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과 헤어진 천유강은 나무 뒤에 은밀하게 숨어서 길을 지키는 병사들을 지켜봤다. 거대한 장벽을 둘러싸고 병사들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다.
“도대체 병력을 얼마나 동원한 거지?”
영지를 지켜야 하는 모든 병력을 동원한 거 같다. 장벽 안팎에는 나무 같은 몸을 숨길 수 있는 구조물이 모두 제거되어 있고 감시탑도 높아 도저히 몰래 들어갈 방도가 없어 보였다.
몰래 잠입하는 것이면 낮 보다 밤이 조금 더 낫지만 어두워지면 병사들의 경각심도 더 오를 거다. 차라리 지금처럼 수도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주변을 서성거리는 때가 적기다.
“좋아. 방법은 있을 거야.”
기초적인 은신술과 잠입술에 대해서는 안다. 사실은 아는 정도가 아니라 전문적으로 배운 이들을 제외하면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천유강도 병사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주시하고 있는 곳을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건 무리다.
방법이 있다면 역시 마법이다.
상인들과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테드가 준 마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해보았다. 테드는 5서클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지만 현재 천유강의 마나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그리 많지 않다.
공격 마법은 쓸모없다. 현재 지능으로는 파이어 에로우를 쓰느니 차라리 진짜 활을 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거다.
‘땅굴은 말도 안 되고 강물도 물살이 너무 빨라.’
병사가 포진한 거리는 눈대중으로 봐도 300m가 넘는다. 플라이 마법도 사용할 수 있지만, 대낮에 날기 시작하면 더 눈에 띌 거다.
가능한 건 딱 하나다. 투명 마법.
문제는 가진 마나의 양으로는 병력들의 눈을 속일 만큼 충분히 멀리 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험해 본 결과 투명화하고 7초가 지나면 효과가 풀린다.
‘숨을 곳이 있다면 감시탑 바로 아래 공간.’
감시를 늘리기 위해 원래 있었던 감시탑 말고도 새로운 감시탑을 여기저기 설치했는데 급하게 만들어진 탓에 조잡했고 그래서 숨을 공간이 생겼다.
투명 마법도 만능은 아니다. 완전히 투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희미해지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희끗희끗하게 사람 형태가 나타난다. 그러니 마나 조절도 중요하지만 지나가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이 금화는 역시 나랑 인연이 없네.”
짤랑거리는 금화를 들고 저곳을 파고드는 건 자살행위다. 금화를 나무 밑에 묻고 주문을 외웠다.
“인비져블 클록(Invisible cloak)."
반투명해진 천유강은 최대한 그늘을 이용해 병사들 사이를 침투했다. 투명 마법을 외운다고 발소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 나지 않게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관건이다.
감시탑 아래 들어가서 마법을 해제한 뒤 다시 마나를 채우고 다음 감시탑으로 이동하는 것을 반복했다.
병사들이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피가 마를 지경이다.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누가 들을까 봐 가슴을 부여잡고 숨만 골랐다.
발소리를 듣고 병사들의 위치를 계산해서 최대한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300m 움직이는 데 4시간이나 걸리는 중노동이었다. 이미 시간이 꽤 지나 하늘은 어둑해졌다.
이제는 다 빠져나가는 것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때다.
달칵!
발밑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리더니 시끄러운 알람이 사방에 울려 펴졌다.
위잉~~ 위잉~~
‘알람 마법?’
그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알람 마법이었다. 경비병을 피하고 안심할 때, 걸리게 만든 이중 트랩이다.
테드였다면 알람 마법을 감지하고 피하거나 해체했을 거다. 그의 마법은 가졌지만, 기억은 가지지 못했기에 간단한 마법에 당하고 만 거다.
“침입자다! 테드가 왔다!”
순식간에 경비병이 무기를 들고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당수는 말도 가지고 있어서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제길!”
죽을힘을 다해서 뛰기 시작했지만 뒤따라오는 기병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주변에는 왕도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었다. 물살이 거세서 수영 실력이 출중하지 않으면 오히려 뒤로 밀려날 테지만, 몸의 주인인 아스는 사냥꾼이다. 이보다 더 빠른 계곡에서도 자유롭게 헤엄치며 놀았다.
풍덩!
기병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강물로 몸을 던졌다.
“놈이 강으로 뛰어들었다!”
천유강이 떨어진 곳으로 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왔다. 최대한 몸을 돌려 피하려 했지만 팔다리에 스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상처를 통해 나온 피로 강이 붉게 물들었다.
“놈이 맞았다!”
“상처를 입었으니 얼마 가지 못할 거야.”
테드였다면 이 정도 상처를 입으면 병사들의 말대로 얼마 가지 못하고 물 밖으로 나와야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물속에 있는 건 아스의 육체를 가진 천유강이다.
고통은 참을 수 있다. 문제는 출혈이다. 사람이 아니라 물개라도 피를 철철 흘리면서 왕도까지 갈 수 없다.
‘일단 지혈해야 해.’
멀리 산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으로 가면 빙 돌아가게 되겠지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다.
깊숙하게 잠수해서 방향을 틀었다. 천유강을 테드라고 믿고 있는 병사들은 마법사를 상대하는 전략과 전술을 쓰며 수색의 방향을 잡았지만 천유강은 순수한 육체파다. 병사들의 생각을 뒤집고 넓은 강을 가로질러가기 시작했다.
‘이게 최상급 난이도란 말이지.’
이 정도가 최상급이면 특급은 얼마나 더 어려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약해지는 마음을 부모님을 생각하며 다잡았다. 현재 느껴지는 고통은 부모님이 겪은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다.
아직 실패한 것도 아니니 자책하기는 이르다.
물 밖을 나와서 조심스럽게 산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아다녀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지만 피를 많이 흘려서 체온이 급감했다. 모닥불을 피지 않으면 곧 저체온 증으로 쓰러질 거다.
“게임이 너무 사실적인 거 아냐? 하긴, 게임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늦었지.”
보라색으로 변한 입술을 떨면서도 모닥불을 바로 피우지 않고 골짜기를 찾아 헤맸다.
밤이 되었기에 온도와 기압 차이로 인해서 산 정상에서 골짜기로 바람이 부는 산곡풍(山谷風) 형성된다. 그렇게 되면 연기도 바닥에 깔려서 적들의 눈에 띄지 않을 거다.
마른 나무를 찾아서 겨우 불을 피우고 약초를 으깨 발랐다. 이걸로 응급처치는 끝났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상처가 곪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급격하게 밀려오는 피로가 더 문제였다.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최대한 밀어 넣은 천유강은 바로 곯아떨어졌다.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흙바닥이 아닌 흔들리는 무언가에 몸을 실은 것이 느껴졌다. 아직 제대로 된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슬그머니 손을 움직여서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아무 무기도 없어. 구슬도 없고.’
무장은 없지만 다행인 것은 몸이 포박된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자신을 쫓던 병사들에게 잡혔다면, 온몸이 포박되어 고문실로 향하는 중일 거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늙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났나 보군.”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려진 것이 느껴졌다. 할 수 없이 눈을 뜬 천유강은 침침한 시야로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천유강이 있는 곳은 놀랍게도 넓은 마차 안이었다. 푹신한 의자와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졌고 흔들림을 최소화하기 위한 마법진까지 그려져 있다. 이 정도로 좋은 마차는 왕국을 뒤져도 그리 많지 않다.
“괜찮으니 일어나게.”
말하는 남자는 전형적인 마법사 복장을 한 늙은 마법사였다. 그 옆에는 그의 제자들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앉아 있었다.
“자네의 이름이 아스지.”
“네.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십니까?”
“제자인 테드가 평소에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네. 병사들이 침입자를 놓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네가 사냥꾼인 것을 기억하고 인근 산을 샅샅이 뒤졌다네.”
일단 산을 찾기 시작하니 천유강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천유강으로서는 최대한 멀리 도망쳤지만 상처받은 몸으로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만약 더 꼭꼭 숨었으면 이들도 찾을 수 없었을 거다.
“참,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수석 궁중 마법사인 안리토스라고 하네.”
테드를 제자라고 소개할 때부터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의 직책이 아니다.
“테드가 구슬을 왕도에 가져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알고 있다네. 그가 마법 통신으로 중요한 물건을 확보했다고 했지. 그리고 일이 꼬여서 어쩌면 자네가 대신 갈 수도 있다고 했네. 헌데······.”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유강의 심장을 가리켰다.
“그 아이의 마나가 자네에게서 느껴지는군.”
“사실은······.”
천유강가 차마 입을 떼지 못하자 안리토스도 모든 상황을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게 되었군. 그러지 않고서는 자신의 마나를 남에게 줄 수 없지.”
그의 말에 같이 앉아 있던 젊은 마법사들도 입술을 깨물며 슬픔을 감췄다.
“저는 아직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들을 테드를 쫓고 또 죽인 겁니까? 테드도 왕실에 소속된 마법사가 아닙니까?”
그 말에 크게 한숨을 쉰 안리토스는 이해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제는 자네에게도 숨길 수 없겠지. 사실 테드는 비밀 임무를 지니고 외부에 파견되었네. 사실 소문만 무성한 이야기고 신빙성이 떨어졌기에 테드 혼자 갔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내가 직접 갔을 거야.”
“네? 무슨 소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지금은 사람들에게서 잊힌 고대 유적에 대한 소문이었다네.”
“네? 고대 유적이요? 고작 그것 때문에 테드가 죽은 겁니까?”
간혹 유적에서 수많은 금은보화를 발견해 해당 영지가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왕실의 마법사를 공격하는 건 반역 행위다. 그 어떤 보물을 얻는다고 해도 반역죄를 뒤집어쓰면 소용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안리토스는 고개를 저었다.
“고작이 아니라네. 그건 가공할만한 고대 병기에 관한 거야. 수백km 떨어진 도시를 손가락 하나로 멸망시킬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
“······예를 들면요?”
“왕성이지. 우리는 지금 왕국을 뒤엎을 수 있는 거대한 음모와 싸우고 있는 거네.”
천유강은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그가 자신에게 농담하는지 살펴봤지만, 다른 마법사들의 눈빛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불안과 공포가 공존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다는 말인가요?”
“그만한 힘을 얻는다면 누구라도 할 수 있지. 하지만 이번 상대는 최악이야. 레트헨 공작이 이번 음모에 가담해 있네.”
레트헨 공작이면 이 왕국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귀족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감히 반역을 꿈꿀 힘을 갖지 못했다.
“그럼 공작을 왕명으로 토벌하면 되잖아요?”
“정치란 게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야. 충분한 증거 없이 공작을 몰아붙였다간 다른 귀족들이 들고일어날 명분만 주는 꼴이 될 걸세.”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왕성이 터져나가는 꼴을 보고 있자고요?”
“물론 그건 안 되지. 그리고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네.”
“네?”
“자네가 가져온 이 구슬이 그 유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네. 이것이 없으면 유적도 그저 거대한 관광지 밖에는 되지 않는다네.”
안리토스는 천유강이 가져온, 그러니까 테드가 목숨 걸고 지켜낸 구슬을 손에 들었다.
“······그게 그런 거라면 당장 부수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게 가능하다면 테드가 부쉈겠지. 이건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라네. 부순다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근처 모든 것을 없앨 거야.”
“어느 정도의 폭발이죠?”
“아마 이 왕국의 지도를 다시 만들어야겠지.”
그의 말에 따르면 현대의 핵폭탄보다 더 위험한 물건이다. 그런 물건을 주머니 속에 덜렁덜렁 들고 왔다는 걸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다.
천유강의 질문은 왕도로 가는 내내 이어졌다. 천유강의 신분으로는 왕성에 들어가는 것이 무리지만 대마법사가 탄 마차를 검문할 만큼 간이 부은 경비병은 없었다.
마법사의 탑으로 들어간 천유강은 치료사들에게 치료를 받고 침대에 누웠다.
구슬도 무사히 가져와 음모를 막았다. 이 육신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균열을 클리어했다는 안내창은 나오지 않고 있다.
놓친 것이 뭐가 있는지에 대해 홀로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똑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그건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천유강의 허락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었다. 처음 보는 여성이지만 천유강은 한눈에 그녀가 누군지 알아봤다. 왜냐하면, 그녀의 미모는 테드의 편지에 묘사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백금발의 머리카락에 눈은 수정을 박아 넣은 것처럼 반짝였고 입술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딱 좋은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테드의 짝사랑 미네르바 왕녀였다. 왕녀를 알아본 천유강은 침상에서 일어서려 했다.
“괜찮습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상 저는 왕녀가 아니라 일개 마법사일 뿐입니다. 그렇게 예의 차리지 않아도 됩니다.”
“네, 네.”
천유강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누워있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미네르바는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당신이 유적의 심장을 찾아왔다고 들었습니다. 왕가를 대표해서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아까는 왕녀가 아니라고 했으면서 지금은 또 왕가를 대표해서 왔다고 했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그걸 지적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영웅적인 활약이 이 나라를 구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모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그 순간 천유강이 바라왔던 투명 알림창이 허공에 떴다.
《퀘스트 - ‘테드의 유산을 운반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지금 나가시면 달성된 만큼의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균열에서 나가시겠습니까?》
애매모호한 말이다. 지금 나가면 달성된 만큼의 보상을 얻는다는 말은 지금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 거다.
‘계속한다고 하면 또 이벤트가 남아 있겠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많은 위험을 넘겨야 했지만 앞의 위험은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거다.
절정에 오른 자신의 무공 지식이라면 어떤 위험이 있어도 쉽게 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균열의 위험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판단을 조금만 삐끗했어도 병사들에게 잡혀 교수형을 당했을 거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죽는다.
하지만 이대로 결말을 맞는 것이 찝찝한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아직 테드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아스의 심장이 아직 원한을 잊지 않았다.
“······테드가 해낸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운반만 했어요.”
“알고 있습니다. 테드는 저의 오랜 친구이기도 합니다. 테드의 가족에게도 충분한 보상이 돌아갈 거예요.”
테드를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도 슬픔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테드와 함께 지낸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짝사랑이었구나.’
죽는 전까지 테드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으리라. 그것이 테드의 사랑이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울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신다고 했죠?”
“그래요. 제가 들어줄 수 있는 건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건 결코 작은 보상이 아닐 겁니다.”
왕녀이자 마법사인 그녀의 말이다. 원한다면 평생을 놀고먹을 부나 어쩌면 귀족 작위도 얻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천유강이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진짜 마법사가 되고 싶습니다.”
테드의 마나가 아스의 몸의 마나 회로를 강제로 열었다. 이제 조금의 노력이 더해지면 진정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다.
어느덧 천유강의 눈에는 아스의 분노가 담겼다.
“테드의 복수는 제 손으로 이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