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님! 전사님 부디 제 아이 좀 봐주세요!"
눈물로 범벅된 여성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억센 힘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림과 동시에 여자의 품에 안긴 피투성이의 아이를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확장된 눈에는 금방이라도 흐를 것 같은 눈물로 가득 찬다. 그 눈 안 감출 수 없는 연민과 슬픔.
아이에게 몸을 확 돌리는 여자의 몸이 붕 들린다.
'?'
그리 작지도 않은 키인데도 그에게 들려 대롱대롱 매달린 여자는 물론,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도 벙찐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왼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찬 남자의 입매가 삐죽, 한쪽으로 올라간다. 얇은 눈매 가운데 형형히 빛나는 붉은 눈동자에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남자는 아무말 없이 압박하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치 할 말이 있지 않냐는 듯.
그녀는 아이 좀 보라는 눈빛으로 그에게 턱으로 아이를 필사적으로 가리켰지만 그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권태로운 목소리가 그들 사이 울렸다.
"더 빨리 죽여달라고?"
화들짝.
깜짝 놀란 그녀는 벌벌 떨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이를 안은 여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앙 다문 입술은 마치 엄청난 고민 끝 내린 결정을 내뱉듯 결연했다.
"저,저는 E등급 전,전투원으로 치료가 불가능 흡, 하므로, 흡 어서 빨리 다른 치료계 전투원에게 흡, 여, 여기 호출하겠습니다"
마치 메뉴얼을 줄줄 읊는 상담원같았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본,본씨 여기 4구역 3다시 2056구역이에요 빨리,빨리 치료 보내주세요"
전화를 끊고 발을 동동 구르는 여자의 머리통을 남자는 큰 손으로 쓸어내렸다. 만족스런 미소가 가득 차있었다.
"옳지"
벌벌 떨리는 여자의 흔들리는 눈빛이 계속 그에게 닿았지만 그는 굳건했다. 그는 아예 그녀의 몸을 감싸고 놓지 않았다. 아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여자와 다르게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바라보다 허리를 살살 쓸어내리고는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온 집중은 아이에게 닿아 있었다.
"아, 아니-"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그의 매서운 눈빛에 바로 들어갔다.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꽂힌 붉은 눈동자의 다이아몬드 동공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자신의 품 안 여자의 뒤통수에 입을 맞추는 동시에 치뜬 눈은 경고가 어렸있었다. 이윽고 한 5분 뒤 전사 한명이 날아왔다.
"준!"
"어라? 수라님? 어, 아 지,지문님-"
남자를 보고 얼어붙은 소년을 향해 그는 아이쪽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제서야 소년은 아 네넵! 하는 소리와 함께 허둥지둥 아이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소년의 손바닥 위로 투명한 흰 빛이 뿜어져나왔다.
"이제 좀 진정이 돼?"
여자의 귀 바로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말캉한 입술의 감촉에 그녀는 고개를 내뺐다.
"너, 너 정말. 만약이라도, 좀만 더 늦었으면..!"
"아니야 잘봐"
여자의 물기어린 목소리. 그는 그녀의 거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이 툭 툭 떨어지고 있는 눈가에 입맞추었다.
"왼 팔에 베인 상처. 피는 좀 났지만 감염의 흔적은 전혀 없어. 상처가 검은색도 아니고 마기가 전혀 남아있지 않잖아. 저 정도는 몇시간도 버틸 수 있어. 그러니까 너가 또 너가 미련하게 힘을 써 줄 필요는 없어. 그렇지?"
아이를 살살 달래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랑 약속했잖아, 너는 내꺼라고.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하기로"
"그런 약속한적 없어"
"아, 뭐. 살려줬으면 당연히 따라오는 명제잖아"
"전혀 당연하지 않거든?!?!"
삐죽 선 눈썹과 함께 뒤돈 그녀의 얼굴에 그는 피식 웃으며 뽀뽀를 퍼부었다. 씩씩 대던 그녀는 쏟아지는 뽀뽀세례에 눈을 감으며 소리를 빽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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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하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강요당한 세계관 최강자 그녀. 그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뛰어들었던 남자는 그녀를 들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착한 전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그녀와 함께 인류를 모조리 죽여버릴 계획을 세운다. 그에게 의지하는 그녀지만 그의 말도안되는 사상과 행동에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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