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과 음낭?”
한쪽 눈과 음낭, 즉 고환을 바치라는 말을 듣고 제정신을 유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특히 음낭은 남자의 자존심 이상의 것이다.
하지만 송진우는 전혀 떨지도 않고 단검을 집어 들었다.
“그거면 됩니까?”
[그렇다. 첫 번째 과제가 그것이다.]
“······알겠습니다.”
송진우는 결연한 표정으로 단검을 들었다.
여기는 중앙 대륙이지만 몸이 디멘션 월드의 캐릭터가 아닌 진짜 현실의 몸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눈과 음경을 도려내면 현실에서고 그 상태 그대로일 거다.
하지만 송진우는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 신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왜, 동생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거지?]
“네?”
[그녀는 네 친동생도 아니지 않은가?]
“······.”
사실 송하나는 그녀의 친동생이 아니고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도 친부모님이 아니다.
원래 자신은 고아원에서 살았었다. 그때도 불편한 다리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 때도 그저 앉아서 구경만 해야 했었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부모님이다. 그들은 자신이 정상이 아닌 몸인 것을 알고도 기꺼이 자신을 입양했다.
그때가 겨우 9살이었다.
[이제부터 네가 이 아이의 오빠다.]
그리고 동생, 송하나를 만났다. 어머니 뒤에서 부끄럽다는 듯이 손가락만 빠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네가 오빠니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 약속할 수 있지?]
부족한 자신을 부족할 것 없이 키워주신 분들이다. 그런 그들의 부탁을, 그리고 사랑하는 자신의 동생을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왜, 동생에게 집착 하냐고요?”
[그렇다. 유년기의 기억이 강렬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본인의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동생을 위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 한다. 몸 상태만 보면 오히려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은 동생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그런데 왜 위험한 중앙 대륙을 전전하면서까지 동생의 학비를 버는 거냐고.
모두 어리석다고 한다. 모두 집착이라고 한다.
하지만 송진우가 이렇게까지 애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오빠니까!”
상념이 끝나자 단숨에 단검을 눈에 박아 넣었다.
푹!
“끄윽!”
눈알이 단숨에 터지면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뇌가 타는 듯한 고통이 일어났지만 송진우는 떨리는 몸으로 주섬주섬 바지를 벗었다.
팬티까지 벗자 덜렁거리며 남자의 상징이 나왔고 송진우는 것을 보며 실성한 듯이 웃었다.
“흐흐~ 어차피 쓰지도 못할 거······.”
어차피 여자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인생이다. 그러니 전혀 아깝지 않았다.
싹뚝!
단검이 긋고 지나가자 떨어진 송진우의 음낭이 철푸덕 하고 땅에 떨어졌다.
“이, 이것으로······.”
고통을 이기지 못한 송진우는 곧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
“······차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번쩍!
“크윽!”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세차게 흔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습니까? 정신이 드세요?”
송진우의 몸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한수정이었다. 뿌연 시아로 그녀의 걱정 어린 얼굴이 보였다.
“······여긴.”
“갑자기 포탈에서 튕겨져 나왔을 때는 놀랐어요. 정신 좀 드세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정신을 차려보니 차원문에 들어오기 전에 있던 공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이 갑자기 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눈을 확인했다.
“······멀쩡하잖아?”
분명히 단검으로 눈을 푹하고 찌른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말랑말랑한 눈동자가 그대로 있었다. 한수정의 앞이라 하체를 만지지는 않았지만 아무 고통도 안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서 음낭도 무사한 듯했다.
“꿈이었나?”
“네? 무슨······.”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송진우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한수정은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들기고 원래 있어야 할 장소로 갔다. 그녀는 이 일행을 이끄는 책임자라 송진우에게 오랜 시간을 쓸 수는 없다.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송진우는 자신의 몸을 확인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꿈이었나? 아니면 환상?”
뭔가 허탈한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이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준신 급 NPC의 아바타가 되는 것도 좋지만 동생 송하나가 파멸한 운명이라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지독한 악몽이군.”
차라리 모든 것이 꿈이라면 술집에서 웃음을 팔던 송하나의 모습도 현실이 아닐 거다.
그것이면 되었다. 굳이 자신이 아바타가 아니어도 된다.
‘2억이면 한동안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우선 동생이 졸업하면 살림이 나아질 거다.’
단, 하루였지만 엄청난 수확을 얻었다. 2억만이 아니라 S급 엠블럼을 얻었으니 짐꾼 생활에도 큰 보탬이 될 거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자! 이제 돌아갑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김 실장이라는 사람의 말과 함께 사람들이 포탈로 들어갔다. 저곳으로 들어가면 처음 이 신전에 입구로, 운이 좋으면 마을로 돌아가게 될 거다.
송진우는 익숙한 듯이 줄의 맨 뒤에 섰다. 원래 짐꾼은 항상 맨 뒤에서 간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탈로 들어가고 짐꾼을 비롯한 단 몇 명만이 신전 안에 남아있을 때였다.
퍽!!!
갑자기 송진우의 얼굴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쿵!
불의의 일격을 받은 송진우는 목발마저 놓치고 그대로 바닥에 굴렀다.
“이 송장 새끼! 좀 전에는 좋았냐?!”
송진우를 친 것은 이제는 길드에서 퇴출당한 최강현이었다. 그가 앙심을 품고 있다가 사람들이 빠져나간 틈을 노려 송진우를 공격한 거다.
“뭘 봐! 너희도 처맞고 싶어?!”
송진우는 아직 나가지 않은 짐꾼들을 향해서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겁을 먹은 짐꾼들은 송진우를 놔두고 서둘러 나가 버렸다.
이제 신전 안에 남은 사람은 송진우와 최강현, 단둘이다.
콰직!
최강현은 송진우의 아픈 다리를 발로 세게 밟았다.
“이 새끼가 감히 내 행사에 훼방을 놔?!”
그냥 둬도 아픈 다리다. 그런 다리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니 송진우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아악!”
“어쭈! 아까는 잘도 참더니 이제는 비명을 지르네? 왜? 아까처럼 잘 참아 보시지?”
최강현은 집요하게 송진우의 아픈 부위를 공격했다. 이곳은 중앙 대륙이 아니라서 레벨의 차이는 상관없지만 송진우는 160 초반의 왜소한 몸이고 최강현은 180이 넘는 거구다. 그냥도 불리한데 몸까지 정상이 아닌 송진우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개 씨팔 새끼!”
퍽! 퍽!
최강현은 사정을 두지 않고 온힘을 다해서 송진우를 발로 찼다. 송진우는 최대한 몸을 움츠려서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지만 거구가 사력을 다하는 공격을 받아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갈비뼈가 부러지고 팔뼈에 금이 갔다.
“헉~ 헉~ 좆도 아닌 새끼가!”
최강현은 자신이 지치고 나서야 폭력을 멈췄다. 아마 남은 힘이 더 있었으면 계속 때렸을 거다. 물론 그것으로도 송진우는 정말 반송장이 되었다.
“커어억!”
조금 분이 풀린 최강현은 송진우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내놔!”
최강현의 말에 말할 기운도 없는 송진우는 뭔 소리냐는 눈으로 그를 봤다. 그러자 최강현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송진우를 흔들었다.
“그곳에서 나온 아이템 내놓으라고!”
사실 최강현이 송진우를 습격한 것은 단지 분을 풀기 위함이 아니라 안에서 얻었을 아이템을 뺐기 위함이었다.
“씨발! 네놈 때문에 길드에서 잘렸으니 퇴직금을 받아야지!”
그렇게 말하며 최강현은 송진우의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 숨겼어? 어따 숨긴 거야?”
최강현은 송진우의 옷을 찢듯이 거칠게 뒤지면서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없는 아이템이 나올 리 없었다.
“이 새끼야! 어디 숨겼냐고!”
최강현이 송진우의 목을 잡고 사납게 몰아붙이자 드디어 송진우의 입이 열렸다.
“좆까! 퉤!”
송지우의 입에서 핏물 섞인 침이 뱉어져 최강현의 눈에 들어갔다.
“큭!”
눈에 이물질이 들어가자 최강현이 반사적으로 손으로 눈을 비볐고 그때 송진우가 손에 들고 있던 목발을 휘둘렀다.
퍽!!!!!
다리가 불편한 송진우지만 팔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녔기 때문에 팔 힘은 웬만한 다른 사람보다 더 셌다.
딱딱한 나무 목발이 정확히 최강현의 머리에 부딪히자 그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아악!”
하지만 송진우의 반격은 거기까지였다.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팔에 힘을 주는 바람에 다시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반면에 최강현은 불의의 일격에 당해 머리에서 피가 났지만 움직이는 데는 큰 불편이 없었다.
“이 쓰레기 새끼가!”
다시 최강현의 무차별적인 폭력이 이어졌다. 송진우는 이번에도 반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공격을 허용해야 했다.
“너 때문에 내 계획이 틀어졌어! 다 너 때문이라고! 조금만 있으면 한수정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아직도 최강현은 인내의 강만 건넜으면 한수정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인내의 강을 넘는 것도 실패했고 만약 성공했더라도 그녀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 했을 거다.
그것을 본 송진우는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도 웃었다.
“미친놈! 쿨럭!”
“뭐?”
“천하의 한수정이······ 고작 너 따위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냐?”
“내가 너 같은 놈이랑 같은 줄 알아? 이제까지 내가 꼬셔서 안 넘어온 여자는 한 명도 없었어.”
“너 같은 여자를 꼬셨나 보지. 나는 몸이 아파도 주제 파악이라도 하는데 너는 그렇지 않은가 봐.”
“닥쳐!”
원래라면 송진우는 최강현에게 반항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웬일인지 이번에는 그의 신경을 긁어서 더 화나게 하고 있었다.
그간 최강현에게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거다.
“자기보다 약한 자만 괴롭히는 쓰레기 새끼가! 감히 누굴 넘보는 거냐!”
송진우가 박력 있게 나서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최강현이다.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 반항할 줄은 몰랐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비열한 새끼! 한수정에 너에게 차갑게 군 건 네 안에 숨겨진 그 추악한 본성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닥치라고!”
퍽!
화가 머리끝까지 난 최강현은 떨어진 송진우의 목발을 들고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송장! 송장 새끼가!”
퍽! 퍽!
“감히 누구한테!”
퍽! 퍽!
최강현의 무자비한 난타는 목발이 부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헉~ 헉~ 개새끼!”
최강현은 목발을 들고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다시 발로 송진우를 툭 하고 쳤다.
“야~ 송장, 죽었냐?”
“······.”
“죽은 척 해봤자 안 봐줄 거야. 어서 일어나. 더 맞아야지.”
“······.”
송진우가 반응이 없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최강현이 그를 슬쩍 밀쳤다.
“송장······.”
발로 밀어 송진우의 얼굴이 보였는데 뭔가가 달랐다.
“시, 시팔!”
급한 마음에 송진우의 상태를 살펴봤는데 정말 심장이 뛰지 않았다.
정말 죽은 거다.
“아, 아니야! 이렇게 하려고 한 게······.”
그냥 열 받아서 조금 때리고 저놈이 얻은 아이템을 뺏으려 했다. 그건 아무런 양심에 가책에 걸리지 않았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송진우가 죽은 건 계획 밖의 일이다.
“어쩌지? 씨발! 어쩌긴 뭐가 어째? 던전에서 죽은 놈인데.”
이곳은 중앙 대륙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죽은 사람은 경찰에서 수사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놈만 안 나오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이미 다른 짐꾼이 자신이 이 송장을 때리는 것을 봤으니 리더인 한수정의 귀에도 벌써 들어갔을 거다. 이상하게 한수정이 이 송장을 챙겼다. 그게 더 열불 나서 이런 짓을 한 거다.
“씨발! 할 수 없지. 여기서 며칠 머무는 수밖에······ 한영 길드 놈들도 계속 안 나오면 그냥 가겠지.”
여기서 마을까지 혼자 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몰래 움직이면 큰 문제도 아닐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씨발 놈! 끝까지 도움이 안 되네. 퉤!”
최강현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송진우의 시체에 침을 뱉고는 구석으로 가 누웠다. 정말 시간으로 보내려는 것이다.
그렇게 송진우는 던전에서 싸늘한 최후를 맞이했다.
***
“······차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번쩍!
“크윽!”
뭔가 익숙한 상황이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세차게 흔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습니까? 정신이 드세요?”
송진우의 몸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한수정이었다. 그건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바로 전에 있었던 일이니 말이다.
놀란 송진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보았다. 방금 전의 상황처럼 사람들이 이 신전에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