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덜 깼는지 연우의 목소리는 약간 갈라져서 나왔다.
미호는 연우에게 성큼 성큼 걸어오더니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어제 그 꼬맹이 때문에 찾던 기운을 놓쳐버렷어,칫"
"아아..데일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찾던 기운이라니?"
미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별거 아니야, 그런데 그 꼬맹이.. 여기로 오는거 같은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크도 없이 갑자기 문이 열렸다.
하지만 연우 역시 데일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다.
데일은 문을 박차고 들어와 연우와 미호 앞으로 걸어왔다.
"첫눈에 반했어요. 저랑 결혼해주시겠습니까?"
듣는 연우와 미호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소리 였다.
순간 당황했던 연우는 데일에게 꿀밤을 먹이며 말했다.
"어린것이 어디서 결혼이야 결혼은"
데일은 연우의 꿀밤이 아팠는지 자신이 왜 못 피했는지는 깨닿지도 못한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우씨!남이야 고백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연우는 그 말에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너의 아버지가 너를 부탁했으니 임시 보호자..라고 할까? 이정도면 이유가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어린게 어디서 반말이야?"
그러면서 연우의 주먹이 다시금 데일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데일은 보면서도 피하지도 못하고 또다시 연우의 꿀밤을 허용했다.
"악! 아프잖아!..요"
연우의 손이 살짝 올라가자 바로 존댓말을 쓰는 데일이었다.
그리고 속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미호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 나랑 사귀어 주세요."
하지만 미호는 고민할 것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싫은데?"
너무나도 단호한 대답에도 데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 하지 않을 거야!..요"
자기의 마음을 피력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연우의 눈치를 보는 데일이었다.
그 뒤로 계속 엉겨 붙는 데일을 귀찮아하는 미호와 달리 마음에 들었는지 연우는 데일을 옆에 두고 재미있게 놀았다.
코드가 맞았는지 죽이 척척 맞아 순식간에 친해진 듯이 보이는 둘이었다.
미호는 어이가 없는 눈으로 재미있게 노는 둘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런데 도중에 조용히 미호를 불러내는 류크의 소리가 들렸다.
미호가 나오자 류크가 말했다.
"아까 무언가 찾는것 같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그 말을 듣고 미호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려다 이 뱀파이어라면 이곳 혈계에서 느껴질 리 없는 기운이 느껴졌는지 혹시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 머뭇거리며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물론 아무나 듣지는 못하게 처리를 한 후에 말이다.
류크는 설명을 듣고 무언가 떠오른 듯 해보였다.
"짐작가는것이 있긴 하네만 어디에 있는지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걸 세 그리고 확실한건 아니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게."
그 말을 듣고 미호는 긍정의 뜻으로 고객을 끄덕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미호의 속은 다시 복잡해져있었다.
복잡해진 기분을 환기 시킬 좋은 방법이 어디 없나 생각하던 미호의 귀에 타이밍을 맞춘 듯 데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물창고? 당연히 있지, 형도 보면 깜짝 놀랄걸? 대대로 모인 보물들을 모아 놨는데 정말 특이한 것도 엄청나게 많아 내가 나중에 보여줄게"
"꼬맹아,난 지금 보고 싶은데 보여줄 꺼지?"
데일은 미호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이야기하던 연우에게 등까지 보인 채 미호에게 몸을 돌렸다.
"헤헤, 당연하죠. 지금 당장 안내해 줄게요"
순식간에 미호에게 헬렐레하는 데일을 보자 연우는 순간 어이없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호와 데일이 방을 나가 사라지자 연우도 서둘러 따라갔다.
데일을 따라가니 금세 연우의 눈앞에 고풍스러운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 앞에 도착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데일은 문 앞에서 기대감을 올리려는 듯 뜸을 들였다.
"빨리 안 열어?"
미호의 신경질에 데일은 후다닥 문을 열었다.
방안에는 가지각색의 보물들이 정리정돈 되어 나열되어 있었다.
이것들이 인간 세상에 나간다면 하나하나가 세계적인 뉴스가 될 만한 보석들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쌓여있었다.
미호는 눈을 반짝거리며 감상모드에 들어갔다.
나열되어 있던 장신구들을 자신에게 낄 때마다 옆에서 데일이 맞장구치며 칭찬하자 어느새 기분이 나아진 미호였다.
그사이 연우는 장신가 옆쪽에 나열된 무기들에 시선이 팔려있었다.
그 중에서도 검을 주로 쓰는 무인인 연우는 검들을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대부분이 장식용 검들일 뿐이었다.
물론 장식된 보석들은 하나하나가 대단한 가치들을 지니고 있어 장식용으로는 뛰어날지는 모르지만 검으로서의 성능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러자 금세 연우의 관심은 시들어버렸다.
검들에게서 시선을 떼자 그제야 방안에 또 다른 문이 있는 것을 발견한 연우였다.
시선을 돌려보니 미호와 데일은 아직도 보석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는 수없이 연우는 혼자서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전에 있던 방과는 다르게 물건들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각각의 물건들이 품고 있는 기운은 놀라웠다.
역시나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이었다.
벽한 쪽에 한 자루의 검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방에서 유일하게 이 검에서만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우는 그 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연우는 검압으로 걸어가 천천히 검의 손잡이를 손에 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검을 잡는 순간 빛이 사방을 감싸며 어느새 주위의 공간은 빛만 존재하는 백색의 세계로 바뀌어 있었다.
'심상세계 인가.'
연우는 시야가 바뀌고 주위를 보자 이곳이 심상세계라는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연우가 앞을 보자 어느새 잡고 있었던 검이 손에서 빠져나와 공중에 떠있었다.
곧 검은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의 도전자로군, 나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그 자격을 증명해라, 그럼 기대해보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을 사라지고 또다시 공간이 바뀌어버렸다.
연우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묘지였다.
그것도 평범한 묘지가 아닌 무수히 많은 검들의 묘지.
지평선 끝까지 셀수도 없이 많은 검들이 딸에 꽂혀 있었다.
연우는 눈앞에 있는 검을 뽑아 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순간 연우는 이게 무슨 시련일까 생각했지만 금세 고민은 사라졌다.
바로 앞에 있던 또다른검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연기를 뿜어냈다.
검에서 나온 연기같은것이 뭉쳐지더니 어느새 그곳에는 한명의 검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가, 이검의 수만큼의 검객을 쓰러트리란 건가?"
연우는 주어진 시련이 무엇인지 깨 닿자마자 동시에 눈앞의 검객을 베어 버렸다.
그러자 검객은 순식간에 허물어지듯 땅속으로 사라졌다.
'쉽군,이정도라면...!'
연우는 사방으로 기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넓게 퍼진 기를 이용해 수백 개의 검을 동시에 뽑아버렸다.
순식간에 연우의 눈앞에는 농도 짙은 살기를 내뿜는 수백 명의 검객들이 나타났다.
수백 명의 기세에서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느낌에 그제야 만족하는 연우였다.
"이 정도는 금세 깨부숴주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연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수백의 검객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연우의 가벼운 검짓에 파도에 휩쓸리는 개미들처럼 수많은 검객들이 날아가 버렸다.
연우의 검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베고 찌르고 베고 찌르고 단순한 행동이었지만 결과는 단순하지 않았다.
단지 여파만으로도 주위의 땅이 완전히 뒤집혀 버린 것이다.
일반인이 그 장면을 보았다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연우에게 달려드는 검객들에게서는 일말의 동요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감정이 없는 인형 같았다.
공포조차도 느낄 수 없는 인형 말이다.
그렇다고 검객들 각각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들 각각 능히 일류를 능가하는 수준 높은 실력자들 이었다.
다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엑스트라들로 덧없이 사라질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일방적인싸움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우의 공격범위가 처음에 비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검에 맺힌 강기마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강기가 사라졌을 때 연우의 공격도 멈춰있었다.
그러나 검객들의 공격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이미 주위의 검객들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서 검객들이 달려오고 있지만 지금은 덩그러니 연우 혼자 서있을 뿐이었다.
연우는 그 잠깐의 시간동안 검 날을 땅으로 늘어뜨리며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기계처럼 검객들을 물리치며 무언가를 느낀 연우였다.
'그저 단순히 막대한 기로 저자들을 쓰러트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기연으로 얻은 기를 컨트롤 하는 것만 노력해왔다. 그렇다면 검술은?'
연우는 수많은 검객들을 베며 그동안 자신이 검술을 정말로 등한시 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수천의 검객들이 서로 다른 검술로 달려드는 것을 보며 연우도 새삼 다시 떠올린 것이다.
'나도..나도 단순이 한명의 검객일 뿐이야!!'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