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마물은 다른 곳의 몬스터보다 더 강인하고 끈질겼다. 다들 험난한 환경을 이겨내고 상위 포식자로 자리 잡은 몬스터들이다. 특히 사막에 특화된 사냥법은 사막에 익숙하지 않은 천유강의 허를 찔러서 몇 번이나 위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강약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사막을 횡단하는 상인들에겐 만나면 악몽과도 같은 존재들이지만 지금은 좋은 단백질원으로 변했다.
“이건 그냥 날 것으로 먹어도 된다고 했지.”
사람 몸길이만한 데저트 웜을 잡아서 체액은 저장하고 몸은 포를 떠서 그늘에 말렸다.
바바에게 붙들려 온종일 공부했던 것이 지금 유용하게 쓰였다. 책에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면 어느 부위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가에 대해 자세히 쓰여 있었고 천유강도 재미있게 봤던 부분이었다.
사막에서의 생활도 벌써 이틀째다.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 다크 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왔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탈수는 오지 않았다. 몬스터들은 풍족히 잡아서 먹는 것은 걱정 없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잡아서 남은 고기를 파묻어야 했다.
“내일 해가 가장 높이 뜨면 이 성인식도 끝인가?”
몬스터들의 사체를 이용해 불까지 피운 천유강은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내일을 대비했다. 성인식을 치르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할 때가 바로 성인식이 끝나기 바로 직전의 시간이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때가 될 거다.
다음날 천유강은 모래 더미에 숨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허기는 몬스터 육포로 채우고 갈증은 몬스터 체액으로 달랬다.
‘성인식 전보다 오히려 살이 붙은 것 같네.’
한창 성장기의 타이브의 몸이라 조금만 먹어도 바로 살과 근육으로 갔다. 고단백질원으로 배를 채웠으니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칼로리를 먹은 셈이다. 당연히 살이 찔 수밖에 없었다. 그 증거로 타이브의 힘 스탯이 3이나 올랐다.
긴 기다림 속에서 태양이 머리 바로 위에 떠올랐다. 공식적인 성인식은 지금 끝났다. 이제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모래 구덩이에서 나온 천유강이 찌는 듯한 사막 열기를 뚫고 이동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곳은 목적지인 도시가 아니라 잘 위장된 임시 거처였다.
몇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천유강이 갑자기 급히 몸을 낮췄다.
‘흙먼지다.’
사막에는 흔한 풍경이지만 멀리 보이는 흙먼지는 일반적인 것과는 달랐다. 분명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흙먼지다. 저 정도 흙먼지가 만들어지려면 최소 10마리의 낙타나 말이 있어야 했다.
하메르 영주에게 탈랄이 공격해올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영주도 손을 써준다고 했지만 천유강은 도움을 거절했다. 신성한 성인식에 간섭하는 것은 영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자기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열 명이면 예상했던 숫자지.’
영주의 견제로 많은 수를 동원할 수는 없었을 거다. 많아봤자 열다섯을 예상했고 그 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탈랄은 천유강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천유강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건강한 상태였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자.”
천유강은 준비했던 것들을 풀어놓았다.
한편, 탈랄은 낙타를 이끌고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성인식에 끼어든 것을 걸리면 안 되니 최대한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탈랄은 혹시 모를 영주의 지원군만 피하면 타이브를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달려!”
탈랄이 데려온 것은 자신과 유년 시절을 함께한 친위대들이다. 자신이 직접 고르고 훈련시킨 자들로 아버지와 형들의 명령보다 자신의 명령을 우선시했다.
“여기부터는 조심해야 합니다. 온갖 마물이 튀어나오는 지역입니다.”
친위대 중의 한 명이 탈랄에게 경고를 했지만 흥분한 탈랄은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그럴 시간 없어. 빠르게 해치우고 빠져나간다. 성인식에 개입한 것이 들키면 차라리 마물의 밥이 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거다.”
“근데, 그놈이 아직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봤자 고작 10살입니다. 그런 어린애가 이곳에서 2박 3일 동안 살아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도 성인식을 다 겪은 자들이라 이곳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지금 타이브보다도 훨씬 많은 나이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서야 성인식을 마칠 수 있었다.
정말 두 번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경험이다.
다른 이들의 생각에도 탈랄은 단호했다.
“어린애라고 얕보지 마! 그놈은 뭔가 달랐어. 그냥 두면 필시 화가 될 놈이라고!”
대련 중에 타이브의 이면에 있는 천유강을 느낀 탈랄이다. 인성은 더러워도 직감만은 뛰어났다.
“분명 살아있을 거야. 절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그렇게 사막을 눈을 샅샅이 훑던 중에 친위대 중의 한 명이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탈랄 님, 저기!”
“응?!”
친위대가 가리킨 곳에는 인위적으로 파낸 흔적과 함께 사람으로 추정되는 형태가 보였다.
“놈이다! 절대 놓치지 마!”
일행들은 타이브가 저곳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아직 지쳐서 일어나지 못한 것으로 봤다. 사막에서 낙타의 속도보다 빠른 이동 수단은 없으니 이제 타이브의 목숨을 거두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낙타를 전속력으로 달려서 그곳에 도착했을 때다. 낙타에 내리자마자 칼을 꺼내든 일행이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갔지만 반기는 것은 타이브가 아니라 뜻밖의 것이었다.
“이게 뭐야?”
일행이 타이브라고 봤던 것은 몬스터들의 잔해였다. 몬스터의 잔해를 조립해서 멀리서 보면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일종의 더미였다.
“제길! 이런 허접한 짓을!”
“어떻게 할까요?”
“잔재주는 인정하지만 그래 봤자 잠시 시간을 버는 것밖에 안 돼. 낙타를 이용하면 이곳을 빠져나가기 전에 잡을 수 있어!”
아직 낙타는 쌩쌩했고 지금부터 달려도 도망간 타이브를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신경질 난 탈랄이 무심코 더미를 발로 걷어찼을 때였다.
푸쉬!!!
“이, 이게 뭐야?!”
더미를 건드니 뿌연 액체가 튀어나와서 탈랄과 그의 호위병들에게 뿌려졌다.
“독인가?”
해독제는 충분히 가져왔으니 독에 걸렸으면 바로 치료하면 된다. 하지만 몸에 묻은 액체는 끈적이기는 했지만 독성은 없었다.
“퉤! 퉤! 이 더러운 점액은 뭐야?”
사막의 열기에서도 점성을 잃지 않은 액체다. 한참을 점액과 씨름하고 있던 친위대 중 하나가 이 액체의 정체를 생각해내고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크, 큰일입니다. 빨리 도망쳐야 합니다.”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이건 데빌 멘티스의 페로몬입니다. 곧, 놈들이 들이닥칠 겁니다!”
데빌 멘티스라고 불리는 몬스터는 특이하게 암컷이 아닌 수컷이 페로몬을 내며 암컷을 유혹했다. 그 냄새에 끌린 암컷 데빌 멘티스가 다가와 짝짓기를 하고 그대로 수컷을 먹어치우는데 암컷을 유혹한 페로몬이 참을 수 없이 식욕을 자극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런 페로몬을 조금씩 내보내는 것도 아니고 온몸에 덕지덕지 발랐으니 데빌 멘티스가 눈이 획하고 도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나 곧 반응이 일어났다.
모래가 들썩들썩하더니 사방에서 데빌 멘티스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데빌 멘티스는 지네의 몸에 사마귀의 앞발을 가진 무시무시한 몬스터다. 암컷이 수컷보다 더 크고 강했는데 성체는 몸길이만 5m가 넘는다. 첫날 천유강과 싸웠던 거대 전갈과도 비견되는 강력한 몬스터가 떼로 몰려오는 거다.
탈랄 일행은 재빨리 낙타를 타고 이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 근데 또 낙타가 말썽이었다.
“왜 이래? 무슨 일이야?”
낙타들이 일행의 말을 듣지 않고 거품을 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기 시작했다.
“독입니다. 누가 낙타를 중독시켰어요.”
“뭐?!”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탈랄은 바닥에 검은 무언가가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건 전갈의 단단한 외피였다. 누군가가 이것을 날카롭게 간 후에 전갈의 독을 묻혀서 사방에 뿌려두었다. 이런 짓을 할 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
“타이브!! 이 비겁한!!”
습격을 한 건 자신들이었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추잡한 짓을 한 타이브를 갈기갈기 찢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데빌 멘티스가 가만두지 않았다.
“키이익!!”
긴 몸에 두꺼운 각질을 가진 데빌 멘티스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동료 의식이 없어서 같은 종족이라도 주변에 나타나면 잡아먹지만 지금은 사방을 뒤덮고 있는 페로몬 향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페로몬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다. 자신의 삶보다도 우선시되는 그들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도망가십시오!”
사방에서 데빌 멘티스들이 몰려들자 친위대들이 몸을 날려 탈랄을 지켰다. 보통 이런 마물을 잡기 위해서는 훈련된 사냥꾼들이 최소 넷씩 짝을 지어서 사냥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물의 수가 사람들보다 오히려 많은 상황이다. 저기에 천유강이 합세해도 가망이 없다.
“아악!!”
결국 탈랄의 친위대들은 산채로 찢겨서 데빌 멘티스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성공이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유강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래 구상하고 설치했던 함정이지만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만 삐걱했어도 이 사막에서 정처없는 숨바꼭질을 할 뻔했다. 탈랄이 조금만 더 침착했어도 들어맞지 않을 함정이었다.
친위대의 수준도 탈랄과 비슷해서 처음에는 꽤 버텼지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평생을 함께한 동료가 바로 옆에서 산채로 먹히는 것을 본 친위대들은 공포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멀리 탈랄이 친위대들을 버리고 미친 듯이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그 뒤를 어떤 데빌 멘티스가 맹렬히 쫓고 있으니 무사히 빠져나갈지는 미지수였다.
“구경은 그만하고 나도 슬슬 움직여야지.”
가장 위험한 적인 탈랄의 군대가 와해되었으니 이제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들이 없어도 사막은 충분히 위험한 곳이다. 안심하고 넋 놓고 가다가는 어떤 괴물에게 습격받을지 모른다.
천유강은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도시가 눈앞에 보일 때였다.
“저기 온다!!”
“최연소 성인식 통과야!”
“역시 영주님의 아드님이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애타게 천유강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손을 부여잡고 가슴을 조아리던 사람들이 천유강의 실루엣이 보이자 이미 축제라도 벌인 듯이 환호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천유강은 당당하게 영주 앞으로 갔다.
“돌아왔습니다, 아버님.”
겨우 며칠 지났음에도 하메르 영주의 안색은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목숨이 덧없이 흩날리는 전장에서도 꿈쩍하지 않던 그가 이 3일 동안에는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했다.
“수고했다.”
달려가 와락 안고 싶은 감정을 꾹꾹 누르며 영주는 차분히 천유강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 부족민들에게 선언했다.
“이제 내 아들이 성인식을 완벽하게 마쳤으니 그 누구도 이 아이의 권리를 부정할 수 없다. 누구든 내 아이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가 있다면 내 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야!”
영주는 옆에 차고 있던 칼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후계자에게 전사의 가호를!”
영주가 외치자 몰려들었던 전사들이 차고 있던 칼을 빼 들고 하나처럼 소리쳤다. 전사가 아닌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후계자에게 전사의 가호를!”
이제 타이브가 정식 후계자가 되기 위한 모든 준비가 마쳤다. 남은 것은 왕실에서 오는 주술사만 저지하면 된다. 사실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초조하게 바바가 제대로 일을 처리했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음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시의 정문에 나타났다.
“으흐흐! 이곳입니다, 주술사님.”
“허허~ 이렇게 환대해줘서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 핫세 님.”
그건 핫세가 이끄는 병력들이었다. 무사히 주술사를 영지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바바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부디, 공정한 절차를 부탁드립니다.”
“허허~ 알겠습니다. 간단한 주술이니 금방 끝날 겁니다. 영주 성이 어디지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