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현장 소장 실에서 아침회의를 마치고
도향병원으로 갔다.오전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임화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나오셨습니까? 원장님.”
“그래요. 잠도 못 잣겠군.”
집무실로 들어와 책상에 앉자, 임화경이 커피 잔을 들고 들어와 보고서를 건넸다.
“오늘 뇌사자 네 명의 시술이 있습니다.
수술이 곧 시작 될 겁니다. “
“그래? 시술실로 가볼까?”
난 임화경을 데리고 영안실 옆, 장기 적출실로 갔다.
L.O.P. 재단 산하, 대형 교회들의 신도 수는 120만 명이 넘는다.
그들 중 장기 기증 서에 서명한 신도수가 40만 명이다.
그리고 자연사나 사고에 의해 죽는 신도가 매년 6천 명이 넘었다.
기증 서에 서명한 그들 중 뇌사자로 판명되면,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이곳
도향병원으로 실려 오고, 장기적출에 들어간다.
우리는 전실에서 녹색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본 외과의사 제롬은 라텍스 장갑을 낀 양손을 올린 채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밝게 켜진 무영들 아래, 스테인리스 수술대 위로, 여자로 보이는 뇌사자 한구가 산소 호흡기를 단채 반듯이 누워 있었다.
뇌 활동은 이미 정지했지만 신체의 장기들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준비가 끝났고 장기 적출 수술이 시작됐다.
간호사들이 뇌사자의 양팔 정맥에 펌프와 연결된, 14 게이지의
굵은 바늘을 꼽아 몸 안의 혈액을 모두 제거한다.
그리고 다시 인공 혈액 대체재를 주입한다. 이 과정에 5분이 소요됐다.
혈액 대체가 끝나자 외과의사 제롬이 메스로 사체의 복부를 중앙에서 세로로 길게 갈랐다.
그리고 다시 가로로 절개했다. 하얀 복막을 거둬내고 신속한 손놀림으로 필요한
신체부위들을 절단해 간다. 동시에 안과 의사가 뇌사자의 눈에서 안구를 적출했고, 축출된 안구는, 바로 생리 식염수에 담가져, 특수 냉각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자동으로 알루미늄 캔에 포장된다.
외과 의사 제롬은 뇌사자의 병력과 상태를 종합해, 쓸 수 있는 장기들을 선별하고 분리해 절단해갔다.
장기가 적출된 사체는 최대한 원상태로 봉합되어 영안 실로 옮겨진 후, 보호자에게 넘겨질 것이다.
임화경은 시신의 이름과 나이, 병역들을 리스트에 기록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구의 장기 적출 시술이 끝날 때 까지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집무실로 돌아온 나는 임화경에게 말했다.
“오늘 점심이나 같이할까?”
“네, 그러지요.”
임화경은 선뜻 대답했다.
병원 앞 한식당에 마주 앉았다.
“난 오늘 사람 해부하는걸 처음 보았어. 여자였어.
해부가 끝날 때까지 심장이 뛰고 있었지.
가끔, 메스가 신경조직을 건드릴 때마다 몸이 움직였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
“쇼크 받으셨나요? 저도 처음 시술에 참여 했을 땐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원장님이나 저는 훈련된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니까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지만
지금도 수술 끝나고 나오면 기분이 언짢아요.”
“난 조직에 처음 가담 했을 때 살인에 관여한 적이 있어.
사체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 내 눈 앞에서 경련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지.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살인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어.
그건 내가 아닌 낯선 남자의 얼굴이었지. 밤새 몸부림치며 울었어. 하지만 시간이
모든 걸 덮어 버렸지. 지금은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실인의 추억일 뿐이야.”
나는 도를 넘고 있었고, 솔직했다.
임화경은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내가 말을 마쳤을 때 그녀의 눈은 젖어있었다.
“그게 조직의 일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을 지금도 하고 있고요.”
그녀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이미 선택의 자유는 없어요.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요.”
난 집무실로 돌아와 임화경이 작성한 서류에 사인을 하고 병원을 나와, 대광교회로 갔다.
“어서 오게, 정집사. 내일이면 공정 20프로가 넘는다며?”
차목사는 밝은 표정으로 당화장실로 들어오는 나를 반갑게 맞았다.
“11월 30일부로 공정 20프로가 넘어섭니다. 현장 소장이하 인부들이 고생이 많았지요.
현장에 보너스라도 내려 보내 사기를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 내, 그렇게 함세. “
차목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일 오전에 재단에 보낼 보고서와 자금 요청서를 작성해 가져다주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당회장실을 나와 아래층 건축팀 사무실로 내려가 11월 공정 보고서와 3차 자금요청서를 작성했다.
‘내일이면 차목사는 재단에 3천억을 요청 하겠지.
그리고 그중에서 636억이 김태식에게 갈 거야. 그걸 막아야 하는데. “
난 최장로를 통해 김태식의 사채 600억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오늘 수술현장 보시고 힘드셨지요? 기운 내세요.”
임화경이었다.
난 핸드폰을 닫았다.
답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외로운 거야. 5년을 함께한 이성수도 떠났고,
장기 적출현장에 매일 참여해야하는 그녀에겐, 누군가, 일을 떠나 말상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보고서와 요청서 작성을 마치고 교회를 나와 차에 시동을 걸며 핸드폰을 들었다.
“임화경씨? 나야. 보내준 문자 고마웠어, 몇 시 퇴근이지?”
“전 행정직이라 6시 반에 퇴근해요.”
“약속 없으면 저녁 살게.”
잠시의 침묵 뒤에 그녀가 말했다.
“7시에 괜찮아요. 병원 근처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부천 중동역, 현대 백화점 옆에 ‘하루’라는 일식집이 있어. 7시에 거기서 볼까?”
“그래요, 원장님. 저녁초대 고마워요.”
난 천천히 부천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일식집 ‘하루’에 도착했을 땐 6시 50분 이었다.
창호지 문으로 칸막이가 된 4인실은 테이블 밑의 다다미 바닥이 움푹 꺼져 다리를 내리고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종업원이 가져온 녹차를 따라 마실 때, 미닫이문을 열고 임화경이 들어왔다.
그녀는 유니폼이 아닌, 감색 스커트에 하늘색 린넨 재킷을 걸치고 있었고,
자리에 앉는 그녀의 움직임에서 찬기가 스쳤다.
“날씨가 많이 추워 졌어요.”
“내가 개인 시간을 뺏은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아니에요. 원장님 약속 없었으면 집에 들어가 T. V 나 보다가 잠들었겠지요.”
그때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온 종업원에게, 적당한 식사와 안주를 정종과 함께 주문했다.
주문한 식사가 들어오고, 임화경은 따끈한 정종 주전자를 들어 내 잔에 부었다.
난 다시 주전자를 받아 그녀의 잔에 술을 따랐다.
“부모님과 함께 사나?”
“혼자예요. 전 가족이 없어요. “
“그래? 나와 똑같군. 혼자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요즘 들어 깨달아. “
“전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부모님 얼굴도 모르지요. 12살 때, 스페인에서 온 부부가 저를 입양했어요.
그리고 스페인, 마드리드로 갔지요. 양어머니는 저에게 친딸처럼 대해 주셨어요. 전 거기서 학교에
다니며 행복한 새 생활을 시작했지요.”
“음, 그랬군. 나도 부모님들 돌아가시고, 대학 졸업 후, 중동으로 떠났어. 그곳에 오래 있었지.
해외생활이 오래 되니까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더군.
그냥 일만했어.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고, 우연찮은 일로 마드리드에가, 조직원이 되었어.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 내 정체성이 뭔지······.
네 말대로 그냥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거야. 혼자서. “
어느새 정종 주전자가 비었고, 난 또 하나를 주문했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제게, 스페인에서의 새 생활은 행복했어요. 그리고 2년 후, 양어머니께서 교통사고고 세상을 떠나셨지요. 전
양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어요.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 됐지요. 양아버지는 밤마다 저를 괴롭혔어요. 지옥 같았지요. 혼자 많이도 울었어요.
아직도 그 남자의 입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기억나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반항하는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폭행은 무자비했고 오래 지속되었지요.
폭행이 끝나고 그가 잠들었을 때, 전 주방으로 가 칼을 집었어요.
그리고 잠든 그의 가슴에 칼을 꽂았지요.
그 남자는 발작하며, 피 묻은 손으로 내 어깨를 움켜잡았고,
그때까지도 칼은 그 남자의 가슴에 깊이 박혀 있었어요.
난 너무나 무서워 비명을 질렀어요.
소리치고 또 소리쳤지요.
제 비명 소리에 옆집 사람들이 몰려왔고,
난 살인죄로 경찰에 수감되었어요.
미성년자에, 정상이 참작되어 2년 만에 소년 교도소에서 나올 수 있었지요.
감옥에서 나온 나는, 갈 데가 없었어요. 프라다 미술관 근처의, 고야동상 옆 벤치에서 밤을 보냈지요.
아침에 한 노인이 벤치위에 잠들어있는 저를 깨웠고, 저는 그 노인을 따라 재단 본부로 갔어요. “
“그게 제이콥 박사였군!”
“그래요. 그때부터 L.O.P. 재단에 포섭되어 조직원이 되었어요.
처음엔 마약밀매를 담당했어요. 재단의 배려로 낮엔 대학에 다닐 수 있었고, 밤엔 마약을 팔았지요.
그때 제 나이가 열여덟이었어요.
그런 생활이 계속됐고, 오 년 전 이성수 원장님과 이곳 도향병원에 오게 된 거예요.
어때요? 소설 같지요? “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군. 결코 가냘픈 어린여자가 감당할 수 없는 삶을 혼자서 버텨 온 거야.”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점심때 원장님님 얘기를 들었을 땐 눈물이 나더라고요. 참 우습지요? 바울의 전사가 눈물을 흘리다니.”
“눈물은 아픈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만의 전유물이지. 나도 그중 한사람이고.”
“원장님은 이곳일이 끝나면 어디로 가세요?”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어. 너도 머지않아 알게 될 거야.”
우리는 일식집 ‘하루’를 나왔다. 시간이 10시를 지나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그녀는 내 팔짱을 꼈다. 난 차의 문을 열며 말했다.
“타. 데려다줄게.”
그녀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말했다.
“취하신거 같은데 잠시 들어오셔서 커피 한잔 드시고 가세요.”
15평형 원룸인 그녀의 아파트는, 단촐한 살림살이들이 있어야 할 곳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혼자 사는 여자의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내가 소파에 앉자 그녀는 걸치고 있던 린넨 재킷을 벗어 소파 옆에 걸고 주방으로 가며 물었다.
“설탕 넣으세요?”
"아냐. 그냥 연하게. “
그녀는 바리스타 커피머신에 원두를 넣고 물을 부어 커피를 내렸다.
어느새 좁은 실내에 커피향이 짇게 깔린다.
흰색 티셔츠 위로 드러난 그녀의 하얀 목선이 좁은 어깨를 타고 내려오며 깊은 곡선을 만들고,
여체의 곡선은 힙을 지나 감색 스커트에 감추어진 길고 곧은 다리를 감싸며 흘러내렸다.
난 그녀가 몸을 돌려 커피 잔을 들고 내 앞에 앉을 때까지 그녀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커피 잔을 반쯤 비웠을 때 그녀가 물었다.
“외로우세요?”
난 그녀에게 대답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그녀는 자신의 커피 잔을 들고 일어서 내 옆으로 왔다.
“오늘은 조직에서 도망치고 싶어요.”
난 그녀의 어깨를 당기며 입술을 덮었다.
그녀는 입고 있던 흰색 티셔츠를 벗고 스커트의 지퍼를 내렸다.
하얗게 빛나는 여체의 깊은 곡선이 내 시선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당당히 서 있었다.
여자의 가슴을 덮고 있던 내입 술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천천히 해주세요. 서두르지 말고요.”
그녀는 가슴속 깊이 억눌려있던 외로움을 지우며, 온 몸으로 나를 안았다.
오랫동안의 격정이 끝나고, 끝없는 깊은 휴식에 눈을 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