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
이미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다들 정면에서 다가오는 두 마리에 정신이 팔려서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있다.
‘가속, 강화, 둔화,’
미라클의 소원 마법을 활용해 순식간에 버프와 디버프를 걸었다. 데스클로가 기계 병사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한발 앞서 뛰어가 길을 막았다.
“소울 스틸!”
원래는 보스 몬스터에게나 유용한 스킬이지만 지금처럼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적이라면 충분히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덕분에 데스클로의 움직임이 약간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쾅!!!
“큭!”
막은 팔이 저릴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다. 1:1로는 엔젤도 씹어 먹는 데스클로니 애초에 동등한 싸움을 기대하면 안 되었다.
“위험 상황 발생. 보조 무기 발동.”
천유강이 힘겹게 데스클로를 막자 트레스 소령이 열심히 총으로 사격하면서도 특수 공격을 발동했다. 트레스 소령의 가슴에서 가늘고 긴 카본 와이어가 나와서 데스클로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크르륵!!!”
날카로운 카본 와이어가 순식간에 데스클로의 팔을 감싸더니 손을 잘라냈다. 데스클로가 괴로워하며 뒷걸음칠 때 천유강이 심장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푹!!!
「8.6배 크리티컬 데미지가 주어집니다.」
체력이 높은 데스클로답게 높은 크리 공격으로도 쓰러지지 않았다. 다행히 지능이 낮아 짐승에 가까운 데스클로라 체력이 급격하게 낮아지자 공격을 멈추고 대신 도망치려 했다. 싸우는 도중에 뒤를 보인 상대를 천유강이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푹!!
뒷덜미를 공격해 다시 한번 크리티컬 어택을 성공시키자 데스클로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역시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네.”
비록 데스클로는 도망쳤지만 그것으로도 천유강은 자신의 임무를 다 했다. 한 마리가 도망가자 남은 두 마리는 기계 병사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고 플레이어들의 도움까지 얻자 결국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전투 종료. 전술 사고를 섬멸 모드에서 탐색 모드로 전환.”
“휴~ 이번엔 진짜 위험했네. 타천사 형씨 덕분에 겨우 살았습니다.”
스미스가 너스레를 떨면서 천유강에게 다가왔다. 말은 많은 스미스지만 정작 위급한 순간에는 뒤로 물러섰던 것을 천유강은 똑똑히 봤다. 하지만 별 내색은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 좋게 봤습니다.”
“발견한 것만이 아니라 그놈과 정면으로 부딪쳤잖아요? 보통 강심장이 아니네요?”
“그놈을 놓쳤으면 다 죽었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죠. 그나저나 이런 곳에 성녀 일행이 숨어들었다는 건가? 무슨 수로?”
“글쎄요? 하지만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확실히 보입니다. 조금 이상한 일이지만요.”
사라진 성녀 일행이 최악의 던전인 데스클로의 서식지로 들어간 것도 이상하지만 지나간 흔적은 남았는데 교전 흔적이나 시체가 전혀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데스클로는 메이디아 성직자라고 봐주는 상냥하고 신앙심 깊은 몬스터가 아니다.
“이번 퀘스트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스미스가 그렇게 말하며 잘린 데스클로의 팔을 잡고 걸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다른 플레이어가 물었다.
“그건 왜 들고 가는 거요?”
“구울이 적의 시체를 먹고 체력 회복하는 건 당연한 거지. 뭘 묻소?”
“그, 그걸 먹겠다고?”
데스클로의 몸뚱이는 심하게 오염물질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고 검은 각질과 뻣뻣한 털이 있어 도저히 먹을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런 것을 먹겠다고 하니 다른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구울 종족이 되어 보면 이런 시체들에서 맛있는 향이 난다는 걸 알 수 있지. 이건······, 돼지고기 향이 나는데?”
“우엑! 못 봐주겠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스미스는 옆에 맨 가방 같은 것에 데스클로 팔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구울에게는 일종의 포션 상자인 셈이다.
작은 해프닝이 지나고 나서 다시 탐색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위험이 닥쳐왔는데 그건 작은 방에 들어갔을 때다. 그곳에는 데스클로의 알들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데스클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스미스가 사방이 둘러보다니 사색이 되어서 외쳤다.
“알이 움직인다! 이제 곧 새끼가 나타날 거야. 깨어나기 전에 모두 처리해야 해!”
스미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에서 갓 부화한 데스클로가 깨어났다. 새끼라서 성인 데스클로와 비교할 수 없지만 문제는 양이었다. 이곳은 데스클로의 알들로 빽빽한 공간이었다.
두두두두두!!
스미스의 말을 들은 기계 병사들이 꿈틀거리는 알들을 향해 총알을 난사했다. 다행히 알 상태에서 공격하니 쉽게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계 병사들의 활약에도 그 많은 알을 다 부수는 것은 무리였다.
“모두 기계 병사들을 보호하세요.”
천유강의 외침에 당황하던 플레이어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맡은 기계 병사의 옆에 가서 섰다. 기계 병사들이 알을 부수는 사이에 다가오는 새끼 데스클로들을 맡기 위함이다.
“케에엑!!”
천유강도 가장 앞에 서서 꿈틀거리며 오는 데스클로들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아무리 베어도 바퀴벌레처럼 사방을 메운 적들 때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키이익!!”
이내 점프하는 데스클로까지 생겼다. 단숨에 뛰어올라 플레이어의 얼굴을 감쌌다.
“아악! 이것 좀 벗겨줘!”
“귀찮은 새끼!”
주변에 있던 동료가 재빨리 얼굴을 덮은 새끼 데스클로를 해치웠지만 이미 얼굴은 검게 변한 후였다. 데스클로가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퍼진 거다.
“커억!”
데스클로 또 다른 무서운 점이기도 하다. 독 저항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몸에 퍼지면 하루 동안은 지속적인 체력 저하와 능력치 하락을 피할 수 없다.
물론 기계 병사들이라면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을 거다.
“새끼들인데 이렇게 지독할 줄이야······.”
“정신 차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의 말대로 아직도 사방에서 새끼 데스클로가 몰려오는 중이다. 기계 병사들이 발사한 총알 때문에 공기 중에 화약 냄새가 지독하게 밴 후에야 겨우 정리할 수 있었다.
“처치 완료. 남아있는 적, 전무함.”
“빌어먹을 데스클로.”
신경질적으로 데스클로의 사체를 걷어찬 플레이어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미안. 당신 식사를 발로 차버렸네.”
빈정거리는 말이었지만 구울인 스미스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널렸으니까. 이놈들은 영계 맛이 난다고.”
“······.”
“휴식 시간 30초 완료.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트레스의 말이 끝나자 기계 병사들이 진짜 기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 대열을 갖췄다. 트레스가 눈을 돌리자 플레이어들도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 흔적은 점점 가까워졌다. 근처에 성녀 일행이 있다는 신호였다. 아직까지 교전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일행의 눈에 이제까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크기에 데스클로가 보였다. 다른 데스클로와 다르게 5m는 되어 보였는데 온몸이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히이익!!!”
“여왕인가?”
“적 식별 완료. 추정 레벨 1200의 데스클로 영웅. 모든 공격 기관 장치 사용 허가.”
《발광 데스클로》(보스)
(LV 1200)
보스급의 데스클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일행이 찾던 성녀 일행도 데스클로의 바로 앞에 보였다. 그들은 하얀색의 에너지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었는데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이 곧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사격 개시.”
트레스가 명령하자 기계 병사들이 한꺼번에 불을 뿜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가슴 부위 같은 곳에서도 장갑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미사일 같은 강력한 무기가 날아갔다. 상대의 강함을 인식하고 모든 화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것이다.
“케에에엑!!!”
뒤에서 기습을 받은 데스클로도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끔찍한 소리를 지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막아! 붙지 못하게 막아야 해!”
기계 병사들의 기동성은 데스클로에 비하면 없는 것과 다름없다. 일단 붙으면 원거리 유닛의 공격력이 반감하니 그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1200레벨의 보스를 막는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더욱이 그 보스가 데스클로면 더더욱 그렇다.
“빌어먹을! 난 못하겠어! 이건 미친 짓이야!”
결국 이탈자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데스클로의 위용을 보고 겁에 질린 플레이어들이 한두 명씩 내빼더니 결국 다섯도 남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그 사이에도 기계 병사들은 전혀 겁먹은 표정 없이 발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이 없다고 해서 데스클로를 막아낼 수는 없다. 강한 화력 덕분에 데스클로가 주춤거리고 있지만 그것도 버틸 수 없을 거다.
결국 먼저 움직인 것은 천유강이었다. 천유강이 겁도 없이 데스클로 앞에 나서 그의 시선을 끌었다.
“여기다.”
“크르륵!”
천유강이 앞에 나타나자 데스클로는 생각하지도 않고 두꺼운 손톱을 휘둘렀다.
“큭!”
덩치가 커서 공격 속도는 느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공격 속도마저도 다른 데스클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가까이 붙을 수가 없어.’
원래 계획은 데스클로에게 소울 스틸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강해서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이쪽이다.”
천유강이 도발하며 옆으로 이동하자 데스클로가 바짝 쫓아왔다.
‘가속!’
모든 소원 스킬을 가속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데스클로에게 둔화도 걸려 했지만 레벨 차이가 많이 나서인지 별 효과가 없었다.
천유강이 전력 질주해도 데스클로는 그보다 더 빨랐다.
부웅!
뒤에서 낫처럼 날카로운 데스클로의 손톱이 느껴졌다. 급히 허리를 숙여 피했더니 바닥이 몇 미터나 잘려나갔다.
‘한 방만 맞아도 즉사하겠는데?’
빛의 강림은 쿨타임이라서 쓸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천유강은 정신을 집중하고 열심히 달렸다. 이렇게 천유강이 무작정 달리는 이유는 딱 하나다. 뒤에서 기계 병사들이 이 와중에도 계속 총알을 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포화 사격.”
트레스 소령이 스킬을 외치니 모든 기계 병사들의 공격력과 명중률이 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데스클로는 쓰러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천유강도 회피와 도발을 적절히 섞어가며 이동하고 있었다. 너무 멀어지면 기계 병사에게로 돌진할 거고 너무 붙으면 자신이 위험할 거다. 이것이 레벨 차이가 두 배도 넘는 적에게 천유강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데스클로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수많은 총알을 맞고도 아직 건재한 모습이다.
“데스클로 방어력이 높아서 총알이 잘 안 통하는 거야. 플라즈마 건 없어?”
스미스가 말하자 트레스의 손목이 빙글 돌더니 그 안에서 총구가 나타났다. 진짜 플라즈마 총기가 안에 들어있었다.
파지지직!!!
강력한 에너지로 적을 구워버리는 플라즈마 빔이 쏟아지자 데스클로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보였다. 효과가 있는 거다.
“좋아! 그거라고!”
이제까지 도망만 쳤던 스미스가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또 반전이 일어났는데 성녀 일행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에너지 막이 걷힌 거다.
“우리도 돕겠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메이디아 신전의 성녀와 성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와와!!”
모든 것을 붕괴시키는 고주파 메이스를 든 성기사들이 데스클로의 뒤를 공격했다. 천유강만 보고 있던 데스클로에게는 날벼락인 셈이다.
붕!!!!
고주파 메이스는 방어력이 높은 적에게 특히 잘 통하는 무기다. 데스클로에게도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데스클로가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드디어 천유강이 안으로 바짝 붙었다.
“소울 스틸!”
데스클로의 스탯의 5%가 더해지니 엄청난 스탯이 불어난 것이 느껴졌다. 반대로 데스클로의 스탯을 10% 줄었을 거다. 사실 천유강은 역할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크아아악!!!”
체력이 낮아져도 여전히 강력한 데스클로였다. 팔을 휘저을 때마다 메이디아 신전의 성기사들이 벽까지 날아가 박혔다. 그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 괴물!”
데스클로의 타겟이 자신에게서 더 큰 데미지를 주는 성기사들로 바뀌자 상대적으로 천유강이 자유로워졌다. 사실 조금만 메이디아 성기사들이 늦게 나왔어도 천유강도 다시 일행과 합류했을 거다.
천유강은 조심스럽게 동굴 벽을 탔고 올랐다. 결정적인 틈을 노린 것이다.
‘지금!’
데스클로가 팔을 힘차게 내저으며 사방을 공격할 때 동굴 꼭대기까지 오른 천유강이 빠르게 낙하했다. 더 큰 가속도를 내기 위해서 날개까지 활용했다.
휘리릭!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한 마리의 매처럼 천유강이 곡선을 그리며 데스클로에게도 떨어졌다.
푹!!
[10배 크리티컬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결국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한 데스클로가 바닥에 쓰러졌다.
《포식자 특성이 발동됩니다.》
《데스클로의 민첩 스탯 30을 흡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