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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연무장에서 나오는 것이냐?”
“일어나셨습니까? 아버지.”
아직 찬 공기가 느껴지는 새벽, 케이넬스는 땀에 젖은 모습으로 본가로 들어오다 식당으로 향하는 일레인을 마주쳤다. 10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케이넬스의 몸은 다부졌고, 그의 신장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소년병들보다도 컸다. 그런 그의 외모는 하늘과 같았다. 은은한 하늘색 머리카락과 햇살을 연상케 하는 금안은 그 누가 보아도 아름다웠다. 심지어, 전체적으로 강아지 상을 타고난 그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순식간에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날이 차다. 감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해라.”
“네. 신경 쓰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정오쯤에 레이든 필스가드 공작과 오필린 공녀가 도착할 것이다. 시간 맞춰서 준비하고 있거라.”
“... 시종과 하녀들이 떠드는 소문이 정말이었나 보군요.”
“흠흠, 그 일에 대한 진위는 내가 알아보겠다.”
“알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결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알고 있다.”
“그럼. 전 올라가보겠습니다.”
케이넬스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일레인은 무덤덤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올라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3년 전, 베이린이 죽고 그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케이넬스는 이전의 누구에게나 사랑 받던 모습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에게 채찍질만을 가하며 한 자루에 검이 되려는 모습이 차지했다.
[아버지, 제가 죽이겠습니다.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녀석들과 그 주동자까지 다 제가 찾을 것입니다.]
일레인은 베이린은 장례식이 끝난 뒤, 자신을 찾아와 담담히 말하던 케이넬스를 떠올렸다. 전쟁을 치르면 한동안 못 본 그의 아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컸고, 또한 어렸다. 그의 눈과 머리는 베이린을 똑 닮아 있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베이린이 떠오른 그는 자신의 자식마저 사랑하는 아내처럼 보낼 수 없었고, 그건 베이린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 된다. 내가 찾아, 내가 해결하겠다. 넌 네가 할 일들을 하거라.]
[... 알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두 손의 주먹을 하얗게 질릴 때까지 쥔 채, 떨고 있던 케이넬스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그는 그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특했지만 노는 걸 좋아했던 케이넬스는 온갖 지식을 머릿속에 넣으려는 듯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고,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연무장에서 검을 연마했다. 그 결과, 가정교사들도 그의 수준에 혀를 내둘렀고, 검의 실력은 소드 프로까지 올라섰다. 쉬엄쉬엄 하라 일러도 그는 자신의 일이라며, 고집을 피웠고 이제 일레인도 그저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식당 앞에서서 고개를 흔들며 상념에서 깬 일레인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오필린 필스가드. 그 꼬맹이도 얼마나 컸을지 기대되는군. 눈도 못 마주치던 아이가 아카데미의 여왕이라니.”
일레인은 동이 터오는 것을 바라보며, 케이넬스와 10년 전 즈음에 마지막으로 본 오필린을 떠올렸다.
“결혼이라니. 그저 그 아이가 케이넬스를 위로해 준다면 좋겠군... 베이린 네가 나에게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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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넬스의 자신의 방에 딸린 욕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말렸다. 그의 어머니가 죽기 전, 종종 말하던 살구꽃을 닮은 아이에 대해들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는 항상 웃음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에 어린 나는 질투를 느끼고 자주 토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마음도 얼굴도 아름답게 컸을 거라며, 곧 다시 본다는 기대감이 가득 찬 눈으로 말하던 것이 눈에 선했다. 어머니는 이 전쟁이 끝이 나면, 자신도 꼭 반할 거라며 짓궂게 웃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케이넬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살구꽃이라기보다, 포악한 미친 마녀라던데. 어찌 되었든 정말 만나게 되는군요. 어머니.”
케이넬스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 보았다. 그 책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끝난다. 본성은 바뀌기 힘들어, 인간은 그 본성을 감추기 위해 살아간다고. 제국민들은 공녀의 개과천선에 환호하며, 그녀의 재능과 아름다움을 칭송하지만, 그는 그녀가 본성을 감출만큼 영악해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던 어머니가 죽은 그날, 그가 알게 된 진실의 잔혹함은 그를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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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미친 듯이 비가 쏟아져 내렸다. 마을에 모든 사람들이 장사를 접고 집으로 바삐 뛰어 가듯이 후작저 내부의 사용인들도 바삐 움직였다. 아버지는 수도로 개국공신의 칭호를 받기 위해 올라가셨고, 자신은 소영주로서 집사장과 후작저를 돌보고 있었다. 조용하게 지나갈 것 같은 날들을 비웃는 듯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를 낸 어머니는 진통을 시작했다. 순산을 기다리던 자신과 사용인들은 하루하고 반나절을 꼬박 새었다. 그 보답을 받는 듯 자신의 여동생인 페일린은 건강히 태어났다. 출산 이후 모두 긴장이 풀어졌고, 내실을 지키는 기사 두 명만을 남기고 깊은 잠에 빠졌다.
케이넬스 또한 깊은 잠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온몸이 억눌리고 구토가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잠에서 깼다. 불안한 마음에 내실로 다가간 그는 처음 보는 처참한 광경에 참지 못하고 토했다.
“웁... 우웩..”
말 그대로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얼굴에 큰 입만을 가진 검은색 괴물들이 기사들의 머리부터 먹어 가고 있었다. 이미 내실 안에서, 어머니를 모시던 사람들은 애초에 그 형태가 사람인지 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그는 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며, 어머니와 자신의 동생을 찾았다. 그리고 곧 알게 된 사실 하나에 충격을 받아 몸이 굳었다. 이 괴물들은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어...어머니...”
케이넬스는 말을 잃었고, 눈에선 눈물이 고였다. 자신의 어머니가 괴물이었던 것인가? 그럼 자신은? 나도 괴물인가? 생각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무언가 다가오는 기분을 느낀 케이넬스는 빠르게 뒤로 뛰었다.
“퍼억!”
갈 곳을 잃은 괴물 하나가 입을 땅바닥에 박았다. 그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며 최대한 창문 쪽으로 붙었다. 이 방안에 들어온 뒤, 자신을 바로 노리지 않고 기사들에게 정신을 팔린 괴물들을 보니 저들은 큰 먹이라고 생각한 것부터 먹어 치우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직 갓 태어난 아기에 관심이 없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큰 침대 옆에 만들어져 있는 작은 침대에 눕혀진 채 잠든 아기를 발견했다.
“까득. 까득.”
괴물들이 내는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천천히 페일린에게 다가갔다. 다리 달린 물고기처럼 생긴 그 괴물들은 꼬리에 날카로운 날붙이 들이 붙어 있어서 그는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응애애애애!!”
“......!”
“턱.”
괴물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인지, 페일린은 잠에서 깨 울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식사를 멈추고 시끄러운지 고개를 흔들었다. 이내 소리가 나는 방향을 찾고 페일린을 향해 뛰었다.
“젠장!!”
케이넬스는 페일린을 향해 뛰었고, 다행히 그가 먼저 페일린을 안았다. 그 뒤,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괴물들을 보며, 창문 밖으로 보이는 높은 나무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휙. 팍!”
갑자기 그의 옆으로 튀어나온 괴물의 꼬리가 그의 눈을 가격했다.
“으악!!!!!”
케이넬스는 긴장감 때문인지 두 눈을 잃는 고통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문제는 흐르는 피와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어디에 나무가 있는지 감이 안 왔고, 역겨운 냄새가 사방에서 올라오자. 이를 물고 몸을 던지려 했다.
[멈춰라.]
한 노인의 목소리와 함께 자신과 괴물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추었다. 숨조차 쉴 수 없게 된 케이넬스는 창문 밖에서 그 노인이 나타난 후에,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어가자. 오히려 그를 의심했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미물들이여, 죽어라.]
그리고 노인의 말이 이어지자, 몸을 짓누르던 기분 나쁜 현상과 역겨운 냄새가 한 번에 사라졌다.
[움직여라.]
노인의 말이 끝나자. 숨을 쉬게 된 케이넬스는 숲 속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청아한 향기와 바로 앞에 바다가 느껴지는 듯한 짠내음을 동시에 맡았다. 페일린도 안정되었는지 더 이상 울지않고 자신의 손가락을 빨았다.
“누구십니까?”
케이넬스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누군가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을 쳐다보았다.
“내가 보이느냐?”
“안보입니다. 다만, 냄새와 거기 계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것들은 무엇입니까? 제 어머니는 어떻게 되신 겁니까?”
“허, 내가 느껴진다고? 혹, 눈을 당하기 전에는 저 괴물들이 보였느냐?”
“네, 보았습니다. 입만 달린 거대한 물고기 같더군요.”
“어떻게, 아니 이것도 그 분의 뜻인가... 음 허면,”
노인이 자신의 물음에 답해주지 않자. 케이넬스는 답답함에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려했지만, 긴장이 풀렸는지 눈과 얼굴에서 큰 고통이 밀려와 다리가 풀렸다.
“크으...”
그가 눈을 감싸고 주저앉자, 노인은 다가와 그의 얼굴을 보았다.
“흠, 일단 너의 어머니는 죽었다. 저 괴물들이 나온 순간 아무리 나라도 살릴 수 없지.”
케이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도 많은 피가 흐르던 자신의 어머니를 보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크으... 대체 당신은 누구고 저 괴물들은 뭡니까. 저 괴물들이, 왜 제 어머니의 몸속에서 나오는 겁니까!”
노인은 작은 아기를 껴안느라 얼굴에서 계속 흐르는 피를 지혈하지 못하는 케이넬스를 바라보았다.
“흠, 일단 피가 많이 흘러서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죽겠구나.”
케이넬스는 노인의 손이 눈가에 다가와 따뜻한 기운을 뿜는 것이 느껴져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눈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이 사라지자 안심했다.
“음, 이걸로 지혈은 되었다. 일단 통성명을 하지. 나는 먼 동쪽 대륙에서 왔지. 본디 이름은 없었지만, 그 대륙의 사람들은 날 ‘현무’라 부른다네.”
“현무?”
“흠, 이쪽 대륙에서는 지혜의 신이나 진실의 신 정도는 될 것이네.”
“그럼, 당신은 신입니까?”
“그렇게 따지면, 아니지. 나 또한 신의 피조물. 단지 인간들보다 오래살고, 인간들보다 강할 뿐이네.”
“......”
“애초에 신이라는 것은 믿기에 따라 다르지. 전 세계에 수많은 신들이 있고, 동물마저 신격화 시켜 믿는 나라도 있으니. 나도 그저 그런 종류의 하나일 뿐이지.”
“그런 것 치고는 쓰시는 능력이 대단하지 않으십니까?”
“너 또한 그러하다. 네가 보고 느낀 괴물들은 너희 인간들이 ‘재앙’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느껴지지 않지. 헌데 너는 그것을 보더구나.”
“원래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래, 본디 나 또한 보이지 않아야지. 너처럼 신과 재앙을 보는 인간들을 세계에선 ‘성자’와 ‘성녀’ 또는 수도승과 제사장 이라는 비슷한 이름으로 부르지. 하지만, 넌 그들과도 좀 다르다. 그들은 볼 순 있어도 직접 위해를 가할 순 없지. 피하긴 해도 죽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전?”
“ ‘대리자’ 라고 불리는 존재들. 이 대륙의 역사에는 ‘슬레이어’ 라고 칭해지는 이들이네. 네가 그들보다 강하다면, 그들을 죽일 수 있다.”
케이넬스는 자신의 어미를 죽이고 나온 괴물들을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노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왜 저 ‘재앙’이 저의 어머니의 몸속에서 나온 것입니까?”
“왜 그런지는 예상이 가지만, 말 보다 직접 보는 게 낫겠지.”
“하지만, 제 눈이...”
“걱정마라, 너의 머리에 바로 넣어 줄 테니. 모든 피조물은 죽은 후 잠시간, 살아오면서 기억한 굵직한 기억들을 남긴다. 인간들은 주마등이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너의 머리로 옮겨주마. 이 저택의 시간은 들어오는 순간부터 따로 정지시켜 뒀으니, 그 잔념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모여라.]
노인이 손을 들어 말하자, 베일린의 주변에서 하얀 빛을 띄운 작은 구체들이 노인의 손으로 모여들었다. 손에 모인 구체는 커지더니 노인이 가리킨 케이넬스의 머리로 들어갔다. 케이넬스는 머리에 전해지는 통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그리고 이내 눈을 뜨자, 그 앞에는 바다보다 푸른 머리의 금안을 지닌 아름다운 소녀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