 전혀 아픈 기색을 내지 않았다.
“그렇게 좋습니까?”
“그럼 좋고말고. 내가 이것을 위해서 이제까지 얼마나 노력했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밥도 먹지 못한 상태지만, 먹지 않아도 충분히 배가 불렀다. 오히려 활력이 넘쳐흘렀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야. 이제까지 우리를 무시하던 사람들이 나한테 비굴하게 부탁하는 것을 스승님도 봐야 했는데.”
스승님의 말이 나오자 코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죽는 순간까지 학파의 미래를 걱정하던 스승이었다.
“고맙군, 레오나르드. 다 자네 덕분이야.”
다른 스켈레톤도 혁명적으로 개량된 것도 사실이지만 혼자서 오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건 송진우가 유일했다.
송진우의 활약이 없었으면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으리라.
신나서 한참을 여관을 뛰어다니던 코넬도 지쳤고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널브러졌다.
“하아~ 긴장이 풀리니까 이제야 졸리기 시작하네.”
“오늘 너무 무리했습니다. 좀 쉬시죠.”
“그래. 좀 자야겠어. 자네도 좀 눈 좀······ 아, 미안. 자네는 잠을 자지 않지?”
송진우도 이제는 언데드니 잠을 못 잔다. 물론 사기가 충전될 시간은 필요했는데 그건 밤이 되면 저절로 되니 따로 특별한 행동할 필요는 없다.
“아침에 깨워줘.”
그럼 말을 남기고 코넬은 잠이 들었고 송진우는 다른 스켈레톤들이 있는 마당으로 나왔다.
딱! 딱! 딱!
마당에 있는 스켈레톤들은 이를 부딪치며 딱딱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이건 말을 못 하는 그들만의 언어다.
말은 할 수 없지만 지능은 있는 스켈레톤이라서 자기들만의 신호를 만든 거다.
송진우가 나오자 스켈레톤이 반갑다는 듯이 이를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그래, 그래, 알았다.”
송진우도 그들의 언어를 이해했는데 정교한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하는 행동이라서 조금만 같이 지내면 대충 뜻을 알 수 있다.
“오늘 모두 고생했다. 집에 가면 코넬이 원하는 바를 들어준다고 했으니까 생각이나 해 놔라.”
딱! 딱!
송진우의 말에 스켈레톤들이 다시 이를 부딪쳤다. 이건 웃고 있는 거다.
“좋아. 그럼 난······.”
말을 하던 송진우는 어떤 기척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이건 적의인데······.’
어느새 사방에 적의가 가득한 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본래의 레오나르드였다면 훨씬 이전에 알아차렸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스켈레톤이 된 몸이라 나중에 알아차린 거다.
송진우는 가장 앞에 있는 스켈레톤에게 은밀히 다가가 속삭였다.
“긴급 상황이다. 어서 코넬을 깨우고 누가 침입했다고 알려.”
딱딱
송진우의 말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스켈레톤이 조심스럽게 코넬이 머무는 곳으로 움직였다.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 우리는 코넬이 머무는 곳을 호위한다.”
송진우는 습격자들이 당연히 코넬을 노릴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코넬을 시기해서 해치려고 하거나 그의 연구를 훔치려는 것이겠지.’
현실 세계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중대한 연구를 발표하고 호위병을 더 고용하지 않은 코넬이 안일했다.
아니나 다를까 코넬이 머무는 곳까지 움직이는 사이에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린 암습자들이 튀어나왔다.
챙!!
이미 준비가 된 송진우가 검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송진우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스켈레톤이 내 검을?!”
오크도 이겼다는 말을 들었지만 자신의 검을 막아낼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암습자는 경악했다.
‘전문적인 자객은 아닌데?’
공격하는 도중에 소리를 내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의 사용하는 검술도 암습자들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직했다.
무기는 짧은 단검을 쓰고 있지만 그들의 검로로 짐작건대 아마 평소에는 장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기사?’
이들은 용병 같은 조잡한 조직이 아니라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기사 같았다.
그 증거로 송진우의 제외한 다른 스켈레톤은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칫! 이것들도 강해.”
원래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가져왔으면 벌써 다른 스켈레톤은 쓰러졌을 거다. 스켈레톤을 단검으로 잡는 것은 아무리 숙달된 기사라도 해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밀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송진우가 분전하고 있지만 이대로 조금만 지나도 전멸을 막을 수 없을 거다.
그래서 송진우도 비장의 수를 썼다.
“모두 그 기술을 써!”
송진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든 스켈레톤들이 자신의 머리통을 뽑아 들었다.
“뭐, 뭐야?!”
언데드만이 할 수 있는 방법에 놀란 암습자들이 어리둥절할 때, 다시 송진우가 외쳤다.
“던져!”
놀랍게도 스켈레톤들은 자신의 머리통을 암습자들에게 던져버렸다.
“으악!”
머리통은 단지 던져지기만 한 것이 아니다. 목표에 다가가자 입을 벌려서 상대를 꽉 깨물어 버렸다.
“미친!”
암습자들이 서둘러 머리통을 떼어내려 했지만 자신을 꽉 깨물고 있는 머리를 떼어놓는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무리해서 힘을 주니까 자신의 물린 부분도 함께 떨어져 나갈 거 같았다.
그리고 그때 송진우가 움직였다.
푹!
현란한 움직임으로 고통 받는 암습자들 사이를 누비며 검을 휘둘렀다.
“크악!”
검을 한 번 휘두르면 어김없이 암습자들이 쓰러져버렸으며 시간이 지나자 남은 것은 시체들밖에 없었다.
송진우 역시 시체였으니 말이다.
“모두 머리통을 수거해.”
기지를 발휘해서 상대를 물리쳤지만 이쪽도 피해가 적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스켈레톤이 반파되었으며 남은 스켈레톤도 멀쩡한 이가 없었다.
“할 수 없지. 그건 나중에 고치기로 하고 지금은 코넬의 안위가 더 중요해.”
스켈레톤 한 명을 보내 대비를 시켰지만 생각보다 암습자들의 수준이 높았다.
코넬은 스켈레톤을 부리는 데 특화된 학파의 일원이다. 본신의 마법은 형편없어서 이런 암습자가 아니라 평범한 암습자들이라고 해도 위험했다.
“모두 빨리 이동한다.”
송진우와 스켈레톤들은 열심히 이동해서 코넬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곳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코넬!”
송진우는 코넬의 막 목을 치려는 암습자를 뒤에서 공격했다. 보냈던 스켈레톤은 이미 두개골이 부서져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다시 머리통을 던져서 상대를 당황하게 한 후에 송진우가 날뛰니 안에 들어왔던 암습자들도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그 전투가 끝나고 움직일 수 있는 스켈레톤은 겨우 셋이다.
그보다 더 급한 것은 코넬의 상태였다.
“레, 레오나르드.”
이미 코넬은 전신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 마무리를 못 했을 뿐이지 이미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코넬! 정신 차려!”
“쿨럭! 나, 나는 이미 틀렸어.”
코넬의 눈동자는 이미 풀려 있었다. 그가 입은 상처를 생각하면 지금 말을 하는 것도 용했다.
그것을 안 송진우는 그의 말을 막지 않았다.
“미, 미안해. 나는 거짓말을 했어.”
“거짓말? 그게 무슨 말이지?”
“레오나르드······ 그 이름을 가진······ 그리고 행방불명된······ 이를 찾아냈다네. 아니 이미 유명한 이름이었어.”
“내 정체를 알아냈다는 말이오? 내 정체가 뭐기에?”
“······에드워드 가문으로 가게나. 그곳에······ 그곳에······.”
미처 말을 하지 못한 코넬이 마침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숨을 거둔 것이다.
“······코넬.”
가장 행복한 순간에 화를 입은 코넬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그였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아직 위협을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사방에서 암습자들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안 되겠다. 모두 흩어지자.”
이제는 수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차라리 떨어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스켈레톤에게 가야 할 곳을 지정해준 송진우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몰래 움직여야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다그락!
부드러운 살갗이 아닌 해골 몸은 움직일 때마다 심한 소음이 났다. 빛이 안 비치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소리 때문에 걸리는 건 시간문제인 거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송진우의 앞에 전의 그 암습자들이 나타났다.
‘이거 안 좋은데?’
숫자는 전보다 적었지만 문제는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데 있었다. 예상이 맞는다면 이들을 이끄는 대장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가 송진우를 유심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레오나르드······ 진짜 그대인가?”
그가 말한 것은 송진우의 이름이었다.
“······설마 나를 찾아온 건가?”
이제까지 송진우는 이들이 노리는 자가 코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코넬이 아니라 송진우를 찾아온 것이다.
“진짜 그대인 건가, 아니면 단순히 이름만 같은 건지 모르겠군.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런 복면을 쓰고 있는데 맞추라는 거냐?”
송진우의 말에 남자는 쿡쿡하고 웃었다.
“진짜 레오나르드라면 복면이 아니라 변장을 하고 있어도 나를 알아봤을 거야. 그것을 보면 그가 아닌 것도 같지만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다는 말이지······.”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자가 그에게 말했다.
“뼈가 저렇게 붉은색으로 변화한 것을 보니 그가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독극물에 중독되면 저렇게 뼈의 색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진짜 그라는 말인데······ 아쉽군. 기억을 잃은 건가?”
“데스 나이트도 아닌 스켈레톤으로 부활한 겁니다. 기억이 남아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합니다.”
“흠. 어쩔 수 없군. 다시 한번 그와 대결할 수 있을까 해서 달려왔건만 그의 껍데기만 남아 있군.”
“어쨌든 저것이 그의 해골이 맞는다면 저렇게 돌아다닌다는 것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위험이 될 겁니다. 어서 처리해야 합니다.”
“알았네.”
말을 마친 남자는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며 검을 집었다.
“개인적으로는 자네 같은 남자가 고작 독으로 죽었다는 것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네. 그러니 이번만큼은 내가 최선을 다해서 상대해주지.”
위잉!
말을 마친 그의 검에서는 시퍼런 검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 등급의 무인이었다. 다른 말로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기사다.
‘지금은 절대 못 이겨.’
아무리 개량된 스켈레톤이라고 하지만 그래 봤자 스켈레톤이다. 이 몸으로 소드 마스터 무인과 싸우라는 것은 자살 행위와 같다.
그러나 도망친다고 해도 그와 다른 암습자들보다 빠를 것 같지도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다른 암습자가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다.
“장군님!”
“무슨 일이냐?!”
“누군가가 이곳에 쳐들어왔습니다.”
“누가?”
“그, 그게······.”
암습자는 송진우를 한 번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워드의 기사단 같습니다.”
그 말에 장군이라고 불린 남자는 오히려 유쾌하게 웃었다.
“결국, 그들도 냄새를 맡았군.”
“시간이 없습니다. 곧 그들이 들이닥칠 겁니다.”
수하들은 어서 송진우를 해치우고 도망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에 송진우도 필사의 각오를 다졌지만 그는 검을 집어넣었다.
“장군님!”
“조용. 이미 늦었어. 지금 바로 도망가지 않으면 우리의 정체가 들통날 거야.”
“하지만······.”
“어차피 기억도 없는 스켈레톤 하나다. 저것을 그대로 두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그렇게 말한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움직였고 망설이던 부하들도 하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클클클!”
길을 걸으면서도 남자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라이벌이던 그대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네. 부디 다시 예전처럼 검을 나눌 수 있게 회복하시게나.’
남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가면서 죽은 그들의 시체들도 남김없이 회수했는데, 흔적 하나 남지 않게 깔끔한 솜씨였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 송진우에게 이번에는 다른 무리의 일행들이 들이닥쳤다.
“······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