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53화
작성일 : 19-11-03 23:20     조회 : 12     추천 : 0     분량 : 801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봄이의 눈 앞으로 무수한 수의 검은 깃털이 흩날려 떨어졌다. 그 검은 깃털만을 남긴 채로 까마귀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까마귀들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난 뒤에도 봄이는 좀처럼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은 까마귀들이 휩쓸고 지나간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까마귀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흩날리던 검은 깃털들도 모두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텅 빈 허공을 떠다니던 검은 깃털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봄이의 콧등을 스쳤다. 그제서야 봄이는 까마귀들이 몰려 있던 공터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공터 주변에는 낮은 건물들이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건물들은 아무리 높아도 1층을 넘기지 못해 보였다. 건물들 사이의 각 맞은편에는 폐가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고, 대충 지은 벽돌 계단으로 이어진 허름한 시멘트 벽은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봄이가 공터 밖에 있을 때에는 쌓인 잡동사니들과 건물들 때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봄이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공터 내부에는 족히 대여섯 구는 되어 보이는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봄이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나 막상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온 몸의 골수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걸 본 봄이는 조용히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시신들 주위에 눌러붙은 핏자국에는 까마귀들의 흔적으로 보이는 검은 깃털들이 지저분하게 엉겨붙은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시신들은 하나같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만약 사람이 저지른 짓이었다고 한다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시신들을 고깃덩이처럼 토막내 눈더미 속에 파묻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어떤 시신은 팔이 없었고, 또 다른 시신은 아예 하반신이 없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봄이에게는 그 시신들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꾸만 보고 있자니 기분이 나빠진 봄이는 이내 시신으로부터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그 모습은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또다시 생각날 것만 같았다.

 

  시신을 알아채고 근처에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봄이와는 달리 상민은 태연하게 시신 한복판으로 걸어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핏자국으로 얼룩진 가방을 주워 가지고 왔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봄이는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왠지 모를 존경심마저 느꼈다.

 

  “아직 이런 건 익숙하지 않은가 보네.”

 

  쭈그려 앉아 피 묻은 가방을 뒤지던 상민이 그렇게 말하고는 봄이의 발밑으로 가방을 집어던졌다. 깜짝 놀란 봄이가 기겁하며 물러나자 상민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떨어진 가방을 다시 주워들었다.

 

  “조만간 곧 익숙해질 거야.”

 

  봄이는 방금 전까지 들었던 그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이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쥐꼬리만큼의 존경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가 어떻게 시신을 눈앞에 두고 웃을 수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꿰찼다. 그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신을 봐왔던 것일까? 또 시신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그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게 될 때까지의 시간은 과연 얼마나 걸렸을까?

 

  별안 듯 궁금해진 봄이가 물었다.

 

  “당신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죠?”

 

  정신없이 가방을 뒤지던 상민의 눈초리가 봄이에게로 향했다. 봄이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상민은 그다지 상관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적 없어.”

 

  봄이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봄이는 더욱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걸 보고도 그렇게 담담할 수 있죠?”

 

  “눈 앞에서 죽어가는 녀석들은 많이 봤으니까.”

 

  상민이 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는 피 묻은 가방을 어깨에 들쳐매고 봄이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다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무덤덤하게 그녀를 지나쳐갔다. 그러다 몇 걸음 가지 않고 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먹다 남은 초콜릿인데 먹을래?”

 

  상민이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초콜릿 포장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봄이는 죽을 만큼 배가 고팠지만 손바닥을 내저었다. 얼어붙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시체 사이에서 나온 음식까지 먹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봄이가 손을 내젓기도 전에 초콜릿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차량으로 돌아가다가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한 번 봄이를 뒤돌아보고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괜한 자존심 내세우지 마. 그런 건 지금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상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차량으로 돌아가 버렸다. 봄이가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가로등 전선에 홀연히 앉아 있는 무엇인가와 눈이 마주쳤다.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선에는 날아가버린 줄 알았던 검은 까마귀들이 새카맣게 앉아 있었다. 천 마리는 되어 보이는 까마귀들은 그곳에서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봄이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까마귀들은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마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까마귀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봄이는 처음에는 그것들의 식사 시간을 방해한 자신이 어서 빨리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문득 봄이의 머릿속에서 돌연히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그 자리에 쓰러져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봄이는 고개를 홱 돌려 하늘 위에 줄지어 늘어선 까마귀들을 쳐다보았다. 전선에 앉은 까마귀들은 조용히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까악, 하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이따금씩 공허한 바람 소리만을 타고 봄이의 귓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봄이는 그 울음소리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봄이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고 몸을 돌려 차량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상훈과 상민은 아까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한창 떠들고 있었다. 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어들어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아까 그것들은 뭐였어?”

 

  상훈이 운전대에 턱을 괸 채로 묻자 상민이 흥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뭐였긴 뭐였겠어. 불쌍한 녀석들만 있었어. 죽은 지 최소 일주일은 된 모양이던데.”

 

  상민이 딱딱한 초콜릿을 이빨로 힘껏 깨물자 그것을 본 상훈이 그의 말에 흥미를 가졌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봐. 무슨 이상한 점이라던가 그런 건 없었어?”

 

  “이상한 점? 물론 있었지. 들어봐, 시체들이 몇 구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게 당했어. 도대체 어떤 녀석한테 그런 꼴을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참 불쌍한 녀석들이야. 팔다리가 없는 녀석도 있었고, 다리가 없는 녀석도 있었지. 하지만 분명히 까마귀들에게 당했던 건 아니었어. 마치 누군가에게 강제로 사지를 찢기기라도 한 것처럼.....”

 

  상민의 말에 상훈이 비꼬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런 짓을 할 녀석은 분명 인간은 아니겠군.”

 

  “어쩌면 정말로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상민의 태도는 아까 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봄이에게 보이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사뭇 심각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런 짓을 할 녀석은 분명 인간은 아니겠군.”

 

  “어쩌면 정말로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상민의 태도는 아까 전까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봄이에게 보이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사뭇 심각해 보였다. 상훈은 정자세로 앉아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팔을 뻗어 상민의 어깨를 세게 툭 건드리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게 어디 있냐면서 난리치던 녀석이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상훈이 자신있게 말하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젖혔다. 가만히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던 상민도 벨트를 맬 준비를 했다. 차량 계기판을 이리저리 건드리던 상훈이 고개를 젖혀 뒷자석에 앉아있던 봄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너, 왠만하면 안전벨트 매라. 아까는 운이 좋아서 그 정도였을지 몰라도 다음에는 정말 심하게 다칠 수도 있어.”

 

  “언제부터 날 그렇게 신경쓰셨다고.”

 

 * * *

 

  봄이는 투덜대더니 좌석 상단에 달린 안전벨트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겨 몸에 고정시켰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상민이 봄이를 힐끗 돌아보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상훈에게 대고 말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저런 꼬마를 데리고 다니게 된 거야?”

 

  봄이는 자신을 은근히 깔보는 상민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참다 못한 봄이가 조수석 등받이를 거칠게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아니꼽다는 듯이 말했다.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당신 도대체 몇 살이죠?”

 

  그에게 쏘아붙인 봄이는 뒤에 ‘나랑 나이차도 얼마 안 나 보이는 게’ 라고 덧붙이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가는 화가 난 상민이 벌떡 일어나 자신의 멱살을 붙잡아 들어올릴 것만 같았다. 또 봄이는 무엇보다 상민의 성격을 아직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무작정 사람에게 공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런 봄이의 돌변에 놀란 두 남자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벙쪄 있었다.

 

  “그러는 너는 몇 살이지?”

 

  “묻는 말에 대답해요.”

 

  봄이는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서로 마주본 채로 눈싸움을 했다. 얼떨결에 두 사람 사이에 끼게 된 상훈은 둘을 말릴 생각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나이 같은 걸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지 얼마나 지났지?”

 

  상훈이 그렇게 말하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상민은 그에게 무엇인가 묻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를 바라보던 봄이가 다시 상민에게로 고개를 홱 돌리자 마지못해 그가 대답했다.

 

  “열 여덟.....아니, 열 아홉이었나?”

 

  봄이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콧방귀가 나오려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기껏해야 한두 살 더 먹은 정도로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던 그의 행동이 너무나도 당치도 않게 느껴졌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은 봄이는 그대로 뒷자석으로 슬며시 물러났다. 상민이 잠깐 동안 그녀를 추궁하려 들었지만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굳게 입을 닫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뒷자석으로 고개를 돌린 채 뭐라고 중얼거리던 상민이 씩씩대는 것을 본 상훈이 말했다.

 

  “그건 또 어디서 났어?”

 

  상훈이 그가 든 초콜릿을 가리키자 상민이 말했다.

 

  “이거 말이야? 녀석들이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찾았어. 이거 말고도 먹을 건 조금 더 있어. 기다려 봐.....”

 

  상민이 그렇게 말하며 봄이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로 상민의 눈동자를 보란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상민은 봄이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고 고개를 숙여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상민이 가방에서 나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시트 위에 올려놓았다. 내용물이 반쯤 새어나온 물통과 먹다 남은 육포 조각, 물통에서 새어나온 내용물에 완전히 젖어버린 티슈 한 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약 상자 한 통이 그것들이었다. 물건들을 꺼내놓은 상민은 얼어서 딱딱하게 굳은 초콜릿 조각을 입 속에 던져넣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젠장, 안이 다 젖어 있잖아.”

 

  봄이는 가방이 온통 차갑게 식어버린 피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런 봄이는 문득 핏자국이 묻은 초콜릿 조각은 과연 맛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다지 먹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상민이 불평을 늘어놓으며 가방에 있는 마지막 물건을 꺼내는 그 순간까지 봄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손톱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훈이 드디어 차량을 움직일 기미를 보였다. 그는 천천히 엑셀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가엾은 주검들을 비켜가려 했다. 주검 뒤편에 있던 허물어진 시멘트 벽은 차로 들이받으면 뚫고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벽을 들이받고 나아가려면 주검들 위로 지나가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눈 앞에 좀 더 빠른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훈은 차를 돌렸다.

 

  “완전히 미로가 따로 없군.”

 

  상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지금껏 잊고 있었으나 상훈의 눈가에 드리우고 있던 피로가 한층 더 깊어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묵묵히 손에서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그런 상훈을 우연히 본 봄이조차 그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방 뒤지기에 열중하고 있던 상민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상훈은 같은 장소를 계속해서 돌면서 빠져나갈 길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봄이가 상훈에게 걱정스레 한 마디 던졌다.

 

  “아저씨, 돌아가면 조금 쉬는 게 좋겠어요.”

 

  지금껏 운전대에서 눈을 뗀 적이 없던 상훈이 그녀를 힐끔 돌아보더니 다시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켰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상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상민이 끼어들었다.

 

  “잠깐, 지금 돌아간다고 했어? 무슨 뜻이야?”

 

  두 사람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상민이 그럴 리 없다는 어투로 물었다.

 

  “설마 이 애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려는 건 아니겠지?”

 

  봄이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상훈은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두 사람의 반응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상민은 대강 짐작했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훈이 다시 엑셀을 밟기 시작하자 상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말도 안 돼. 난 동의할 수 없어. 이 애가 대체 누군 줄 알고 우리 집에 데려가? 우리 규칙을 잊었어? 우리 집에는 우리 세 사람 이외에는 절대 출입 금지라는 거 몰라?”

 

  봄이는 또 다시 그와 논쟁하기 싫었다. 그래서인지 봄이는 상훈이 어서 빨리 그의 주장에 반박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만약 상훈이 봄이를 감싸주지 않는다면 그녀에게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봄이는 또다시 혼자 떨어지는 게 싫었지만 자신이 지금 하려는 행동이 너무나도 염치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민의 말을 맞받아치지는 못했다.

 

  상훈이 대답하지 않자 상민이 다시 덧붙였다.

 

  “그래, 좋아. 일단 저 애를 데려간다고 치자. 만약 그러면 어머니가 가만히 있을까? 어디서 굴러먹다가 들어왔는지도 모를 생판 모르는 여자애를 데리고 돌아가면 어머니가 과연 좋아할까? 분명히 형이 저 애를 데려가든 안 데려가든 저 녀석은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없을걸. 우리는 인원이 부족한 게 아니야. 물자가 부족한 거지. 식량도 거의 다 떨어졌다고 내가 말했잖아. 그렇다고 저 녀석을 들여서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건 생존자 구출 같은 게 아니야.”

 

  상민의 말에 봄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아까 전과 같은 반발심리는 무슨 이유에선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봄이의 자신감은 자꾸만 그녀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한 줌의 양심마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 봄이가 어쩔 줄 몰라하자 상훈이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죽어도 이 녀석과 함께 갈 수는 없다는 말이지?”

 

  “저 녀석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아무튼 동의할 수 없어.”

 

  상민이 대답하자 상훈이 운전대를 다른 손으로 고쳐 잡고는 말했다.

 

  “그렇게 저 녀석이 마음에 안 들면 네 손으로 직접 쫓아내 버려.”

 

  상훈의 말에 상민이 벌컥 신경질을 냈다.

 

  “형, 내가 지금 장난치는 걸로 보여?”

 

  그 말을 들은 상훈이 운전을 멈추고 상민에게 얼굴을 들이민 채 말했다.

 

  “농담하는 것 같아? 저 녀석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테니 어디 저 불쌍한 녀석을 쫓아내든 두고 내리든 네 마음대로 해 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주지. 시간은 많으니까. 어떡할래?”

 

  상민은 이도저도 못하는 난처한 얼굴로 봄이와 상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봄이와 눈이 마주치자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던 상민은 마침내 마지못해 그녀에게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어머니가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의 말을 듣고 난 상훈이 다시 차량을 몰기 시작했다. 봄이는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기는 했지만 잠시 동안 걱정을 떨쳐낼 수는 있었다.

 

  이윽고 그들이 탄 차량의 눈 앞에 조그만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 착한 아이 > 마침.

 

 
작가의 말
 

 감사합니당.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75 75화 2019 / 11 / 4 17 0 5572   
74 74화 2019 / 11 / 4 11 0 9203   
73 73화 2019 / 11 / 4 14 0 6508   
72 72화 2019 / 11 / 4 6 0 8131   
71 71화 2019 / 11 / 4 14 0 8774   
70 70화 2019 / 11 / 4 9 0 8235   
69 10.종착점 2019 / 11 / 4 9 0 7982   
68 68화 2019 / 11 / 4 10 0 5775   
67 67화 2019 / 11 / 4 6 0 4752   
66 66화 2019 / 11 / 4 5 0 8160   
65 65화 2019 / 11 / 4 10 0 8191   
64 64화 2019 / 11 / 4 8 0 7608   
63 63화 2019 / 11 / 4 7 0 7831   
62 9. 다시 만나게 된다면 2019 / 11 / 4 14 0 7571   
61 61화 2019 / 11 / 4 9 0 8371   
60 60화 2019 / 11 / 4 10 0 8307   
59 59화 2019 / 11 / 4 10 0 7692   
58 58화 2019 / 11 / 4 10 0 8543   
57 57화 2019 / 11 / 3 12 0 7480   
56 56화 2019 / 11 / 3 9 0 8992   
55 55화 2019 / 11 / 3 11 0 9658   
54 8.작은 집 전투 2019 / 11 / 3 10 0 7696   
53 53화 2019 / 11 / 3 13 0 8015   
52 52화 2019 / 11 / 3 10 0 8015   
51 51화 2019 / 11 / 3 10 0 6614   
50 50화 2019 / 11 / 3 12 0 5035   
49 49화 2019 / 11 / 3 17 0 4343   
48 48화 2019 / 11 / 3 15 0 3993   
47 7.착한 아이 2019 / 11 / 3 8 0 7320   
46 46화 2019 / 11 / 3 11 0 3906   
 1  2  3  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