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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작약과 함께 한 시간
작가 : 엘리엘리스
작품등록일 : 2017.6.27

한 여자의 이별로 인해서 우연과 악연이 겹쳐 만나겐 된 두 사람과 오래전의 인연이 만든 세 사람... 또는 네 사람의 이야기..

 
말 못한 그 남자의 사정, 그리고 립스틱
작성일 : 17-06-28 19:14     조회 : 34     추천 : 0     분량 : 8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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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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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진은 기분이 착찹하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자고 있는 하임이를 그져 바라본다.....

 

 착찹하면서도, 뭔가 행복하기도 한 자신에게 자괴감이 옅게 느껴진다.. 비열하다는 생각과 함께, 비열한건 가장 남자답지 못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잠든 하임을 지켜본다- ... 집에 도착한지는 10분이 넘었지만, 깨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왠지 하임이를 깨울수가 없어서..... 얼마만에 경계를 내려놓고 자는 잠일까...안봐도 알것 같아서.. 안본사이 수척해 진것 같다. 얼굴도 까칠해 보이고

 

 엉망진창으로 자란 머리를 질끈 묶었을뿐, 화장기 하나없는 하임이의 얼굴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직감했다. 아.. 김도하랑 헤어졌나 보다.

 

 목소리에 울음기가 묻어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소망이, 희망이.. 하임이를 불행하게 만든 것 같아 나는 마음이 따끔했다.

 

 하임이를 처음 만난 날- 난 5 살이었고 하임이도 5살이었다.

 

 부모님들이 친해서 우린 그렇게 친구가 됬다. 우리는 같이 모래 장난을 했다.

 

 그 아이는 작고 하얗고, 예뻤다..내 짖궃은 장난에 울지 않고 웃던 그 순간 그 아이는 내게 특별해졌다. 그 아이를 그저 지켜주고 싶었다.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았으니까 .

 

 어느 소설에 나오듯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봄에 사로잡힌 듯 따뜻하고도 온화했다.

 그 뒤로 우린, 쭉 함께였다. 다른 이유 없이 그냥 그대로-

 

 처음 남자친구가 생겼을때의 하임이도, 첫 구두를 살때의 하임이도, 첫 전시회를 할 때의 하임이도 같은 대학에 같이 붙었을때의 하임이도 , 모든 그 첫 순간들을 기억한다.

 하임이를 이성으로 생각했던, 이게 사랑인가.. 했던 순간이 어땠는지도 기억 나지 않을 만큼 오랜시간 동안 하임이를 많이 좋아했다.

 

 이 감정은..... 나에겐 이미 너무 오래 된 , 이미 사랑이 된 감정이었다.

 

 새삼스래- 아 사랑이구나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오랜시간 동안 결정된 감정일 뿐.

 

 하임이는 좀 둔하고 자기를 잘 못 믿는 아이였다. 내가 아무리 잘해주고 아무리 잘 챙겨줘도 하임이는 몰랐다. 그녀가 나를 정말 좋은 친구를 넘어 거의 남매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단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배신할수 없었다. 선은 극명했다.

 

 친구들은 말하곤 했다. "야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냐? 그리고 너 완전 걔한테 푹 빠져 있는거 다 티나는데 .. 걔가 모를리가 있냐?"

 그건 하임이를 몰라서 하는 말이였다. 그녀는 진짜로 몰랐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그런 그녀를 배신하고, 열심히 감추어 왔던 마음을 드러냈을때 우리가 공유 한 그 많고 아름답던 시간들이

 

 그녀에겐 그저 , 퇴색된 , 혹은 내가 감춰 온 그 감정의 색깔들로 바래 버리는 추억이 될꺼란 생각에.. 나는 두려웠다.

 

 그녀가 날 안본다고 하는 것보다 우리 시간들이.. 추억이 빛바랜 추억이 되는게 싫었다.

 

 늘 그저 지금은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그녀가 원한다면, 그녀가 나의 자리를 자신의 곁에 원하기를 나는 바랄 뿐이었다.

 속절없는 기다림이었다. 나는 그저, .... 전하지 않아도 그녀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이것도 괜찮다 생각했다.

 

 때때로 그녀에게도 남자친구가 생기곤 했다. 그래도 나는 상관 없었다.

 

 아니, 신경쓰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이야기 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내가 친구 이상의 의미였으니까, 나 역시도 내 맘에, 내 영혼의 반쪽같은 존재였다.

 나는 나와 그녀의 사이를 믿었다. 그런 어줍잖은 자식들 때문에 그 하얀 볼을 발갛게 물들일 떄도, 그 홍조가 나에게서 비롯된게 아님을 알면서도...언젠간 , 언젠간 나의 시간이 올것임을 믿고 나는 그저 그 자리에 기다렸다.

 

 

 그러나 김도하는 달랐다. 나는 하임이 안의 내 존재감에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여지껏의 남자들과는 달랐다. 하임이는 정말, 그 녀석에게 깊게 빠져있었다.

 그런 뻔해 빠진 녀석에게....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웃음이 내 맘을 파고들었다.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 이 녀석과 결혼이라도 한다면 , 결혼이라니..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는데도, 하임이는 그 만큼이나 이 녀석을 많이 , 너무도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초조했다. 그래서 오히려 졸라서 김도하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녀석은 하임이 스타일 그대로였다. 우유부단해 보이고, 착해보이고, 순해 보이고- 말끔해 보이고.

 

 그러면서도 예민한 부분을 가진게 얼굴에서 보이는, 기민해 보이는 얼굴..

 

 처음부터 나는 조심스럽게 감춰 온 마음이 줄줄 새 나오는것을 막을수가 없었다.

 공격적이 되었다. 하임이를 다 아는것 처럼 말하는게 참을수 없이 거슬렸다.

 

 그래 하찮은 치기였을수도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결코 너같은게 뛰어 넘을수 없어, 난 그놈에게 말하고 싶어 참을수가 없었다.

 하임이가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비웠을떄. 나는 피크를 찍고 말았다.

 

 "우리 하임이- 얼마만큼 사랑하세요?"

 

 우리라는 말에 , 김도하는 순간 눈을 치켜뜨는듯 했다, 내가 바라보자 바로 바보같이 웃었지만 말이다.

 

 김도하는 수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글쎼요-... "

 아마도 뒤에 이을 말을 생각하고 있었을 터다, 하지만 난 이미 침착을 잃은 상태였다.

 

 

 

 말이 먼저, 말릴새도 없이 튀어나갔다.

 "글쎄라뇨- 하임인 되게 순수한 애에요- 그런 하임이한테 상철 준다면, 그때는"

 나는 언성을 나도 모르게 높였다, 조금 욱하고 말았다.

 

  상처는 무슨 상처? 그들은 한참 좋은 시기였다. 그런 이야긴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 김도하의 눈에는 남자만 느낄수 있는 눈빛이 보였다.

 나는 김도하에게 그토록 오래도록 조심하던 감정을 들켰다.

 당황감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들키고도 남았을 터였다.

 

 김도하는 아무렇지 않은듯 말을 이었다. 웃으면서

 

 "세진씨가 하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네요- 상처 줄 마음 없습니다.

 정말 친. 남매 같네요"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하나도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내 감정을 그만큼씩이나 드러낸 것이 다소 치욕스러웠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는데.. 또 기회를 놓쳤다는 패배감도 함께 느껴졌다. 나는 그날 하임이가 이상해 할 정도로 빨리 자리를 떴다.

 

 그 뒤 , 예상했던 대로 김도하가 주의를 준 것인지..하임이는 전화가 뜸해지고 목소리가 많이 달라진듯 했다.

 

 나는 짐짓 괜찮은 척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했다.

 하지만 속이 상했다. 우리의 시간은.. 아무리 친구였어도 그토록 깊고 오래되었는데... 사랑과 우정은 보낸 시간의 차이가 난다해도 이토록 농도가 다르구나 하는 것이 느껴져서..

 

 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얼마나 얽혀 있는가 , 얼마나 감정적으로 묶여 있는 가 하는 감정적 무게감의 차이였다.

 

  농도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보낸 시간이던 함께 보낼 시간이던.

 하임이 안에서 나의 입지는 절대 바뀌지 않을꺼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래봤자 나는 친구였고- 그는 애인이었다. 바뀌지 않는.. 사실.... 그때 즈음 난 유학을 고려했다.

 감정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임이를 포기하는건 아니라고.. 혼자 생각만 했다.

 그렇게 행복한 사랑을 하는 그녀 가까이에 있다간 내 자신이 괴롭고 외롭기도 하겠지만 ,

 

 무엇보다도 내가 그토록 지켜줄려고 애썼던 그 시간들을 다 포기하고 버린채 폭발할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말해버리고 말 것 같았다.

 

 하임이는 나무랄 것 없이 너무나 행복했다.그녀에게 나는 내 존재감을 역설하기에 부족한 그저 '친구' 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떠나는걸 선택했다. 그래.. 인정하자면 도망이었다. 그래도 난 늘 하임이를 생각했다.

 잊고자했지만, 말뿐. 지우고자 했지만, 기억의 지우개를 들려고 할 때마다.. 하임이의 환하게 웃는 얼굴은 그 지우개를 내려놓고 말게 했다.

 

 그저 배우는 것에 몰두하며 지냈다. 지울수 없다면 잠시 잊고, 그저 다른일에 시간을 쏟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난 하임이를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가끔 듣는 목소리에 기뻐했다. 편지를 확인할때 마다 봉투를 열기 전 혹시 청첩장 같은게 끼여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때면.. 그러면 내 자신이 과연 웃으며.. 그 결혼식에 갈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쿨함을 가장한다고 해도, 이렇게 까지 거짓말을 하며 하임이 곁에 있으면 그게 행복이긴 할까?

 

 나에게 잠시 오려고 한다는 전화를 받았을때.. 헤어졌음을 직감했다. 그토록 오래 들은 하임이의 목소리였다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제일 처음 순간... 솔직히 기뻤다.. 그 감정이 하임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하임이 안에서 김도하의 입지는 깊었을텐데 그를 덜어냈는데 괜찮을리 없는걸 알면서... 그런 일이 있을때 결국 또 나를 찾았다는게.. 나는 또 기뻤다..

 

 그런 기쁨이 숨겨온 내 감정처럼... 비열하고.... 추하게 느껴져서 더 미안했다...

 

 하임이는 꽤나 고됬던 듯 아직도 숨소리를 색색 내면서 자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애 같은 얼굴.

 

 나는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 어쩔수 없이 살짝 벨트를 풀어주고 하임이를 꺠웠다.

 

 "장하임- 다 왔는데- 계속 잘꺼야??"

 

 잠의 너머에서 세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차는 벌써 멈춰 서 있고

 세진이가 날 바라 보고 있었다. 따뜻한 눈빛..... 난 집이 아닌데 집에 온것 같이 마음이 차분해지는걸 느꼈다.

 

 "나 오래 잤어? 도착한지 한참 된거야?"

 

 잠겼던 목에서 나는 소리가 허스키하다, 세진은 그 목소리마저 그리웠다.

 자신을 그토록 오래 요령좋게 감춰 왔건만, 하임이랑 가까이에 있으면 이렇게 나는 불쑥불쑥, 앞서 나오는 감정을 막기가 벅차다.

 

 "아냐, 도착한지 얼마안됬어... 한 5분?"

 

 세진은 사실 40분이 넘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한다.

 얼마만의 잠이었을까. 하임은 원래도.. 고민이 있으면 잠을 잘 못자는 체질이었다.

 그런 일 까지 기억하고 있는 자신이 , 좀 기막혔지만..

 

 "근데 되게 오래 잔것 처럼 개운하다-"

 

 머리가 막 헝클어져 있다... 부스스한 머리..

 세진은 그 머리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져다 댄다. 그래선 안된단걸 알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머리를 정리해준다.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잤으니까 그렇지....."

 

 세진이는 장난처럼 눈을 흘긴다.. 어라.. 근데 진짜 코를 골았나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세진이는 훌쩍 내려 내 문을 열어주고 어떤 오래 된 목조 건물로 들어선다. 단촐한 내 짐을 한손으로 훅 들고서.

 건물은 한눈에도 오래 된 걸 알수 있었지만, 또 아름답기도 했다. 곳곳이 오래 된 세월을 아름답게 담고 있었다.

 시간도 예술이 되는 곳이 이탈리아라고 하더니... 흠집조차 아름다웠다

 

 

 "우와.... 건물 되게 멋지다-"

 "처음 살던집은 되게 좁고 더러웠어- 바렝 교수님 친척분 건물이라- 조금 싸게 주고 들어왔지- 내가 바렝 교수님 애제자거든-"

 

 바렝교수? 세진이한테 복원사 가르치는 교수 였던듯 한데... 정말 예쁨을 받긴 받나보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올라 4층에서 열쇠로 문을 열고 세진이는 짐을 내려놓고 불을 켰다-

 

 "들어와- 난방 금방 할께 조금 쌀쌀하지?"

 안은 창이 크고 방이 끝과 끝에 있는 구조였다. 꽤나 넓었지만 한눈에 외국같았다.

 거실인 넓은 공간엔 이젤과 물감이 큰 책상과 함꼐 널려져 있고

 한 켠에는 전신 거울이 있었다. 나는 왠지 방의 색조를 보니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올랐다.

 

 짙 푸른 빛으로 덮힌 느낌이었다. 따뜻한 느낌이기도, 외로운 느낌이기도 했다, 창 밖의 작은 불빛들이 참 아름 다웠다. 마치 그림처럼.

 

 "좀 어둡지? 거실에서 작업할때는 작업 등을 켜고 해서, 평소엔 잘 안키다 보니 .."

 

 "아니.. 아름답다.. 집이 진짜 좋은데 ?"

 

 세진이는 씩 웃었다. 다 집주인의 안목이 탁월해서 그렇지 뭐- 라고 말하면서-

 방에선 엷게 파라빈 유와 유화용 오일 냄새가 났다. 세진이한테 풍기던 그 냄새. 오래 전, 익숙하던 그림의 향기.

 세진이는 간이 부엌같이 꾸며진 곳에서 커피를 내 왔다. 우리는 창가에 있는 낡은 탁자에 컵을 올린뒤 의자에 앉았다. 창밖을 보며 나는 커피를 홀짝였다. 여전한 커피 실력- 향긋한 커피를 맛보니 세진이를 만난것이 비로소 실감이 난다 , 세진이는 방에서 스탠딩 스탠드를 가져와 켠다, 아까전 보단 밝아졌다. 여기 생활에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

 조금 낯설기까지 하다, 전엔 제 손으로 뭐를 막 하는 걸 많이 못본것 같은데....

 

 우리는 잠시 말없이 그저 커피를 마셨다. 세진이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응시했고

 나는 눈을 내리 깔고 그저, 커피만 바라 볼 뿐이었다.

 

 "준비됐어?"

 

 세진이가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했다. 준비 됐냐고?

 

 "뭐가-?"

 

 나는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무슨 말이지?

 

 그러더니 내 컵을 내려 놓고 내 의자를 끌고는 한 켠에 뒀던 전신 거울 앞에 나를 앉힌다.. 조금 부스럭 대더니 종이 백을 하나 꺼내온다.

 

 "이게 뭐야?"

 

 "꺼내 봐- 한눈에 알테니까, "

 

 세진이의 웃음이 조금은 씁쓸했다.

 

 거기서 나온것은 다 다른 색의 립스틱 10개와 면봉, 클렌징 티슈, 그리고 컨실러였다.

 

 

 세진이가 이렇게 오래 전 일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단게 놀라웠다.

 

 

 예전 첫 남자 친구랑 헤어졌을때 난 펑펑 울며 거울앞에서 화장을 고쳤다.

 어떤 색을 발라도 립스틱 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진 립스틱을 다 꺼내서 바르는 내내 뒤에서 세진이는 지켜봤다.

 우는 내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립스틱을 꼼꼼히 바르며.. 마음 정리가 되면서 좀 차분해 지는걸 느꼈다. 아마 그건 립스틱의 효과가 아니라 펑펑 쏟아낸 눈물 때문일 터였다.

 

 그래도 난 그 뒤 립스틱을 바를땐 기분 전환이 쉽단 걸 알았다.

 색이 화사해지니까, 그 순간 내가 마치 봄의 날에 있는 듯 , 반짝반짝 해 보이니까... 이걸 준비하며 세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말하지 않았는데

 세진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난 벌써부터 눈물샘이 열리는것만 같았다.

 

 세진이는 의자를 조금 뒤에 옮긴뒤 앉아서 , 그저 지켜봤다. 나는 약간 끅끅 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 그때보다 많이 컸는데......"

 

 세진이는 대답치 않았다. 나도 그저, 거울을 보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립스틱을 발랐다.

 

 수척해 보이고 살이 쑥 빠져버린 얼굴, 남의 얼굴처럼 낯선 얼굴, 처음 연 색은 화사한 코랄 빛이었다. 엉망이 된 얼굴에서 입술만 화려한 색으로 덮혀갔다..

 거울을 보며 바르는 순간,

 견고하게 쌓아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던 마음의 둑이 와르르 무너졌다.

 

 난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손은 계속 립스틱을 발랐다. 다 바르면 꼼꼼하게 면봉으로 정리를 하고 컨실러로 튀어나오지 않게 정리했다. 파리해 보이는 인상에 입술만 봄이었다.

 

 난 더 이상 자존심 세우지 않고.. 그냥 울었다. 눈물때문에 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도 거울의 내 얼굴에 집중하려 애를 쓰면서..

 

 처음엔 코랄, 다음엔 핑크, 레드, 짙은 레드, 또 펑키한 핫핑크...

 

 색깔이 바뀔때 마다. 립스틱으로 공들여 칠한 입술을 지울떄 마다 도하와의 기억이 쏟아지는것 처럼 느껴졌다.

 

 그래 난 도하를 많이 사랑했다. 그래 오래 되어 식었던게 아니라...

 

 옆에 있는게 당연하니까, 믿어서 의심치 않았기에 차마 배신감에 슬플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너무 그리울걸 알아서 더 , 더 사실을 잊으려 애썼던 것 같다.

 

 그 사람, 내 몸 곳곳에 기억 곳곳에 흠뻑 젖은 그 사람의 기억을 내가 대체 어떻게 지울까, 그 향기 그 웃음을 내가 잊을 수 있을까.

 연애란 참 끈끈해서, 인생에 누군가를 들이면 꼭 그 사람이 나라는 집에 입주한 것처럼, 나는 그 사람의 집이 된다.

 그 사람은 집에 살면서 다치기도 울기도 한다. 또는 물건을 떨어트려 흠이나 상처를 내기도 한다. 문틈이나, 벽에 남은 얼룩이나, 작은 흔적들 말이다.

 사람이 산 집에 남는 그 사람의 흔적..... 누군가 살아야만 남기는..

 

 사람만이 남기는 흔적.

 

 그 사람이 어느날 마음이 떠나 짐을 다 가지고 나가 버린다고 해도 그 흔적들은 남는다.

 

 나는 오늘이 지나도 어느날엔가 그 조그만한 흔적을 내 맘속에서 보곤 무너질 것이다

 그 흔적만으로 그는 나를 쉽게 무너뜨릴 것이다...

 

 어째서 나는 그 사람을 내 마음에 들인걸까... 그리고 그가 나가지 않을꺼라

 대체 무슨 근거로 그토록 믿었을까. 단단히 지키려고 애썼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는 목을 놓아 울었다. 도하를 보낼 준비가 안 되있었다. 그와 만든

 좋은 추억이 훨씬 많은데.. 그가 따뜻하게 안아준 순간이 훨씬 많은데... 나는 왜 그토록 냉정했을까....

 

 나에게 질려버리게 한것은 결국엔 나였다. 더 잘해줄걸 더 사랑할걸, 더 신경써 줄수 있었는데..

 

 후회, 미련, 집착, 배신감, 안타까움 ,그리움, 슬픔등이 온통 뒤섞여서 한 감정인체 눈으로 끝도없이 흘러내렸다.

 

 

 마지막 , 쨍한 빨간빛 립스틱을 마지막으로 발랐을때. 눈물이 그제야 조금씩 그쳐왔다.

 

 그제야 내 얼굴이 보였다. 그제야.......... 안보려 했던 외면했던 ...도하와 내 사이에 벌어진 그 틈이 , 공백이 얼마나 컸는지가 보였다...

 난 세진이가 보고 있단 것도 잊고 있었다. 거울에 보이는 세진이의 얼굴에도 참담한 슬픔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마지막 립스틱을 꼼꼼하게 발랐다.

 눈물 방울도 함께 툭 하고 떨어졌다. 그렇게 10분쯤 지나자. 세진이가 일어나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한숨처럼 말했다

 

 "아. 우리 하임이... 이쁘네-"

 

 나는 눈물 맺힌 눈으로 웃었다.... 얼굴은 입만 빨갛게 되있고, 우스꽝스러웠다.

 

 그래 그가 남긴 흠들, 기억들은 언젠간 내가 쓰다듬으며 그를 추억할 흔적이 될 것이다

 흠이 흠이 아닌 기억과 추억이 될떄.... 나는 그를 완전히 보낼수 있을것이다..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세진이의 손길이 느껴지고

 도하를 뽑아내며 그 뿌리에 달라붙어 같이 떨어져버린 마음의 살점까지도 그제야 피를 멈춘것처럼 차분하게 느껴졌다.

 마음에 파인 구멍은 여전했지만..... 피가 멎는게 느껴지듯... 나는 눈을 감고.. 그저.. 숨을 좀 더 편하게 쉬었다.

 

 

 깊다못해 마음속에 맺혀 나를 꽉 잡던 숨이 내 입으로 나와 스러졌다. 개운하기도,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숨은 나를, 마치 그러기로, 약속이나 한듯 놓아주었다. 울고, 도하와의 현실같지 않은 이별을, 힘겹게 현실로 받아 들이자..

 숨은 스스로 나와 , 스러졌다- 밤의 공기 속으로

 그렇게 ,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세진이가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내가 첫 이별을 겪었을 그 때처럼. 그냥 말 없이 , 맘이 편해지는게 느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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