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와 김 교수는 이번 아트페어에 출품했던 그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서울, 경기, 부산, 대구까지 일 년에 네다섯 번 페어에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한 두 해는 정말 재미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대표라는 직함이 인쇄된 명함을 사람들에게 건넨다는 건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일을 몇 번씩 경험하고, 사람들에게 갤러리 재희가 점점 우 화백 전용 갤러리처럼 인식되자 페어에 나가는 일이 조금 귀찮아졌다.
“일 년에 한 번만 나가면 안돼요? 서울에서 하는 페어만 나가도 충분할 것 같은데.”
“무슨 소리니? 빠지지 말고 다 나가야지.”
재희는 미술시장의 생리를 자신이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빠는 계속해서 하드트레이닝을 시키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박람회에서 판매되는 물량도 그리 많지 않아요.”
“이제 겨우 몇 년 했다고 그래. 그림 팔라는 것 아니니까 사람들한테 눈도장 찍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 봐. 대한민국에서 재희 하면 다 알 때까지는 고생 좀 해야지. 포르쉐나 마세라티쯤 되면 그 때는 안 나가도 돼.”
아빠는 확고부동했다.
“근데, 우 화백님 작품이 너무 많으니까 사람들이 조금 식상해 하는 것 같아요.”
재희는 에둘러 속마음을 표현했다.
“우 화백 작품 아니면 너 혼자서 갤러리 운영 되겠니?”
아빠는 재희의 생각이 아직 한 참 못 미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좀 새로운 작가도 발굴하고 다양한 작품도 소개해야 사람들이 좋아하죠.”
“다 때가 있는 거니까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해. 그건 그렇고, 우진이는 만났어?”
“예, 마지막 날 잠깐 다녀갔어요. 9월에 뚝섬에 들어간다던데.”
“실력 있는 친구니까 잘 지켜봐. 인성도 좋고 크게 될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