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는 집이 된 천유강의 성에서 켈타스가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천유강은 원래 학교 옆의 자취방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간이 포탈을 설치해서 두 곳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 후로는 집을 이곳으로 옮겼다. 학교 갈 때는 다시 포탈로 자취방에 가서 등교하면 편했다.
“뭐지?”
“이전에 잡았었던 그 이상한 놈 있지 않습니까?”
“누구? 그 소년은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그놈이 주인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며칠 전에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였던 소년이 어처구니없게도 화염 임프한테 잡혀 온 일이 있었다. 살려달라고 울고불고했던 그 아이가 제 발로 찾아왔다는 거다.
“용건이 뭔데?”
“그건 주인님을 만나면 이야기하겠다고 합니다.”
“지금 어디에 있나?”
“외성 마을에 잡아놓고 있습니다.”
“알겠다. 가도록 하지.”
천유강은 옷가지를 집어 들고 성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가는 길, 켈타스는 성의 홀에서 뛰놀고 있는 서큐버스들에게 고함을 쳤다.
“이것들아! 나가서 놀아! 멀쩡한 마당 놔두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성에 들어오게 된 후로 서큐버스들은 꼬질꼬질했던 옛 모습을 버리고 다시 요염한 본연의 모습을 찾았다. 들어온 성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부분의 시간을 성에서 보내고 있었는데 자꾸 성에서 사고만 치고 다니니 켈타스가 좋아할 리 없었다.
켈타스의 잔소리를 듣고 가장 어린 서큐버스인 큐아가 혀를 낼름 내밀었다.
“싫다! 이 악마야! 나가면 햇볕 때문에 피부가 타버린다고”
“이것들, 아직 훈련이 부족한 거냐!”
새로 합류한 서큐버스들은 화염 임프들과 마찬가지로 훈련에 참여했는데 지옥에서 온 교관인 켈타스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었다. 700레벨이 넘는 서큐버스는 케르베로스 다음으로 레벨이 높은 유닛이었지만 영지의 이인자인 켈타스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 악마!”
큐아와 다른 서큐버스들이 치가 떨린다는 듯 소리쳤다. 원래 성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강도 높은 훈련을 매일 받고 있으니 이제는 켈타스의 얼굴만 봐도 근육이 쑤시는 기분이었다.
“켈켈켈~ 내가 악마인 걸 이제 알았느냐?”
“에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광산에 있을걸.”
“시끄럽다 이놈아! 진짜 광산으로 보내줄까?!”
“우웅~ 그건 싫어.”
“그럼 헛소리 말고 수업이나 잘 들어. 그리고 한 번 더 이불에다가 오줌 싸면 진짜로 광산에 노역시키러 보낼 줄 알아!”
“아악~~ 난 오줌 안 쌌어!”
“시끄러워 네 부하들이 오늘 몰래 빨래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아아악!!”
각인시킨 큐아는 현실에 데리고 나갈 수도 적의 영지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를 전투에 합류시키는 것은 아직 먼 이야기 같았다.
“철딱서니 없는 것.”
“흠, 서큐버스들은 잘 적응한 것 같네.”
“에구~ 너무 잘 적응해서 문제입니다. 저것들 이 성을 지들 성인 것처럼 행세한다니까요.”
“성에 활기가 넘치니까 나쁘지는 않네.”
“그건 그렇지요.”
큐아와 티격태격하고 있는 켈타스지만 내심에는 그녀를 꽤 아끼는 듯했다. 얼핏 보면 마치 손녀의 재롱을 보는 할아버지 같았다.
‘뭐 잘된 일이지.’
큐아가 오고 나서 켈타스도 활기를 찾은 것 같은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성을 나가니 예전에 봤던 그 백인아이가 두려움에 떨면서 포박된 것이 보였다.
“풀어줘.”
천유강의 말에 소년의 포박이 풀렸다.
아직 경계하고 있는 화염 임프들을 물린 후에 천유강은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자, 이제 말해봐라. 무슨 일로 이곳에 왔지?”
“도, 도와주세요.”
“뭐?”
“제발 도와주세요.”
“알아듣게 차근차근하게 말해봐.”
“저, 저는 이제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갑니다.”
“벌써?”
“네. 이제 한 달 후면 보호 기간이 끝나요.”
소년이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가 된 것도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면 이제부터는 다른 테스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레벨이 겨우 110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레벨에 영지를 가졌다고?”
“할 수 없었어요. 저도 먹고살아야 했단 말이에요.”
소년은 보기에도 부유해 보이지 않았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여서 아이들도 큰 부담 없이 디멘션을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의 아이들은 생계를 마련하기 위해서 디멘션 월드에 접속한다.
생계를 위한 게임이니 즐거울 리 없다. 그들 중 대부분은 대형 길드의 밑에서 허드렛일을 해서 게임 안에서도 허리도 펴지 못했고 벌이도 풍족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포인트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능력도 없이 영지를 얻은 거다.
“누가 네 영지에 쳐들어온다고 했어?”
“네. 예전부터 제 영지를 노리는 놈들이 있어요. 한 달 후면 그들이 날 잡아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려 할 거예요.”
“그게 누군데?”
“악질 카르텔 놈들이에요.”
“카르텔?”
“네. 저는 현재 멕시코 국경 근처에서 거주하고 있어요. 멕시코에는 수많은 갱들이 활개 치고 있는데 그중에서 거대한 카르텔의 보스가 절 노리고 있어요.”
대재앙 이전에도 멕시코의 카르텔은 큰 문제였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악질 카르텔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도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인가?”
“아니요. 원래는 그 카르텔의 부두목이 테스터였어요. 그런데 그가 예전에 제가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인 것을 알아차렸어요. 제 영지의 위치까지도요.”
“테스터였다는 것은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네. 그는 균열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고 해요. 포인트의 위력을 알고 있는 카르텔 두목이 다음 타겟으로 절 잡은 거고요.”
“그렇다면 문제가 될 건 없지 않나? 테스터나 각인된 병사들이 아니면 남의 영지에 쳐들어갈 수 없잖아.”
“그게······, 테스터는 죽어도 각인 템과 각인된 NPC는 남아요. 그들을 이용해서 제 영지를 쳐들어올 생각이에요.”
“수성으로도 막기 힘들어?”
“제 상태를 보세요.”
소년은 풀이 죽은 듯 말했다. 그는 레벨도 낮고 걸치고 있는 아이템도 별 볼 일 없었다. 천유강의 화염 임프에게도 잡힌 수준이니 두말하면 입이 아픈 수준이다.
“전에 레벨이 겨우 110이라고 했는데 어쩌다가 그 레벨에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가 된 거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상한 아이템 하나 얻었을 뿐인데 이런 게 됐어요. 처음엔 좋았는데 레벨이 너무 낮아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소년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한 길드에 들어가 짐꾼 역할을 하였다고 했다. 낙후된 시설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런 일들 밖에 없다. 그나마 남자아이들은 나은 편이다. 여자아이들은 더 끔찍하다. 그녀들의 대부분은 가상의 공간에서까지 남자들을 받아들이며 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도 포인트는 계속 받으니까 그걸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제 레벨로 테스트 서버에서 활동은 무리였어요.”
소년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움직였었다. 비록 레벨은 낮지만 처음 주어진 포인트를 활용해서 테스트 서버에서 큰 포인트를 벌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처음 들어간 던전에서 자기의 병력들이 몰살당하고 자신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때 하나 있었던 집사도 죽어버려서 이제는 영지를 운영하는 것도 벅찼기에 그저 주어지는 포인트로 생필품을 구입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거다.
소년이 부양하는 가족들은 같은 고아인 동생 5명과 병든 아저씨 한 명이다. 주어지는 포인트로는 그들을 먹여 살리는 데도 급급했다.
그래서 최소한의 사냥이라도 하려고 낮은 레벨의 몬스터를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천유강의 임프를 본 거다. 임프들의 레벨은 보통 50이니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생각보다 높은 능력치 때문에 결국 붙잡혔었다.
“대신에 이걸 드릴게요.”
소년이 내민 건 작은 아이템이었다.
《드래곤볼 레이더》(각인)
(유니크)
이상한 모양의 레이더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그 물건은 찾지 못하고 대신 다른 것을 찾게 되었다.
능력 : 균열 탐지 반경이 세 배로 늘어난다.
10m 주변의 보물 상자나 숨겨진 장소를 발견한다.
“이게 제가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가 되게 만든 아이템이에요. 그리고 이건 튜토리얼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이고요.”
《부두술사의 독침》(각인)
(아티펙트)
고대의 부두술사가 사용했다는 독침. 맞힌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독과 저주를 부여한다.
능력 : 공격력 1
공격 후 10초 후에 독침이 생성.
매 1초간 현재 체력의 3%의 피해를 주는 맹독 피해를 5초간 준다.
명중 시 무작위의 저주를 부여, 모든 저주 저항을 무시한다.
사실 천유강이 욕심을 부려 소년을 해친다면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소년이 이렇게 자기 발로 찾아와서 아이템을 바친 것은 천유강이 전에 자신을 해치지 않고 보내줘서이다.
이제 소년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고 더는 베타 서비스 플레이어의 욕심도 없었다. 소년이 원하는 건 그저 가족 같은 동생들과 내일의 해를 보는 거다.
“······.”
천유강은 말없이 그 물건들을 보았고 소년은 그런 천유강의 모습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름이 뭐냐?”
“로, 로이요.”
“성은?”
“없어요. 고아라서 성은 없어요.”
“좋아. 그럼 계약을 하자.”
“계약이요?”
“그래 이건 계약의 대가로 내가 갖겠다.”
천유강은 두 개의 아이템 중에서 드래곤볼 레이더를 가지고 부두술사의 독침은 돌려주었다. 드래곤볼은 로이에게는 소용이 없다고 판단해서이다.
그 모습을 본 켈타스가 다시 펄쩍 뛰었다.
“주인님!!!”
“켈타스 그러지 마. 로이가 자립하는 것을 도와주는 게 더 낫지 않나? 동맹이 생기는 거잖아.”
“끙~”
켈타스는 다시 얼마 없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믿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만.”
로이의 영지는 이곳과 가까운 곳에 있다. 만약 로이의 성장을 돕고 로이와 동맹을 맺는다면 차후에 쳐들어올 강력한 적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될 거다.
모든 영역을 다 차지하면 물론 더 좋아지겠지만 결국 지배력의 한계도 있고 종족에 따른 약점을 극복할만한 동맹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정, 정말요?”
자신은 그저 목숨만 살려달라고 왔지만 천유강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보다 더 좋은 내용이다. 로이로서는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것을 본 켈타스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단, 동맹은 안 됩니다. 수하로 삼아야 합니다.”
“수하? 그런 것도 있어?”
“네. 저 아이를 수하로 삼으면 일정량의 세금도 받을 수 있고 동맹보다 우월한 입장에서 교류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배신도 막을 수 있죠. 하지만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그게 뭔데?”
“만약 주인님이 저 녀석을 수하로 받아들이면 저놈의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나는 순간 주인님도 같이 초보자 보호 기간이 없어질 겁니다.”
“그래? 별문제 있나?”
“주인님! 초보자 보호 기간은 엄청난 효과입니다. 그게 사라진다면 언제, 어떤 위협에 놓여도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보니 본거지에만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이지 테스트 서버의 거점들은 뺏기잖아. 그게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싶어서 말이지.”
본거지에 쳐들어오지 못해도 테스트 서버의 광산 같은 주요지점들을 모두 뺏기게 되면 말라 죽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유강은 초보자 보호 기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끙~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할게요!!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켈타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로이가 발악적으로 소리쳤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수하가 아니라 노예라고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어떻게 하면 돼?”
“주인님께서 저 아이의 머리에 손을 대로 수하 임명이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수하 임명.”
천유강이 로이의 머리에 손을 대고 말하자 로이의 눈앞에 투명 알림판이 떴다.
「상대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네!”
로이가 허락을 하자 천유강에게도 투명 알림판이 떴다.
《엠블럼 획득》
대영주
(랭크 A)
조건 :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 한 명을 수하로 맞이한다.
능력 : 지배력 20% 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