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나는 아침을 호텔에서 먹고 아일린을 남겨둔 채 근처의
강림 교회를 찾았다.
반사 유리로 지어진 이 휘황찬란한 교회는 호텔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2층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피오나는,
나를 보고 찡긋 한쪽 눈으로 싸인을 보냈다.
난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소형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신 경식 목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세요. 대광 교회, 차범석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 정 준수라고 합니다. 어제 밤에 도착했습니다. 이스탄불은 두 번째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차 목사님이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건축가라고 들었습니다.”
“과찬 이십니다. 부끄럽습니다. “
신 목사는 덩치가 컸고, 찢어진 눈이 번들거렸다.
“자, 일단 사업 얘기를 시작하지요. ‘성화궁’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곳 얘기부터 들어 볼까요? “
“일단 공정은 제 궤도를 찾았습니다. 적시의 예산 투입만 남았지요.”
“그래요, 그래서 내일 마드리드에 가시면 L. O. P. 재단 이사장이신 ‘이안 '제이콥’ 박사가
직접 예산 투입 계획을 얘기하실 겁니다.”
“떠나기 전, 차 목사님께서 신 목사님을 만나 L. O. P. 재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마드리드로 가라고 하시더군요.”
“알고 있습니다. 차 목사가 보낸 분이니 말씀을 드리지요.”
그는 잠시 하려는 말의 두서를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L. O. P. 재단, 즉, ‘바울의 사자들’이란 조직은 역사가 오래된 범 기독교 단체입니다.
2 천 년 전 바울 사도 이후에 조직되어 지하에서만 활동하던 이 조직이
1549년 바울의후손인 돈 호반 형제에 의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동안 중세 카톨릭과의 관계만을 기반으로 성장 해온 조직이 유럽의 종교 혁명 이후,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주목하여 개신교와 손을 잡으며 로마 바티칸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 했지요.
개신교의 확장과 더불어 재단은 급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 84개국에 600여 개의 소속 교회를 거느리고 있지요.
L. O. P. 재단의 자산은 5경이 넘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유대 자본인 ‘체이스 앤 모건’보다 크지요.
재단은 60년대 이후,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한 유럽의 개신 교회들로부터
눈을 돌려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한 겁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개신교 확장이 가장 활발한 국가가 한국이니까요. “
난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난 그에게 듣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L. O. P. 재단은 어떤 식으로 막대한 자금을 모으나요?
“그 질문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재단의 주 수입원은 교회와 연관되어 있는 의료 사업입니다.
재단 소속의 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장기 기증 운동 이지요.
전 세계 개신교 신자는 종파를 초월해서 8억 명이 넘습니다.
그들 중 매년 1,200 만 명이 자연 사망 합니다. 그들 중 다수가 교회에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지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증한 장기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공급됩니다. “
“부자들이겠군요.”
“하, 하. 대부분이 그렇지요. 부자들은 교회에 거금을 헌납하고 자신들의 목숨을
이을 장기를 무료로 공급 받습니다.”
“무료가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에 헌금을 했는데.”
“날카로운 질문이군요. 교회의 헌금과 공급받는 장기의 보상은 다른 겁니다.
그들이 내는 돈은 적법한 헌금일 뿐이지요.”
“신 목사님께서는 재단과 어떤 관계이십니까?”
신 목사는 의외의 질문을 받은 듯 잠시 생각한 후 말을 뱉었다.
“저는 재단 본부의 핵심 멤버중 하나입니다.
이 일에 깊이 관여 하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시게 되겠지만 미리 말씀 드리지요.
재단은 내부적으로 방대한 소속 교회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바울 전사단’이란
비밀 조직을 운영 하지요.
나는 그 조직의 한국과 터키 담당 책임자입니다.
바울 전사단은 재단에 속한 교회들을 감시하고 본부와 산하 교회들 간의 중간 책으로
전달자 임무를 수행하지요.
그리고 재단 내 조직에서 일어나는 각종 잡음을 제거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거기까지만 아시면 됩니다.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내일 두시 비행기라고 들었습니다. 떠나기 전 잠시 제 사무실에 들르십시오.
제가 확인증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마드리드 본사에 가시면 제가 드리는 확인증을
그곳 직원에게 보여주세요. 확인이 된 사람만 재단 이사장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난 교회를 나와 호텔로 돌아왔다.
아일린은 테이블 위에 메모를 남긴 채 외출하고 없었다.
‘성 소피아 성당의 외삼촌께서 전화하셨어요. 만나고 올게요. 호텔서 봐요.
그리고 피오나와 저녁에 약속을 잡아 놨어요. “
난 소형 녹음기를 꺼내 노트북에 연결했다.
그리고 녹음된 음성 파일을 다운 받았다.
잠시 후 외출에서 돌아온 이일린은 서류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넸다.
“파블로 삼촌이 당신께 주라고 하셨어요.
삼촌은 그동안 각국의 고대 문양 전문가들에게 연락을 취해서 앙크문양이 새겨진
카톨릭 교회들을 조사 하셨나 봐요.
여기 그 교회들의 명단과 사진이 들어 있어요.”
파블로가 전해 준 봉투 안에는 열두 개의 교회의 사진과 명단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지도위에, 그 명단 속의 교회들을 찾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제 붉은 동그라미, 열여덟 개가 그려졌다.
저녁 일곱 시, 교회에서 퇴근한 피오나와 우리는 이스탄불 교외의 작은 식당에 함께 모였다.
그리고 난, 강림 교회 신 경식 목사와의 면담 내용을 설명했다.
“이제 대충 전모가 파악 됐어.
제레미아가 죽기 전 남긴 유서에서 언급한 666개 사탄의 교회중 대부분은
L. O. P. 재단의 소속 교회들이야. 파블로 삼촌이 찾으신 열두 개와 우리가 찾은 여섯 개를
모두 합치면 대략 그 숫자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 절정에 한국의 성화궁이 있는 거지.
그리고 신 경식은 L. O. P. 재단이 운영하는 바울 전사단의 핵심 멤버야.
바울 전사단은 재단을 보호하는 일종의 자경단과 같은 거야.
짐작컨대, 비밀리에 장기 밀매와 마약 가래를 관리하고 있겠지. “
심각하게 듣고 있던 아일린이 말했다.
“.L. O. P. 재단의 소속 교회들을 파악하면 그것들이 바로 앙크를 새긴 교회이군요.”
“맞아, 신 경식은 그 숫자가 대략 600개가 넘는다고 했어.
그 명단만 입수하면 그게 바로 우리가 찾아온 앙크의 숫자야.”
순간 피오나의 눈이 빛을 발하며 긴장했다.
“오늘밤 제가 할게요.”
“오늘밤?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아일린과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저는 신 경식 목사의 업무 비서예요. 그 명단이 어디 있는지 짐작이 가요.
그리고 전 그곳에 아무 때나 출입할 수 있어요.
사무실 열쇠도 제가 갖고 있지요. 오늘밤에 하겠어요.”
“아니야, 너무 위험해. 신 경식은 바울 전사단의 우두머리야. 만일 발각되면 살아남기 힘들어.”
그녀는 당당하고 단호했다.
“제 아버지는 쿠르드족의 자랑스러운 전사셨어요. 전 그 아버지의 딸이고요.
해낼 수 있어요. 오늘밤 자정에 그곳으로 가겠어요.”
난 그녀의 작고 가녀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결기를 보았다.
그녀는 마치, 머리를 뒤로 묶으며 시리아의 전쟁터로 나가는 쿠르드족의 여전사 같았다.
그리고 난 그녀를 믿기로 했다.
“피오나, 이 일은 안전이 최우선이야. 발각되면 모든게 끝장나. 신중하게 처리해야해.”
그녀는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녀에게 소형 녹음기를 내밀었다.
“신 목사의 사무실로 들어가면 그의 책상 앞 소파, 오른쪽 틈새에 녹음 버튼을 누른 후
이걸 보이지 않게 밀어넣어. 내일 정오에 내가 그의 사무실에 가면 그것을 다시가져올거야.
일이 끝나고 교회를 나오는 대로 아일린에게 연락해야 해. 알았지?”
피오나는 결의에 찬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며, 녹음기를 받아 핸드백 속에 넣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피오나와 헤어져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는 피오나로부터 연락이 올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날 밤, 자정을 넘기고 피오나는 당당히 교회로 들어서고 있었다.
교회 정문에 앉아 있던 가드는 피오나를 보고,
“피오나, 오늘도 야근인가요?”
“아니에요. 두고 나온 서류가 있어서요. 잠시면 돼요.”
교회로 들어온 그녀는 당당하게 걸어 계단을 올라 2층 사무실로 갔다.
적막한 교회 안엔 계단을 오르는 구두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온 피오나는 바로 자기 책상 옆의 있는 C. C. TV 녹화기의 전원 버튼을 내렸다.
그리고 핸드백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내 신 경식 목사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소파의 오른쪽 틈새에 녹화 버튼을 누르고 끼워 넣었다.
그리고 서둘러 신 경식의 캐비닛을 열어 명단을 찾았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고 침착하게 서류를 찾아 나갔다.
수많은 서류들을 훑어보는 그녀의 갈색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명단을 찾아냈다.
그녀는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메신저로 아닐린에게 바로 보냈다.
‘해낸 거야.’
그녀는 서둘러 펼쳐 놓았던 파일 더미들을 정리하여 다시 캐비닛으로 가져갔다.
캐비닛을 여는 순간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순간 그녀의 머리채가 뒤로 젖혀지며 목에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이 닿는 것을 느꼈다.
핏줄이 불거진 남자의 강한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저치고
그녀의 목에 칼을 대고 말뚝처럼 서 있었다.
“너 뭐하는 거야 여기서!”
칼날이 닿은 그녀의 가늘고 하얀 목에서 핏방울이 흘렀다.
“말해! 뭘 빼내려고 했지? 누가 시킨 짓이야?”
그녀는 눈을 돌려 남자를 쳐다봤다.
신 경식이었다.
그는 목사의 탈을 벗어 던지고 악마의 눈으로 작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흠, 조그만 년이 간도 크군. 네가 혼자서 한일은 아닐 테고, 누구냐? 누가 시킨 거야?
바티칸에서 시켰나? “
신 경식은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절망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남자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들어 올리며 가운데 손가락을 남자에게 세웠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개새끼!”
순간 남자의 눈이 치켜 올라갔고 칼을 잡고 있던 남자의 오른손이 왼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헉!”
여자는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심장 박동에 맞춰 뜨거운 혈액이 여자의 갈라진 목에서 뿜어져 나온다.
신 경식은 혈액이 묻은 칼을 든 채 서서, 몸 안의 혈액을 모두 뱉어내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가는 작은 여자의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쓰러진 몸의 마지막 경련이 멈추자, 신 경식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바울 전사단, 나 신 경식이다. 여기 처리해야 할 시체가 있어. 바로 교회 사무실로 오기 바란다. 기다리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