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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에 버금가는 자.
작가 : Stonehead
작품등록일 : 2019.9.29

저승의 최고신, 염라대왕의 현신, 신아.
그가 머물고 있는 지옥에서 대형사고가 하나 터지는데......

"십이악령이 탈출했네."

저승이 관리하는 최악의 열둘 대죄인들이 저승을 탈옥한다!

"그것 참, 큰일이군요."

신아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이 즐거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염라대왕은 신아에게 악령의 처리를 맡긴다.
그리고 신아는 기꺼이 이 즐겁게 놀기(?)위해 악령들을 쫓아 이계(異界)로 향한다.

 
Chapter 2 서초패왕 : 제국에는 재앙이 숨어있다.
작성일 : 19-09-29 20:57     조회 : 22     추천 : 0     분량 : 1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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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제국의 수도 함경성.

 

  대륙의 동방을 지배하는 대제국, 천의 수도 함경성의 궁궐의 서쪽에 위치한 아담한 궁의 방문에 대고 한 시녀가 말했다.

 

  “황자 전하, 황제 폐하께서 북방 정벌을 명하셨사옵니다.”

 

  궁 안에서는 위엄 있고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쟁이라······. 나도 가고 싶군. 너무 재밌을 것 같지 않나?”

  “그러할 것이옵니다.”

 

  시녀는 무표정하게 답했다. 그녀의 눈에는 감정과 빛이 없었다. 마치 가사 상태에 빠진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전쟁. 너무나 흥분되는 단어지 않는가.”

 

  궁 안에서 그가 걸어왔다. 왕을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고 나온 그는 천 제국의 황자, 연 율이었다.

 

  그의 두 눈은 피처럼 붉었고 그의 손톱은 먹물처럼 검었다. 그의 몸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연 율 황자는 초원에서의 전쟁을 생각하며 웃었다. 햇빛에 비쳐 생겨난 그의 그림자도 웃었다. 그림자의 두 눈과 입은 초승달처럼 길게 찢어져 붉은 빛을 내며 흉측하게 웃었다.

 

 ***

 

  천 제국의 수도, 함경성에는 축제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대륙의 동방을 지배하는 대국의 수도답게 화려하고 역동적인 도시에 아주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었다.

 

  한 명은 주위의 어둠을 모두 빨아들인 것 같이 새까만 검은 서방식의 옷을 입은 수수께끼의 소년.

 

  다른 한 명은 푸른색의 유목민족 특유의 전통 의상인 겉옷 델(Del)과 긴 장화 모양의 고탈(Gutal)을 입고 아이의 몸만 한 검을 착용한 작은 아이가 있었다.

 

  소년은 불길한 색의 옷을 입었고 아이는 최근 제국에서 토벌 중인 유목민이었다. 자연히 제국민의 눈길이 험악해졌다. 검은 색은 제국에서 흉(凶)과 사(死)의 색이라 여기고 기피하는 색으로 황제 탄신일에 입고 올만한 옷이 아니었고 유목민족은 제국의 자존심을 짓밟은 족속들이었다. 치안유지부대의 위병들도 불길한 조합을 감시하고 있었다. 다만 뭔가 한 짓이 없으니 잡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후우! 굉장히 짜증나게 하는 눈길들이네.”

 

  정작 그 검은 소년, 신아는 신경도 안 쓰는 눈길이었다. 노이아 역시 주변의 눈길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검을 두 손으로 안듯이 쥐고 신아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이아가 쥐고 있는 검은 헌원검(軒轅劍)이라는 검이다. 헌원검은 탁록 전쟁(涿鹿 戰爭) 당시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던 황제(黃帝)에게 구천현녀(九天玄女)가 병법서와 함께 전해준 검이었다. 황제가 선계로 올라간 이후, 곤륜산 비고에 선인들에게 보관되어 있던 신물을 아주 오래전에 신아가 훔쳐온 것이었다. 그리고 천 제국에 오기 며칠 전, 신아가 노이아에게 전해준 신물이었다.

 

  헌원검 안에는 구천현녀가 필생 동안 연구했다던 병법서와 다른 여러 가지 지식들이 보존되어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서고란 소리였다. 그것도 흉기의 형태로.

 

  노이아는 지난 15년이란 세월 동안 제대로 배운 것이 없었다. 있어 봐야 대륙 공용어와 유목민족의 언어와 복종과 굴복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신아는 노이아에게 현원검을 건네줬다. 현원검 내에 저장되어 있는 다양한 지식들을 배우고 흡수하라는 의미였다. 현원검 내의 서고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서고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몇 시간, 며칠, 몇 달을 있다 나와도 현실의 시간은 들어갈 때와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빠른 학습을 필요로 하는 노이아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왜 자신에게 이렇게 까지 챙겨주는지 알지 못했던 노이아는 신아가 검을 건네주던 날, ‘가능하면 요리책부터 먼저 봐라.’ 라고 말했을 때, 이렇게 질문했었다.

 

  ‘왜 제게 이런 일을 시키세요?’

 

  이런 일은 자신 따위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전 아무것도 아닌데요.’

 

  노이아의 말에 신아는 허탈할 정도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러려고 널 샀는데.’

  ‘······.’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거기 있는 지식이나 빨리 흡수해.’

 

  그날 노이아는 알았다. 이 검에 담긴 지식을 얻는 것이 자신이 가진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그때부터 노이아는 검을 몸에서 놓지 않았다. 헌원검에는 주인에게 맞춰 크기가 변하는 기능 같은 것이 없으니 잃어버리면 죽인다는 신아의 협박과 경고도 있었지만 배운 게 없는 노이아의 입장에서는 생전 처음으로 배우는 지식이 즐겁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노이아가 헌원검에 집중할 때, 신아는 정면을 응시했다. 함경성의 중앙에는 웅장함을 과시하며 위엄을 보이고 있는 황금빛 궁궐, 천 제국의 황궁이 있었다. 어느 때와 같이 햇빛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황금빛을 빛내고 있는 황궁이지만 신아의 눈에는 달랐다. 황궁에 불길한 검은 기운들이 넘실거렸다. 신아와는 다른 악의가 가득한 기운들이었다. 저게 가능한 건 오직 악령밖에 없다. 그리고 신아는 천 제국으로 오게 된 소문을 떠올렸다.

 

  ‘······서초패왕(西楚霸王).’

 

  악령들은 살아생전에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다. 만약 이들이 일반 백성들의 몸에 빙의라고 했다면 찾는 것이 상당히 귀찮아 질 테지만 다행히도 십이 악령 중 하나는 천 제국의 황족의 몸에 빙의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초원에서 마주친 대상(隊商)이 전해준 말로는 천 제국의 황자 중 한 명이 어느 순간 갑자기 압도적인 무용을 뽐내며 스스로를 서초패왕이라 칭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초패왕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신아는 알 수 있었다.

 

  바로 서초패왕 항우! 본명은 항적으로 초나라의 군주로써 한나라의 고조 유방과 천하를 두고 자웅을 겨룬 중국 고대사의 전설이나 다름없는 천하제일의 무장이었다. 어마어마한 무력과 패기, 천부적인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십이 악령 중에서도 탑을 달리는 정도로 솔직히 신아로서도 항우와의 정면 대결은 가능한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늦게 찾을 예정이었지만 이제는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 되었다.

 

  “이 등신 같은 놈.”

 

  신아가 낮게 항우를 욕했다. 대체 뭐가 잘났다고 전생의 이명을 대놓고 광고한단 말인가. 악령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인간에게 빙의하면 찾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나 여기 있다, 이러고 광고를 하고 있으니.

 

  게다가 황궁을 보니 이미 악령에게 먹힌 지 오래였다. 이대로 계속 놔두면 황궁은 항우의 둥지가 될 것이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며 항우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때는 인과율도 어쩌지 못한다. 그러니 그전에 끝내야 했다.

 

  신아가 항우를 잡을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소소하고 아름다운 가마와 가마를 모시는 행렬, 그 뒤를 따르는 화려한 물건들이 담긴 수레가 치안유지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황궁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휘날리고 있는 깃발에는 朱(주)가 적혀 있었다. 황제 탄신일을 맞아 주 왕국에서 보내온 사절단이었다. 사람들이 좌우에서 사절단을 구경했다.

 

  ‘······음?’

 

  그때, 사절단의 가마가 신아의 앞을 지나갈 때, 신아가 불쾌한 느낌을 받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 느낌은 무척이나 끈적이고 불길한, 그리고 역겨운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신아가 사절단의 뒤를 바라봤지만 아까와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신아가 당혹스러워 할 때, 그의 맞은편 길 뒷골목에서 신아와 노이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체격이 건장한 남자들이 신아와 노이아를 보고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입맛을 다지고 있었다. 그들의 아랫도리는 부풀어 올랐고 두 눈에는 더러운 욕정이 가득했다.

 

  “이런 개새끼들이 진짜······.”

 

  신아는 자신의 착각으로 느낀 기분을 끔찍이 혐오하고 자리를 떠났다. 노이아가 검을 들고 그 뒤를 따르는 게 마치 시종을 보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자리를 완전히 떠났을 때, 뒷골목의 남자들은 모두 피가 흐르는 아랫도리를 부여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신아와 노이아가 걸어가니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황제탄신일에 흉과 사의 색을 입고 온 미친놈과 검을 들고 따르는 유목민족 뒤에는 치안유지부대 위병 두 명이 그들을 감시하며 뒤따르고 있으니 백성들 중 잘못 역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들어 황궁의 분위기도 안 좋아 황제탄신일 축제를 최대한 화려하고 크게 열려고 하는데 이런 불순분자들이 함경성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데 뭐 하나 사고 친 게 없어서 함부로 잡아갈 수도 없었다.

 

 저렇게 당당하게 대놓고 활보하는 것을 보면 집안 좀 있는 것 같으니 위병들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정작 신아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주위의 주점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뭐 좀 먹고 시작하고 싶은데······. 뭐 먹을래?”

  신아가 노이아에게 물었다.

 

  “······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노이아가 말했다. 고기를 말했을 때, 노이아의 눈동자에는 잠깐이지만 욕망과 생기가 맴돌았다. 참 알기 쉬운 아이였다.

 

  “그래, 고기. 고기 먹자.”

  신아가 말하며 대로의 왼편에 있는 주점으로 들어갔다. 주점의 주인은 ‘왜 하필 나야.’ 라는 썩어가는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봐, 난 오늘 장사 안 하니까······, 이봐!”

 

  신아가 점주를 무시하고 들어가 막무가내로 자리에 앉았다. 점주가 화를 내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쳐도 신아는 뭘 시킬까 고민했다. 결국 건수 하나 잡은 위병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때였다.

  “여기 맥적(貊炙) 많이. 잔돈은 필요 없어. 아, 술도 같이.”

 

  신아가 금화를 내놓으며 맥적을 주문했다. 점주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입이 쩍 벌어졌다.

 

 신아가 내놓은 금화는 모두 열 장. 천 제국민의 평균적인 한 달 수입은 은화 60에서 65장 정도다. 그 중에 열 장에서 열다섯 장 정도를 세금으로 가져간다. 즉, 실질적인 평균 수입은 은화 50장. 금화 열 장이면 20달 동안 일해야만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그그, 금, 금화!’

 

  금화를 눈앞에 둔 점주는 말을 못 잇고 어버버 거리며 금화를 만지작거렸다. 그가 평생을 이 일을 해도 만져본 적이 없는 금화였다.

 

  “자자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금방,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점주는 금화를 챙기면서 주방에 소리쳤다. 아까까지 신아와 노이아에게 소리치던 것과는 대조되는 태도였다.

 

 주위의 상인들도 놀라며 서로 눈치를 봐댔고 위병들도 놀라며 서로를 바라봤다.

 

  거금인 금화 열 냥을 아무렇지 내놓을 정도의 재력이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반드시 잡아야 할 고객이며 위병들 입장에서 쉽사리 건드리지 못할 사람이란 뜻이었다.

 

  잠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신아는 계속해서 황궁을 노려보았다.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는 않는 검고 불길한 기운들이 전보다 더욱 거세게 날뛰고 있었다. 둥지의 주인인 항우의 감정에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하 씨······. 저게 왜 또 지랄이야. 저 새끼, 저러다 꼭 사고 치던데······.’

 

  수백만 년을 산 신아의 입장에서는 항우의 행적이, 아니 그의 감정변화가 불안했다.

 

 이미 황궁은 악령의 둥지로 상당부분이 먹힌 상태다. 지금 당장 악령이 행동해도 그다지 이상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둥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은 더 큰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냥 지금 사고 쳐주면 안 되나?”

 

  신아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차라리 지금 항우가 움직인다면 신아도 움직일 수 있을 텐데, 항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저 넓은 황궁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항우가 누구한테 빙의했는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들어가 찾기도 힘들었다. 만일 항우가 알아채고 도망이라도 친다면 자신이 남아있는 악령의 둥지를 처리해야 하니까. 악령의 둥지는 악령을 소멸시키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문제가 되기 전에 항우와 함께 처리해야 했다.

 

  “······하아.”

  신아가 한숨을 뱉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노이아가 신아를 따라 황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이아의 눈에는 황궁은 여전히 빛났다. 그가 닿을 수 없는 세계임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황궁에 이상한 균열이 보였다. 주변 사람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 오직 노이아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노이아가 눈에 힘을 주고 집중하니 균열이 갈라졌다.

 

  그 속에는 시커먼 어둠과 지독한 악의가 있었다. 어둠이 꿈틀거리며 균열 밖을 삼켰다. 균열이 점점 넓어지고 어둠이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황궁을 덮기 시작했을 때, 노이아는 그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아으, 흐으윽.”

  노이아가 신음을 흘리며 한쪽 손으로 눈을 감쌌다.

 

  평범한 인간이 가지는 한계였다.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인지 불가능의 존재, 지각 불가능한 격을 마주 할 때, 인간의 정신은 그 압도적인 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마주 하려 하니 정신은 결코 정상적인 것으로 남을 수 없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저 균열 속의 어둠과 악의를 보는 순간 정신이 먹혀 이성도 감정도 본능도 없어진다. 한마디로 가사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노이아가 여기까지 보고도 멀쩡한 것은 그가 북두성의 아이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신아와 헌원검의 영향력 안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아가 소멸되지 않는 한 노이아 역시 죽지 않기에 정신이 먹힌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수복될 것이고 신아의 힘이 노이아를 감싸고 있었기에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다.

 

  거기에 헌원검은 본래 반란을 일으킨 악(惡), 치우를 처단하기 위해 만든 검. 따지고 보면 신이 직접 사용한 성검이었다. 헌원검이 가지고 있는 신성이 노이아를 악의에게서 보호했던 것이다.

 

  “이게······ 이게 뭐죠?”

  노이아가 간신히 신아에게 물었다.

 

  신아는 밑반찬을 하나 집어먹은 후 말했다.

  “앞으로 내가 사냥해야 할 것들.”

 

  신아가 노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이아의 머릿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혼돈이 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나와 함께 네가 마주해야 할 것들.”

 

  노이아는 헌원검을 꼭 끌어안았다. 그것이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많이 먹고 빨리 커라. 내가 널 마음껏 쓸 수 있게.”

 

  신아가 말했다. 그 사이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맥적이 나왔다. 신아가 먼저 맥적을 한 점 먹었다. 노이아도 잠시 뒤, 젓가락을 들고 맥적을 먹었다.

 

  점주는 금화 값을 하기 위해 열심히 음식을 가져다 날랐다. 주문하지 않은 맥적만이 아니라 고기 요리란 고기 요리는 모두 내왔고 가게의 비싼 술까지 내왔다. 신아와 노이아는 사양하지 않고 모두 먹었다. 먹는 내내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

 

 천 제국의 황궁에서는 사신 접대가 한창이었다. 천 제국은 동방의 소국들에게 조공을 받고 있는 종주국으로 황제 탄신일과 같은 축제에는 평소와 비교도 안 될 어마어마한 조공품을 들고 사신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사신 파견은 천 제국의 최대의 제후국, 주 왕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 왕국의 공주, 태화가 천조의 황제 폐하께 인사드리옵니다.”

 

  주 왕국의 사신으로 온 주 왕국의 유일무이한 왕녀이자 왕국의 꽃이라 불리는 태화 공주는 침착한 태도로 황제의 어전 앞에서 인사를 올렸다.

 

  태화 공주가 처음 본 황제의 입장은 가시나무였다. 늙고 늙었지만 가시만큼은 형형하게 살아남은 거목 같았다.

 

  “어서 오라. 짐의 탄신일을 맞아 이 먼 제국까지 오느라 고생하였느니라.”

 

  늙은 황제가 높은 옥좌에 앉아 말했다.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두 눈은 날카롭게 형형하게 빛났다.

 

  “고생이라니요. 당치도 않사옵니다. 어찌 천조(天朝) 황제 폐하의 탄신일에 고생이란 것을 하겠사옵니까.”

 

  태화 공주가 말했다. 몇몇 노대신들이 미소를 지었다. 손녀딸이 부리는 재롱을 보는 미소였다.

 

  “그래, 먼 길 오느라 고단할 터. 이만 물러나 쉬거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가 물러날 것을 명하자 태화 공주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어전에서 물러났다.

 

  황제의 어전인 위정전을 벗어나자 태화 공주는 그제야 살겠다는 듯이 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

 

  주 왕국의 자유롭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자란 태화 공주는 어전과 같이 숨 막히고 무거운 분위기는 견디기 힘들었다.

 

  “하아······. 황제 폐하, 너무 무섭다.”

  “너무 무서워하는 거 아니야? 좀 서운한데.”

 

  그때, 낭랑하고 쾌활한 목소리가 말했다. 태화 공주는 놀라며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에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있는 태화 공주 또래의 소녀가 있었다. 주홍빛 치마, 노란 색 저고리, 분홍 조끼를 입은 소녀는 쿡쿡 웃으며 태화 공주에게 다가왔다.

 

  “황녀 전하. 놀랐잖습니까.”

 

  태화 공주는 그녀가 누군지 확인하자 가볍게 타박했다. 목소리의 주인, 천 제국의 황녀, 여와 공주였다. 여와 공주는 어린 시절을 주 왕국에서 보냈으며 태화 공주와는 소꿉친구 관계였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아. 여긴 온통 눈과 귀 밖에 없거든.”

 

  유와가 부채를 촥! 소리가 나게 접고 태화에게 다가왔다. 여유롭고 우아한 걸음걸이, 여주인에 어울리는 풍채였다.

 

  “알아. 그런데 여기는 아니잖아.”

 

  태화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그래, 여기는 아니지.”

 

  유와가 그렇게 말하며 부채를 펴보았다. 부채에는 검은 먹으로 현무가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부채는 주 왕국 왕실 주술사가 특수 제작한 것으로 태화의 아버지인 주 왕국의 왕이 유와의 생일날 선물로 보내준 것이었다.

 

  부채에는 일정 반경의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와 기척을 외부와 차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항시 그런 것이 아니라 부채를 펴 현무 그림이 보일 때만 가능했다.

 

  “어쩐 일이야?”

  “꼭 일이 있어야 만나나? 그냥 네가 왔다기에 와봤지.”

 

  유와는 새침하게 입을 삐죽이며 자연스레 태화의 팔짱을 꼈다. 태화는 유와와 함께 황궁의 복도를 걸었다. 그녀들의 뒤를 시녀들이 소리 없이 뒤따랐다. 두 소녀의 웃음소리가 황궁 복도를 채웠다.

 

  “이게 누구신가? 내 사랑하는 누이가 아닌가?”

 

  그때, 두 사람의 재회를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방지고 거들먹거리며 오만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황자 전하.”

  태화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율아.”

 

  유와는 불편한 눈으로 방해꾼을 바라보았다. 최근 제국에서 소문이 자자한 황자, 연 율이었다. 황제와의 불화로 황궁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유와의 동생이기도 했다.

 

  “그대가 주 왕국의 공주라지?”

  “그렇사옵니다.”

  “만나서 반갑군.”

 

  율 황자가 태화를 보며 웃었다. 그 미소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미소였으나 유와는 무언가 꺼림칙해 태화를 지키듯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어쩐 일이라니, 누이께서 날 너무 박대하는 거 아니오?”

 

  율 황자가 점짓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유와나 태화가 보기에는, 주위의 시녀들이 보기에도 그 표정은 가면이었다. 자연스레 유와의 얼굴이 험악해 졌다.

 

  “그런 표정 짓지 마시오, 누이.”

  율 황자가 가면을 벗고 이전의 건방지고 호탕한 얼굴로 돌아왔다.

 

  “나야 뭐, 상장군께서 부르시니 가는 길이죠. 그리고 같은 궁에 살다보면 얼굴 한 번 마주 칠 수 있는 거죠.”

  “상장군이 널······?”

 

  유와가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율 황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웃으며 유와의 어깨를 한 번 치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어이없다는 유와에게 태화가 다가왔다.

 

  “저 분이 그······.”

  “그래, 아주 미친놈이지. 갑자기 서초패왕이니 뭐니 하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으니.”

 

  유와의 입에서 욕설이 섞여 나왔다. 그녀의 두 눈에는 동생에 대한 사랑이 아닌 혐오와 경멸만이 있었다.

 

  연 율 황자는 본래 거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원래 황족들 중 가장 소심하지만 학문에 뜻이 있는 아이였다.

 

  그러다 몇 달 전, 율 황자가 낙마를 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원래 문(文)을 가가이 하고 무(武)를 멀리 하던 아이라 말을 잘 타지 못하였고 결국은 말에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몇날며칠을 상처 부위를 통해서 감염된 병으로 끙끙 않던 율 황자는 가망이 없다는 황궁의의 예상과 달리 부상을 털고 일어났다. 모두가 특히, 친모인 주아 황후와 유와 공주가 가장 많이 기뻐했다.

 

  그런데 깨어난 율 황자가 이상해졌다. 학문을 즐기던 황자가 이미 다 배운 것이라며 공부하기를 관두고 병사들과 함께 연무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난 장수들도 들기 힘든 대검을 구해와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스스로를 ‘서초패왕’이라고 칭했다.

 

  실제로 율 황자의 궁은 황궁의 중앙인 위정전의 서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래서 서(西)초패왕이라고 칭하나 보다 했다.

 

  황제와 황후도 공부만 하느라 허약한 아들의 체력이 걱정됐던 터라 별다른 재제를 하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하고 그만두겠지, 했던 거다.

 

  하지만 율 황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겸손했던 옛 성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 보다 거만해지고 난폭해졌다. 그는 무를 숭상했고 무인들과 관계를 만들과 자주 친분을 쌓았다. 이제는 하다못해 궁으로 낭인(浪人)들까지 불러들여 술판을 벌였다.

 

  “상장군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황자가 무인들과, 특히 군부와의 회동이 잦아지자 황제로서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스스로 패왕이라고 칭한 아들을 보며 황제는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때부터 황제는 황자를 꾸짖었고 황자는 황제에게 반발했다. 황자와 어울리는 무인들에게는 징계가 떨어졌고 황자는 또 거기에 반발해 황제에게, 황후에게까지도 대들었다.

 

  시간이 지나니 황궁은 황제를 위시한 문관들과 황자를 위시한 군부로 나눠지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니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태화는 그런 율 황자의 뒷모습을 유난히 길게 쳐다봤다. 태화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스쳤다 사라졌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묘한 미소였다.

 

  “우리 그러지 말고 나가자. 나 함경성 구경하고 싶단 말이야.”

 

  태화가 유와의 화를 풀어 주려는 듯이 유와의 팔을 잡고 졸랐다. 천 제국의 시녀들이 놀랐으나 그 티를 내지 않았고 주 왕국의 시녀들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풋. 그래, 알았어. 가자.”

 

  유와가 웃으며 태화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 그곳의 그림자 속에서 붉은 옷을 입은 율 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율 황자는 두 사람, 그중에서 태화 공주를 유심히 바라봤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짜증나는 기분이다.”

 

  그것을 끝으로 복도는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율 황자는 나타날 때처럼 한순간에 어둠 속에 녹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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