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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악동 카쟝: 세상을 바꾸는 도둑들
작가 : 꾸마네
작품등록일 : 2022.2.18

부유 도시 '마루'와 빈곤 도시 '달구'.
고위인사들의 욕망과 탐욕으로 빈부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달구 시민들의 불만도 최고조에 이른다.
도둑계의 악동 '카쟝'과 그의 동료 '리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부(富)의 재분배'다.
세계 최고 회사 '명장제약회사'의 사장 '백민관'. 그는 언제나 '젊음'을 갈구한다.
도적단 중 가장 악랄한 '흑사단'과 그들의 수장 '흑사'. 그의 목적은 언제나 '돈'.
진짜 도둑은 누구인가? 도둑을 뛰어넘는 도둑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ii858@naver.com

 
백민관의 서류가방
작성일 : 22-02-18 22:37     조회 : 69     추천 : 0     분량 : 7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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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준비는 마쳤다. 비서와 경호팀은 주위의 인적이 드물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의 기다림이 헛되진 않았는지, 마지막까지 공원 정자에서 담배를 태우던 노인들이 자리를 떴다.

 

 “좋아. 다른 공원도 가야하니까. 빨리 끝내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발걸음을 옮겼다.

 

 

 ***

 

 

 “해킹이 전혀 불가능한 겁니까?”

 

 카쟝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그 눈빛을 대하는 리브의 반응은 역시나 냉랭했다.

 

 “저기요, 카쟝 씨. 아무리 비밀번호라지만 수동 자물쇠를 해킹해달라는 건 무슨 심보야?”

 "그건 그렇죠?"

 

 10분 전, 카쟝은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자신의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옷장 안의 옷들을 싹 다 꺼냈다. 옷장에서는 별의별 옷들이 다 나왔다. 카쟝의 옷장이었음에도 그와 어울리는 옷은 없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 옷들은 카쟝의 옷이 아닌, 카쟝이 다른 인물로 변장할 때 입는 옷들이었다. 그가 뒤지고 있는 옷장은 변장용 복장들을 모아놓은 장소였다. 경찰복부터 교복까지 특정 직업군의 옷이란 옷은 다 모여있었다.

 

 "여기... 어딘가에 뒀는데...?"

 

 잠시 후 카쟝은 물건 하나를 꺼내들었다. 옷장에서 나온 것은 백민관의 서류가방이었다. 그는 가방을 꺼내자마자 그 자리에서 개봉하려 했다. 그러나 가방은 내부자물쇠로 단단히 잠겨있었다. 자물쇠는 4자리로 된 번호를 맞추어야 열리는 방식이었다. 카쟝은 가방을 품에 안은 채 곰곰이 따졌다.

 

 “뭐가 들어있길래 우릴 쫓아왔을까?”

 

 카쟝은 가방을 흔들어 봤으나 속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충제라도 들어있나? 아무 느낌도 안 나는데?"

 

 가방을 이리 훑고 저리 훑던 카쟝의 옆에선 리브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리브는 카쟝과 가방을 유심히 쳐다봤다.

 

 “척 봐도 알겠구만. 보나마나 돈이지 않겠냐?”

 “백민관이 뭐가 아쉬워서 돈을 쫓겠어요.”

 "아냐. 네가 몰라서 그래. 원래 있는 놈들이 더 해. 분명히 돈일 거야. 얼른 열어봐봐."

 

 카쟝도 어떻게든 잠금을 열어보려고 낑낑댔다. 하지만 자물쇠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카쟝의 갖은 노력에도 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카쟝은 가방 곳곳의 살짝 보이는 빈틈을 공략하려 했지만 그곳 역시도 난공불락이었다.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끄응, 사장이 직접 나서는 거야?”

 

 카쟝은 손가락의 힘줄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힘만으로는 도저히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 철제라 엄청 안 열리네. 이건 고릴라한테 줘도 못 열어요.”

 

 카쟝과 가방의 사투를 지켜보던 리브는 답답했는지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왔다.

 

 “한 번 이거라도 써보자.”

 

 그가 카쟝에게 건넨 것은 다름 아닌 권총이었다. 비상 시 최고의 열쇠이기도 했다. 카쟝은 잠시 랙 걸린 컴퓨터처럼 멈추더니 이내 손사래를 쳤다.

 

 “아냐, 괜찮습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총을 썼다간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자물쇠 부분만 부수면 되잖아?”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자물쇠랑 연결되어 있으면 어떡합니까?”

 

 연결되었다면 자물쇠가 부서짐과 함께 내용물에 손상이 갈 우려가 있었다. 지금까지 완력으로 해결하려던 사람치고는 제법 논리적인 추측이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리브는 차분히 뒤로 물러나 권총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카쟝은 서류가방을 테이블 위에 놓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자, 리브. 그러면 마지막 방법을 쓸 수밖에 없겠어요.”

 “마지막 방법?”

 “응. 일단 나랑 가위바위보 합시다."

 "갑자기 웬...."

 "일단 해요. 가위, 바위, 보!”

 

 리브는 영문도 모른 채 가위를 냈고, 그의 앞에는 주먹을 낸 카쟝이 있었다. 리브는 한 쪽 눈썹을 올리며 카쟝을 보았다. 카쟝은 의심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대체 이걸 왜 한 건데?”

 "패자는 말이 없다. 여기."

 

 카쟝은 자연스럽게 가방을 리브에게 건넸다. 그와 동시에 리브의 단순노동이 시작되었다. 가장 안전하며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저기, 카쟝. [0000]부터 시작하면 되지?”

 

 결국 수동식 자물쇠에는 수동식 방법이 해결책이었다.

 

 “응. 수고해줘요. [5000]부터는 내가 할게요.”

 

 리브는 소파에 앉아 통통한 팔로 가방을 안았다. 마치 과자상자를 안고 있는 곰을 보는 듯했다. 리브는 자물쇠 번호를 [0000]으로 맞추면서 불현듯 추억에 잠겼다.

 

 "이야~. 내가 1부터 100까지 숫자를 세어본 게 언제 적 이야기냐?"

 

 깊은 사색의 결과,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란 것을 깨달았다.

 

 "잡생각 하지 말고 집중해요. 그러다가 관성처럼 그냥 지나가버릴 수도 있어요."

 "알겠어. 자... 성인의 나야... 시작해볼까?"

 

 [0001]...틱.

 

 "아니고."

 

 [0002]...틱.

 

 "이것도 아니고."

 

 [0003]...틱.

 

 "역시 아니고."

 

 번호를 맞추고 단추를 눌러야 열리는 방식이었다. 매일 키보드 두드리던 손으로 비밀번호를 돌리고 있자니 [0200]도 되기 전에 금세 지루해졌다.

 

 “이거 설마 [9999]는 아니겠지?”

 

 근거 없는 희망을 가지고 [9999]를 맞춰봤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았다. 리브는 단순노동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금방 지쳐갔다. 그의 손가락에서도 점차 활기가 사라졌다. 결국 30분도 안 돼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눈길을 돌려 주변을 더듬거렸다.

 

 “내가 망치를 어디다 뒀더라?”

 

 그러나 자물쇠와 내용물이 연결돼있을지 모른다던 카쟝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둔기 찾는 것을 그만두고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암~.”

 

 그 동안의 하품이 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면 방금 전의 하품은 그보다 깊숙한, 배꼽 밑에서 올라오는 듯한 깊은 날숨이었다. 거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 잠시도 쉬지 못한 상태였기에 피곤이 쏟아지는 것이 당연했다.

 

 “안 되겠어. 조금만 쉬어야지.”

 

 리브는 소파에 기대었다. 그렇게 리브의 단순노동은 잠시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6시간 뒤, 리브는 자신이 곯아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눈을 떴다. 한동안 쌓여왔던 피로가 한꺼번에 휘몰아친 탓이었다. 너무 푹 잔 나머지 리브는 일어나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엥?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자신이 왜 거실 중앙에서 자고 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맞다. 비밀번호!”

 

 리브는 머리를 긁적이며 가방을 찾았다.

 

 “어?”

 

 소파 위에 뒀던 가방이 온데간데없었다.

 

 “분명히 올려놨는데?”

 

 리브는 아직 근육이 덜 풀린 다리로 벌떡 일어났다. 잠깐이지만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 중 뇌리에 가장 오래 남아있던 얼굴은 단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백민관인가...?”

 “웬 독백? 무대라도 만들어줘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던 카쟝은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처럼 리브를 시청하고 있었다. 리브는 얼 빠진 상태로 그를 바라봤다. 카쟝은 막이 내리면 박수라도 쳐줄 기세였다.

 

 “왜? 계속 해보시죠. 백민관이 뭘 어쨌는데요?”

 

 리브는 주변에 있던 소파 쿠션을 들추며 주변을 배회했다.

 

 "가방이... 사라졌어."

 "뭐?!"

 

 우유를 마시던 카쟝은 동작을 멈췄다. 그는 우유를 천천히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럼 지금 찾고 있는 게 가방이었어요?"

 

 리브는 응답할 여유도 없었다. 카쟝은 바삐 움직이는 리브를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거, 내가 버렸습니다."

 "뭐?"

 

 리브는 지금 자신이 잠에서 덜 깼나 싶었다.

 

 "아직 꿈속인가?"

 "꿈 아닙니다."

 

 리브의 1인극을 보다 못한 카쟝이 말을 이었다.

 

 "이제 쓸모가 없어져서 버렸어요."

 "쓸모가 없다고?"

 

 리브는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그것 때문에 죽을 뻔 했는데 쓸모가 없다고?"

 

 카쟝은 아이를 달래듯 리브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 진정하시고. 이거 받아요."

 

 카쟝은 리브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브는 그의 손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엄지손가락만한 물체였다.

 

 "USB?"

 "응. 이거 밖에 없었어요."

 

 리브가 잠 들어있는 사이, 카쟝이 가방의 비밀번호를 푼 것이었다. 그것도 장장 4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작업 후에야 풀 수 있었다. 카쟝이 졸음과 싸우다가 눈꺼풀에 아령이 걸린 것 마냥 무거워질 즘에 자물쇠가 "탁!"하고 열린 것이었다.

 

 "열렸다."

 

 가방이 열리면서 나온 것이라고는 단 하나, USB였다. 가방 여기저기를 털어보고 뒤져봤지만 더 이상 내용물은 없었고, 가방은 그냥 평범한 가방일 뿐 별다른 장치도 없었다. 고된 작업이었음에도 카쟝의 얼굴엔 피로의 그늘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리브는 가방의 행방을 알고 나서야 덜 깬 눈을 비볐다.

 

 "USB에 들어있던 내용은 확인해봤어?"

 "아뇨. 그래서 리브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나를 기다렸다고?"

 

 리브의 오른손은 무의식중에 노트북을 열고 있었다.

 

 "한 번 확인해볼까?"

 

 리브는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새로운 장치가 인식되었습니다.]

 

 리브는 인식된 장치를 더블클릭했다.

 

 "어?"

 

 리브는 어리둥절 했다. 그것이 카쟝이 리브를 기다린 이유였다.

 

 "여기도 비밀번호가 걸려있네?"

 

 USB의 내용물을 열람하기 위해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했다.

 

 "그렇죠. 아무래도 여기부턴 리브 전문인 것 같아서 남겨놨어요."

 

 리브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엄지를 척 올렸다.

 

 "이 정도 암호면 10초면 풀지. 초시계 들고 기다려봐."

 

 자신만 믿으라는 표정과 함께 그는 키보드 위 타자를 연타했다.

 

 타다다닥-

 

 확실히 수동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맞출 때보다 한결 가벼운 손놀림이었다. 그러나 그 가벼움도 잠시뿐이었다. 10초 동안 리브의 미간은 접혔다 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자, 리브씨. 기다렸던 10초가 지났는데 그 쪽 상황은 어떠십니까?"

 

 카쟝은 궁금증과 비아냥이 섞인 말투였다.

 

 "음.... 잘 안 되네. 헤헤."

 

 리브는 머쓱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낯빛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카쟝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리브가 고전할 정도라니 살짝 놀라웠다. 자다 일어난 지 얼마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리브는 해킹으로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해커인데 여기서 무너지나요?"

 "응? 나 사망자 처리돼서 다섯 손가락에서 빠졌어. 이제 그런 부담 줘도 안 먹히거든?"

 

 공식적으로 리브는 사망자였다. 경찰에게 쫓기는데 지친 리브가 카쟝과의 협업을 통해 얻어낸 성과였다.

 

 "아, 사망자셨죠?"

 

 카쟝은 리브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리브의 사망 작전도 카쟝이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카쟝은 일련의 사건을 조작해 리브가 화재로 죽은 것처럼 꾸몄다. 그 이후, 리브의 생존과 관련된 웹(Web) 상의 정보는 리브가, 물질적 증거는 카쟝이 가로채 제거해버렸다. 따라서 리브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쫓기는 신세는 면한 셈이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어딘가에 정착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때마침 카쟝에게 조력자가 필요했고, 리브도 카쟝의 일에 흥미가 있었다. 이것이 그 두 사람이 동거하게 된 연유였다.

 

 "아무래도 쉽게 열리지 않겠어."

 "그래요? 그럼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까?"

 "흐음."

 

 리브는 팔짱을 낀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거, 백민관이 꽤나 복잡하게 암호를 만들었단 말이지."

 

 백민관은 암호를 푸는 열쇠에도 암호를 걸어놓을 정도의 치밀함을 보였다. 다시 말해, 보물 상자를 지키고 있는 자물통을 열기 위해서 열쇠가 필요한데, 그 열쇠가 다른 상자 안에 숨겨져 있고, 그 상자를 열기 위해선 또 다른 열쇠를 획득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암호가 차례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서 말이지.... 일단 가장 근원지부터 찾는 중이야."

 

 리브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리브의 얼굴은 서서히 상기되었다.

 

 "한나절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네. 그래, 일단 이거라면 오늘을 투자할 가치가 있겠어."

 "좋습니다. 그럼 그것 좀 부탁할게요. 수고해주십쇼."

 

 카쟝은 리브의 어깨를 주무르더니 이내 자신의 방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리브는 불현듯 궁금증이 생겼다.

 

 "근데 있잖아, 카쟝?"

 "무슨 일이죠?"

 "어제부터 암호에 정신이 팔려서 물어보질 못했는데 말이지."

 

 리브는 새로운 건수를 찾았다는 표정이었다.

 

 "백민관이 널 보고 왜 놀란 거야?“

 

 리브의 뇌리에는 지난밤의 상황이 하나의 장면처럼 남아있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민관은 마치 유언을 남기듯 카쟝에게 "넌 뭐야?"라고 더듬었다.

 

 '그리곤 기절까지 했지.'

 

 "아마...."

 

 카쟝은 뭔가 잡히는 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너무 잘생겨서 그런 거 아닐까요?"

 

 리브의 낯이 삽시에 돌덩이처럼 굳었다. 올해 들어 가장 싸늘한 정색이었다. 빙하보다 냉혹한 반응에 카쟝은 잽싸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어, 미안한 거 알면 됐고, 또 떠오르는 건 없어?"

 

 카쟝은 한 번 더 농담을 칠까 망설였지만 왠지 분위기가 영 아닌 것 같아 그 욕구를 꾹 참았다.

 

 "떠오르는 거라, 글쎄요."

 

 카쟝도 민관의 행동이 납득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날의 백민관을 떠올렸을 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눈...."

 

 카쟝은 자신을 바라보던 민관의 얼굴을 기억했다.

 

 "...나를 아는 듯한 눈빛이었어요."

 

 하지만 자신과 민관이 연관점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카쟝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

 

 

 삐비비빕- 삐비비빕-

 

 탁.

 

 "흐어엄~."

 

 알람소리가 일호의 눈꺼풀을 강제로 들어올렸다. 열린 눈꺼풀로는 따뜻한 햇빛이 들어왔다. 햇빛을 따라 눈을 뜨니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창 밖으로는 마루시의 고층 건물이 즐비해있었다. 그 마천루들의 윤곽를 만들어주는 태양빛은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은 기어코 일호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AM 7:00]

 

 그는 여느 때와 같이 7시간을 잤다. 잠이 부족할 리 없었는데도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탁상에 놓인 뿔테 안경을 집었다. 도수가 높았기에 눈이 반쪽으로 줄어드는 안경이었다.

 

 “오늘 따라 찌뿌둥하네.”

 

 부엌으로 들어간 그는 싱크대 우측에 달린 서랍을 열었다. 서랍의 가장 위층에는 약통 열댓 개가 마을처럼 무리지어 있었다. 일호는 가장 선두에 서있던 약통을 먼저 집어 들었다.

 

 “거의 다 떨어졌네. 오늘 병원에 가봐야 하나.”

 

 일호는 손바닥에 알약을 털어 곧장 입에 넣었다. 약의 정체는 항응고제였다. 15년 전 인공심장 수술을 한 그로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생명유지제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실질적으로 약효가 있기는 한 지 몸이 무거울 때 먹으면 한결 개운해졌다.

 

 “얼른 배 좀 채울까.”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터라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공복으로 회사를 갔다가는 창자의 곡성으로 망신을 당할 수 있었다.

 

 “보자. 우유가 남았을라나?”

 

 뭘 먹을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선택지는 아침을 '먹을지', '말지'였지, 먹게 되면 메뉴는 단 하나였다. 그는 서랍 아래층에서 오늘의 메뉴를 꺼내들었다.

 

 부스럭부스럭

 

 "이것도 얼마 없네. 올 때 새 걸 사와야겠어."

 

 일호는 낱개 포장된 콘플레이크 1인분을 그릇에 따른 뒤, 우유를 조심스럽게 부었다.

 

 달그락 달그락

 

 그는 메트로놈 못지않은 규칙적인 박자로 숟가락을 휘저었다.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20분. 일호는 여유로웠다.

 

 솨아아아-

 

 아침을 먹은 뒤엔 언제나처럼 샤워를 했다. 샤워시간은 정확히 20분. 그 시간 안에 면도까지 마쳤다.

 

 "흠, 오늘은 특별히 다듬을 필요 없겠는데?"

 

 일호는 요즘 들어 콧수염을 기르는 중이었다. 회사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어렸기에 조금이라도 중후해보이려는 시도였다.

 

 샤워를 끝내고 거실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TV가 켜졌다.

 

 “또 도둑들 이야기.”

 

 뉴스는 모든 세상일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고, 일호도 그렇다고 여겼다. 하지만 마루시 뉴스는 열에 아홉이 '도적들이 어떤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지'에 초점을 뒀다.

 

 "너무 뻔하디 뻔한 수법이야."

 

 그는 마루시 뉴스의 메커니즘을 대략적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일호에게 있어서 마루시를 갉아먹는 해충은 두 부류였다.

 

 "대놓고 갉아먹는 벌레과 몰래 갉아먹는 벌레."

 

 각각 도둑과 부패한 고위층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일호의 눈에, 도둑들은 유해한 존재이기도 하거니와 고위층의 비리를 덮어주는 총알받이이기도 했다. 그 총받이들은 오늘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5일 밤, 금 600kg 가량을 밀수하다 적발되었던 카쟝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밀수범의 증언에 의하면 이번 범행은 카쟝의 단독 범행으로 보이며....”

 

 일호는 뉴스에 귀를 고정시킨 채 하늘색 셔츠를 손에 들었다.

 

 “저러면서도 꼭 뒷이야기는 안 꺼내요.”

 

 그는 앵커의 침 발린 말에 반발심이 생길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호는 [이덤의 카쟝 Inside]를 챙겨보는 구독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이번 밀수가 원래 다른 고위층 인사의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나 앵커는 범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카쟝에 의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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