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 IN》
「바벨탑」
여기는 바벨탑 1,002층, 포탈을 통해 1,003층까지 올라간 후에 한층 내려갔다.
미카엘은 준신 급에 속하는 NPC다. 즉 드래곤 로드와 비슷하고 다른 모든 드래곤보다도 세다. 신급의 NPC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은 디멘션 월드의 모든 케릭터의 가장 윗줄의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신지후의 데이브레이커 길드원이 모두 덤벼도 이길 수 없다.
과학 대륙의 퀘스트 덕분에 천유강의 레벨 500이 넘었다. 500이 넘으면 새로운 종족 퀘스트와 승급 퀘스트를 할 수 있었지만, 아직 직업을 마스터하지 못해서 현재 대회 준비와 수련에만 열중했다.
1002층에 있는 엔젤만 하더라도 추정 레벨이 1000이 넘는 괴물이다. 신지후와 지크가 있어도 30분이 넘는 혈투를 치러야 했던 아크 엔젤은 추정 레벨이 1200이니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레젼드 아이템인 데스티니 스톤을 차고 있어 그 격차를 많이 줄였다고 해도 엔젤과 1:1 싸워도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천유강이 크러쉬에서 붙어야 하는 적은 오왕 중에서도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반왕이다.
태국의 국왕 군 사이를 거침없이 다니며 수천이 넘는 수를 죽인 반왕이라면 미카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강자 중의 강자이다.
이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 시합과 같은 요행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반왕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레벨 1000의 엔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빛의 강림!"
무려 30분이 넘는 혈투에서 천유강은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 간간히 데미지를 넣는 것이 전부였다.
둘의 레벨 차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 버티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공격에도 엔젤에게 데미지는 누적되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비장의 무기인 빛의 강림을 시전 했다.
"큭! 네가 어떻게 그 스킬을?"
갑자기 강해진 천유강의 공격에 엔젤의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추정 레벨이 1000이 넘는 괴물 몬스터지만 빛의 강림 스킬이 발동 상태인 천유강이라면 충분히 싸워볼 만했다.
"소울 스틸!"
소울 스틸은 바로 가까이에 붙어서 써야 하는 스킬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스킬이다. 덕분에 둘의 차이는 더 벌어졌고 한층 더 수월하게 적을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젤은 강했다.
휙
엔젤의 창이 천유강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웬만한 다른 지역에서의 보스급 몬스터를 가뿐히 능가하는 빠르기와 강함이다.
창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천유강은 창대로 손으로 붙잡고 발로 엔젤의 머리를 공격하였다. 소울 스틸을 성공시키지 못했더라면 당하는 것은 천유강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엔젤은 강한 몬스터였다.
다시 날아온 엔젤의 창 공격 천유강은 급히 팔을 들었고 손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방패 모양으로 변해 엔젤의 공격을 막았다.
데스클루의 정수는 먹고 얻은 능력인 육체 변이를 사용한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면 육체를 마음대로 변이시킬 수 있었는데 능력을 받은 지 불과 며칠도 안 되어서 천유강은 육체변이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천유강 손을 변이시켜서 마치 워해머처럼 크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다른 몬스터들에게 실험 결과 이렇게 워 해머처럼 변한 손은 둔기 판정으로 데미지가 들어갔다.
손톱이 날붙이 판정이기 때문에 언데드나 골렘 같은 종류에게 데미지가 적게 들어가던 걸 육체 변이를 통해서 다시 강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퍽!
변이된 천유강의 손에 맞고 엔젤이 날아오던 반대 방향으로 떨어졌다.
소울 스틸로 인해 엔젤은 약해졌고 천유강은 강해졌다. 적 스탯을 10%나 줄이고 그 반의 스탯을 뺴앗는 소울 스틸은 쿨타임이 길고 성공시키기가 까다롭다는 것만 제외하면 엄청난 사기 스킬이었다.
"크윽!!"
뒤로 물러나는 엔젤을 놓치지 않고 손톱으로 엔젤의 이마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뚫었다.
푹!
털썩
30분이 넘는 혈투 끝에 마침내 엔젤은 쓰러져서 일어나질 못하였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순식간에 레벨이 2나 늘어났다. 레벨의 차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당연하다.
"이것도 아슬아슬하군."
운이 좋았는지 아이템도 몇 개가 동시에 떨어졌다.
"천사의 깃털이라, 이것은 지후 형이 얻는다면 바로 넘겨달라는 그것이군. 그리고 이건……."
신성의 광휘
(레어)
방어력 220
머리 부분 방어력 40% 증가
체력 에너지 7% 증가
하루에 두 번 이마에 적중되어 받는 모든 물리적 데미지를 무효화시킨다.
어둠에서도 시야를 밝혀준다.
암흑 저항 +5%
모든 저항 +2%
신족만 착용 가능
투구 종류의 장비와 중복 불가능
떨어진 것은 작은 구슬 모양 투구의 아이템이었다. 비록 레어 급의 아이템이었지만 고위 몬스터에서 떨어진 아이템이라서 방어력도 뛰어나고 옵션이 웬만한 유니크 못지않게 좋았다. 하지만 이미 데스티니 스톤이라는 레전드 투구가 있는 천유강에게는 필요 없었다.
“팔아야겠지.”
엔젤을 이기는 데 성공한 천유강은 쉬지 않고 계속 달려나갔다. 빛의 강림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3분간은 체력이 1로 고정된다. 더군다나 1002층에는 최상위급 신족인 아크 엔젤도 있었다.
추정 레벨이 1200이 넘는 아크 엔젤과 1:1로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빛의 강림과 같은 스킬이 몇 개가 있어도 부족했다. 그러니 천유강도 아크 엔젤에게는 덤비지 않는 것이다.
용기와 만용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1004층, 천유강은 지체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엔젤과의 싸움은 워밍업와 같다. 메인 디쉬는 바로 이 치천사이다.
"왔군. 어서 와라."
다행히 이번에는 미카엘이 있었다. 저번에 갔을 때는 미카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이번에도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안심이 되었다.
"일단 가볍게 몸부터 풀고 시작하지."
탕!
미카엘이 창의 끝으로 바닥으로 찍자 열두 명의 황금 갑옷과 투구를 둘러쓴 케루빔들이 튀어나왔다.
"룰은 전과 같다. 1분만 버틴다면 나와 싸울 기회가 주어진다. 그럼, 시작!"
탕!
미카엘이 창으로 땅을 찍는 것과 동시에 케루빔들이 동시에 튀어 올랐다.
휙~
역시나 다른 여타의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르기였다. 정면 승부로는 단 한 명도 당해낼 수가 없다. 피해야 한다.
휙~ 휙~ 휙~
사방에서 창과 검이 사정없이 날아왔다. 관안의 각성과 종족을 가지면서 생긴 능력들 그리고 높아진 스탯이 있기에 저번에 왔을 때보다 천유강은 거의 배는 강해졌다.
하지만
'큭! 더 빨라지고 날카로워졌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
상대의 레벨에 맞게 조정이 되는 듯 엔젤들의 속도도 더 배가 되었다. 이러면 스탯 증가에 따른 이득은 볼 수 없다. 물론 천유강은 그것을 더 좋아했다.
전에는 아무리 최상급 신족인 케루빔의 연합 공격이라도 해도 빈틈이 있었다. 마치 퍼즐 게임처럼 빈 곳을 고의로 노출하고 이곳을 노리면 된다는 식으로 공격하였다. 일종의 퀘스트였기에 일부로 허점을 노출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퀘스트가 아니라 정말로 생사를 겨루고 싸우는 것처럼 봐주는 모습 하나도 없이 빈틈 따위는 보이지 않고 무자비하게 공격이 들어왔다.
탕!
케루빔의 검에 방어하던 천유강의 한 손이 떨어져 나갈 듯이 튕겨 나갔다.
비록 마법사 네 명은 손을 놓고 있지만, 케루빔 여덟 명의 공격이다. 체계적으로 공격을 하면 천유강이 당해낼 방도가 없다.
아무리 관안을 사용한다고 해도 극쾌와 극강에는 무용지물이다.
쾅!!!
신족의 공격에 천유강이 마치 끈이 끊어진 연처럼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막았음에도 힘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쿨럭!"
뼛속까지 울리는 공격에 천유강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을 때 어느새 다가온 케루빔들이 무기들을 천유강의 목 바로 1cm 앞까지 갖다 대었다.
척 척 척
무기들을 살짝 밀기만 해도 끝이 날 그때 미카엘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그만!"
미카엘의 말에 모든 케루빔들이 무기를 집어넣고 미카엘의 등 뒤로 날아갔다.
"15초. 형편없군."
"……졌습니다."
천유강은 순순히 인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전에 방식이 너무 단조로워서 포지션을 조금 바꾸어 봤다. 아직 좀 모자라지만 나름 괜찮군."
이 정도로 바뀌었다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케루빔의 스탯으로 이런 식의 협공을 한다면 정말 상위 탑 랭커들이 아니라면 1분을 버티는 것은 꿈도 못 꿀 것이다. 천유강은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근데……, 흠!”
미카엘이 평소와는 다르게 말을 줄이자 이상한 천유강이 물었다.
“뭔가 하실 말이 있으신가요?”
“요즘 혈색이 좋아 보여서 하는 말인데…… 뭐 좋은 일 있나?”
“좋은 일 말입니까?”
“그래. 뭔가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천유강은 미카엘의 말에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딱히 좋은 일이라는 것은 없었다. 디멘션과 이면 세계에서 일을 연달아 성공시켜 큰 성장을 이루긴 했으나 크게 기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 거 없었습니다.”
“뭐, 좋은 사람을 만났다던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거나, 그냥 신경 쓰이는 누군가가 나타났다던가……”
미카엘의 말에 약간 의아해하면서도 천유강이 머리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 없었습니다.”
“……없었어?”
“네.”
“…….”
“…….”
짧은 침묵이 끝나고 미카엘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렇군.”
‘뭐가 이상한데?’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천유강이었지만 그냥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원래 시험은 한 번만 진행되지만 이번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미카엘은 창으로 바닥을 치자 다시 케루빔들이 앞으로 나왔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그래.”
“감사합니다.”
“흐흐흐~ 감사하기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천유강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케루빔들이 코앞까지 당도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자비한 난타가 시작되었다.
“죽어!!!!!”
“이 눈치 없는 새끼!”
“죽지 않게 힐 해!”
“걱정하지 마. 절대 곱게 죽이지 않을 테니까!”
퍼버버벅!!!!
“컥!!!”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는다는 표현이 있다. 허나 지금은 물속에서 먼지 나게 맞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았다.
평소의 대련이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천유강이 쉴 틈을 주고 반응할 간격을 일부러 내주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사정없이 공격했다. 케루빔 둘이 붙어서 끊임없이 힐을 해줘서 죽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헉~ 헉~ 헉~"
쿵!
천유강이 결국 무릎을 꿇으며 정신이 끊이지 않게 눈에 힘을 주었다. 그 정도로 처참하게 당한 것이다.
“평소보다 기합이 들어가서 엔젤들이 조금 거칠었군.”
“……도움이 됐습니다.”
천유강이 어디서 이렇게 맞아봤겠는가? 수없이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 급소를 피해서 안 아프게 맞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이것도 수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천유강이었다.
오히려 그 모습에 내심 미안해진 미카엘이었지만 천유강은 이미 수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탈각(脫殼)의 경지를 이루어야 해.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
식(式)이 없는 천부경이었기에 초반에는 광우의 혈사장과 같은 강맹한 공격을 펼칠 수가 없다. 탈각(脫殼)의 경지로 들어가 신체의 한계를 넓히고 물화의 경지에 닿아서야 사물이나 자연의 힘을 얻어야지 진정한 천부경의 힘이 드러난다.
탈각(脫殼)
껍질을 깬다는 뜻이다.
땅을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허물을 벗어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되듯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경지다.
탈각의 경지에 이르면 천부경 사용자의 내공의 깊이가 깊어지고 정순해진다. 사물이나 대자연의 힘을 인간의 몸으로 쓴다는 것은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 반동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신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환골탈태다. 다만 육신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기맥이 바뀌는 것이 다를 뿐이다.
천부경의 사용자는 자신이 스스로 무공을 창조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일신인 천무호는 바람의 힘을 염제는 화염의 힘을 그리고 당군명을 냉기의 힘을 지니고 있고 쓰는 무기와 초식 모든 것이 다르다. 그래서 그들이 발전하는 단계 또한 다르다.
탈각의 경지는 꼭 필요한 경지지만 아무도 가르쳐줄 수가 없다. 어떤 깨달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 깨달음도 모두 다르다.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숙제와 같은 것이다.
'깨달음이라……, 너무 광범위하군.'
차라리 미친 듯이 몸을 혹사시키는 훈련이라면 천유강은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적인 강함에 비해 내적인 요인은 너무나도 취약한 천유강이기에 아직도 그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생각을 정리한 천유강이 미카엘에게 절을 했다.
"오늘 대련은 감사했습니다."
“발전이 있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개운해졌나 보군.”
“네. 요즘 머릿속에는 오직 전투에 대한 것밖에 없었는데 뭔가 후련하게 풀린 거 같습니다.”
“그렇군. 전투에 대한 것밖에 없다라……, 그렇다면 더 도와줘도 되겠군.”
“네?”
그 순간이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케루빔들이 다시 흉흉한 안광을 빛내며 다가왔다.
“자, 잠깐.”
“죽어!!!!”
“눈치라고는 개똥만큼도 없는 새끼!!”
퍼버버벅!!!!
다시 무자비한 구타가 시작되었고 천유강은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두들겨 맞아야 했다.
‘너무 급격하게 성장해서 내 손에 잡히지 않을까 봐, 너무 빨리 날아가 버릴까 봐 두렵다, 유강아.’
미카엘은 천유강을 아연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좀 맞자.”
《LOG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