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가 넘은 깊은 밤이었다.
신촌의 번화가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대낮처럼 밝았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중심지에 서 있는 고층 건물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빌딩, 단순하지만 위엄 있는 기품마저 느껴지는 건축 양식으로 이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된 그곳에서 갑자기 변고가 생겼다.
콰콰쾅!!!!!
건물의 중앙 층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한 거다.
와장창!!!!
삽시간에 건물의 외벽이 터져나갔고 빌딩에 있는 거의 모든 유리창들이 부서져 지상으로 떨어졌다.
“꺄아아아!”
갑자기 일어난 참사에 밑을 지나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건물에서는 이미 큰 불길이 보였다.
“테, 테러인가?”
“누가 119에 신고해!”
하지만 폭발은 처음에 일어난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건물 안에서 크고 작은 폭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고 이내 총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서 누군가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증거다. 과연 빌딩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총과 칼 같은 무기들로 단단히 무장하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도시의 이권을 둘러싼 지하 조직 간에 일어난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 일어난 싸움이 아니었다.
우선 조직과 조직이 싸우는 전투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 건물에 침입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고 게다가 밀어붙이고 있는 쪽이 그 한 명이었다.
쾅!!!!
거대한 철제문이 복잡한 잠금장치로 잠겨 있었지만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괴인의 발차기 단 한 방에 철문은 마치 종잇장처럼 찢겨 버렸다.
그 안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은 사람의 기척이 보이자 바로 들고 있는 총을 난사했다.
“이 괴물!”
두두두두!!!!
매캐한 화약 냄새가 순식간에 사방에 퍼지고 날아가는 총알과 도탄 등으로 원래 사무실이었던 건물 안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총도 보통 총이 아니었는지 건물의 단단한 외벽을 두부처럼 쉽게 뚫고 나갔고 그 단면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도 괴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괴인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자 그의 피부가 단단하게 경화되었고 이내 총알마저 튕겨낼 정도로 높은 탄성도 지니게 되었다.
중화기로 무장한 상대와는 달리 괴인이 들고 있는 무기는 뜻밖에도 낫이었다. 일반적인 크기의 낫이 아니라 웬만한 사람보다 큰 거대한 낫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아니지만 남자의 손에 들리니 엄청난 무기가 되었다.
쾅!!!!
순식간에 앞으로 이동해서 낫을 휘두르니 상대는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무기로 막으려 했다. 하지만 괴인의 낫은 그것을 모두 베어버리고 상대의 두개골마저 두 쪽으로 갈랐다.
“도망쳐!”
“괴물이야!”
그들로는 이 무시무시한 상대를 막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무기로는 괴인에게 생채기조차 입힐 수 없다.
물론 괴인을 상대하는 이들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괴인이 이곳을 침입한다는 것을 예측해서 곳곳에 그를 잡을 함정을 잔뜩 준비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치밀하게 배치된 함정이 전혀 쓸모가 없었다.
괴인은 마치 함정이 어디 있는지 안다는 듯이 벽을 뚫어서 길을 만드는 식으로 함정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여기 배치된 인원은 단지 괴인을 함정으로 유인하고 그것을 작동하기 위해 이곳에 있었다. 괴인이 함정에 전혀 걸려들지 않으니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악!”
“살려줘!”
후에 펼쳐진 것은 무자비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괴인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상대한다는 듯이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상대를 끝까지 쫓아서 도륙했다.
상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모습만 봐도 온몸에 솜털이 쭈뼛하고 설 정도로 공포감을 자아내는 모습이다.
“크아아아!”
괴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끔찍한 모습의 시체만 남았다. 괴인이 도망가는 사람들도 봐주지 않고 모두 죽인 거다.
“그륵~ 그륵~”
수많은 사람을 죽인 괴인도 지쳤다는 듯이 숨을 헐떡였지만 몇 번의 심호흡만으로도 호흡이 안정되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을 한 괴인은 마지막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가는 방법도 단순했는데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그대로 점프해서 천장을 부수고 나갔다.
쾅!!!!!!!
천장을 부수고 도착한 맨 꼭대기 층에는 갑자기 나타난 괴인을 보고 토끼 눈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뒤늦게 그들은 총구를 괴인에게 돌렸지만 괴인이 거대한 낫을 한 바퀴 돌리자 피보라가 일어나더니 방 안에 있던 사람이 모두 쓰러졌다.
털썩!
순식간에 방에 있던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시체가 되었다. 아니,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다. 단 한 사람, 처음부터 방구석에서 웅크리며 벌벌 떨고 있던 한 남자는 목숨을 건졌다.
그 모습을 보고 괴인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저벅~ 저벅~
구석에서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려는 듯이 버둥거리고 있던 남자는 괴인의 발소리를 듣고는 딸꾹질을 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흡!”
이미 전신이 자신이 죽인 자들의 피로 목욕을 한 괴인의 모습이다. 그 모습에 웅크리고 있던 남자는 하체에 힘이 빠지며 바지를 축축하게 적셨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손가락을 들어 괴인에게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남자는 절규하듯이 말했다.
“그 함정을 통과한 거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함정이었어! 몇 번을 시뮬레이션하고 또 시뮬레이션해서 반드시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궁지에 몰린 남자의 눈에 서린 것은 공포뿐만이 아니라 의심과 억울함도 같이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이 상황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배신자가 있었던 건가? 아니야······ 밑의 놈들을 믿을 수 없어서 일급기밀로 한 작전이었는데······.”
남자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의 그런 이상 행동도 괴인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벅 저벅
남자 앞에 온 괴인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이런 참사를 벌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뜻밖의 맑은 목소리였다.
“함정은 완벽했다. 한 번이라도 걸리면 연쇄작용이 일어나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함정이었지.”
그 말에 의문스러운 눈을 한 남자의 목을 괴인의 낫이 망설임 없이 훑고 지나갔다.
툭!
남자의 목이 바닥에 데구루루 굴렀지만 아직 남자의 눈은 의문이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라도 하는 듯이 괴인의 입이 열렸다.
“미리 보지 않았으면 당하는 쪽은 내 쪽이었을 거다.”
말을 마친 괴인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움직였다.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