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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디멘션 게임 : 이차원 헌터
작가 : 범미르
작품등록일 : 2017.9.13

 
미라클 (4)
작성일 : 17-12-15 19:29     조회 : 72     추천 : 0     분량 : 7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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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소리에 고개를 타이브가 고개를 번쩍 들었지만, 바바라고 불린 노인과 영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내 생각에는 절대 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부디, 이번 한 번만 노신의 말을 믿고 따라 주시지오.”

 

 “끙!”

 

 영지 내에서는 무서울 것도 없고 하지 못하는 것도 없는 영주지만 이 앞의 노인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충심으로 자신을 지켜온 충신이다. 자신을 위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의 간곡한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었다.

 

 “왜 이렇게 고집 부리는지 모르겠군. 그런다고 없던 후계자가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기적처럼 후계자가 나타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영주는 냉소적으로 손을 저었다.

 

 “난 기적 따위는 안 믿어. 잘 알고 있잖아?”

 

 “물론입니다, 영주님.”

 

 “후~ 좋아, 알았어.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제 의견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주님.”

 

 바바라는 이름의 노인은 영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타이브를 끌고 영주의 앞에 세웠다.

 

 “인사드려라. 이 영지의 영주님이시다.”

 

 영지의 영주라면 자신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여기서 벌벌 떨 수만은 없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린 타이브가 주눅 들지 않고 인사하자 영주의 눈에도 이체가 흘렀다. 첫 만남이었지만 앞의 아이가 어떤지 마음에 들었다.

 

 “똘똘한 놈이군. 하긴, 바바가 고심하고 데려왔으니 이 정도는 해야겠지. 이름은?”

 

 “타이브라고 합니다.”

 

 “타이브······, 좋다. 이제부터 너는 내 세 번째 부인의 아들이다.”

 

 타이브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너무 놀란 타이브는 입을 쩍 벌리고 말도 하지 못했다.

 

 “자세한 건 바바가 설명해 줄 거야. 그런 나가봐.”

 

 영주가 축객령을 내리자 바바가 먼저 고개 숙여 인사했고 아직 얼어있는 타이브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우선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

 

 바바가 타이브를 그의 방으로 인도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영주님에게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

 

 “네, 그건 유명한 이야기잖아요.”

 

 “좋아. 영주님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자 이번에 왕실에서 독촉장이 들어왔다. 영지의 안녕을 위해서 하루빨리 후계자를 정하라는 압력이었지.”

 

 후계자가 없어서 영지가 뿌리째 흔들린다면 그건 왕실에서도 바라는 상황이 아니다. 왕국의 사방에는 많은 이민족이 사는데 풍족하지 못한 사막이다 보니 언제나 왕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들이 쳐들어오면 부족들이 힘을 단결해서 막아야하는데 가장 중요한 영지가 제 구실을 못하면 국가 붕괴까지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시간을 주고 후계자를 정하라는 어명이 떨어졌지.”

 

 “에~ 그럼 쫓겨났다는 부인들의 자식을 후계자로 정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슨 사정인지 듣고 싶었지만 말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말했을 거다. 엄청난 비밀이 있음을 직감한 타이브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너는 쫓겨난 셋째 부인의 아들이 될 거야. 이제까지 정체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가 이제야 세상에 선보인다는 이야기지.”

 

 “······그게 통할까요? 시장에서 오래 일했으니 절 알아보는 사람도 나타날 텐데요?”

 

 무려 2년 동안 시장의 명물로 자리 잡은 타이브다. 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이 영주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곧 알게 될 거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다 손을 써 두었어.”

 

 “······알겠습니다.”

 

 방식은 모르겠지만 바바가 저렇게 호언장담할 정도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그럼···, 전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나요?”

 

 10년 동안 시장에서 굴러온 타이브다. 그가 영주의 숨겨진 자식으로 변모하려면 준비해야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바바는 타이브 방의 문을 열면서 그 안을 가리켰다. 안에는 화려한 가구들이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역시 침대였고 다음이 방 한가운데 있는 책상이었다. 그 책상 위에는 책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우선 공부부터 시작하자.”

 

 그 순간, 천유강의 의식이 깨어났다.

 

 ***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천유강의 의식이 들어오고 나서 한 일은 오로지 공부밖에 없었다. 바바는 선생을 자처하며 예법과 역사, 병법, 그 밖의 상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정말 밥만 먹고 공부만 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죽겠네.’

 

 균열에서 공부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천유강에게는 뜻밖의 복병을 만난 셈이었다. 다행히 천유강의 끈기도 남달랐기 때문에 쉬지 않고 파고들어서 바바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좋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도련님.”

 

 “······복습할게.”

 

 “좋은 자세입니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척척이시네요.”

 

 바바는 이제부터는 타이브가 정말 영주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존칭을 쓰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남들이 없을 때도 정말 영주의 아들처럼 정중하게 대했는데 알고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연기였다.

 

 “제 예상보다 진도가 훨씬 빨라서 다행입니다. 글을 미리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알려주셨거든.”

 

 타이브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일을 하며 타이브뿐 아니라 지금은 타이브가 보살피는 아이들까지 돌보았었다. 병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는 그녀의 미모와 심성으로 시장의 천사라 불리며 소문이 자자했었다.

 

 예전 귀족가에서 일을 했다던 타이브의 어머니는 그때 배운 글을 아들인 타이브에게도 알려줬다.

 

 “이 정도 속도면 곧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겠네요.”

 

 “다음 단계는 무예라고 했지? 그거면 자신 있어.”

 

 “그 자신감만큼 잘 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하지만 귀족의 무예를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공부보다는 쉽겠지.”

 

 이제까지 해왔던 공부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 같은 무지막지한 자료를 읽고 또 외웠다. 똑똑한 타이브의 머리와 천유강의 끈기 그리고 균열에서 얻은 보상이 없었더라면 해낼 수 없었을 거다.

 

 “좋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영주님과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이제까지 배운 예법대로 해보시지요.”

 

 바바는 하루에 한 번 씩은 꼭 영주와의 식사 시간을 가졌는데 처음 같이 먹을 때는 밥 먹다가 채할 뻔 했다. 가짜 부자 사이를 가장해서 밥을 먹는 것도 당연히 어렵지만 천유강은 태어나서 아버지와 밥은커녕 이야기도 해 본 적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건 영주도 마찬가지였는지 처음에는 불편한 기색만 내다가 바바가 조용히 말하니 끙 하고 앓고는 억지로 몇 마디 주고받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바바의 작전이 통하기 시작한 거다.

 

 “그래. 오늘은 무엇을 배웠느냐?”

 

 “오늘은 초대 왕이신 타이런 대제님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타이런 대제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지. 그래 그 이야기에서 무엇을 깨달았느냐?”

 

 “강인한 정신과 두려움에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배웠습니다.”

 

 “그래, 사나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지.”

 

 어색했던 가짜 부자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 바바가 흡족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은 도련님은 정식으로 선보일 겁니다.”

 

 그동안 미뤄왔지만 왕실의 압력에서 벗어나라면 한시라도 빨리 후계자 발표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하메르 영주는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렇듯이 아직 타이브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 거다.

 

 “너무 이르지 않나?”

 

 “어차피 부딪쳐야 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성질이 아니니 차라리 빨리 저지르는 것이 낫죠.”

 

 “왕실을 속이는 일이야. 일이 발각되면 파장이 커질 거야.”

 

 “타이브가 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강심장인 천유강도 조마조마한 일이다. 무슨 자신감으로 바바가 저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균열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연기해야 하는 건 알 수 있었다.

 

 바바와 타이브를 번갈아가며 본 하메르 영주는 다시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는 영주인 자신도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고 있었다.

 

 다음 날에 예정되었던 대로 타이브의 후계자 공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뜻밖의 발표에 사람들은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열 살이나 된 후계자의 등장에 다들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메르 영주가 이미 자식이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선보이는 이유는 몰랐지만 그의 형제인 핫세가 영주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그냥 이름도 타이브로 하는 거야?”

 

 최소한 이름은 바꿔서 공표할 줄 알았는데 바바는 그냥 타이브라는 이름 그대로 후계자 발표를 했다. 처음에는 실수인줄 알고 식은땀까지 흘렀지만 바바는 그냥 덤덤히 말했다.

 

 “이름은 아무래도 좋지 않습니까? 허허~”

 

 “하아~ 나는 모르겠다.”

 

 물론 후계자 발표에 심기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다음 영주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단꿈에 젖어 있던 하메르의 형 핫세와 그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다된 밥에 재를 뿌린 심정이었다.

 

 어쨌거나 후계자 발표가 된 후로는 천유강은 이제는 성을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녔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하녀들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는데 그 안에는 타이브를 씻겼던 하녀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바바가 특별히 아끼는 시녀들로 타이브의 비밀을 아는 소수에 속했다.

 

 “어머~ 도련님. 못 본 사이에 늠름해 지셨네요.”

 

 “오호호~ 우리 손길이 그립지는 않으신가요?”

 

 타이브에서 천유강으로 의식이 바뀌었지만 이런 일에 면역이 없는 건 마찬가지여서 시녀들이 짓궂게 놀리면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주 성에는 마음에 드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유강에게 아니, 타이브의 악연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건 성의 내정을 맡고 있는 무크린이라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도련님.”

 

 천유강 앞에서는 허리가 무릎에 닿을 듯이 고개 숙이며 깍듯한 인사를 하는 그였지만 타이브의 기억을 가진 천유강은 그를 절대 좋아할 수 없었다.

 

 이자가 타이브를 그토록 괴롭혔던 무하마다의 뒤를 봐주고 있는 자다. 불량배들을 시켜 상인들의 돈을 뺏고 대부분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쫓고 싶었지만 그는 교묘하게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물증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할 말이 많았지만 결국 꾹 참아야 했다. 지금은 사사로운 복수보다는 균열에 집중할 때다. 지금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오히려 해가 될 거다.

 

 ‘나중에 두고 보자.’

 

 예상대로 무예 수업은 순조로웠다. 사막 부족의 검술과 궁술은 투박한 면은 있었지만 파괴적인 면에서는 천유강도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래도 무술에 천부적이 재능이 있는 천유강이었기에 한두 번만 따라하면 초식 안에 있는 진의를 깨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영지의 경비대장에게 배우다가 수준이 높아지자 나중에는 영주가 직접 가르치기 되었는데 천유강의 습득 속도를 보고 하메르 영주가 깜짝 놀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며칠 더 지나자 영주의 병사와 싸워도 밀리지 않는 수준까지 올랐다. 타이브의 몸이 고작 10살인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천유강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아직 병사 수준이면 많이 모자라.’

 

 이대로 순탄하게 지나갈 균열이 아니었다. 분명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거고 천유강도 위험에 노출될 거다. 중급 균열이니 아주 감당 못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많이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리고 예상대로 난관이 닥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바바와 함께 영주와의 식사 중일 때, 허겁지겁 병사가 들어왔다. 영주의 식사 시간을 방해할 정도의 큰일이 벌어졌음이 분명했다.

 

 눈을 찡그린 영주가 근엄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냐?”

 

 “핫, 핫세 님이 왕실에 전서을 보냈다고 합니다.”

 

 “전서? 무슨 전서을 보냈단 말이냐?”

 

 “그게······, 타이브 님이 영주님의 친자가 아니라는 진정서라고 합니다. 왕실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여서 주술사를 보냈고요.”

 

 “뭐?”

 

 사막의 주술사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신비한 주술을 사용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친자를 감별하는 주술이었다. 부모 자식 간의 피를 이용해서 친자를 감별한다고 하는데 원리는 몰랐지만 100% 정확하게 들어맞는다고 한다.

 

 “어쩐지 조용하다고 했더니 이런 수를 생각해냈군.”

 

 핫세는 타이브가 나타나고 나름의 조사를 한 끝에 타이브가 하메르 영주의 친자가 아님을 확신했다. 영주의 입장에서는 외통수에 몰린 셈이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 이제 어쩔 셈인가. 바바?”

 

 바바가 잘 숨긴다고 했지만 핫세에게도 거대한 세력이 있다. 이제까지 잠잠하게 있다가 가장 확실한 패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바바는 태연했다.

 

 “걱정하시 마시지요. 이곳에 오는 술사를 매수하거나 이 도시까지 오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사막에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아무리 왕실의 사절이라도 사막의 엄청난 위력 앞에서는 무력하다. 외유를 떠났던 왕족이 모래더미에 묻혀 영영 찾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바바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왕실의 주술사를 건들면 왕실을 건드리는 꼴이야. 바바, 그걸 모르는 걸 아닐 텐데?”

 

 만사에 꼼꼼하고 치밀하게 자신을 보좌하던 바바가 이번 일만큼은 너무나 무모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일이 잘못되면 바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큰 피해가 올 거다. 항상 자신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던 바바였는데 이번 일에는 평소의 바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바바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부디 저를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흐음~”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가는 수밖에는 없다.

 

 “알겠다. 그럼 바바 뜻대로 해.”

 

 이제는 자신의 운명이 달린 일인데도 그저 고갯짓 한 번으로 허락하더니 태연하게 식사를 이어나갔다. 이렇게 보면 영주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덕분에 천유강의 골치만 아파졌다.

 

 ‘이번 균열은 도통 목표가 뭔지 모르겠군.’

 

 타이브를 둘러싼 사건의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날 밤의 일이었다.

 

 「영주님······」

 

 「영주님 저는······」

 

 “흡!”

 

 한참 단잠을 자고 있던 영주가 짧은 신음성과 함께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하고 일어났다. 그뿐 아니라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고 호흡도 거칠게 했다.

 

 “헉~ 헉~”

 

 강심장인 영주는 두려워하는 것도 없어 악몽도 꾸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꾼 꿈은 악몽보다 더 지독한 것이었다.

 

 손을 더듬어 물 한 잔 마신 영주는 쓸쓸하게 자신의 곁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다른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요즘 뒤숭숭해서 이런 꿈도 꾸는 건가?”

 

 영지를 살리겠다고 바바가 열심히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지만 사실 말하자면 영지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껏 영지를 다스린 것은 의무감 발로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예전부터 하메르 영주의 속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바바도 그걸 알고 이런 일을 꾸민 거겠지.”

 

 아무리 노력해도 갑자기 후계자가 생길 리 없는데 바바는 희망을 끝을 놓지 않고 있다. 어쩌면 자신이 이제까지 버틴 것도 다 바바의 극진한 노력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식이라······.”

 

 비록 친 자식은 아니지만 타이브가 자신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것을 보며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정말 자신에게 이런 아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메르 영주는 쓸쓸히 고개를 저으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난, 기적 따위는 믿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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