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왕 폐하······!"
그 목소리에 메이린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저들은 평화를 생각하지 않는 파괴적인 종족이다. 그들을 여왕에게 대면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메이린이 망설이고 있자 여왕의 말이 다시 한번 바다에 울려 퍼졌다.
"제 말이 안 들리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메이린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길을 열었다. 메이린이 비켜서자 다른 모든 머메이드들이 전투 모드를 풀고 길을 열었다.
"······잘 된 거 같네요."
배연아가 다행이라는 듯 말을 하자 신지후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다행이네."
일행은 머메이드들이 두 줄로 서 있는 길을 걸었다. 메이린의 눈으로도 죽일 수 있다는 듯 째려보는 것이 무서웠지만 애써 무시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와! 예쁘다."
산호초와 불가사리와 같은 것으로 색색이 꾸며져 있는 건물 안을 보며 배연아와 유하연이 꺅꺅거렸고 신지현도 웃으면서 좋아했다.
건물 안은 신기하게도 물이 없고 공기가 있었다. 안쪽 방 중앙에는 작은 폭포 같은 것과 붉은 머리카락에 초록색 비늘을 가진 아름다운 머메이드가 앉아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머메이드 족의 여왕님이시여."
신지후가 앞으로 나가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하였다.
"불필요한 말은 모두 생략하기로 하지요. 일단 무슨 용무로 왔는지 들어보는 것이 순서겠지요."
"저희는 데이브레이커 길드에 속해있고 저는 그곳에 길드장인 신지후라고 합니다. 머메이드 종족과 동맹을 맺고자 왔습니다."
"동···맹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왕이시여. 저희는 물에서 최강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머메이드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결국은 힘이군요. 왜 물 밖의 종족들은 모두 다 호전적일까요?"
여왕은 슬픈 표정으로 말하였다.
"거절하고 싶지만 그런 당신들의 힘이 저희도 필요하군요."
"무슨 근심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신지후의 말에 여왕은 잠시 눈을 감고 침묵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피쉬맨들이라는 종족이 있습니다. 원래는 그들도 평화를 좋아하는 종족인데 갑자기 그들이 돌변하기 시작하더니 저희 머메이드들 중에서 어리고 약한 자들만 골라서 납치를 하고 있습니다."
여왕의 말을 듣던 배연아가 불쑥 물었다.
"하지만 피쉬맨들이라면 머메이드들의 힘으로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지 않나요? 아까 보니 머메이드들도 굉장히 강하던데요?"
그러자 머메이드 여왕이 고개를 저었다.
"물속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만, 피쉬맨들의 근거지는 물 밖에 있습니다. 이미 저희도 전사들을 몇 명 보냈지만 소식이 끊긴 상태입니다."
신지후는 턱을 잡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피쉬맨이 갑자기 흉포해지고 물 밖에 근거지를 두었다는 것은······."
"그들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지요."
여왕이 말을 이었다.
"부탁합니다. 저희는 물 밖에서는 본래의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세요. 특히······."
머메이드 여왕은 잠시 말을 꺼내기 주저하다가 한숨을 쉬듯이 말을 했다.
"제 동생 또한 잡혀 있습니다. 무슨 나쁜 일을 당하기 전에 무사히 그들을 구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여왕님 저희를 믿으세요."
"가시는 길까지 안내를 할 자를 붙여드리겠습니다. 메이린."
여왕이 말을 하자 밖에서 아까 그 가장 강했던 머메이드가 들어왔다.
"여기 분들과 함께 피쉬맨의 소굴로 들어가 우리 종족들을 모두 구해주세요. 가는 길은 알고 계시겠죠?"
그러자 메이린은 그럴 수 없다는 듯 강하게 반발해왔다.
"하지만 여기 이자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언제 또 우리를 배신하고 여왕님에게 해코지할지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만으로도······."
"그만하세요! 지금은 고집부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구출을 해야 해요. 지금은 저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저들은 저희가 공격했음에도 단 한 명도 우리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시점에서 이들보다 더 좋은 조력자를 찾을 수 있다면 말을 해보세요."
메이린은 끝내 수긍은 하지 않았지만, 여왕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고개를 숙였다.
"한시가 바쁩니다. 어서 출발해 주세요."
머메이드 둥지를 나오자 메이린이 뒤를 돌아서 일행에게 경고했다.
"나는 아직 너희들을 믿고 있지 않아. 그러니 허튼수작 부리면 바로 응징하겠다."
싸늘한 눈으로 쳐다본 메이린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섰다.
"옴마. 무서워!"
배대강은 과장되게 몸을 떨었다.
"언니~"
그때 다른 머메이드가 메이린을 불렀다. 처음에 만났던 레이린이라는 머메이드였다.
"언니, 나도 갈래!"
"안 돼! 위험하니 넌 여기 있어라."
메이린이 딱 잘라 거절을 했지만 레이린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메이린을 설득했다.
"나도 잘 싸울 수 있어. 나도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나도 이제 어엿한 전사야. 위험하다고 이런 중요한 일에서 내가 빠질 수 없어."
그 말을 들은 메이린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하아~ 아직 너를 이런 위험한 일에 보내고 싶지 않구나. 하지만 너의 뜻이 정 그렇다면 말릴 수는 없겠지, 이젠 어린애도 아니니까. 따라 오너라."
"정말?"
“그래,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천유강 일행에 머메이드 인원 2명이 합류하여 길을 떠났다.
가는 길에는 더 이상 오징어와 문어 몬스터들이 공격하지 않았다. 메이린과 레이린의 합류로 일행을 더는 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듯했다.
"빨리빨리 쫓아와라. 늦으면 버리고 가겠다."
아직 눈빛에 불신이 가득한 메이린을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일행은 쉬지 않고 손과 발을 놀려야 했지만 메이린의 속도에 맞추어 나갈 수가 없었다.
메이린을 쫒아 갈 수 있는 것은 역시 힘든 기색이 역력한 레이린과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는 유하연 밖에 없었다.
"유강아 더 빨리빨리! 나 잡아봐라~~~"
"······."
"뭐야~ 너무 느리잖아. 나 잡으면 찐하게 뽀뽀해줄게."
"······."
뽀뽀 같은 것은 받고 싶지 않았지만 따라가기 위해 천유강도 팔과 다리 그리고 날개까지 이용하여 열심히 헤엄쳤다.
그렇게 한참을 가니 약간 어두운 빛깔의 바다와 기이한 모양의 암석들이 보였다.
"여기서부터 피쉬맨들이 출몰하니 모두 조심해라."
메이린의 경고가 아니었어도 달라진 분위기에, 일행은 긴장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피쉬맨이 눈에 띄었다.
"케엑"
피쉬맨은 머메이드와는 달랐다.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것은 같았지만 머메이드와는 반대로 상체가 물고기였고 하체 쪽은 발에 달린 물갈퀴와 초록색인 피부만 빼면 인간과 흡사했다. 무기는 역시 트라이던트를 들고 있었다.
피쉬맨 열두 마리가 동시에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더러운 놈들!"
메이린이 피쉬맨을 보고 분노가 일었는지 제일 먼저 달려가 적들을 상대했다. 동시에 모든 일행도 같이 피쉬맨에게 달려들었다.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머메이드 솔져보다 약한 적들이었기에 별다른 피해 없이도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마음껏 죽여도 되죠?”
배대강이 커다란 도끼를 빙빙 돌리며 말하니 신지후가 고개를 간단하게 끄덕였다.
“그래, 다 죽여요 상관없어.”
“헤헤~ 좋았어!”
피쉬맨 열두 마리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생각보다 너무 약해서 왜 머메이드들이 납치됐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계속 전진한다."
메이린이 길을 재촉했다.
그 뒤에도 수십 마리의 피쉬맨이 일행을 공격해 왔지만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너무 쉬운데? 피쉬맨들이 이렇게 약했나?"
배연아가 말하자 지크가 대답해주었다.
"저들이 약한 것이 아니라 저희가 강한 겁니다. 무엇보다도 메이린 양과 레이린 양의 합류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 왜 우리가 머메이드가 필요하신 줄 아시겠습니까?"
"확실히 머메이드들이 있다면 해양권은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겠네요."
"아쉽게도 인어약은 많이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 선박도 건조 중이니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육·해·공을 아우르는 길드가 될 수 있겠지요."
"배까지 만든다고요? 그럼 정말로 이번 일이 중요하군요."
신지후의 계획은 해상전에서 배로 길드원이 공격하고 바다 속에서 머메이드들이 따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효율은 몇 배로 증가할 것이다.
"여기가 저들의 본거지다."
메이린이 가리킨 곳은 바다 아래 암석에 작은 틈과 같은 것이었다. 유심하게 보지 않는다면 그곳이 입구인지 알기 힘들 정도였다.
바위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넓은 공간이 나왔다. 신기한 것은 그 안에는 물이 없고 대신 공기가 있었다. 다리 부분이 꼬리인 메이린과 레이린이 걱정되어 뒤를 돌아본 일행은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보지?"
“어? 다리가······.”
어느새 메이린과 레이린의 꼬리지느러미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 사람의 다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완벽한 인간이었다.
"머메이드가 어느 정도 힘을 가지게 되면 꼬리를 다리로 변환시킬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우리 종족 중에서 다리를 만들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아. 다들 변화할 수 있었다면 너희들의 도움을 필요 없었겠지. 궁금증이 풀렸다면 빨리 가자."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피쉬맨이 나왔다.
"캬아악."
머메이드들과는 달리 피쉬맨은 모두 물 밖에서도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다. 다리 힘이 강하였는지 높게 점프를 하여 트라이던트를 내려찍는 공격은 일행에게도 위협이 되었다. 반면에 메이린과 레이린은 물 밖의 세상이 적응되지 않았는지 움직임이 다소 둔해 보였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이제야 본 실력을 내보일 수가 있었다.
"암영사보!"
스윽
스킬을 써 상대의 배후를 점한 천유강이 피쉬맨의 옆구리에 있는 아가미를 향해 손톱을 찔러 넣었다.
푹!!
"케에엑!!!"
피쉬맨은 그 공격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도망가려 했지만 천유강이 고이 보내지 않고 따라가서 등 한복판에 손톱을 꽂아 넣었다.
푹!
물 밖에 나온 일행의 실력은 피쉬맨을 압도하였다. 신지현은 마수들이 없어 공격력 쪽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였지만 버프를 지속적으로 파티원들에게 걸어주었고 엘디스트는 더 이상 마나를 아낄 이유가 없어져 공격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블러드 웨이브!"
촤아아아!
핏빛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쉬맨의 사체만이 남겨졌다.
그리고 몇 분을 그렇게 돌파했을 때 의외의 난관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갈림길이네요."
배연아의 말대로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나누어져 있었다. 좁고 어두운 통로라서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부터 일행을 둘로 나누어야겠군요."
"난 이쪽 길로 가겠다. 레이린, 너는 저쪽 길로 가라."
"왜? 같이 가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다시 마을로 돌아가 상황 설명을 해야 한다. 둘 다 잘못된다면 알릴 자가 없어. 그러니 따로 가."
"언니······."
비장감이 섞인 메이린의 말에 레이린도 더 이상 조르지 않고 순순히 반대편의 통로에 섰다.
"그럼 우리도 인원을 나누어보자."
그렇게 일행은 메이린을 따라가는 천유강, 유하연, 배연아, 엘디스트와 레이린을 따라가는 신지후, 지크, 신지현, 배대강 이렇게 둘로 나누었다.
그렇게 들어간 왼쪽 통로.
"좀 무섭네. 여기."
자신의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고는 배연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천유강과 유하연은 팔짱을 낀 채로 사이좋은 연인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최소한 크리스마스 오기 전에는 멋진 늑대 목도리 사야 하는데······, 주변에 멋진 남자 없나?"
부러운 듯 그들을 보던 배연아는 뒤에서 무심하게 걸어오고 있는 엘디스트에게 눈이 멎었다.
"왜 그렇게 보지?"
"아니에요. 내 주변은 다 그렇지 뭐."
엉뚱한 대답으로 혼란스러운 엘디스트를 뒤에 남기고 배연아는 힘없이 길을 걸었다.
"어두컴컴하네. 혹시 놀이공원에 있는 유령의 집에 가면 이런 분위기야?"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유하연이 물었다.
"글쎄요. 저는 놀이공원에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너도 한 번도 없어? 나도 한 번도 없는데······."
"하연 양도 놀이 공원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자신이야 외할아버지와 산에서만 살아서 놀이공원에 갈 시간이 없다고 치더라도 유하연이 놀이공원에 간 적이 없다는 것은 의외였다.
"응. 한번 가보고 싶어."
볼 때마다 쾌활한 유하연이었다. 만난 지는 몇 번 되지는 않았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고 긍정적인 유하연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쩐지 풀이 죽은 듯 보였다.
"그럼 가면 되지 않습니까? 혹시 같이 갈 친구가 없습니까?"
"그건 무슨 실례의 말이야. 난 형제와 같은 친구가 12명이나 있다고!!"
유하연이 발끈하며 말을 했지만 끝에는 말을 흐렸다.
"물론 여자들만 있지만······."
"그렇습니까? 하연 씨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남자 친구가 없습니까?"
천유강도 유하연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감이 안 잡히지만, 미인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니 천유강의 의문은 다른 사람들도 가질만한 것이었다.
"있잖아."
"?"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의야 해하고 있을 때 유하연이 천유강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여기."
유하연은 약간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천유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천유강도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친구라고 말한 것은 화진 양 빼고는 처음인가?'
"그렇군요. 다음에 한 번 같이 가보죠. 저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약속한 거다."
끝내 손가락까지 건 천유강은 앞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배연아는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유강 오빠는 순진한 건지, 아니면 고도의 바람둥이인지······, 하아~ 모르겠다."
배연아는 외롭다는 듯 팔을 쓰다듬고는 뒤를 따랐다.
"무언가 온다."
가장 선두에서 걷고 있던 메이린이 말하자 일행은 느슨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하고 무기를 꽉 쥐었다.
메이린의 말대로 앞에서는 많은 수의 어떤 것들이 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피쉬맨이 아니었다. 피쉬맨보다 느리고 둔해 보였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그것들은 다리가 없고 대신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었다.
"머메이드?"
가장 먼저 그것을 정체를 파악한 배연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것들은 놀랍게도 머메이드였다. 무언가 정신을 놓아버린 듯 흐릿한 눈동자와 풀린 얼굴 근육을 하고 마치 좀비처럼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