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우리는 돌무쉬(터키 합승버스)를 타고 베드로의 동굴 교회로 갔다.
도로변의 빈민가를 지나, 올리브 나무가 열매를 매단 채 무성한 오르막길을 오르니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교회가 있었다. 그곳이 바로 성서에서 말한 수리아 안디옥 교회였다.
교회 동굴로 들어가는 정문 앞엔 몇몇 관광객들만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그 흔해빠진 성화 한 점 없이 썰렁했고, 마주 보이는 강대상 뒤로, 사도 베드로의 조각상이 서있다. 강대상 오른쪽으로는 작은 통로가 위로 향하며 다른 동굴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아일린과 나는 석회석을 깎아 만든 교회의 벽면과 천정을 꼼꼼히 살피며 사진을 찍었다.
같이 들어왔던 관광객들이 세 번씩 바뀔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 머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제레미아가 죽으며 말했던 그 표식, 악마의 표식을…….
한참 후, 나보다 큰 눈을 가진 아일린이 먼저 외쳤다.
“저기예요!”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강대상 오른쪽 천정을 가리켰다.
“맞아. 앙크야! 역시 있었군!”
그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이제, 실체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이었다. 아일린은 순식간에 얼어버린 내 몸을 안으며,
“당신 말이 맞았어요. 이제야 비밀의 끝을 보는군요. “
“이제부터 시작이지. 666개 중 하나를 찾아낸 거야.”
하나씩, 나의 상상은 이렇게 모습으로 보이며, 현실이 되어,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동굴 교회로 향했던 오르막길을 내려오며 아일린이 말했다.
“우리가 두 번째 제레미아 교회를 방문했을 때가 생각나요. 당신은 거기서 제일 먼저 앙크를 발견했지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집트 문양 하나에서 당신은 감춰진 비밀을 직감했어요. 그리고 행동으로 저를 이해시켰지요. 그리고 저는 이곳 안타키야 까지 당신을 따라왔고 이제 그 비밀을 눈으로 확인한 거예요.”
“우리가 처음 제레미아 교회를 방문했을 때부터 이 일은 예정되어 있었어.”
우리는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세계지도 한 장을 샀다. 그리고 그 위에, 터키 안타키야를 찾아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리고 번호를 매겼다.
“앙크-1, 터키 안타키야, 안디옥 교회, 베드로의 강대상 오른쪽 천정”
그날 밤 침대에서 아일린이 말했다.
“당신은 신뢰감을 느끼게 만드는 남자예요."
난 대답했다.
“넌, 내가 본의 아니게 시작한 이 일의 시작과 끝에 나와 함께 있을 거야.”
“당신도 나를 당신의 내면세계에 초대해 주세요.”
그녀는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내 입술 위에 포갰다.
향긋한 샤프론 냄새가 그녀의 타액과 함께 내 입술을 적셨다.
그 시간 람세스 교수는 손전등을 비추며 제레미아 교회의 지하실을 살피고 있었다.
마르하르의 묘비를 읽어낸 그는, 묘비의 내용이 파피루스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파피루스가 있을 만한 장소를 찾는 중이었다. 그는 두 시간이나 넘게 찾고 있었지만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녀석이 속인 건 아닐 텐데”
그것은 그의 두 번째 방문이었고, 그는 집요했다.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석관 위에 새겨진 앙크에 눈길을 멈출 수 있었다. 화살표를 따라 계단을 올랐고, 화살표의 방향에서 제레미아의 무덤을 찾아냈다.
“휴우……. 드디어 찾았군.”
그는 망설임 없이 덮여있던 흙을 거둬내고 석관의 뚜껑을 열었다. 거기엔 종이쪽지 한 장이 있었고, 종이 위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ank you!”
“개새끼! 나와 장난을 치고 있었군!”
그는 종이를 박박 찢어 관속에 던졌다.
“찾고야 만다.”
그의 오기가 발동하고 있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더 이상 작업을 계속할 수 없었고, 그는 끌어 오르는 분노와 치욕을 참으며 석관의 뚜껑을 덮어야했다.
그가 주변을 정리하고 교회를 빠져나와, 오르막길을 내려올 때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오는 관리인과 마주쳤다. 람세스는 움찔했으나 모른 척 지나쳤다.
그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와 호텔로 돌아왔다. 시간은 여덟시를 지나고 있었다.
시장 끼를 느낀 그는 아래층 식당으로 가 아침식사를 했다. 그때까지도 분노가 가라안지 않고 있었다.
“자식이 나와 보물찾기를 하자는 거군.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꼭 찾아내고야 말 테니까.”
그는 힘주어 양고기를 씹었다.
안탈리아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일린이 물었다.
“이제 다음은요?”
“이스탄불로 갈 거야. 네 삼촌을 처음 만난 곳이지. 그곳에 두 번째 동그라미를 치겠어.”
아일린은 내손을 꼭 쥐었다. 격려의 의미였다.
안탈리야 공항을 빠져나오며 꺼놓았던 핸드폰을 켰다. 문자가 와 있었다.
‘나를 잘도 골탕 먹였군. 그러나 친구, 조금만 기다려. 곧,’Thank you’ 메시지를 자네에게 보내게 될 거야. “
메시지를 같이 읽은 우리는 배꼽을 잡으며 한참 웃었다.
그날 저녁, 난 아일린과 함께 그녀의 어머니 니다와 케시미르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하는 자리였다.
“그래, 이번에 안타키야 에서는 무슨 비밀을 찾았나요? 비밀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요.”
“예, 우리는 이곳에서 찾은 비밀을 안타키야 에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니다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을 한다는 건 외롭고 고달픈 일이지요. 하지만 늘 외롭고 고달팠던 사람만이 새로운 세상을 보는 거예요.”
“전 내일 이스탄불로 떠날 겁니다. 그곳에서 제게 이일의 동기를 제공하셨던 아일린 삼촌을 만나 감사의 말씀도 드려야 하고요.”
그날 니다는 나의 가족관계와 지나온 삶에 대해서도 물었고 그녀의 외로웠던 삶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딸, 아일린이 자기처럼 외로운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음날, 난 이스탄불 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일린이 공항까지 바래다주며 내 손에 쥐어주었던 편지를 꺼내 읽었다.
“존경하는 사람에게,
한 달 전 한 남자가 저의 내면세계로 주저 없이 성큼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집을 짓기 시작했지요.
그는 건축가였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집이 완성되자 그가 떠났습니다.
지난 시간 동안 저는 당신의 내면세계를 탐험했지요.
그 안에서 저는 저의 비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떠난 지금,
전 당신이 지어놓은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일린- “
난 그녀의 편지를 접으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난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아타튀르크 공항을 나오면서 한 달 전 사니와 내가 이스탄불을 처음 찾았을 때
묵었던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전에 한번 묵었던 사람입니다. 예약 가능합니까?
가능하면 전에 묵었던 204호실이면 좋겠습니다, “
잠시 후 전화를 받은 데스크 직원은,
“예. 204호실 예약되었습니다. 언제 도착하시나요?”
“30분 후에 도착할 겁니다.”
난 호텔방에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마친 후 잠시 침대에 누웠다.
지금쯤 세부에 있을 사니가 생각났다.
내친김에 핸드폰을 들어 국제전화를 걸었다.
네 번째 신호가 울렸을 때, 난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야! 너 아직도 터키에 있냐?”
“응, 그래. 가족들은 안녕하시고? 여기 이스탄불, 전에 너와 묵었던 호텔이야.
혼자다. 방금 안탈리아에서 돌아왔어. 좀 더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
한동안 그와 정겨운 농담이 이어진 후 사니가 말했다.
“그래, 시작한 일이니 마무리 잘 짓거라. 일 끝나고 한국에 갈 때 세부에 꼭 들려.
보고 싶구나.”
“그래, 알았어. 세부에서 보자.”
사니는 단순하긴 하지만 사람 좋은 녀석이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땐, 같은 일에 종사하는 동료로서의 경쟁의식은 손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친구였고, 난 그런 그가 좋았다.
지도 한 장과 카메라를 멘 채 호텔을 나와 성 소피아 성당(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임)으로 향했다. 늦은 오후였지만 잘하면 퇴관 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사원 앞에 도착하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규모가 제레미아 교회나 안타키야 동굴 교회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엄청난 사원의 규모는 바닥 면적만 6천 스퀘어 미터가 넘는다. 그리고 천정 돔까지의 높이가 50미터가 넘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화와 조각, 그리고 모자이크들이 각종 문양과 장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휴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넓은 실내를 돌아다니며 아일린의 외삼촌을 찾아보았다. 그는 이 박물관의 연구 직원이면서 안내원이기도 했다. 퇴관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그를 볼 수 없었다. 난 사원을 나오며 아일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어떻게 지내? 하루밖에 안됐는데도 보고 싶군.”
“하루 종일 엄마하고 지내죠. 엄마는 제가 입만 열면 당신애기만 한다고 투덜거리세요.”
“성 소피아 사원을 가봤는데 규모가 장난이 아니야. 손도 못 댔어. 내일 다시 와봐야 할 것 같아. 혹시 삼촌 전화번호 알 수 있을까?”
“문자로 찍어드릴게요.”
난 아일린이 보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한 달 전 당신께서 안탈리아의 제레미아 교회를 가르쳐주신 한국인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예, 기억하고말고요. 안탈리아로 가신다고 했지요.”
“오늘 안탈리아에서 돌아와 박물관에 들렸는데 안 계시더군요. “
“예, 오늘은 내부 근무라 사무실에만 있었습니다. “
“퇴근 후 잠시 시간을 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시간 후면 퇴근 시간이니 그때 뵙기로 하지요.”
“감사합니다. 박물관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한 시간 후, 그와 박물과 근처의 노천카페에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파블로 데미르입니다. 안탈리아에 꽤 오래 계셨군요.”
“예, 먼저 제레미아 교회를 가르쳐주신데 감사드립니다.
난 그에게 한 달 동안 있었던 지난 일들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파피루스가 내 손안에 없는 이상 숨길 게 없었고, 내가 파피루스의 정확한 위치를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설명했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는,
“전설 같은 이야기군요. 터키는 역사가 오랜 국가이다 보니 수많은 전설들이 도처에 산재하지요. 대부분이 초기 기독교에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아무튼 이천 년이나 묻혀있던 파피루스를 찾아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 문서를 취하지 않고 제자리에 남겨놓으신 당신의 예의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터키인들의 재산이니 터키인들 스스로 찾아야 하겠지요. “
파블로는 내가 파피루스의 정확한 위치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람세스 교수가 해석한 제레미아 유서의 내용을 보여주며, 오즈 소년의 장님 아버지로부터 들은 가문의 전설도 소상히 들려주었다. 그리고 난, 내 목에 걸고 있던 앙크 십자가 목걸이를 그에게 보여주며.
“파블로 선생님께서는 박물관에 오래 계셨으니 제가 찾으려는 이 문양에 대해 도움을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난 정중히 그의 협조를 구했고, 한참 만에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조카 아일린은 사리판단이 정확한 애입니다. 어려서 아비를 잃었기에 나를 친아버지처럼 따랐지요. 그 애가 신뢰하는 분이라면 친히 돕겠습니다.”
파블로는 내가 보여준 제레미아의 유서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저는 박물관에서 20년을 보냈습니다. 하루 종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내부의 문양이나 장식들을 사진으로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가끔 관광객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설명하는 것이 제 일이지요.
이 사원 내부엔 사백만 개가 넘는 문양과 장식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문양과 장식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담고 있지요. 하나같이 귀중한 고대의 유산들입니다. 예수 사도들의 모자이크들은 그들과 관련된 문양과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기괴한 이야기지만, 제레미아의 유서에서 말하는 6명의 사탄은 예수의 사도들 중 일부라고 했지요. 그들 중 예수 사후 이후 터키로 건너왔던 인물들 중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바울과 요한이겠군요.”
“성경에 의하면 사도 바울과 요한이 터키로 1차 선교여행을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파블로는 논리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예, 제 생각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성당 내부엔 바울과 요한에 관련된 조각이나 성화가 여덟 군데 있어요. 내일 출근하면 박물관 문양 기록을 뒤져보겠습니다. 모든 문양과 장식들이 위치와 함께 사진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관련이 있을만한 사진들을 복사하여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악수를 하고 파블로와 헤어진 나는 방으로 돌아와 지도를 펼쳤다. 그 세계지도 위엔 두 개의 붉은색 동그라미가 표기되어 있었다.
난 침대에 누워 목에 걸고 있던 앙크 십자가 목걸이를 들여다보았다. 십자가 가운데 박혀있는 검은색 흑요석은 엷게 퇴색되어 있었다.
난 닫혀있는 지하계단의 문틈으로 지하실에 모여 있는 여섯 명의 사도들의 이야기를 훔쳐 듣고 있었다. 바울인 듯 보이는 자가 말했다.
“나는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벤냐민의 지파요, 히브리 인중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파라. 나는 흠이 없는 자고 주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자로다. 내가 오늘 예수를 만나, 우리가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예수는 불같이 성내며 우리 여섯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이제 그는 우리가 그처럼 권력을 얻는 것에 질투하여 우리를 버렸다. 그는 나를 내친 후 막달라 마리아를 안더라.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바울아 네가 나의 궁전을 지으라. 궁전을 짓는 자가 능력을 얻으리니 만인들이 그를 따르리라.”
나 이제 주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니 너희의 생각을 들으려 함이라. “
마테가 말했다.
“예수가 있는 한 사람들이 그를 따를 것이며 우리는 궁전을 지을 수 없습니다.”
마테의 말을 받아 요한이 말하고 있었다.
“맞아요. 하나님도 예수를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를 없애고 궁전을 지을 때입니다.”
“옳소! 옳소!”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바울이 말했다.
“너희 중 한 명이 내일 해가지면, 사람들 모르게 천부장에게가 예수를 고발하라. 예수가 죽으면 사람들은 우리를 따를 것이다. 그런 후 우리는 여섯 방향으로 흩어져 여섯 개의 궁전을 세울 것이라.”
지하실 문에 기대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소리쳤다.
“안 돼! 너희는 예수를 죽일 수 없어!”
그러자 지하실에 있던 그들의 몸이 스르르, 검은 연기가 되어 내 몸을 감았다.
연기 속에서 그들의 냄새를 맡았다.
동물의 시체가 썩는 냄새였다.
“허억!”
난 숨을 쉴 수 없었다.
빠져나오려 몸을 비틀어 봐도 연기에 쌓인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서서히 호흡이 정지하고 있었다.
“어어억!”
사력을 다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 몸은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새벽 두 시였다.
목에 걸린 십자가의 흑요석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