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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배니셔
작가 : null
작품등록일 : 2017.11.3

동경하던 영웅은 영웅이 아니었다.
평화는 더 큰 혼란을 위한 준비기간일 뿐이었다.
각성자라고 불리우는 인간과 다른 인간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기어나오는 전쟁의 망령들.
그 앞에, 각성자 소녀 홍세연이 서 있었다.

 
UNKNOWN 2
작성일 : 17-11-25 20:52     조회 : 18     추천 : 1     분량 : 8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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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전 세계 각성자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PMO라는 국제기관에서 산정한 세계 최상위권 각성자의 랭킹, AEG랭킹.

  1위부터 100위까지의 순위가 매겨진, 인간 범주에 넣기도 힘든 괴물들의 랭킹이다.

  그 중에서도 랭킹 2위 이건혁.

  옆에서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인상 좋은 청년의 모습을 보면 그런 정체를 떠올리기 힘들겠지만, 분명히 그렇다.

  하긴,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실제로 김연도 입만 좀 다물면 외모만큼은 정말로........ 아니, 이건 아니고 아무튼.

  “......”

  “......”

  어찌되었건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굳이 내게 말을 걸고 옆에 앉은 걸 보면 분명히 뭔가 이유는 있을 것일 터인데,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 나는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쓸데없이 넓게 펼치고 있다.

  내 무능이 전해져서 청장이 친히 갈구러 온 건가? 설마, 청장이 그렇게 한가할 리가 없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직접 그에게 ‘뭔가 볼일이라도?’라고 물어볼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답답함과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김연 밑에서 고생이 많지?”

  “네! 그렇습니다! 아, 아니, 아닙니다!!!”

  미친 X이. 정신 똑바로 챙겨라 홍세연.

  내 미친 실수를 본 이건혁 청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아하하....... 그렇게 신경 쓸 거 없어. 그 놈이 또라이인 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솔직히 만나자마자 총을 겨눈 건 사실이니 부정은 못하겠다. 그나저나 2달 동안 느낀 거지만 김연에 대한 평가는 지위고하 막론하고 참 일관성 있네.

  “........”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꺼낸 말일까? 여기서 내 직속상관, 자신의 부하의 뒷담화라도 듣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고 대답을 회피할 수도 없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질문을 이제 와서 받는 기분이다.

  그래도 방금 전의 말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선 영혼 없는 대답이라도 해야 한다.

  “아닙니다. 김연반장님은......좋으신....... 음........”

  “아, 미안. 곤란한 질문이었지?”

  곤란한 질문이란 걸 스스로도 인지하셨으니 다행입니다. 청장님.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내 대답이 말하기 곤란한 내용이란 걸 알고 있다는 뜻이잖아. 하지만...... 이렇게 결론이 나도 되는 걸까?

  여기서 내가 입을 다물면 김연은 부하로서 말하기 곤란한 상관이 되는 것 아닐까?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아닙니다! 그....... 김연 반장님은 충분히 베테랑이라고 불릴 만큼 실력을 갖추셨고 작전 중엔 충분히 전담청 대원, 아, 아니 반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셨습니다.”

  버벅거리며 꺼내본 말. 조금 미화가 들어가긴 했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분은 제 미숙으로 인한 위기상황도 수습을 해 주셨고.......어른스럽....... 아니 노련하신.......”

  왠지 말이 꼬인다. 깊게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있으니 당연하지.

  “.......그리고 저를 여러 번 구해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기에 대해 감사인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2년 전에는 그가 날 응급차량으로 데려다주자마자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대화 한 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땐 충격적인 첫?인상에 그 기억을 잠시 잊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나는 공장에서 정신을 잃은 후 누군가에게 옮겨져서 탈출, 그리고 병원신세를 졌고, 오늘 복귀한 참이다. 여기에, 이상하게 김연을 만나기가 힘들다.

  어제도, 오늘도 김연은 아침에 잠깐 나타나서 오늘 할 일을 던져준 뒤, 하루 종일 보이지 않았으니까.

  건혁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내 말에 대답했다.

  “그래도 그 녀석이 부하로부터 신뢰는 받고 있으니 다행이네.”

  “.......”

  신뢰일까?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나 봐. 그래, 그 녀석이 조금 성격이 파탄났어도 그렇게 꼬인 놈은 아니니 잘 부탁해.”

  성격파탄자라는 말과 꼬였다는 말의 의미 차이를 잘 모르겠는데요.

  왜 청장은 여기서 말단 직원 상대로 김연의 칭찬, 혹은 변호를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지. 성깔 더러운 놈이라 고생 좀 하겠지만 잘 지내 달라는 것?”

  여전히 청장의 김연 옹호는 이어진다.

  하긴 단순히 말단 대원을 독려하는 차원일지도 모르지. 대놓고 ‘네 직속상관은 개자식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좀 그러니.

  그런데, 애초에 왜 내게 말을 걸었을까. 당연히 청장이 내게 관심이 있다느니 어쩌니 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려는 건 아니지만, 말단에게 일부러 다가와서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묻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이건혁이 다시 내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김연이 구해줬다고 했지?”

  “아....... 네! 두 번, 아니 여러 번 김연 반장에게 도움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하....... 다들 꽤 놀라더라고. 그 불구덩이 속에서 그 김연이 축 늘어진 너를 안아들고 나온 게 다들 인상깊었나봐.”

  잠깐. 뭐?

  “네?”

  김연이 뭘 했다고?

  “응? 몰랐어?”

  젠장. 이 망할 인간 다른 대원들 앞에서 뭔 개짓을....... 그래, 날 구해줬으니 백 번 천 번 감사할 일이고 내게 불평할 자격은 없지. 그 방법을 가지고 내가 왈가왈부 할 자격도 없고 할 생각은 없지만 조금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나? 아니 뭐 그렇다고 거기에 대해서 따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왜 하필 그렇게 부끄러운 방법으로, 아, 제기랄.

  언제나 당황했을 때처럼 정리되지 않는 생각이 날뛴다. 입으로 옮긴다면 아무말 대잔치가 될법한 생각, 의식의 흐름처럼 난잡한 생각들이다.

  그때, 그 복잡한 머릿속을 한 번에 깨끗하게 할 법한 말이 들려왔다.

  “그래서, 첫 전투........ 아니, 첫 임무는 어땠지?”

  “........!”

  순간, 머릿속에서 김연이고 뭐고 모조리 사라졌다.

  그리고 그 날의 기억이 동영상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무능했던 나, 방아쇠의 감촉, 흩날리는 피와 두개골, 폭발, 화염과 비명, 공포가 지금 당장 겪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괜찮니?”

  “아, 저, 저는 괜찮습니다. 지난번엔 미숙했습니다만........”

  “아닐텐데?”

  청장의 여전히 목소리는 부드럽다. 그러나, 내 속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고개를 돌리니 이건혁의 부드러운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질문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건혁은 내 얼빵한 대답에 미소 짓는다.

  “목숨을 건다, 라는 말은 누구나 쓰지만 진짜로 목숨이 걸린 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사람은 많지 않지. 난 그 감상을 묻는 거야. 솔직한 감상. 무슨 대답이 돌아오든 내가 그걸로 뭘 어쩔 생각은 없으니 마음 편히 대답해줘.”

  왜 이 사람은 내게 그런 것을 묻는 것일까. 오늘 처음 보는 사이, 게다가 차관급의 지위를 가진 전담청 청장이 말단 대원에게 이렇게 까지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뭘까.

  “저, 어째서 제게 그런 걸 물으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건방져 보이는 대답이란 건 안다. 예의바른 말투라도 까보면 ‘왜 그런 걸 물어?’라는 의미이니까.

  “별건 아니야. 청장이 부하의 부하의 멘탈 케어에 신경 쓰는 것일 뿐.”

  “.......네.”

  그러나 수긍하지 못한 티가 확 나는 대답은 그에게 간파되었다.

  “이상한가 보네. 하긴 청장이 신입대원에게 이런 걸 물으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

  네,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의 선배행세지.”

  “선배행세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고수하고 있는 건혁은 잠시 땅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그리고 곧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각성자란건 후천성이든 선천성이든 각성자가 된 그 순간부터 사용가치가 정해진다고 볼 수 있지.”

  “.......”

  그건 그렇다. 나 역시 12살 때 각성 적합도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후, 각성자 관리국에서 온 사람들이 집요하게 아카데미 입학을 추천했었다. 물론 나는 주저 없이 입학을 결정했었고.

  그런데 그게 지금 왜?

  “나와 김연은 둘 다 선천성 각성이었어. 그리고 둘 다 같은 나이에 훈련을 받고, 전투에 나갔지.”

  “........”

  “그리고 우리 둘은 같은 PMC(민간군사기업)에 있었고.”

  “네??”

  그러고 보니, 김연은 용병이었지. 그리고 청장 이건혁도 전직은 용병이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우리들의 첫 임무 때, 그 무렵의 난 천재소리 듣던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오만하기까지 했거든.”

  “........”

  나 스스로 깨닫지 못했었지만 나도 그랬다. 아카데미 수석 졸업, 아직 B랭크지만 조만간 A랭크로 올라갈 것이 확실시 되는 미래의 엘리트. 그것이 내가 전담청 입단 전에 항상 듣던 칭찬이었고 나를 멍청하게 만드는 독이었다.

  “그리고, 김연과 함께 나간 그 전투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지.”

  건혁의 목소리가 잠깐 떨린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나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그냥 익숙해 졌지.”

  “익숙.......이요?”

  “응. 사실 우리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익숙해지는 것 외에는 답이 없거든.”

  그 말에 갑자기 김연의 말이 떠오른다. 건혁이 하고 있는 말과는 조금 다른 말이었다.

  ‘이유를 생각해라.’

  한편 건혁은 말을 계속 잇고 있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전투에 나간 각성자, 아니 병사가 하는 일은 결국 같아.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일이지.”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특히 우리 같은 용병들은 전쟁을 찾아다녀야 하는 족속들이어서 말이지.”

  “........”

  “그렇게 몇 년 살다보면 사람이 미치는 꼴도 자주 봐. 그냥 경비업무나 하는 영세업체라면 몰라도 위험한 분쟁지, 전쟁, 이런 곳을 찾아다니는 삶을 몇 년 살다보면 흔한 일이야.”

  나로선 잘 상상가지 않는 용병의 삶이지만 그가 하는 말이 어쩐지 공감되는 것 같았다. 건방진 소리일테지만 얼마 전 그 난장판에서 겨우 살아돌아왔다 보니 더 그랬다.

  “그렇게 오래 용병 일, 전쟁에 뛰어드는 짓을 하다보면 미치지 않기 위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더라고.”

  “둘 중 하나요?”

  “익숙해지거나, 이유를 찾거나.”

  “.......”

  “하지만 나는 어느 쪽도 좋다고 생각은 못하겠어.”

  “어째서 입니까?”

  그의 말에 집중하던 나는 철없이 그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괴물이 되거든.”

  “괴물.......이요?”

  “단순히 무식하게 강해진다는 말이 아냐. 사람을 죽이는 일, 파괴하는 일에 아무 감흥도 못 느끼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거지.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야.”

  그 말에 갑자기 그 날 보았던 선배들이 떠오른다.

  평소엔 그렇게 편하게 웃고 떠들던 이들이 총탄이 날아오고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곳에서 너무나 담담히 임무를 수행하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김연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나 손쉽게 병사들과 각성자들을 작살내면서도 유지하던 그 가벼운 태도. 그리고 무력화된 적을 S랭크 각성자의 각력으로 걷어차 터트리던 잔혹한 면모.

  그러나, 그들이 괴물인가?

  “정신의 마모를 견디기 위해 익숙해지면 그냥 생명을 끊는 일이 그냥 업무 비슷한 것이 되어버리지.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맥주 한잔으로 털어낼 그런 일.”

  “.......”

  “그렇다고 견디기 위해 이유를 찾아 그걸 버팀목으로 삼으면? 그건 더 위험해. 정당화가 시작되거든. 나는 이런 일을 해서라도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도 당연히 견뎌야 한다. 이런 식으로 시작한 정당화가 나중에 어떻게 미쳐 날뛰는 지, 나는 여러 번 보았어.”

  “하, 하지만....... 그럼.......”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그저, 선배들, 그리고 김연이 자꾸 떠올랐을 뿐이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익숙해진 괴물일까? 아니면 이유가 있어 자신을 정당화하는 괴물인 걸까?

  어느 쪽이건 나는 그걸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 내 절박함이 정해진 것인지, 건혁은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천천히 입을 떼었다.

  “........분명히 전담청의 목적 자체는 이 나라의 평화, 그리고 시민들을 지키는 일이지. 충분히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들을, 내 부하, 동료들을 괴물이라고 매도하고 싶진 않아. 그렇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어.”

  “네?”

  그렇게 쓸쓸하게 말하는 이건혁. 이런 그를 보고 있자니 잊을 것 같아서 되새겨 보자면, 이 사람은 전담청의 청장 아닌가?

  청장이 전담청의 존재에 회의를 갖는 건가.

  “하하....... 미안 인생 선배 흉내를 내보려다보니 이상한 소리까지 했군. 청장이 할말은 아니었지?”

  본인도 그것을 느낀 듯, 멋쩍은 웃음을 짓는 이건혁.

  그래 보기 좋은 웃음이긴 한데, 젠장, 머리가 더 어지러워졌잖아. 청장이 회의감을 느끼는 전담청이라니 이거 괜찮은걸까. 이런 곳에 있는 난 정말 괜찮은 걸까?

  처음부터 출세를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렸을 때 보고 자랐던 오빠의 훌륭한 모습, 그리고 나를 구했던 김연의 모습, 이 두 가지를 동경하여 들어선 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온 이곳은 내 꿈과 달랐고, 이제와선 청장조차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심란함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건혁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청장님께선 제가 어떻게 해야........”

  “내 의견보다는, 김연이 한 말이 궁금한데.”

  “네?”

  갑자기 여기서 왜 김연이 나오는 걸까.

  “어째서, 김연 반장님이.......”

  “나 역시 자네와 같은 경험을 했으니까. 김연과 같은 전투를 치루었고, 김연이 목숨을 구했거든.”

  “........”

  “그리고 그때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것도 그 녀석이었지.”

  혹시, 이건혁이 내게 말을 건 것은, 같은 경험을 한 자에 대한 동질감 때문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묻는 것도 이해가 간다.

  “반장님은....... 제가 하는 일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분명 대충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 대답을 들은 건혁은, 무언가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비슷하지만 다르군.”

  “네?”

  “아, 아니야.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이지.”

  나와 비슷한 무언가를 겪었던 자신의 과거라도 떠올린 거겠지?

  “저, 한가지 더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지?”

  “김연 반장은 제게 이유를 찾으라고 하고 청장님은 익숙해 지셨다고 하셨죠.”

  “그랬지,”

  “어느 쪽이 그나마 더 나은 것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내가 겪는 딜레마는 이거다.

  이 길을 가고 싶다면 익숙해져야한다. 두려움을 다스려야한다. 하지만 그런 피비린내 나는 일에 익숙해진다면 그건 그거대로 무섭다.

  내가 겨눈 총, 내가 당긴 방아쇠, 날아가는 탄환에 절명한 자가 흘리는 피가 떠오른다.

  사람을 죽인 떨림은 목숨의 위기 앞에서 손쉽게 사라져버렸다. 이유가 있어 누군가를 죽였다. 참 편하다면 편한 합리화였다. 정말 나 편한 대로 생겨나는 죄악감이었다.

  앞으로 난 얼마나 더 이런 것을 겪으며 살아가야하는 걸까?

  얼마 전 겪은 고통을 느끼는 것은 두렵지만, 이제 와서 내 길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익숙해지면 그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김연처럼, 그리고 그 이상의 목숨을 끊어 왔을 지도 모르는 눈앞의 이건혁처럼, 수많은 인간을 죽이는 삶을 살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을 지킬 수 있을까.

  이건혁이 방금 말한 것처럼 힘에서도, 그리고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인간이라 하기 힘든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때, 이건혁이 천천히 말을 꺼낸다.

  “어렵네.......이거.”

  “네?”

  “하하.......사실 나도 잘 모르겠거든. 이래뵈도 아직 25살이라서 말야,”

  아 맞다. 이 사람 김연과 동갑이었지.

  아,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말해줄 수 있어.”

  “네?”

  “사명감이든 명예든 뭐든 간에 명확한 한 가지를 갈망해서 이 길을 걷는 녀석들이 있지. 그런 녀석들은 생각외로 오래 못 견디더라고.”

  “......?”

  “이상한 일이지? 누구보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왔을 자들인데 말야.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도 그들이더라.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것은 생각보다 약한 동기라는 걸까?”

  결국 건혁이 내린 결론은, 익숙해 져야 하는 것이 답이란 걸까?

  “그것도....... 경험담이신가요?”

  그 말에, 건혁의 표정이 변한다.

  마치 의외의 질문이라는 듯, 혹은 새파란 신입이 청장에게 하기엔 너무 당돌한 질문이라는 것인지, 조금 놀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하하....... 글쎄 잘 모르겠어.”

  “네?”

  건혁은 시선을 돌려 하늘을 처다본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는 건지, 아니면 혼잣말인 건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정말로 흔들리긴 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거든.”

  그런 말. 무언가 의미심장하긴 한데 의미를 알 수 없으니, 그저 본인의 중얼거림이라고 생각하자. 괜히 그 말을 해석해보려고 하다간 내 머릿속만 더 복잡해 질 것 같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 할게.”

  “아, 네!”

  “김연을 잘 부탁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이건혁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자,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점심시간도 슬슬 끝나가니까.”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오늘 감사했습니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말했다. 건혁은 빙긋 웃고는 가볍게 손을 들어 답한 뒤, 내게서 멀어져갔다.

 

  그때의 나는 익숙해지는 것이 답이라는 건혁의 말, 그리고 자신이 싸우는 이유, 혹은 가치를 재보라는 김연의 말의 의미를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했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이유를 깨닫는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

  그리고 이 두 조언이 나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그보다 더 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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