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들어가자마자 서큐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환생 퀘스트에서 만났던 서큐버스, 루이스처럼 머리에는 양의 뿔이 나 있고 아름다운 얼굴과 반쯤 드러낸 풍성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오호호~ 귀여운 아이네.”
“이리 와~ 누나랑 놀자.”
요염한 얼굴로 보자마자 현혹 스킬을 사용하는 서큐버스다. 레벨은 서큐버스도 낮지 않지만 데스티니 스톤의 현혹 면역 탓에 걸리지 않았다.
“어라? 그렇담!”
다음에는 환영 마법이다.
나체의 여인들이 천유강을 맴도는 서큐버스만의 고유 환영 마법이지만 그것 또한 면역이었다.
“자, 잠깐! 어떻게 된 거야?!”
이것저것 모든 마법을 다 썼음에도 통하지 않자 서큐버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역시 이렇게 되네.”
이것으로 검증이 끝났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서큐버스는 홉고블린만도 못한 존재다. 다른 종족이 섞여 있으면 더 까다로운 상대지만 서큐버스만 있다면 천유강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이제 시작······.”
“꺄아아악~~~~ 난 몰라!”
천유강이 본격적으로 싸움하려 손톱을 뽑아 들자 서큐버스가 도망가 버렸다.
“어?”
체력이 낮은 적들이 도망가는 경우는 있어도 아무 피해도 입지 않은 몬스터가 저렇게 도망가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다. 공포마법 같은 것도 걸지 않았는데 말이다.
“듣던 것보다 겁이 많은 종족이네.”
원래 서큐버스는 적들과 정면에서 싸우는 종족이 아니다. 원래의 남의 꿈에서 정혈을 갉아먹는 몽마이고 전투에서도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만 한다. 그래도 도망갈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꺅~~~~”
“꺅~~~”
“이리로 온다?!”
“악마다!!”
“이 음적!”
“변태!”
처음 서큐버스에게 들었는지 천유강이 갈 때마다 만나는 서큐버스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어쩐지 내가 나쁜 놈이 된 느낌인데?”
나름 무혈입성이었지만 문제는 적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적이 뒤로 물러간다는 것에 있었다. 이대로라면 보스 방에서 모든 서큐버스하고 한꺼번에 싸워야 할 수도 있다.
아무리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그건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할 수 없지.”
현혹 마법과 환영 마법이 뭉친다고 세지는 게 아니라면 무서울 것 없다. 다수의 적과 싸우는 일은 천유강에게는 너무나 흔한 일상이다.
천유강은 혹시 모를 기습에만 조심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광산 안은 노르스름한 광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이 금이 포함된 광석이다. 색깔이 꽤 진한 것이 함유량이 높은 것 같았다. 이걸 캐내서 녹이면 금괴를 얻을 수 있다.
켈타스의 말에 따르면 이 정도 광산이라면 하루에 족히 100골드는 벌 수 있다고 했다. 100골드면 환전했을 때도 1000만 원의 큰돈이다. 굳이 환전하지 않아도 우선 영지의 급한 불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이것만 팔아도 30억 연봉자가 되네.”
광산을 둘러보며 한참을 걷자 마침내 보스가 있는 광산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곳에는 이제까지 도망갔던 많은 서큐버스들이 가운데에 보스로 보이는 서큐버스를 호위하고 있었다. 보스 서큐버스가 호화로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천유강에게 도발적으로 말했다.
“호호호~ 우리 아이들을 위협했던 겁 없는 놈이라는 게 네 녀석이구나.”
“······.”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 하구나. 내 이를 기특히 여겨서 지금이라도 나가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 어떠냐?”
“······.”
“호호호~ 굳이 벌주를 먹겠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원하는 데로 해주지. 받아라!!”
보스 서큐버스가 주문을 외자 놀랍게도 천유강의 주의에 그녀와 꼭 닮은 서큐버스의 환영이 나왔다.
환영 면역인데도 마법이 통한 것이다. 이 보스는 환영 면역을 뚫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내 노예가 돼라!”
“내 노예가 돼라!”
그 서큐버스와 똑같이 생긴 서큐버스 환영들이 천유강에게 다가와서 현란하게 춤을 췄다. 이것은 그냥 춤이 아니었다. 서큐버스가 남성을 유혹할 때 쓰는 필살의 기술이었다.
여성이면 몰라도 남성이라면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절대적인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오호호~ 어떠냐! 얌전히 내게 무릎을 꿇어라.”
“······.”
“······.”
현란한 몸짓에도 천유강이 아무 반응도 없자 그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흑!”
울기 시작했다.
“큐아 님!”
“흐아아아앙~~~~~~”
보스 서큐버스가 울자 주변의 서큐버스들이 황급히 달려와서 달래기 시작했다.
“울지 마세요. 큐아 님.”
“훌쩍~ 역시 안 통하잖아! 난 매력이 없는 건가 봐.”
“아니에요 큐아 님. 저놈이 이상한 거랍니다. 이렇게 어여쁜 큐아 님인데 매력이 없다니요.”
“맞아요. 저놈이 이상한 거라고요.”
큐아 (보스)
(LV 15)
보스 몬스터치고는 형편없는 레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꼬맹이잖아.”
“흐앙~~~~ 저게 나보러 꼬맹이래!”
“울지 마세요. 큐아 님은 어리지 않아요.”
그녀는 10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 서큐버스였다. 그런 그녀가 매혹의 춤을 춰봤자, 유치원생의 재롱잔치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씨! 진짜 날 열 받게 했어! 가라 가고일!”
그녀가 소리치자 옆에 있던 동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드드드득
단단한 동상이 움직여 바닥에 스치자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동상은 사실은 가고일이었다. 가고일은 고위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마법 병기로 평소에는 석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침입자가 쳐들어오면 그들을 무찌르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공격력, 방어력, 마법 방어력 모두가 높은 몬스터라서 플레이어들이 매우 싫어하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감히 누가 이곳을 침범했는가?!”
가고일의 입에서 위엄 넘치는 목소리가 나왔다.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범상한 가고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고일! 저놈을 해치워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마법 병기가 천유강을 향해 돌진했다.
“마하 태클(Mach tackle)!!”
스킬명을 외치자 가고일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고 이내 천유강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콩!
“······장난감?”
“그게 무슨 망발이냐! 장난감이라니!”
가고일은 고작 천유강의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작은 크기였다.
콩! 콩! 콩!
미니 가고일이 열심히 쳤지만 천유강은 아프기는커녕 피곤해질 뿐이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을 공격하는 건 틀림없으니 반격하려 손톱을 꺼내 들었을 때.
“히익!”
가고일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고,
“잔학한 놈!”
“폭력배!”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
서큐버스들이 울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
“살인마!”
“연쇄 살인마!”
“쓰레기!”
“해양 쓰레기!”
“젖은 쓰레기!”
“안 타는 쓰레기!”
“아동 학대범!”
“동물 학대범!”
뭔가 이상한 것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차마 공격할 수 없어 손을 내렸다.
“휴우~ 너희는 뭐냐?”
천유강은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잡고 말했고 그 말에 다시 자신감을 찾은 대장 서큐버스가 말했다.
“나는 큐아! 위대한 서큐버스 퀸 종족의 아름다운 몽마다!”
“그것을 물어본 게 아니다. 왜 서큐버스가 이런 데에서 있는 건가? 너희는 성에서 살고 있지 않나?”
서큐버스들은 중급의 마족들이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마족답게 서큐버스들이 사는 곳은 언제나 화려한 성이었다. 이런 칙칙한 광산의 귀퉁이에 사는 종족이 아니다.
“그, 그건.”
천유강의 말에 서큐버스들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더듬거리며 말했다.
“쪼, 쫓겨났다.”
“쫓겨났다고? 누구한테?”
“몰라! 이상한 흑마법사가 갑자기 성을 공격했어.”
“흑마법사?”
“그래. 그 흑마법사가 내 어머니를 죽이고 성을 탈탈 털어 갔다고.”
그녀들의 성을 털었다면 아마도 플레이어의 짓일 것이다. 천유강처럼 플레이어가 서큐버스의 본거지를 공격한 것이다.
본거지를 잃은 서큐버스들을 살 곳을 물색하다가 광산에 있는 산적들이 매혹 마법에 당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는 그들을 이용하기 시작한 거다.
“······좋아. 알았다. 하지만 이 광산은 내가 차지해야 해. 살려줄 테니 너희는 다른 곳으로 가라.”
레벨이 700이 넘는 서큐버스를 잡는다면 천유강에게 많은 경험치와 포인트를 줄 테지만 차마 그녀들을 죽일 수 없었다.
더욱이 큐아라는 서큐버스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현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린아이를 해치기는 싫었다.
하지만 서큐버스 큐아는 당당하게 말했다.
“갈 곳이 없다.”
“뭐?”
뒤에서 참다못한 한 서큐버스가 튀어나오며 말했다.
“갈 곳이 있으면 이런 곳에 숨어있겠냐 멍청아!”
“······.”
천유강이 무표정하게 쳐다보자 그 서큐버스는 다시 사색이 돼서 뒤로 물러섰다.
“히익!”
그녀들의 생사가 천유강의 손에 달려있다는 걸 까먹었던 것 같았다.
“하아~ 할 수 없네.”
***
“켈켈켈~ 그래서 이리 데려왔다는 겁니까?”
“그래.”
“흠~”
켈타스는 아직 이곳이 낯선지 경계를 하는 서큐버스들을 품평하듯이 위아래로 쳐다봤다.
“나쁘지 않습니다. 서큐버스의 보조마법이라면 주인님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정에 레벨 700의 유닛이면 감지덕지죠.”
“그렇지?”
“네. 점거한 곳이 광산이지 서큐버스 본거지가 아니라서 서큐버스를 생산할 수는 없겠지만, 저것들을 잘 굴리면 영지에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문제는 주인님 지배력이죠.”
“그녀들을 다 데려오면 지배력이 바닥나겠지?”
“그렇습니다.”
엠블럼과 아이템으로 매력 스탯을 늘려봤자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매력 스탯이 필요했다.
“알겠어. 일단은 두고 보지.”
“당장 지금은 지배력이 필요 없지만 이제 슬슬 결단을 내리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저 꼬마 서큐버스 말입니다.”
“큐아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아직 어리지만 서큐버스 퀸 종족입니다.”
“알고 있어. 그런데?”
“서큐버스 퀸 종족은 흔한 종족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름도 있는 네임드입니다.”
“그것도 알고 있어.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녀를 각인시키시지요.”
“각인?”
아이템과 마찬가지로 NPC도 각인이 가능했다.
이 베타 테스트 룰에 따르면 다른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의 영지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플레이어를 제외하면 각인된 병력들만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각인된 NPC는 사람처럼 현실에도 나올 수 있어서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다만 아이템보다 각인할 때 들어가는 포인트가 몇 배로 많이 들어가는 문제가 있어서 이제까지 NPC 각인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병력을 각인시킬 때 들어가는 포인트는 그것의 레벨과 종족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런데 큐아라는 서큐버스는 서큐버스 퀸이라는 높은 종족 값은 가진 데 비해서 레벨은 겨우 15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 레벨이 높아지기 전에 지금 각인을 시켜놓으면 여러모로 주인님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허~ 큐아라는 꼬맹이가 도움이 될까?”
“물론 지금은 쓸모없지만, 레벨이 올라갈수록 점점 그 진가가 발휘될 겁니다. 지금 저 서큐버스를 데려온 건 운이 아주 좋은 겁니다. 주인님.”
“알겠어. 켈타스의 뜻대로 할게.”
“켈켈켈. 이 늙은이의 말을 경청해주시니 정말로 영광입니다.”
“그런 말 하지 마. 나보다 켈타스의 말이 정확할 거 아냐.”
“그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하고 서큐버스들을 불렀다.
“내 밑으로 들어온다면 이곳에서 머물게 해주겠다.”
하지만 천유강의 말에도 서큐버스들은 시큰둥했다.
“여기? 아무것도 없잖아?”
서큐버스는 지금은 광산에서 와서 흙먼지로 뒤덮여 있지만 원래 곱게 자란 자들이다. 그런데 이곳은 막 지은 전초기지라서 아무런 시설도 없다. 그래서 서큐버스들의 반응이 좋지 않은 거다.
하지만 천유강에게는 성이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내 성이 있다. 그곳에서 머물게 해 주마.”
“성?!”
성이라고 말하니까 서큐버스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먼지 나는 광산보다는 낫겠지.”
“목욕한 지가 벌써 며칠이야?”
“이러다가 시집도 가기 전에 피부 다 상하겠네.”
이번에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듯 수다가 많아졌지만 바로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천유강이 마지막 통보를 건넸다.
“이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쫓아낼 거야.”
그 말이 결정적이었는지 서큐버스들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 갈 거라고.”
“그럼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수하다. 동의하나?”
“동의해. 동의한다고.”
「유니크 유닛 큐아가 천유강님의 세력으로 들어왔습니다.」
「서큐버스 20명이 천유강님의 세력으로 들어왔습니다.」
“좋아, 아직 빈방이 많으니 원하는 데를 써도 좋아.”
“진짜? 이제 방이 생기는 거야?”
“단 2인 1실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서큐버스들이 앞다투어 달려나갔다.
“2층 침대는 내 거다!”
“난 창가 방.”
그렇게 서큐버스들이 휘하로 들어왔고 모든 소동이 끝나는가 싶었을 때다.
갑자기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혹시 누가 쳐들어왔나?”
지금은 초보자 보호 기간이라서 직접 싸울 수는 없지만 천유강의 주변 시설은 다른 이들도 얼마든지 점령할 수 있다. 그러니 강대한 적이 나타나면 방금 먹은 금광도 뺏길 수 있다.
하지만 나타난 건 정찰을 나갔던 화염 임프들과 그들에게 잡혀있는 어떤 백인 소년이었다.
“이거 놔!”
“넌 뭐지?”
“에엑! 플레이어였어!”
잡혀 온 소년도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였는지 한눈에 천유강이 플레이어인 것을 알아봤다.
“죄, 죄송해요! 전 이 임프들이 이곳 소속인 줄 정말 몰랐어요. 알았으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너도 플레이어인 건가?”
“네! 저는 집에서 토끼 같은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전 꼭 돌아가야 해요. 제발 살려주세요.”
“플레이어인데 이 임프들한테 잡혔다고?”
이 임프들은 레벨이 고작 100이다. 물론 보통 임프보다 레벨이 높고 켈타스의 특성인 ‘뛰어난 관리자’의 버프를 받아서 15% 능력이 향상되었지만 거기서 거기다.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 정도 되는 자들이 질 임프가 아니다.
“레벨이 몇인데?”
“······110이요.”
“110?”
어이없을 정도로 낮은 레벨이다.
“살려주세요. 전 포인트도 없단 말이에요.”
그 소년은 죽을 거라는 생각에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가 다른 베타 테스트 플레이어를 잡으면 그가 이제까지 얻었던 포인트와 아이템을 모두 가지게 된다.
이 소년이 정말로 포인트가 없더라도 최소한 튜토리얼 때 얻은 각인된 유니크 급 아이템은 있을 거다. 그러니 소년은 천유강이 자기를 살려주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천유강에서 나온 말은 소년의 입장에서도 뜻밖이었다.
“놔줘.”
“키킥! 알겠습니다.”
소년을 잡고 있던 화염 임프는 명령을 듣자마자 바로 놓아주었지만 켈타스는 펄펄 뛰었다.
“아니 주인님 이러게 놓아주시면 안 됩니다. 이곳이 발각되면 저놈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요. 당장 죽여야 합니다.”
자신을 죽인다는 말에 놀란 소년이 무릎을 꿇고 빌었다.
“아니에요. 전 그럴 생각도 그런 능력도 없어요. 지금도 이 임프들한테 잡혀 왔잖아요.”
“이놈이 안 쳐들어오더라도 누구한테 말할 수 있어요. 다른 플레이어한테 잡혀서 고문당하면 술술 불 것이란 말입니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켈타스의 말이 포인트와 아이템의 문제를 뒤로하더라도 혹시 소년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아직 정비가 안 된 천유강의 영지는 쑥대밭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조금 잔인하더라도 소년을 죽이는 것이 현명하다. 아니면 감옥에 넣기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천유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어린 소년이다. 풀어줘.”
자신은 세계적인 영웅인 풍신의 아들이다.
비록 현실 세계가 아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저항도 하지 않는 어린 소년을 죽이거나 억압할 수는 없다.
위상을 드높이지 못할망정 아버지 이름의 한 점의 오점도 남길 생각 따위는 없다.
그게 천유강을 이제까지 이끌어온 힘이자 신념이다.
“하지만······.”
“켈타스. 부탁이야. 그냥 놔줘.”
단호한 천유강의 말에 켈타스는 끙하고 앓는 소리는 내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종복이 된 자로서 더 반대할 수 없죠. 알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어서 썩 꺼져라! 다시 한번 이곳을 기웃거린다면 내 크게 경을 칠 것이야!”
“감사합니다.”
소년은 자기도 살아날 줄 몰랐다는 듯이 계속 고개를 숙이면서 조아리다가 이내 부리나케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