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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64화
작성일 : 19-11-04 20:47     조회 : 8     추천 : 0     분량 : 7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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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봄이는 상훈에 의해 끌어올려지자마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래에서는 사람고기에 굶주린 맹수들이 온 세상이 떠나가라 괴성을 질러댔다. 봄이는 그대로 누구의 집인지도 모르는 집 안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한참 동안이나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던 괴물들이 곧 잠잠해졌다. 봄이는 자신들을 포기한 것이 틀림없다고 믿고 싶었다. 너무 무리해서 달려서인지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폐를 움켜쥐고 봄이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가버린 걸까요?”

 

  “그랬으면 좋겠어.”

 

  집 안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냉장고는 쓰러져 있었고, 탁자는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두 발이 닿는 감각을 자세히 집중해 보니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었다. 물감이라도 칠한 듯 지저분한 바닥에는 유리 조각이나 나사들만 굴러다녔다.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늘어뜨려진 전선 뭉치들이나 콘센트는 피복이 죄다 벗겨져 있었다.

 

  집 전체가 기울어져서인지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봄이가 넘어지려는 것을 상훈이 몇 번이고 잡아주었다. 반쯤 깨진 유리창 사이로 훤히 비치는 햇빛이 바닥에 널린 유리 조각들과 함께 반짝거렸다. 봄이는 조용히 깨진 유리창 틈새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시체더미도 확인했지만 괴물들이 함께 데려온 어린 새끼들만 식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봄이를 덮치려 했던 큰 괴물들은 사라지고 온데간데없었다. 봄이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 집......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요? 다른 집들과 다르게 유난히 이 집만 기둥이 무너져서 내려앉은 것 같아요. 여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상훈이 쭈그려 앉아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봄이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진이 일어났던 걸까요?”

 

  상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처 도로나 다른 집을 보면 지진이 일어났던 것 같지는 않아.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서 산 지 몇 달은 족히 넘었는데 지금까지 그런 기미는 없었어. 일부 지방이나 외딴 도로가 지진으로 붕괴됐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는데 그다지 신뢰가 가는 정보는 아니야. 그건 그렇고......”

 

  상훈이 말을 끊고 벽에 귀를 바짝 들이댔다.

 

  “무슨 소리 안 들려?”

 

  봄이가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발에 걸린 유리 조각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요.”

 

  봄이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상훈의 표정은 심각하기만 했다.

 

  “예감이 안 좋아...... 어서 여길 벗어나는 게 좋겠어. 날 따라와.”

 

  상훈이 가버리자 봄이가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집 안에는 온통 미세먼지가 가득했다. 상훈이 문을 가로막고 있던 서랍장을 치우자마자 주먹만한 쥐 몇 마리가 재빨리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봄이는 그 광경을 보고는 잘못하면 쥐를 밟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집 끄트머리에는 깨진 베란다가 훤하게 열린 채 칼바람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피투성이였지만 사람이나 동물의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베란다 바로 밑에는 찌그러진 버스가 보였다. 상훈이 밑을 가리켰다.

 

  “저 버스 천장으로 우선 뛰어내리는 게 좋겠어. 저기로 뛰어내리는 걸 성공하면 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달려. 그러면 바로 작은 집 담벽이 보일 거야. 놈들이 거기까진 쫓아오지 못할 거야. 만약에 계획이 틀어진다면....... 내가 찾아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말고 숨어있어. 알아들었겠지.....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봄이가 고개를 끄덕인 뒤 뛰어내리려 하자 상훈이 어깨를 붙잡았다.

 

  “권총은 사용하지 마. 저지력도 없을뿐더러 안 그래도 미쳐 날뛰는 녀석들을 더 화나게만 할 뿐이야.”

 

  봄이는 힘껏 버스 위로 몸을 던졌다. 발이 쑥 빠지지는 않았지만 꽈당 하는 소리가 고요한 세계의 공기를 타고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예상외로 큰 소리에 봄이가 재빨리 주위를 경계했지만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전하다고 판단한 봄이가 위에다 대고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던 건물 그림자 사이에서 쥐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던 괴물이 무서운 속도로 봄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괴물은 봄이에게는 닿지 못하고 그녀가 밟고 서 있던 버스를 엄청난 힘으로 들이받았다.

 

  계획은 틀어졌다.

 

 * * *

 

  괴물이 들이받은 버스는 엄청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봄이는 하마터면 발을 헛디뎌 그대로 괴물의 발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핏자국으로 물든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코앞에서 딱딱 부딪혔다.

 

  휘청거리던 버스는 끝내 중심을 잃고 왼편으로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봄이는 길바닥에 강하게 내팽개쳐졌다. 아스팔트 바닥에 가슴을 부딪히자 숨이 턱 막혔다. 조금만 더 세게 부딪혔다면 봄이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을 것이다.

 

  봄이가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괴물이 버스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지르자 온 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섰다. 떨어진 충격으로 허리가 삔 것 같았지만 봄이는 한쪽 팔로 가슴을 움켜쥔 채 이를 악물고 죽음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건물 위에서 상훈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봄이는 뛰어내리기 전 그가 했던 말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올 때까지 꼼짝 말고 숨어 있어라.......’

 

  곧바로 뒤를 따라잡은 괴물이 봄이를 덮치려 했다. 봄이는 반사적으로 괴물을 피해 몸을 던져 굴렀다.

 

 * * *

 

  봄이는 벽에 기댄 채 조용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저 살기 위해 정신없이 도망친 봄이는 정확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곳은 빛이 잘 들지 않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봄이가 놈들에게 발각될 위험도 적었다.

 

  빛을 밝힐 것이 필요했다. 가방을 뒤져보았지만 회중전등은 없었다. 봄이는 바로 작은 집에서 사투를 벌이기 전 길바닥에 버렸던 회중전등이 생각났다. 별 수 없이 봄이는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던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비췄다.

 

  불은 예전만큼 강하지 않았다. 가스가 거의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불이 꺼지기 전에 이곳에서 벗어나 작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빠져나가기에는 바깥에 도사리고 있는 곱사등이 괴물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약한 불로 비추어 보니 셔터와 창문들이 굳게 닫힌 편의점 건물인 것 같았다. 바닥에는 어질러진 물건들로 가득했고, 진열대는 텅 비어있었다. 카운터에는 도둑이 훔쳐가다 만 지폐 쪼가리가 휘날렸다. 쓸 만한 물건들은 이미 전부 가져가 버리고 없었다.

 

  봄이는 상훈이 하던 것처럼 조용히 벽에 귀를 갖다댔다. 나무 막대로 벽을 툭툭 치는 듯한 소리와 바람에 가게 간판이 휘날리는 소리만 들렸다. 방금 전까지 봄이의 뒤를 쫓던 괴물은 또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놈은 분명히 봄이가 이 건물로 숨는 걸 보았을 것이다......

 

  봄이는 라이터를 껐다. 약한 빛이라고 해도 더 이상 위치가 노출되어서는 안 되었다. 라이터를 끄자마자 봄이는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카운터 뒤에 누군가가 숨어있는 것 같은 음침한 생각이 들었다. 봄이는 이미 물자를 구할 생각 같은 건 모두 포기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상훈의 지시대로라면 그를 기다려야만 했다. 봄이는 그 말이 해가 저물고 반나절이 지나도, 며칠이 지나도 언제까지고 자기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현명한 판단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건물들이 늘어선 도심가 한가운데서 봄이가 이곳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까? 만약 그가 봄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가 봄이를 찾아내기 전에 괴물이 먼저 봄이를 찾아내 갈가리 찢어 죽인다면?

 

  굳게 닫힌 셔터 너머로 무언가가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이 상훈보다 더 빨랐던 모양이었다. 봄이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괴물에게 잡아먹혀 죽지 않으려면 무언가라도 해야만 했다.

 

  카운터에 칼이 있었지만 그것은 무기로 적합하지 않았다. 위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칼은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접근해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봄이도 안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금 봄이에게 중요한 것은 괴물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괴물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봄이는 주변을 뒤져 솔이 말라비틀어진 기다란 대걸레를 집어들었다. 가까운 거리에서는 권총보다 더 믿음직한 무기였다.

 

  이윽고 봄이가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챈 괴물은 온 힘을 다해 닫힌 셔터를 몸으로 들이받았다.

 

 * * *

 

  대걸레를 쥔 봄이의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대걸레를 든 채로 뒷걸음질을 치다 하마터면 바닥에 흥건한 구정물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괴물이 가공할 만한 힘으로 셔터를 들이받을 때마다 철제 셔터가 잔뜩 휘어졌다. 이 녹슨 방호벽은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 다음 순간 셔터 자물쇠가 떨어져 나가며 집채만한 괴물의 모가지가 봄이가 있던 편의점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봄이는 두려움마저 잊은 채 자신을 향해 공룡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는 괴물의 주둥이 속으로 온 힘을 다해 대걸레 자루를 쑤셔박았다.

 

  괴물이 귀청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비명을 질렀다. 그럴 때마다 시체 썩는 듯한 입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한 채로 봄이는 남아있는 모든 힘을 전부 대걸레를 쥔 두 팔뚝에 집중시켰다. 괴물의 주둥이에서 피가 흐르자 양 발에 돋아난 거친 발톱을 봄이에게로 이리저리 휘둘렀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발톱에 긁힌 봄이의 재킷 소매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지만 봄이는 이를 악물었다.

 

  정신을 차린 괴물은 봄이가 쥔 대걸레 자루를 빼앗으려는 듯이 단단히 문 채로 놔주지 않았다. 괴물의 찌른 입 속에서 흘러나온 피와 자루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봄이의 손에서 새어나온 피가 뒤섞였다. 양쪽에서 가하는 반작용되는 힘에 의해 끝내 대걸레 자루는 부러져 버렸다.

 

  그 반동으로 인해 튀어져 나간 봄이는 텅 빈 진열대에 등을 부딪혔다. 진열대와 함께 자빠진 봄이가 어깨를 움켜쥐고 일어서기도 전에 분노한 괴물이 셔터를 부수고 들어와 봄이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주둥이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핏방울을 타고 예리하게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가 봄이와 마주쳤다. 봄이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권총으로 팔을 뻗었다.

 

  괴물이 봄이를 금방이라도 덮칠 듯 노려보는 사이 봄이는 피가 흐르는 손목을 치켜들어 권총의 조준을 끝마쳤다. 봄이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 그녀의 손아귀에서 부들거렸다. 권총의 가늠자는 괴물의 미간을 향했다. 그리고 봄이는 끝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리볼버의 공이가 허공에 부딪히는 쇳소리만 울려퍼졌다. 왜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 걸까?

  봄이의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눈앞이 점점 하얘지더니 곧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잠깐, 남은 총알이 몇 발이었더라?

 

  괴물이 그대로 봄이를 덮쳤다. 권총이 봄이의 손에서 튀어나갔다. 봄이는 집채만한 괴물과 함께 뒤엉켜 쓰러졌다. 엄청난 괴물의 무게가 봄이의 어깨를 짓누르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괴물이 자신의 목을 향해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는 것을 본 봄이는 그대로 저항을 그만두었다.

 

  그 순간 온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자신을 향해 발톱을 치켜든 괴물의 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눈앞에서 천천히 재생되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기억들이 있었다. 지금껏 떠올린 적 없는, 경계의 저편에서부터 날아온 조각들이 하나둘씩 봄이의 머릿속에서 짜맞춰져 수많은 기억들로 변했다.

 

  얼굴이 지워진 사람들이 또다시 봄이의 기억 속에 나타났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억들이 지나갔지만, 그 기억들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마치 주마등(走馬燈)처럼.

 

  눈을 감은 봄이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그러나 괴물의 발톱에 목이 꿰뚫려 내장이 쏟아지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보니 총성을 들은 것 같았다.

 

  괴물이 봄이에게서 튕겨져 나가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괴물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두 번째 총탄이 괴물의 뺨을 스쳤다.

 

  멀리서 엽총을 쏘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세 번째 총탄이 괴물의 두꺼운 표피를 스치자마자 그는 곧바로 노리쇠를 젖혀 다음 총탄을 장전했다.

 

  행동을 방해받았다는 사실에 분노한 괴물은 이성마저 잃고 무서운 속도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누군가가 쏜 다음 총탄이 괴물의 미간에 적중하자 괴물이 잠시 주춤거렸다. 그러자 누군가와 함께 나타난 상훈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쥐고 있던 철제 표지판을 괴물의 목구멍으로 찔러넣었다.

 

  한참 동안이나 찢어지는 발악을 계속하던 괴물의 몸부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이윽고 힘이 빠져나간 괴물의 거대한 몸뚱아리가 쓰러지자 땅이 크게 울렸다.

 

  셔터가 완전히 부서진 건물 입구로부터 세 명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훈이 그들 중 하나였다.

 

  들고 있던 표지판을 내던지고 봄이에게 달려온 상훈은 봄이의 팔뚝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걸 보자마자 상민에게 구급상자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봄이는 그가 눈앞에서 자기더러 무어라고 말하는 것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봄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오직 한 마디는 ‘늦어서 정말 미안하구나, 봄아’뿐이었다.

 

  상훈은 팔에 간단한 응급처치를 한 다음 힘이 빠진 봄이를 부축해 일으켰다. 봄이는 방금 전 괴물에게 죽을 뻔했을 때 보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봄이는 분명히 그것들이 중요한 기억들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워낙 찰나의 순간이라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았다.

 

  멍하니 넋놓고 있던 봄이의 정신은 다시금 들려온 총성 한 발과 함께 되돌아왔다.

 

  중년 여성이 쓰러진 괴물에게 확인사살을 하고는 총대를 내리고 중얼거렸다.

 

  “정말 오랜만에 해 보는 스릴 넘치는 사냥이었어. 안 그래?”

 

  그 말을 들은 봄이는 자신들이 괴물을 사냥했다는 뜻인지, 괴물이 자신들을 사냥했다는 뜻인지 잘 몰랐다.

 

  걸을 수 있겠냐고 묻는 상훈의 말에 봄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입구가 완전히 날아가 버린 편의점 건물을 나오면서도 봄이는 자신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듯한 괴물의 시체를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

 

  새끼 멧돼지들은 총성이 들리든 말든 시체더미에서 조금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훈이 가져온 화염병에 불을 붙여 던지자 시체더미가 불타올랐다. 녀석들은 시체를 먹어치우다 말고 코앞에서 불길이 치솟자 꽥꽥거리며 날뛰더니 전부 달아나 버렸다.

 

  봄이는 자신의 상처를 몇 번이고 살펴보며 끝없이 괜찮냐고 묻는 그들의 말에 전부 괜찮다고 대답했다. 팔이 쓰라리고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참을 만했다. 아무래도 봄이가 힘없이 대답하는 걸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중년 여성은 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수고했어. 오늘은 할 만큼 했으니 결번으로 해 줄게. 돌아가서 푹 쉬어도 돼.”

 

  그러나 중년 여성은 봄이와 함께 조를 맡은 상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작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봄이의 상처를 봐주기 급급했다. 봄이가 재킷을 벗자 상훈이 셔츠 위에 손수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다지 큰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에 봄이가 마다했는데도 상훈은 파상풍이 얼마나 위험한 병인지 알고 있느냐며 몇 시간 동안이나 봄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봄이는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봄이가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상훈은 안정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며 일어서려는 봄이를 강제로 눕히고는 했다.

 

  봄이의 응급처치가 모두 끝나자 그들 가족들은 바깥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상훈을 데리고 가버렸다. 모두가 나가버리고 작은 집에 혼자 남은 봄이는 안정을 위한답시고 자신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상훈을 바보 취급하다가 곧 잠이 들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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