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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63화
작성일 : 19-11-04 20:46     조회 : 6     추천 : 0     분량 : 7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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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무례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저 녀석을 며칠 전에 만났는데, 복부에 상처를 입고 거의 죽어가던 걸 도와줬더니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졌다느니 하면서 막무가내로 경호원으로 받아달라지 뭡니까. 그래서 데리고 왔는데 잠깐 지켜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녀석의 주제넘은 행동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마른 남성이 겸손하게 사과했다.

 

  그들은 마른 남성을 따라 조용히 지하실로 내려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사이사이마다 불 붙은 양초가 한 개씩 걸려 있었다. 마치 고대 왕의 무덤이나 의식을 치르는 제단 같았다. 내려가는 동안 이따금씩 박쥐 울음소리가 들렸고,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따뜻한 온기와 함께 물이 펄펄 끓는 소리가 들렸다.

 

  거미와 벌레들이 득실거릴 것만 같은 어둠이 불을 지피는 소리와 함께 모두 걷혔다. 족히 네 명은 둘러앉을 수 있을 것 같은 탁자에 다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지하실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한 사람은 침대에 미동조차 않은 채로 누워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어린 소년 같아 보였는데 병자를 간호하는 것 같았다.

 

  “앉으시지요.”

 

  침대 옆에 앉은 채로 물수건을 짜던 소년이 봄이와 상훈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온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러는 소년을 마른 남성이 진정시켰다.

 

  “괜찮아, 승현아.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먼저 탁자에 앉아 있던 사람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봄이와 상훈이 의자를 빼고 탁자에 걸터앉자 마른 남성이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들이 저번에 만나게 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요? 다시 볼 수 있어 영광입니다. 지난 밤 벌어졌던 총격전 이후 우리는 집 안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보다시피 우리들은 나가서 전투를 치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약합니다. 인원이라고는 다 죽어가는 노인 한 명과 어린아이, 싸우기에는 너무나도 쇠약해져 버린 저뿐입니다.”

 

  봄이는 마른 남성의 말로 미루어보아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다 죽어가는 노인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이 숫자는 바깥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는 덩치를 제외한 숫자였다.

 

  “지난 밤 메아리쳐 울려퍼지던 총성은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멈췄습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꽤나 가까운 곳에서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신들도 분명히 들었을 겁니다. 혹시 총격전이 어디서 벌어졌는지 알고 계십니까?”

 

  상훈이 말을 잘랐다.

 

  “잡담은 이쯤하고 거래를 시작합시다. 어젯밤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총격전을 일으킨 주범들이 어딘가에서 이 지하실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봄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별다른 위험이나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른 남성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좋습니다. 제 말뜻은 그저...... 당신들이 그 총격전에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이렇게 마음놓고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것일 테니까요......승현아, 네 발밑에 있는 가방 좀 주워 줄래?”

 

  얼굴이 창백한 소년이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그에게로 가져다주었다. 그가 가방을 뒤적이며 말했다.

 

  “제가 지난 날에 요구했던 물건들은 전부 가져오신 겁니까?”

 

  상훈이 말없이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항생제와 주사기, 해열제, 그 외 기타 약품들......”

 

  남자가 흡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홱 들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따님이나 여자 형제는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마른 남성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봄이에게로 향했다. 난데없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가족은 아닌 것 같은데..... 아, 그럼 혹시 저 아이도 상품인 겁니까? 만약 맞다면 정말 잘 됐군요. 안 그래도 저런 여자아이가 요즘 필요하던 참이었어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시선이 봄이에게로 쏠렸다. 마른 남성과 소년은 물론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누워있던 노인까지 어느새 붉은 눈을 번뜩이며 봄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황을 눈치챈 봄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봄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데 상훈이 가로막았다.

 

  “이 아이는 상품이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가 요청한 식량은 제대로 준비되었겠지요?”

 

  봄이는 한시라도 빨리 이 역겨운 지하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마른 남성은 느릿느릿 대답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거 아쉽군요. 저희라면 비싸게 쳐 드릴 수 있는데.......”

 

  마른 남성이 가방을 상훈에게 넘겨주었다. 거래가 성사되자마자 봄이는 상훈의 팔을 잡아끌었다. 상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방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마른 남성이 웃으며 말했다.

 

  “참,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고, 시장하실까 봐 간단한 식사라도 대접해드릴 참이었는데 혹시 생각 없으십니까?”

 

  아까 전 탁자에 조용히 앉아 있던 누군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 네 그릇을 가지고 왔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건더기가 떠다니는 누런 국그릇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아직 식사 전이시면 사양하지 말고 드십시오.”

 

  얼굴이 창백한 소년도 탁자로 와서 앉더니 국을 훌훌 들이키기 시작했다.

 

  “죄송하지만 이미 식사를 하고 오는 길이라.”

 

  “그러셨군요. 오늘 일은 감사했습니다. 이거면 널브러진 시체를 뜯어먹다 염증에 걸린 저 노인네도 정신을 차리겠지요. 그리고 그 애를 팔 생각이 있거든 후하게 쳐드릴 테니 언제든 연락 주시오. 어린 여자애들은 육질이 부드럽거든. 또 봅시다.”

 

  봄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 사람은 못 드신다고 하셨나?”

 

  봄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지하실을 뛰쳐나갔다. 수백 개나 되는 계단들의 높이가 그 순간만큼은 마치 끝도 없는 중세시대의 지하감옥 미궁처럼 느껴졌다. 대문을 벗어날 때 아까 보았던 덩치 문지기가 봄이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던 것만 제외하면 누구도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봄이는 예전에 어디선가 쥐고기를 구워 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실수로 쥐고기를 먹고 난 후 그것이 쥐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미친 듯이 토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봄이의 눈 앞에 예상치도 못한 새로운 난관이 들이닥쳤다. 직접 입에 대지는 않아서인지 그때보다 충격은 덜했지만 배를 쥐어짜는 듯한 구역질은 여전히 올라왔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사실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눈 앞에 놓여있던 국그릇이 떠올랐다. 누런 국물 속에 둥둥 떠다니는 건더기들......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는 것들을 봄이는 다른 생각을 하며 애써 억눌렀다.

 

  뒤늦게 그녀를 따라나온 상훈이 보이자마자 봄이는 그에게 윽박질렀다. 그마저도 숨이 차서 잘 나오지 않았다.

 

  “말해두겠는데, 앞으로 한 번만 더 아저씨가 여기 다시 온다고 하면 내가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예요.”

 

  상훈이 ‘파란지붕’을 뒤돌아보더니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진정해. 적어도 양손에 칼과 도끼를 들고 우릴 당장이라도 잡아 죽이려고는 안 했잖아.”

 

  “도대체 왜 그렇게 태연한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어요?”

 

  상훈의 무감각한 태도에 질린 봄이가 쏘아붙였다.

 

  “전에 그렇게 당할 뻔한 적이 있었거든.”

 

  상훈이 그들에게서 받은 가방을 들쳐메고 봄이를 지나쳐갔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 세상은 이미 전과는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는 걸 기억해둬. 예전 세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들이 지금 일어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어. 오히려 예전 세계에 미련을 남긴 나머지 지금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놈들에게 질 수밖에 없어. 놈들과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패배한다면 남은 건 곧 죽음뿐이야. 더 이상 이 세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잖아?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왔어. 사실 예전 세계에서도 그랬지만.”

 

  상훈은 봄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멀어졌다. 문득 생각에 잠겼던 봄이가 입을 열었다.

 

  “식인종들이 아저씨를 죽이려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구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상훈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줄게.”

 

 * * *

 

  작은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상훈은 마른 남성에게서 약품 대신 건네받은 식량 가방을 만족스럽다는 듯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봄이도 얼굴을 들이밀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그 가방을 볼때마다 김이 나는 사람고기 수프(사실 그 국이 사람고기로 만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봄이는 아예 저 가방에 몸을 반으로 가른 사람 몸뚱이가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상훈의 만족스런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게 맞다면 상훈이 사실 식인종이었다거나.

 

  저 멀리서 작은 집 담벽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로에서부터 작은 집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이 조용한 것을 보니 아직까지는 작은 집에 아무런 이변도 생기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하늘만큼은 봄이가 작은 집에서 나왔을 때보다 훨씬 울적해져 있었다. 해가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치고는 드문 현상이었다. 비가 오려나? 아니,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잊을 만하면 들려오던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거기까지는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일어난 일이 봄이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작은 집 주변에서 시체를 뜯어먹던 까마귀 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 수가 어찌나 많았는지 울적한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전에도 봄이는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달랐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불길한 감각이 봄이의 머릿속에 스쳤다. 그 이유를 알아내기도 전에 수많은 까마귀들은 모두 경계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까마귀들의 날갯짓은 예전처럼 질서정연하지 않았다. 마치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위험을 느끼고 무작정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바로 그 순간 짐승이 표효하는 듯한 우렁찬 괴성이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울려퍼졌다. 봄이에게는 난생 처음 듣는 위협적인 소리였다. 이 정도 괴성이라면 이 세계에 남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분명히 하나도 빠짐없이 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상훈은 소리를 듣자마자 가방을 돌려메고 자세를 낮췄다. 봄이도 반사적으로 권총을 빼들었다.

 

  봄이와 상훈은 바퀴가 부서진 차량의 잔해 뒤에 숨은 채로 ‘괴물’을 볼 수 있었다. ‘괴물’ 은 네 발로 걸어다녔고, 하반신의 두 배는 될 듯한 상반신은 죄다 북실북실하고 비쩍 마른 털로 덮여있었다. 대가리부터 척추까지 이어지는 등줄기에는 빳빳한 갈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몸 전체의 반을 차지하는 대가리에는 위협적이고 날카로운 엄니가 돋아나 있었다.

 

  자세히 보니 괴물은 혼자가 아니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놈이 어슬렁거리며 까마귀 떼들이 먹다 남긴 시체더미로 향하자 그 뒤를 따라 몸집이 작은 여러 괴물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들은 그 자리에서 날카로운 엄니로 시신들을 찢어내더니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봄이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전에 그들 형제가 차량 안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단 일순간의 기억만이 떠올랐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그것이 지금 봄이의 눈앞에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봄이는 시체를 뜯어먹는 괴물들에게서 시선을 치워버렸다. 또다시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발자국 소리라도 잘못 냈다가는 곧바로 저 피에 굶주린 잔혹한 괴물에게 갈가리 찢길 것이 분명했다.

 

  봄이도 추위로 먹을 것이 없어진 야생 멧돼지들이 종종 도심가로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괴물들은 봄이가 아는 멧돼지 무리들이 아니었다. 멧돼지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봄이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이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허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봄이의 철썩같은 믿음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깨지지 않았다.

 

  작은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족히 다섯 놈은 되어 보이는 괴물들이 작은 집으로 향하는 모든 경로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봄이가 괴물들을 피해 한 걸음씩 자리를 옮길 때마다 괴물들의 청각이 곤두세워졌다.

 

  상훈이 조용히 봄이에게 속삭였다.

 

  “괜시리 놈들을 자극해서 좋을 건 없겠어.”

 

  상훈이 손가락으로 익숙한 골목 뒤편을 가리켰다. 이전에 상민과 함께 걸어나왔던 적이 있었던 좁은 진흙탕 골목이었다. 골목으로 이어지는 통로 근처에는 그나마 괴물들이 적었던 것이다. 봄이도 곧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발 끝에 힘을 준 채 외진 골목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동안 그 어떤 괴물의 주의도 끌지 않을 수 있었다. 골목 통로는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모퉁이 뒤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점과 발이 흙탕물에 푹푹 빠진다는 것만 제외하면 은밀히 이동하는 통로로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골목 사이사이 보이는 주택마다 고드름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담벽이 무너져 내려 콘크리트 철근과 벽돌들이 폭삭 내려앉아 있는 건물 주변에는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봄이는 이미 발이 젖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이 모퉁이만 지나면 작은 집 담벽이 코앞에서 보이는 거리였다.

 

  그러나 모퉁이를 지나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봄이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봄이는 분명히 괴물들이 시체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뿐 골목 출구에서 떡하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다. 통로의 출구에 다다르자마자 물기에 젖은 털이 햇빛을 받아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곱사등이 괴물의 붉은 눈동자가 봄이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괴물의 입가 주변에는 검붉은 피로 물든 이빨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마주친 봄이의 다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괴물이 봄이의 기척을 눈치채자 낮게 그르릉거렸다. 봄이는 숲속에서 맹수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절대로 등을 보여서는 안 되며, 절대 섣부르게 행동해서 맹수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범 행동지침들이 생각나기도 전에 봄이의 이마에서는 식은땀만 흘러내렸다.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높이며 봄이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온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총을 겨누어야 했다. 총만 저 괴물의 머리통에 겨누고 발포할 수만 있다면. 총을 겨눌 수만 있다면......

 

  이윽고 괴물이 공격하기로 결심한 모양인지 갑작스럽게 땅을 박차며 봄이에게로 달려들었다. 봄이가 권총을 치켜들어 돌진해오는 맹수에게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누군가가 몸을 날려 봄이와 함께 길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한참 동안이나 길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봄이에게 상훈이 소리쳤다.

 

  “제정신이야? 그런 걸로 놈들이 끄떡이나 할 것 같아? 빨리 일어나.”

 

  상훈이 봄이의 팔을 잡고 일으키기도 전에 소리를 듣고 몰려온 다른 두 괴물이 달려들었다. 작은 집으로 이어지는 방향은 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더 깊은 골목 내부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봄이의 속도보다 괴물이 더 빨랐기 때문에 넓게 트인 공터로 도망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봄이는 괴물들이 지나치기 힘든 작은 가로수나 이따금씩 보이는 철제 난관 사이사이를 지나쳐갔다. 그럴 때마다 작은 가로수는 송두리째 뽑혀나갔고, 철제 난관들은 나사가 뽑혀 휘어지기도 했다. 만약 괴물들에게 따라잡히기라도 한다면 몸이 어떤 꼴이 될지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앞서 달리던 상훈이 밑부분이 내려앉은 2층 건물을 발견하고 봄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수북이 쌓인 쓰레기 더미를 밟고 뛰어올라 가까스로 열려있던 2층 창문으로 손을 짚을 수가 있었다. 상훈이 재빨리 올라서고, 다음으로 봄이가 뛰어올랐다. 봄이가 상훈이 뻗은 손을 잡고 난 직후 달려든 괴물들에 의해 쓰레기 더미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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