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싼 건 없어요?”
“투자 목적이시면 어느 정도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작품이 나을 텐데요. 아직 주목을 받지 못한 작품들보다는 이미 인정받은 작품들의 가치가 훨씬 빠르게 올라가거든요.”
“그래요?”
“예, 단순 소장목적이시면 모를까 향후 수익까지 고려하신다면 최소 3~500정도 되는 작품을 구매하시는 게 좋습니다.”
“아아!”
“생각 좀 더 해보고 올게요. 그림 잘 봤습니다.”
“예, 천천히 상의해 보세요.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시구요. 안녕히 가세요.”
진열된 그림들의 가격만 궁금해 하는 부부 때문에 재희는 속이 상했다. 현대미술의 트렌드나 작가의 창작 의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 줄 수 있는데도 대부분의 고객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작가의 이름과 제목만 외우면 작품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곤 했다. 손님의 취향에 맞추다보니 재희도 결국 작품의 시세나 투자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야 말로 예술을 가까이 하는 이유일 텐데 지금까지 갤러리를 방문한 어떤 고객도 그런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재희는 자신의 갤러리가 각자가 가진 궁핍한 예술성을 고해성사하는 공간이 되길 원했지만 그것은 이상일 뿐이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진품을 판매한다는 것 말고는 문방구나 시장에서 그림이 인쇄된 액자를 파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갤러리를 시작한 이후로 무관심한 사람들의 예술적 감정을 이끌어내어 작품을 판매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아빠가 아는 사람, 그 사람의 소개를 받아서 온 사람, 그리고 그 다음 사람만이 그림을 구입해 갔다. 더군다나 그들은 구매를 결정해 놓고 갤러리를 방문했기 때문에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지인을 통해 우 화백 그림만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아빠의 방식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재희는 그것이 그림을 판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순응하기엔 재희는 너무나도 젊고 세련된 여성이었다. 그녀는 늘 톡톡 튀고, 상큼하고,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