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비틀거리며 걷다 넘어지자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막 걷기를 배웠음 직한 아이는 엄마의 손길이 와 닿지 않자 더 큰 울음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외침에 묻혔다.
"여보, 민우 아빠! 여기예요!"
"할아버지!"
“아이고, 저기 우리 창배도 나오네!”
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낯익은 얼굴이 보이자 구치소 출입문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창배야, 이놈아! 이게 뭔 일이냐? 그래 몸은 괜찮냐?”
“……네. 괜찮아요.”
“내가 살다, 살다 별일을 다 본다!”
“아, 뭣들 해?, 어서 두부 먹이지 않고!”
창배 아버지의 말에 창배 형수는 그제야 생각난 듯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두부를 꺼내 들었다.
“자, 삼촌! 이것 드세요.”
“괜찮은데…….”
“형수가 챙긴 거야. 어서 먹어!”
“네…….”
창배는 형수가 건넨 두부를 받아 입에 두어 번 문지르듯 삼키곤 비닐봉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창배야, 그동안 고생 많았다. 어디 아픈 데는 없었냐?”
“새끼, 너 때문에…….”
창배는 힐긋 윤수를 노리듯 쳐다봤다.
“어휴 새끼, 아직도 그 성질머리하고는……. 혁주하고 같이 오려고 했는데 못 왔어. 혁주가 연락들을 했으니 곧 자리를 마련할 거야.”
창배 부모님 옆에 서 있던 윤수가 뻘쭘해서 하며 말했다.
“아이고, 참 이게 무슨 일이냐? 모처럼 네가 잘 나간다 했는데……. 그럼 네가 사장하던 그 회사는 이제 홀라당 다 망한 거냐?”
“그렇게 됐어요.”
“그만해. 애, 속상할 텐데, 뭐 하러 그런 걸 묻고 그래?”
“괜찮아요.”
“그런데, 너 국회의원 집 딸하곤 어떻게 된 거냐. 그것도 그럼 다 끝난 거냐?”
“…….”
“그래. 대답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좋다. 하긴…… 그 집도 이제 네가 빈털터리가 됐는데, 다 끝났겠지. 우리가 언감생심 턱이나 되겠냐. 잘 됐다. 그냥 형편대로 살자.”
“당신이야말로 인제 그만 해요. 애, 속상하다고 나 보곤 그만하라더니…….”
“이 여편넨, 무슨 말을 못 하게 해.”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죠. 가자, 창배야. 참, 윤수! 너는 어떻게 할래? 너도 우리 집으로 갈래?”
“아닙니다, 형님. 창배랑 어른들 모시고 어서 가세요. 창배는 나중에 보죠, 뭐. 가라, 창배야! 곧 연락할 게. 정아 씨 얘기는 그때 하자.”
창배의 입에서 정아 이야기가 나오자 창배는 힐끗 윤수를 바라다봤다.
***
“자, 창배야. 이것 받아라.”
집에 들어와 늦은 점심을 먹고 나자 창식이는 창배에게 통장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야?”
창배는 의아한 표정으로 형 창식을 바라다봤다.
“네가 말한 그 오피스텔 전세금 돌려받은 거다. 네가 준 돈으로 변호사 비용하고 다 쓰고 다행히 이 돈은 그냥 남게 됐다. 앞으로 네가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이걸 쓰도록 해라. 미안하다. 형이 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긴……, 그거 얼마 되지도 않아. 그냥 형이 써. 그동안 나 때문에 애 많이 썼잖아.”
“그래 아범아, 창배 말대로 얼른 집어넣어라. 네가 차린 학원이 아직 돈 들어갈 곳이 많다면서. 그 돈이야 얼른 벌어 갚아 주면 되지, 뭐.”
“학원을…… 차려요?”
창배는 의아한 표정으로 창식의 얼굴을 바라다봤다.
“그래, 사실…… 너한테 아직 얘기는 안 했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장사를 하면서도 늘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마침 동네에 급하게 나온 학원이 하나 있어 저질렀다.”
“돈은 어떻게……?”
“그동안 모아 놓은 것하고 가게 권리금 받은 것 합해서 그럭저럭 됐는데 아직 학생 수가 적어 선생님들 월급하고 한 몇 달은 돈이 계속 들어갈 것 같다.”
“…….”
“창배야, 너는 앞으로 뭘 할래?”
“참, 아버지도 오늘 나온 애한테 뭘 그런 걸 물으세요? 이것저것 정리할 일도 많을 텐데.”
“글쎄, 한번 생각을 해 봐야죠.”
“삼촌! 인수가 쓰는 방 치워 놨어요. 일단 불편하더라도 오늘부터는 그 방을 쓰세요."
"그럼, 인수는……?"
"인수는 인길 이랑 같은 방을 쓰면 되죠.”
“아니, 어디 원룸 하나 얻어 나갈 거니, 저한테 신경 쓰지 마세요.”
“나가긴, 어딜 나간다고 그래! 네 집에 와서. 이제 장가가면 아주 나가 살 텐데, 여기서 빨리 자릴 잡을 생각을 해야잖아.”
“……네.”
“창배야, 좀…….”
창식이 눈짓을 해 창배를 인수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 방이 어떤지 모르겠다. 네 형수가 너 나올 것을 대비해 도배도 새로 하고 저 침대도 새로 들여놓은 거야.”
“뭘, 그렇게까지…….”
“부담 갖지 마. 이 집도 사실 네가 산 거나 마찬가지잖아. 편안한 마음으로 있도록 해라. 그리고 네가 있던 유진 나노테크 거긴 이제 완전히 정리가 된 거냐?”
“나하고 상관없어. 다 끝났어.”
“더 이상 묻고 싶지 않다. 너나, 나나 잘 나가다 왜 한 번씩들 이렇게 꺾어지는지 모르겠다. 소주 한잔할래?”
“형은 학원 안 가?”
“뭐, 저녁이나 돼야지.”
“됐어. 안 마셔.”
“기운 내라. 그전에 너랑 서대문 어디 음식점에서 만나 삼겹살을 먹을 때 네가 칠천만 원이 든 통장을 건네주며 나를 위로했던 생각이 나는구나. 이제 그 반대가 된 것 같은데. 그때 네가 그 통장과 도장을 건네주며 나에게 했던 말 생각나니?”
“……?”
“왜, 그때 그랬잖아. 통장을 건네며 내가 미안해할까 봐 나중에 나 장가보내달라고 했던 거. 그땐 네가 내 동생이지만 참 미안하고, 고맙더라.”
“쓸데없는 말 그만해. 난 기억도 안 나.”
“아무튼, 걱정하지 마라. 잘 되겠지. 네 장가는 형이 꼭 보내 줄 게.”
“졸려. 나 잘 거야”
“그래, 피곤할 텐데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했나 보다. 참, 그리고 잊을 뻔했다.”
창식이는 문밖을 나가려다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서 열쇠를 하나 꺼냈다.
“받아라. 전에 면회 갔을 때 네가 얘기했던 그 대현 빌라 열쇠다. 들어가 보니 텅텅 빈 집이었어. 아무것도 없었어.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 몰라도, 아마 뭔지 몰라도 네가 착각했던 모양이더라.”
“……!”
“그 집 네 말대로 그냥 놔두긴 했는데, 뭐 하러 빈집으로 월세 내가며 놔두는지 모르겠다. 그럼 자라.”
창식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