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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미스테리클럽
작가 : 겨울뱀
작품등록일 : 2017.7.6

너를 만나고 싶어.

 
돌아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어(6)
작성일 : 17-07-17 21:06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8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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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섯 시 사십분. 유신고등학교의 저녁시간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교문 앞에서 삐딱한 자세로 서있던 단아와 은랑은 근처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불쌍한 후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빈은 갑작스럽게 나오라는 문자를 받고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갑작스럽게 일에 휘말려 일상에서 벗어난 후배는 그 나이 또래답게 자신이 뭔가 특별해졌다는 미묘한 우월감과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들뜬 것도 같고 착잡해 보이기도 하는 표정이었다.

 

 그 뒤를 작고 하얀 괴수가 아장아장 뒤따라왔다. 앞서 걸어가던 빈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것을 안아들고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후회하니?"

 

 은랑의 물음에 단아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이기적이니까. 괜찮아."

 

 그 담담한 대답에 은랑은 쓰게 웃으며 제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후회라면 지겹게 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던 중학교 3학년, 마지막 방학, 여왕의 대리인이 되던 그 순간부터. 시작은 그리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집 앞에 놓여진 물건으로 인해 정해진 길을 달리던 기차가 벗어나버렸다.

 

 여왕은 용과는 다르게 실체가 없다. 그것은 그저 성 안에 갇힌 강력한 힘의 덩어리일 뿐으로 인간을 통해 제 존재를 입증해왔다. 바로 그게 여왕의 대리인이며 지금은 바로 주단아, 자신이다. 여왕이란 건 힘의 본질이며 대리인은 그것을 빌려와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여왕은 실체도 뚜렷한 자아랄 것도 없으니 대리인을 여왕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그냥 그림이 예뻐 보였던 카드가 여왕의 매개체란 걸 알리가 없었고 생일선물로 사준 목걸이가 용의 매개체란 걸 알지도 못했다. 어쨌거나 그 순간부터 인생은 제대로 꼬이기 시작했다. 이 길의 끝이 대체 어디일지 쉽게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평화롭기만 한 일상엔 괴물이 나타났고 다른 이들은 보지도 못하는 존재에 자신이 정말 미쳐버린 건가 하는 두려움에 떨던 그 때. 자신은 저도 모르는 새에 두 번째 세계에 발을 내딛었고 곧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교육시키는데 한참 걸리겠네."

 "그래도 실전경험 만땅인 끝내주는 강사가 둘이나 있잖아."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서 눈치를 보는 빈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은랑이 낮게 탄식했고 단아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아, 저. 어쩐 일이세요?"

 "뭐긴, 너 공부시키러왔지!"

 

 발랄한 표정으로 말하는 선배의 모습에 빈의 표정이 불안하게 흐려졌다. 고등학교 저녁시간이 으레 그렇듯이 학교는 시끌시끌했다. 그 모습을 아련한 향수에 젖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단아는 빈의 품에서 발케를 빼앗아 안고는 당당하게 학교로 걸어 들어갔다.

 

 복실복실한 털뭉치를 쓰다듬으며 척척 걸어가는 단아를 안절부절 못하는 빈이 쫒았고 은랑이 피곤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과학탐구 동아리]

 

 익숙한 문 앞에선 단아는 다시금 감회에 젖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동아리가 어떻게 유지 된 거지?"

 "그냥…. 이름만 있는 유령동아리에요. 개발활동시간에 놀려고 친한 선배들이 있어서 들어왔거든요."

 

 단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잡이를 돌렸다. 달칵, 잠겨있었다. 열쇠 드릴까요? 빈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묻자 은랑이 그럴 필요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동아리실 갈 거 아니라서 괜찮아."

 "네?"

 "아까 공부하러 간다고 했잖아."

 

 잘 보고 배워. 단아는 그렇게 말하곤 문에 노크를 똑똑똑, 세 번하곤 말했다.

 

 [겨울 길을 열어주세요]

 

 그러곤 손잡이를 다시 돌리자 이번엔 거짓말처럼 잠긴 문이 열렸다. 그것에 놀라는 것도 잠시 이번엔 열린 문에서 나오는 찬바람에 그는 습관처럼 '헐'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무언가 하얀 것이 날아들었다. 얼굴에 붙는 건 새하얀 눈이었다. 괴물이고 뭐고 이건 또 뭐야. 굳어있는 그의 등을 은랑이 밀었고 그는 혼이 나간채로 문을 넘었다.

 

 "여기가 바로 두 번째 세계야."

 

 쿵, 하고 뒤의 문이 닫히는 소리에 빈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건 말건 단아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여긴 정확히는 겨울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지. 겨울 도서관은 이 두번째 세계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들이 남아있고 염화의 진 같은 괴물의 처리법 같을 정보들이 있는 공간이야. 미드워커들은 모두 여기서 자신의 존재와 괴물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게 되는 거야. 너도 미드워커가 되어서 조만간 여기 저절로 넘어왔을 건데 그냥 먼저 데려온 거야. 어쨌거나 공부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잖아?"

 

 단아는 얼굴에 내려앉는 눈에 인상을 찡그리며 눈길을 걸었다. 겨울 길의 날씨는 눈이 내리지만 그렇게 많이 내리지도 않고 바람도 세진 않다. 정말 드물게 거센 눈보라가 불 때도 있는데 자신이 실제로 본 건 딱 두 번 뿐일 정도다.

 

 높은 구두굽이 눈길에 푹푹 빠지니 뒤뚱뒤뚱 걷는 꼴이 되었다. 그 모습에 뒤에서 걷던 빈과 은랑이 낄낄대며 웃었다. 빈은 이제 판타지컬하게 진행되는 현실에 적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나보다. 자신과 친구들도 그랬다. 처음의 경악은 사라지고 점점 어떤 일이 일어나지 놀라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멘탈을 가지게 된다.

 

 조금 걷자 저 앞에 새하얀 눈 속에 갈색의 대저택처럼 보이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빈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느끼곤 서서히 건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건물로 향하는 길은 일자로 쭉 뻗어있는데 너비는 기껏해야 1m도 채 안되어 보이고 심지어 양 옆으론 낭떠러지였다. 아득한 저 밑에는 멋대로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바위가 있는 험난한 협곡이었다.

 

 "여기가 겨울도서관이야. 멋지지?"

 "이걸 건넌 다구요?"

 "걱정 마. 오늘은 날씨도 좋네!"

 

 은랑이 걱정 말라며 빈의 등을 팡팡 후려쳤다. 빈은 그 손길에 휘청거렸다. 단아는 사뿐한 걸음으로 눈을 푹푹 찍으며 앞서 걸어 나갔다. 10월이니 옷이 조금 두꺼워서 망정이지 춥긴 추웠다. 어깨를 움츠리고 품 안의 발케를 더욱 껴안았다. 주제에 쓸모도 있네.

 

 "왜 백구를 안고가나 했더니 여기가 추워서 그런 거죠?"

 

 그 모습을 본 빈이 몸을 덜덜 떨면서 툴툴거렸다. 백구? 앞서 가던 단아가 몸을 돌려 물은 말에 빈은 발케를 가리키며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그냥…. 강아지 같아서요."

 

 두 여자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무섭다고 살려달라고 문자하더니 그새 귀여워졌어?"

 "악! 놀리지 마세요!" 은랑의 놀림에 빈이 얼굴을 붉힌 채로 소리를 질렀다.

 "그나저나 여기도 참 오랜만이네."

 "에, 자주 안 왔나봐요?"

 

 단아의 중얼거림에 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 그럴 일이 있었어."

 

 침묵하는 단아를 대신해 은랑이 대답했다. 급격히 뭔가 냉랭해지는 분위기에 빈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했다. 눈치는 없는 게 아니라서 입을 다물고 걸어가는데 갑작기 강하게 불어온 바람에 휘청이기 시작했다.

 

 "어, 어?"

 

 휘청이는 몸에 빈은 제대로 서려 발을 움직이려 했고 그 순간 길 가장자리로 밀려나 떨어지기 시작했다. 헉, 하는 순간 은랑이 빈의 손을 잡았지만 건장한 17세 남학생의 무게를 여자가 버텨내긴 무리였다. 단아가 째지는 비명을 질렀고 빈의 몸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일차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맹렬한 추위가 피부를 관통해 심장까지 얼려버릴 듯 파고들었다. 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렇게 죽는 걸까?'하는 생각이 든 것과 갑자기 추락하던 몸이 멈춘 것은 거의 동시였다. 살며시 눈을 뜨자 허리에 새하얀 사슬이 감겨있었다.

 

 "괜찮아?"

 

 단아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 살았다, 살았다. 빈은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제부터 나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우습게도 이건 현실이였다. 빈은 손을 뻗어 힘겹게 쇠사슬을 잡고 몸을 똑바로 했다. 아득한 아래가 보왔다. 새하얀 사슬은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빈은 사슬을 꽉 잡았다. 이건 생명줄이었다. 심호흡을 몇 번 한 그는 숨을 들이키고 크게 소리 질렀다.

 

 "괜찮아요!"

 

 몸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은 빈은 깍아지를 듯한 낭떠러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건…."

 

 건물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그는 할 말을 잊고 그 장대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정하게 나누어진 칸과 빼곡히 들어선 책들. 이 길은 길이 아니라 거대한 책장이었던 것이다. 칸마다 섬세하게 세공된 문양과 갖가지 색의 표지를 가진 책들의 방대함은 순간 찾아왔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단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ㅡ여기가 겨울도서관이야, 멋지지?

 

 길을 건너기 전 단아가 한 말이 그제 서야 이해가 갔다. 저기 위에 선 건물만 도서관인 게 아니라 건물로 향하는 길도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다시 위로 끌어올려진 빈은 다짜고짜 단아에게 뺨을 맞았다.

 

 "조심해야 할 거 아니야!"

 

 씩씩거리며 소리치는 단아의 모습에 빈은 울컥했다. 자신은 죽을뻔 했는데 뺨까지 얻어맞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게다가 자신이 미드워커가 된 건 단아 때문이지 않았는가. 뭐라 항변하려던 그는 새하얗게 질린 단아의 얼굴을 보고 그만 입을 다물었다.

 

 "…미안해."

 

 단아는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려 건물을 향해 걸었다. 어쩐지 머쓱해진 빈은 단아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 저도 미안해요, 선배."

 

 어째서인지 그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들은 단아가 우뚝 멈춰서더니 다시 걸어갔다. 한숨을 내쉰 은랑이 그런 빈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은 새파랗게 변해있었고 새하얀 사슬이 너저분하게 주위에 남아있었다.

 

 "감사합니다."

 

 빈이 고개를 꾸벅 숙였고 은랑이 다음부턴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그의 등을 두드려준 은랑의 눈은 다시 새까만 색이었다. 사슬도 어느 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가자, 네가 좀 이해해줘.' 은랑이 말을 끊었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단아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니까."

 

 

 

 "아…."

 

 단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었다. 비명처럼 나오는 외침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불분명한 울음만 쏟아졌다.

 

 괴물은 강력했다. 여태까지 대면한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두 발로 선 검은 괴물은 한 손에 든 창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포효했다. 은랑이 괴물을 사슬로 붙잡자 그것은 도리어 사슬을 휘어잡아 은랑을 내동댕이쳤다. 그 충격으로 기절한 은랑을 향해 거대한 창을 내리찍으려는 괴물을 '기사'가 막아섰다.

 

 대치는 힘겹게 이어졌다. 놈은 너무나 강력했고 당장 쓸 만한 마법들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괴물의 막강한 힘이 두렵다. 저것이 나를 죽일 거야. 지독한 공포가 스스로를 좀먹어 갔다. '문지기'가 어깨를 거세게 흔들며 뭐라고 소리쳤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멍청하게 서 있는 자신에게 '문지기'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ㅡ를 데려와!'

 

 그제 서야 주위의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현실이 재빠르게 자각된다. 단아는 고개를 끄덕이곤 후들거리는 발을 내딛고 달리기 시작했다. 허름하고 인적 없는 공터를 벗어나 광대가 기다릴 학교 뒷산으로.

 

 겨울도서관 안쪽에서 찾은 책에 서술되어있는 새로운 마법을 실험해보고자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은랑과 문지기, 기사를 만났고 함께 약속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그 때. 놈은 나타났다.

 

 번화가에 들어섰다. 저쪽에선 제 친구들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데 네온사인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의 저녁은 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즐거움이 가득하다. 이건 불공평해. 맹렬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눈물이 되어 눈앞을 가렸다. 우린 빌어먹게도 당신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어, 아무도 모르는 싸움을 이어가는 게 우리들이야.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단아는 점점 숨이 차서 입술을 깨물었다.

 

 '어머, 단아 아니니?'

 

 그 때, 그녀가 단아의 팔을 붙잡았다. 언제나 그렇듯 희미하게 미소 지은 얼굴로.

 

 단아는 재빨리 그녀의 팔을 떼어내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은 광대에게 가는 게 우선이니까.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친구들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네온사인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 폐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과 두려움에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다 왔다. 그대로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내쉬며 광대의 모습을 찾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야, 어디 있어? 대답해!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어쩌지, 어쩌지? 일단 다시 돌아가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얘, 무슨 일 있니?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않고…. 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

 

 그녀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왔다. 뛰었는지 가쁜 숨을 내쉬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녀가 당황하며 재차 무슨 일이냐 물어왔다.

 

 내 친구들이, 당신 아들이 위험해요.

 

 차마 뱉지 못할 말을 씹어 삼키며 그녀에게서 한발자국 물러났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웃자. 그리고 광대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보자. 그렇게 생각하곤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은 전해지지 못했다.

 

 그녀의 뒤로 검은 괴물의 모습이 다가왔던 것이다. 단아는 그대로 몸을 돌려 산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경악한 표정으로 뛰어가는 단아의 모습에 중년의 여인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뒤쫒았다. 창을 든 커다란 검은 괴물이 제 몸을 쑤욱 통과해가도 그녀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미드워커가 아니다.

 

 어째서 저것이 여기까지 온 건지 단아는 혼란스러웠다. 설마 제 친구들이 어떻게 된 건 아닌가 싶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두렵다, 미칠 듯이 두렵다.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단아는 울음소리를 막으려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항상 손가락을 엉망으로 만드는 습관에 제 친구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입 안에 사탕을 물려주곤 했다.

 

 '차라리 담배라도 펴.'

 

 기사가 담배를 내밀면 문지기가 굳은 표정으로 담배는 독이라며 일장 연설을 펼쳤다. 멈출 줄 모르는 설교에 은랑이 귀를 막고 악 소리를 지르고 광대는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는다.

 

 두렵다, 그 모든 게 사라질까봐.

 

 어쩌면 죽었을지도 몰라, 전부. 그렇게 생각하자 끄윽,하는 신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단아야, 단아야!'

 

 여인의 목소리에 단아는 물고 있던 손가락을 입에서 떼었다. 어째서 여기까지 쫒아 온 거야. 발을 동동 구르며 나무 뒤로 고개를 흘끔 내밀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여인이 그녀에게 헐떡이며 다가왔다.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 정말 왜 그래? 응?'

 

 안도하려는 찰나 그르릉, 하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온 몸이 서늘하게 식는다. 그것이다. 아직 그게 여기에 있어! 미칠 듯한 두려움에 온 몸을 떨었다. 눈앞이 새까맣게 점멸했다가 새하얗게 터져나가길 반복했다. 귓가에 윙윙대며 여인의 목소리가 울리고 몸이 흔들렸다. 내버려 둬. 나 좀 내버려 둬요. 구해줘. 도와줘. 내버려 둬. 제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소음이 머리속을 가득채워갔다.

 

 그 순간.

 갑자기 여인의 몸 주위로 아름다운 물의 넝쿨이 찰랑이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이럴 순 없어.'

 

 투명한 유리세공품처럼 얼어가는 넝쿨과 어디선가 날아든 타오르는 불꽃의 나비.

 

 단아는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이 올라와 속이 메스꺼웠다. 여왕의 세례. 강력한 괴물에 두려움을 느낀 여왕은 여인을 미드워커로 각성하게 만들었다. 괴물에 대항하는 용과 균형을 조율하는 여왕. 여왕은 언제나 괴물의 개체가 늘어나면 본능적으로 미드워커를 만들어낸다. 세계의 의지가 깃든 존재해선 안 될 존재. 그것이 바로 여왕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진다. 왜? 왜 이런 거야. 내가 대체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해?

 

 '대체 뭐…!'

 

 여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고 곧 그녀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점점 벌어지는 입을 다물 줄 모르는 그녀를 붙잡고 단아는 소리쳤다.

 

 '아줌마, 뛰어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고요한 숲을 울렸다. 간간히 짜르르 울어대던 풀벌레마저도 깊이 몸을 숨긴 숲에 중년여성과 교복을 입은 소녀가 걸어갔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니?…아까 그 이상한 괴물은….'

 

 여인의 물음에 단아는 그저 죄송해요, 죄송해요를 반복하며 울음을 삼켰다. 자신 때문이다. 그녀는 여기서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빌어먹을 여왕의 본능이 그녀를 위험하게 만든 것이다. 교활한 년, 더러운 년! 단아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괴물은 내 목을 물어뜯겠지. 단아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혼란스러운 표정의 여인을 돌아보았다.

 

 계속해서 숲의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 유리할건 없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눈앞에서 친구들이 있던 공터가 아른거렸지만 곧 그것을 지워냈다. 다들 괜찮을 거야. 아마도 다들 기절해 있을 거야. 그리고 곧 자신을 찾으러 올 거야. 그럼 먼저 멋지게 저 괴물을 처치하고 기다리자. 환하게 웃으면서. 너무 늦게 왔다고 놀려도 주고.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진정된다. 괴물은 제 모습을 드러내며 누런 이를 보이며 웃었다. 여인이 꿀꺽 침을 삼켰고 단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줌마, 다시 산을 내려가야해요.'

 

 여인은 괴물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덜덜 떨리는 손을 한 번 맞잡아준 단아가 등을 떠밀며 돌로 나무에 '섬광의 인'을 새기기 시작했다. 마력을 손끝에서 발현시켜 인을 적는 방식은 괴물에 의해 막혀버려 어쩔 수가 없었다. 괴물은 단아가 하는 행동이 좀 전에 보았던 것처럼 제게 위협적이란 사실을 알고는 눈을 사납게 빛내며 돌진해왔다. 무언가 팟하고 터져 나오는 빛에 잠시 멈춰서 그르르 울음소리를 뱉어냈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을 그들이 온 길을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괴물이 뒤쫒아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단아는 뒤를 돌아보다 그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발을 접질렀는지 제대로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절망, 한 글자가 눈앞에 커다랗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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