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우려던 창배는 핸드폰의 벨 소리가 나자 귀찮은 듯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니, 사장님이 웬일이십니까?”
창배는 습관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봤다. 벌써 열두시가 돼 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전화를 한 사람은 기획실장인 조영기 사장이었다. 창배는 순간 언론에 뭐 난 게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상 없다는 보고를 떠 올리곤 일단은 마음을 놓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 지금이오? …… 알았습니다. 곧 가죠.”
창배는 조영기가 지금 회사에 있다며 바로 좀 나오라고 하자 몹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퇴근 시간 이후엔 웬만한 일이 있어도 연락 한번 않던 그였다.
더구나 목소리엔 감정을 억지로 절제하려는 의지가 엿 뵈긴 했지만 창배는 그가 술을 먹고 마음이 안정이 안 돼 몹시 흔들리고 있음을 간파했다.
‘조영기 사장이 지금까지 회사에 남아 나를 부르는 이유가 뭘까?’
통화를 하고 곧바로 출발해 사장실이 있는 14층에 도착하도록 내내 그 생각이 창배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걷는데 문이 열린 그의 방에서 나오는 빛이 어두운 복도를 희붐하게 비추었다.
“아니,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세요?”
창배가 안으로 들어가자 조영기는 원탁 테이블의 의자에 앉아 창배가 들어서는 걸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반이나 비워진 양주병이 놓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조영기는 말없이 창배에게 앉으라고 의자를 가리켰다. 창배는 그의 맞은편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다. 잠시 침묵이 창배를 서먹하게 만들었다.
“아, 정말 미치겠다!”
“…… ?”
조영기는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세우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 흔들었다.
“최 차장, 나 죽겠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말을 하십쇼, 말을. 정말 답답해 죽겠네.”
“내 쪽팔려 그런다. 씨발, 여자 하나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예? …… 여자요?”
“그래. 내 참, 이거 어디다 드러내놓고 얘기할 수도 없고.”
조영기가 풀어놓기 시작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창배는 단박에 그 상대가 박두호의 사촌 누나임을 어림잡아 짐작했다.
“그러니깐 그 상대편 여자가 10억의 위자료를 요구한다는 겁니까?”
“그래. 그년이 몇 번 만나 같이 즐겨놓곤 헤어지려니 깐 내일모레까지 그 돈을 내놓지 않으면 전 언론에 까발리겠대. 자기 집안 오빠 중엔 특수부 검사도 있다고 은근히 협박을 하는 거야. 쌍년 같으니, 그런 년이 어딨어!”
“그럼 계속 사귀겠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난 한번 정떨어진 년은 세상 다 줘도 싫어!”
창배는 조영기가 모델로 쓰려 한 여자애가 있기 때문인 것을 짐작했다.
“어떡했으면 좋겠냐? 변호사하고 의논하기도 그렇고. 그러다 만일…….”
조영기는 이 사실을 만일 집에서 아니, 그보다 아버지 조만호 회장이 알게 될 경우를 생각해 말하려다 그만 입을 다물었다.
가뜩이나 시원찮게 생각하는 데다 그룹의 기조실장 자리에 앉혀 놓았는데 이런 일이 터진다면 차마 생각하기조차 싫은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야, 최 차장! 네가 어떻게 나서 그년을 한번 만나 볼래? 넌 신문사에 아는 사람도 많으니 그년이 정말 자료라도 돌리게 되면 하다못해 기사라도 빼 달라는 부탁도 할 수는 있잖아.”
“그럼 사장님은 얼마면 협상을 하시겠습니까?”
“내가 아주 물린 셈 치고 그 절반이면 어떻게 해 보겠는데 그 이상은 못 해.”
조영기는 아버지 몰래 꼬불쳐 둔 돈을 풀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오억 선에서 해결만 되면 깨끗이 잊겠다고 생각했다. 설사 수고 비 조로 몇 천만 원이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럼 제가 한번 해 보죠. 그 년, 아니…… 죄송합니다. 그 여자가 아이리스 백화점에 있다고 했죠? 제가 내일 당장 만나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이건 일단 수고비로 쓰고. 그리고 이 일이 해결되면 내가 은혜는 잊지 않을 테니.”
조영기는 지갑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꺼내 창배에게 건넸다.
“그런데 절대 소문나면 안 돼. 알았지?”
창배는 내일 당장 그 여자의 사촌 동생인 박두호부터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창배는 박두호를 만나러 그의 사무실로 가기 위해 일부러 차를 놔두고 전철을 탔다.
충무로역에서 내려 박두호가 세 들어 있는 라이온스 빌딩으로 가기 위해 부지런히 대아빌딩 앞의 건널목을 건너던 창배는 우연히 신호에 걸려 멈춰 선 차 안에 자금부 직원인 이순옥이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이순옥이…… ?”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순옥은 그 남자와 한창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창배는 차가 인도 변으로 붙고 우회전 깜빡이를 켜 놓은 거로 봐서 이순옥의 목적지가 이 근방 어디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차가 우측 좁은 길로 꺾어 들어가자 길을 건넌 창배는 차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 최 차장님이 웬일이세요?”
창배가 박두호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두호는 뷰 박스 위에 광고 필름을 올려놓고 보다 창배를 보곤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이 좀 있어서.”
“누추하지만 이리 좀 앉으세요.”
박두호는 자기 책상 의자를 돌려놓았다.
“박 사장이 나 한번 도와줄 일이 생겼어.”
“뭔 데요?”
창배는 사촌동생이라 그 얘기를 꺼내기가 뭐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후 사정 이야기를 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창배의 염려와는 달리 박두호는 오히려 시원시원 이야기를 했다.
“제가 누나에게 그 얘기를 끄집어내 협조해 달라고 하기도 쑥스러우니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낫겠어요. 제가 모른 척하고 화성그룹 일이 갑자기 전부 떨어져 나갔는데 웬일이냐고 좀 알아봐 달라고 매달릴게요. 그러고 나서 바로 차장님이 누나를 만나면 되죠.”
“그래, 그러면 내가 오늘 저녁에 누나를 찾아가 만나도록 하지. 그러고 당신은 앞으로 우리 대외 간행물 제작 모두를 맡아 하도록 해.”
“정말이요?”
“그래. 타 업체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하라고.”
박두호의 사촌 누나 박희진은 서구형 미모에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리스 백화점 옆의 호텔 커피숍으로 불러내 창배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바로는 조영기가 이런 여자를 놓친 게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니까 최 차장님이 해결사로 나온 셈이네요.”
“뭐, 해결사라기보단…….”
“참, 월급쟁이 더럽군요. 이런 일에까지 간여를 해야 하니.”
“허, 그거 참.”
“제가 최 차장님을 만날 이유가 없어요. 사실 나오지 않으려다 우리 두호가 최 차장님이 많이 도와준다고 하길 레 나온 거예요.”
창배는 박희진의 얘기를 듣고 보니 갑자기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남의 부부싸움 한가운데 끼어들어 이쪽저쪽에서 원망 아닌 원망을 듣는 격이었다.
“막상 얼굴을 보니 사내답게 잘 생기셨네요.”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최 차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돈이나 바라는 그렇게 막 돼 먹은 여잔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 새끼 하는 꼴이 하도 치사해 그런 거예요. 이 와중에 내가 가게를 비운 사이에 어디서 새파란 계집애를 데리고 와 몇 천만 원어치 옷을 가져갔대요. 그것도 외상으로.”
“그 인간이 워낙 좀 그렇습니다. 오죽하면 창피한 것도 모르고 부하 직원을 이런 데 내보내겠습니까? 박희진 씨가 이해하십시오.”
“어떻게 이해를 해요? 남의 가슴에 못 박아 놓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일을 공론화시켜 봐야 박희진 씨에게도 좋은 건 없을 텐데, 적당한 선에서 이만 끝을 내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최 차장님은 혹시 제가 돈 때문에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저희 집에도 돈이 좀 있고 저도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고정 수입이 있어요. 돈 좀 있다고 사람 우습게 알려는 그 못된 근성을 한번 고쳐주려고 그래요.”
순간 창배는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잘하면 조영기가 내놓기로 한 오억을 자기가 그냥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발 저를 봐서 미친개에게 물렸다 생각하시고 그만 노여움을 푸십시오. 제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 정말이죠?”
“예……?”
“정말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실 거냐고요?”
“……무, 물론 입쇼!”
창배는 별생각 없이 말하다 갑자기 박희진이 반색을 하며 달려들자 당황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
“그게……뭐죠?”
“첫째는 이번 일로 화성그룹에서 우리 두호 일이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시고요.”
“뭐, 그거는 염려 마십시오.”
“그건 최 차장님하고 상관없이, 조영기 그 치사한 인간이 당장 일을 끊으려 할 텐데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절대 염려 마세요. 그러잖아도 이번에 그룹에서 발행하는 대외 간행물도 다 맡아서 하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좋아요. 또 다른 한 가지는 술을 한잔 사 세요.”
“……?”
“괜찮죠?”
“……그거야, 뭐.”
“그럼, 나가요, 우리.”
박희진이 일어나 창배의 팔짱을 껴오자 창배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조영기를 회사에서 만나고 늦게 정아의 집으로 가자는 둥 마는 둥 피곤해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려했던 것이다.
‘씨발. 난 웬 염복이 이리 많아’
창배는 속으로 생각하며 박희진에 끌려 바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박희진은 이곳에 자주 오는지 지배인은 박희진을 보자 깍듯이 아는 척하며 인사를 했다.
지배인이 안내한 곳은 조그만 룸이었다. 창배가 이렇게 작은 룸도 있나 싶게 커플 두 사람만을 위해 따로 꾸민 공간이었다.
“자, 이제부터 창배 씨는 제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야 해요.”
종업원이 주문한 술과 안주를 가져오자 박희진은 자기 앞 스트레이트 잔에 술을 따라 한 모금 입에 넣더니 창배의 입으로 가져왔다.
창배는 황당히 생각하며 박희진의 타액과 함께 섞여 들어온 술을 꿀꺽 삼켰다.
“자, 이제는 최 차장님 차례에요.”
박희진은 창배의 잔에 술을 따랐다. 박희진은 눈을 감은 채 입을 반쯤 벌리며 다가왔다.
‘이거 혹시 미친년 아냐’
창배가 속으로 생각했다.
몇 번 술이 입과 입을 통해 전해지자 술이 취하는지 부끄러움이 없어진 박희진이 이제는 창배의 품에 기대왔다.
“박희진 씨! 이제, 조영기 사장 건은 깨끗이 정리된 겁니다. 아시겠죠?”
창배가 한쪽 팔로 박희진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 해요. 저는 이제 머릿속에서 그 새끼는 깡그리 다 지웠어요.”
“앗싸, 좋아요, 좋아! 아주 잘 했습니다.”
“그런데, 참배 씨는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네? 아, 아닙니다.”
창배는 순간 조영기가 박희진에게 주기로 한 오억 원을 생각하느라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계세요.”
“으윽.”
창배는 갑자기 놀랐다. 전혀 예상치 않게 박희진이 자신의 바지 지퍼를 열더니 그 사이로 손을 넣어 자신의 물건을 끄집어냈다.
박희진은 창배의 물건을 두 손으로 감싸 잡았다. 곧 창배의 물건은 부풀어 올랐다. 박희진은 우유로 입을 헹구더니 허리를 숙여 창배의 물건으로 입을 가져갔다.
그러자 창배는 은근히 밖이 신경이 쓰였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부르기 전엔 절대 안 들어와요.”
마치 창배의 심중을 읽기라도 한 듯 박희진이 말하곤 다시 창배의 물건을 입안 가득 물었다.
‘그래. 깨끗이 다 잊자. 오늘 이 자리에서의 모든 일은.’
창배는 박희진을 번쩍 안아 자신의 무릎 위에 마주 앉혀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어 브래지어를 벗겨냈다.
그러자 박희진의 상체가 드러났다.
박희진의 몸은 의외로 거식증 환자 마냥 상당히 말라 있었다. 창배는 박희진이 음식이 아닌 남자들의 물건을 먹고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잠깐만요.”
창배가 박희진의 팬티를 내리려 하자 자세가 불편한 듯 박희진이 일어나 팬티를 벗었다.
창배는 박희진이 일어났을 때 앉았던 자신의 회색 바지 부위가 짙게 물든 것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