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란 김 실장이 빠르게 다가가 파워 아머를 살펴봤다.
“이건 어떻게 여는 거야?!”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김 실장은 파워 아머를 벗겨내려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파워 아머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파워 아머가 스스로 접히더니 이내 한수정의 모습이 드러났고 파워 아머는 순식간에 줄어들어 팔찌 형태로 변했다.
“아가씨?”
한수정이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서 있자 김 실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번쩍!
별안간 한수정의 눈이 떠졌다.
“아구! 깜짝이야!”
놀란 김 실장이 뒤로 나가떨어졌고 한수정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이 눈만 끔뻑거리다가 넘어진 김 실장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아저씨 왜 또 넘어져 있어요?”
멀쩡한 한수정의 모습에 그제야 안심이 된 김 실장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공석에서는 실장이라고 부르라니까······.”
다행히 한수정은 훈련에 통과했다. 이제는 팔찌가 되어버린 파워 아머를 보면서 한수정은 신기한 듯이 돌려봤다
“마크 51, 프라임 아머라는 이름의 파워 아머네요.”
“무슨 이름이 그따위랍니까?”
“전 마음에 드는데요. 입에 착착 붙고, 프라임 아머.”
한수정은 흐뭇하게 팔찌가 된 프라임 아머를 보았다. 이제는 긴장이 다 풀린 김 실장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장갑을 살펴봤다.
“이게 파워 아머가 된다고요? 무슨 원리랍니까?”
“나노 기술 어쩌고 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고요. 확실한 건 이 모습일 때는 마나석이 소비되지 않고 파워 아머 형태로 변했을 때만 마나석이 필요한가 봐요.”
“그건······ 엄청 좋네요?”
파워 아머의 가장 큰 단점인 마나석 소비를 줄일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다. 거기에 파워 아머의 존재를 모르는 적에게는 비장의 한 발이 될 거다.
“대박이네요!”
설계도면도 얻고 귀중한 아이템도 얻었다. 한수정은 웃으면서 같이 왔던 대원들에게 말했다.
“오늘 보상을 톡톡히 쏠게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오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순간이다. 한수정은 결코 쩨쩨하게 보상을 아끼는 법이 없었다.
위잉~
모든 것이 끝나자 갑자기 벽이 열리면서 숨겨진 비상구가 나타났다. 이곳으로 가면 처음 입구로 쉽게 갈 수 있을 거다.
“그럼 돌아가죠.”
예상보다 더 좋은 보상을 얻자 발걸음까지 가벼웠다. 보통 이렇게 나가는 곳에는 몬스터들도 존재하지 않는다. 즐거운 마음에 대원들은 보상과 다음 여정 등에 관한 잡담 등을 하며 걸었고 한수정도 굳이 그런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콰지지지직!!!!
갑자기 발밑에서 강력한 전류가 흐르면서 몸이 마비되었다.
“큭!!!”
한수정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쓰러져서 일어서지 못했다. 한수정만 유일하게 쓰러지지 않은 이유는 프라임 아머에 달린 스턴 방지 특성 덕분이었다. 하지만 역시 마비는 풀리지 않았다.
“아직 버티는 건가?”
일행들이 쓰러지고 나서야 나타난 이는 전에 만났던 위너스 길드원이었다. 길드장인 박두명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멀리서부터 큰 소리로 웃으니까 보상을 얻은 티가 확연히 나잖아? 누구는 허탕만 쳤는데 말이야.”
자기장 트랩을 다중으로 깔아서 함정에 빠진 이들의 정신을 잃게 만들게 했다. 트랩 전문 3차 승급자가 심열을 기울여 만든 트랩으로 경매장에서 현금만 10억을 줬다.
교묘하게 숨겼다고는 하지만 평소라면 당하지 않을 함정이다. 일이 끝나고 긴장이 느슨해진 탓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큭! 당신!”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어서 얻은 물건을 내주시지. 아니면······.”
철컹!!
위너스 길드원의 총구가 일제히 한영 길드원을 향했다.
“중앙 대륙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수 있어.”
“큭!”
그의 말에 한수정은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지만 완전히 전술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품에 넣었던 설계도면을 그에게 넘겼다.
“가져가라, 비열한 자식!”
“헷! 멍청하게 당한 네년이 바보지.”
박두명은 그녀가 건넨 설계도면을 보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건 그냥 조각이네. 하긴 온전한 설계도면이면 그들에게 넘기는 것보다 그냥 갖는 것이 낫겠지. 뭐, 이거라도 얻었으면 보상은 확실하겠네. 그리고······.”
박두명은 한수정을 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지. 한영 기업의 아가씨면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거야.”
디멘션 월드의 사망 시스템은 악랄해서 죽으면 총 레벨의 5%가 깎이고 이틀 동안 접속이 불가능하다. 또 가지고 있는 아이템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떨어트리거나 혹은 15% 확률로 그 아이템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중앙 대륙에서 죽어도 비슷하다. 물론 아이템을 떨어트리는 것은 같지만 사망 페널티 대신에 현실에서 진짜로 죽는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박두명이 노리는 것은 한영 길드원이 가진 아이템이다. 특히 한수정이라면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떨어트릴 것이 분명하다. 중앙 대륙에서 죽으면 경찰이 절대 찾을 수 없는 점을 노린 거다.
“얼굴이 반반해서 어떻게 해보려 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처음에는 한수정에게 잘 보이려 했지만 역시 그녀에게 통하지 않자 차선책을 노린 거다. 물론 그가 한영 길드의 사람을 건드린 것이 알려지면 살아남을 수 없겠지만 이곳에 전멸하면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죽은 줄로만 알 거다.
“당신!!!”
한수정이 노해서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지만 아직 자기장 트랩은 꺼지지 않았다.
박두명은 한수정이 발악하는 것을 보며 느긋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럼 발······.”
그 순간이었다.
“죽음의 파동!”
싹둑!
갑자기 공중에서 누군가 뛰어 들어와 총을 겨눈 플레이어들을 공격했다.
“데들리 스핀!”
그건 당연히 송진우였다. 송진우는 땅에 닿기가 무섭게 사방에 광역 공격하는 스킬을 사용했다.
“억!!!”
과학 대륙의 사수들은 체력이 약하다. 송진우가 스킬을 사용하니 체력이 반 이하로 쭉 빠졌다.
“이게!”
갑자기 난입한 송진우에 다들 당황했지만 그래도 리더라고, 박두명은 민첩하게 대응했다. 가지고 있던 고주파 메이스로 송진우를 공격한 거다.
“쉐도우 스탭!”
자칫 잘못하면 사방에 둘러싸일 가능성이 있으니 그림자로 변해서 박두명을 공격하며 스쳐 지나갔다.
탕! 탕! 탕!!
사수들이 송진우를 공격했지만 총알을 송진우의 몸을 뚫고 오히려 박두명에게 맞았다.
“악! 이 멍청이들아! 어디를 노리는 거야!”
그 사이에 송진우는 유유히 빠져나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건 뭐야? 언데드? 너는 아까 그 짐꾼이잖아?”
언데드 유닛은 흔치 않아서 박두명도 송진우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고작 짐꾼에게 이렇게 밀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겁대가리 없이! 혼자서 우리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초반에 기습으로 많은 데미지를 주었지만 상대로 고렙의 헌터들이다. 그의 말대로 송진우 혼자서 이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송진우도 웃으며 말했다.
“누가 혼자래?”
그 말에 문득 정신이 든 박두명은 자신들이 펼쳐놨던 함정을 봤지만 이미 자기장 트랩은 부서져 있었다. 처음 송진우의 스킬에 파괴된 것이다.
당연히 함정에서 풀려난 한수정은 가만있지 않았다.
철컹!! 철컹!!
한수정이 정신을 집중하자 팔찌가 순식간에 파워 아머 슈트가 되었다. 다행히 가지고 있던 마나석도 있어서 작동할 수 있었다.
한수정이 팔을 내미니 손바닥에 있는 동그란 구멍이 빛나기 시작했다.
위잉~~ 펑!!!!!
손바닥에서 거대한 에너지 탄이 발사되었다. 마나석을 아낄 상황이 아니니 한수정은 멈추지 않고 두 손에서 에너지 탄을 계속 발사했다.
펑!!! 펑!!! 펑!!!!
가까운 거리에서 연속해서 발사되는 에너지 탄이다. 충격파에 휘말리면 몸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사수들은 총을 들 수도 없었다.
펑!! 펑!! 펑!!!
분노한 한수정은 마구잡이로 에너지 탄을 발사했다. 하지만 너무 흥분한 탓인지 옆으로 돌아온 박두명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아직 파워 아머의 시야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다.
“죽어!!!”
박두명은 모든 힘을 다해서 고주파 메이스를 내리쳤다. 역시 방어 관통이 높은 고주파 메이스에 적중되면 아무리 파워 아머를 입고 있어도 큰 데미지를 입을 거다.
그때 다시 송진우가 나타났다.
“두 번은 안 당해!”
여기까지 본 송진우다. 예지안으로 미래를 봤기 때문에 위너스 길드의 비열한 짓에 대처할 수 있었다.
미리 함정에 대해 경고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송진우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거다.
참고로 예지에서는 이 공격에 한수정은 치명타를 입고 쓰러지지만 이번에는 송진우가 박두명보다 더 빨랐다.
싹둑!!
낫에 목이 베인 박두명이 목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리고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 사용하던 고주파 메이스를 떨어트렸다.
아이템을 떨어트렸다는 것은 곧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길드장이 죽었어!”
박두명의 죽음을 본 위너스 길드원들이 혼비백산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그것을 송진우가 가만두지 않았다.
“잠깐······.”
한수정이 그것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송진우는 떠난 뒤였다. 위너스 길드원들을 도망치려 했지만 바이콘의 다리를 지닌 송진우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다.
“끄르륵!”
송진우는 미친 듯이 날뛰었고 결국 모든 위너스 길드원들은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졌다.
“헉! 헉!”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지만 기력 소비가 엄청났다. 모든 힘을 끌어내서 공격하는 동작은 전력 질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송진우가 쉬고 있자 이제야 정신이 든 한수정이 다가왔다.
“송······ 진우 씨?”
한수정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위기의 순간에서 짐꾼이었던 송진우가 나타나 자신과 길드원들을 구해내고 그것도 모자라 적의 길드장인 박두명과 다수의 길드원들을 쓰러트렸다.
“어떻게 된 거죠?”
모든 것은 예지안의 힘 덕분이지만 아무리 한수정이라고 해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둘러대기로 했다.
“제가 스턴과 마비에 면역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기를 하고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었습니다.”
“언데드에 그런 특성도 있습니까?”
“제 종족이 조금 특별해서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포식이를 보여주면 한수정이 뒤로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강하신 거죠? 불과 며칠 전에 레벨 100이 안 되셨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며칠은 아니지만 몇 달 전에 레벨 100을 넘지 못해 환생 퀘스트도 못했던 송진우다. 그러니 한수정의 의문은 타당해 보였다.
다른 사람이 물었으면 대답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여러모로 자신의 사정을 봐준 그녀라서 송진우는 최소한의 것을 말했다.
“제가······ 디멘션 특성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빠른 레벨 업을 이룰 수 있었죠.”
대충 둘러댄 말이지만 뜻밖에도 한수정은 뭔가 집히는 것이 있는 눈치였다.
“설마······ 그때 들어간 신전에서 얻으신 건가요?”
“네. 어떻게 아셨죠?”
“사실 저도 거기서 디멘션 특성을 얻었습니다. 같이 들어갔던 아저씨······ 아니 김 실장님은 아무것도 못 얻으셨지만요.”
“아······ 그러셨군요.”
송진우가 얻은 건 단순한 특성이 아니라 아바타의 힘이었지만 눈치로 봐서는 한수정은 단순한 특성만 얻은 듯했다.
거기까지 말하자 순간 정신이 돌아온 한수정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큰일 날 뻔했었군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움직이지 않았으면 저도 당했을 겁니다.”
한수정은 우선 송진우에게 인사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쓰러진 위너스 길드원들을 봤다. 되도록 살생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도 송진우의 선택이 옳았음을 안다. 그들이 살아나가면 또 복잡한 일에 얽매일 거다. 박두명은 위너스 기업의 정식 후계자다.
“일단 아이템부터 회수하겠습니다.”
이 순간에도 송진우는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위너스 길드가 떨어트린 아이템을 착실히 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