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반으로 썰린 마물의 몸에 붙어있는 채, 수라는 두 눈을 의심했다.

　저 마물이 왜 여기에 있지?

　전혀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깜빡깜빡,

　흰 존재또한 놀란 눈치로 두 눈을 깜빡인다. 유리알같은 동공이 데구르르 구른다. 그녀의 몸에 묶인 거미줄 쪽에 멈추었다.

　뱀은 그녀와 그녀가 방금 죽여버린 마물의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뱀의 인형같이 무감각던 얼굴이 끔찍하게 무너졌다.

　덜컹.

　그녀는 그 표정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찌푸려진 눈썹과 삐뚤게 열리는 입.

　눈 아래 잡히는 일그러진 주름.

　격양된 분노.

　다각.

　다가각.

　뱀의 뒤에 우글거리던 거미들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마치 조종이라도 당하는 듯, 뚝뚝 끊기는 동작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뱀은 고개를 돌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색 장발이 보였다.

　기묘한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거미 마물 무리로부터 터져나왔다. 거미들은 기묘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뚝 뚝 움직인다.

　다, 다, 다각.

　다각.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

　뱀들 무리에서 고음의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귀를 막았다. 마치 수십명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모든 소리가 뚝 그쳤고, 억겹같은 찰나의 정적이 흐른 다음, 뱀의 뒷모습을 가운데로 초록 체액이 촤악 뿜어져나왔다.

　현실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초록 물감을 담은 양동이를 캔버스 위에 끼얹는 것 같다.

　거미들의 다리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다른 거미의 몸통을 꿰뚫는다. 하나의 다리가 여러 다른 거미의 몸통과 머리를 꿰뚫고, 또 다른 거미들로 인해 관통당해있다. 마치 얇은 꼬챙이 수십개가 초록 물감이 들어있는 공을 마구 찌르는 것 같다. 뽑힌 다리의 구멍 안에 체액이 뿜어져나온다. 쓰러져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게 될 때까지 그들은 서로를 공격하는 짓을 그만두지 않았다.

　풀썩 풀썩 주저앉는 거미들,

　결국 시체가 되어 나뒹구는 거미 떼.

　저 곳에 있는 마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마물들을 죽여온 자신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조차 불쾌감에 속이 메쓰꺼웠다.

　갑자기 서로를 공격한 이유는 대체-

　"....."

　아니다.

　사실, 알고있다.

　본능적으로 힘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꼬인 실처럼 넘실대는 힘의 실타래의 끝이 모두 저 뱀에게 향해 있다는 것이.

　거미들을 묶어내 조종하는 실의 끝이.

　초록 체액으로 젖은 뱀의 흰 얼굴을 보였다. 그 안에 기묘한 빛으로 넘실대는 은색 안구가 보인다.

　아까 그 끔찍했던 얼굴은 마치 환상을 본것처럼 다시 감정의 파편을 찾을 수 없는 무감각한 얼굴로 변해있다.

　투명한 은색 다이아몬드 동공.

　"깨앵! 깽깽!!"

　'왕왕이!'

　애처로운 소리가 울린 곳에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흰 고치가 보인다. 고치 뚫린 곳에 툭 튀어나와 있는 검은 코. 그 때 보이지 않는 칼이 쉭 지나간것처럼 천장에 달려있던 고치가 잘려 떨어졌다.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엄청나게 무거울 고치를 뱀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품에 안착시켰다. 뱀의 긴 손톱이 딱딱해보이는 고치를 마치 오렌지 껍질 벗기듯 쓱쓱 풀어내기 시작했다.

　쫑긋거리는 귀가 보인다. 붉은 마물 눈동자가 자신을 발견하곤 깽! 울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뱀과 두 눈이 마주한다.

　뱀의 말간 눈을 보며,

　"........"

　땅에 발을 꾹 눌렀다.

　그녀의 허리에 묶인 거미줄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인해 잘려 맥없이 바닥에 투두둑 떨어진다.

　"....내려놔"

　넘실대는 신력.

　뱀은 뚝 동작을 멈추었다.

　*

　끝을 알 수 없이 깊다.

　발 아래에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문은 이를 더 꽉 깨물었다.

　언뜻 보인 땅.

　그는 손에 쥐고 있는 두 단도로 앞 벽을 내려찍었다.

　그러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툭 튕겨나간다. 바위로 팔을 내려찍은 것만 같다.

　뿌득.

　눈 안에서 붉은 빛이 둥글게 돌아 중앙에서 빛을 발한다.

　훅, 확장하는 동공.

　부글거리는 혈관 속 피.

　굴에서 완전히 추락하기 직전, 그의 팔이 한번 더 벽을 내려찍었다.

　벽에 박힌 단도가 엄청난 속도로 땅을 가른다.

　엄청난 압력이 뼈를 진동한다.

　"큭"

　결국 단도가 굴 끝까지 갈고 빠진다. 훅 시야가 터진다. 빛이 사방을 밝혔다. 하지문은 완벽한 자세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두 다리를 최대한 납작하게 구부려 충격을 완화시키고 두 팔이 바닥을 똑바로 디딘다. 두 다리와 두 팔을 땅에 지탱한 그의 동공이 훅 수축하며 주위를 담았다.

　쾅!

　"...이수라...?"

　먼지바람이 돌풍처럼 불어왔다.

　눈을 가늘게 뜰고 그 가운데 서 있는 여자를 응시했다.

　흩날리는 검은 머리칼.

　분출하는 신력.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건 흰 뱀이었다.

　하지문은 벌떡 일어나 달렸다.

　"이수라!"

　반짝이는 금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 안에 넘실대는 짙은 살기.

　그는 흠칫 몸을 떨었다. 금안에 넘실대는 살기와 신력은 그의 숨을 뺏어버릴 것 같이 너무 강렬했다.

　"지문"

　그제서야 주변을 나뒹굴고 있는 수백의 거미 사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마물이 왕왕이를 데리고 있어"

　"뭐?"

　뱀의 품 안에는 흰 고치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안에 뚫린 구멍으로 쫑긋거리는 귀와 씰룩이는 분홍색 코가 보였다. 개를 안고있는 뱀의 멀뚱멀뚱 표정과 마주했다. 뱀은 거미들의 체액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대충 상황이 예상되었다.

　"아아... 그래... "

　뱀이 저 개를 구하러 이곳에 왔군.

　"죽여야해"

　"뭐?"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 했다.

　"저게 거미들을 죽였어, 이제 왕왕이도 죽이려 하고 있고"

　"... 아마, 아닐텐데"

　"지금 나를 보며 협박하고 있잖아"

　그녀가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왕왕이를 안은 채 껌뻑껌뻑 서있기만 한 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지문은 머리가 아파왔다. 점점 짙어지는 그녀의 살기에 대체 무엇부터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수라, 아마 그건 아니고-"

　훅.

　그는 말을 끝마치지도 못하고 발에 무게중심을 꾹 눌렀다. 돌풍처럼 불어오는 그녀의 방출된 신력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이..수라!!! 힘쓰지마!!"

　그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총알처럼 튀어나와 뱀 앞까지 도달한다.

　-[구현]

　거친 바람 소리 가운데 흘러 들어오는 그녀의 미약한 중얼거림.

　그녀의 손안에 생성되는 금빛의, 긴 막대.

　뱀은 팔을 뻗었다.

　손가락이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막대에 닿기 직전, 공기 중에서 그녀의 금안과 뱀의 눈이 마주한다.

　그 순간 뱀의 동공이 요동쳤다.

　쾅!

　엄청난 압력이 폭발한다.

　거세게 뒤로 튕겨나간 뱀. 뒤 바위와 부딪히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하-?'

　분명 그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분명 잘 뻗어나가던 손이 그녀를 보곤 뚝 멈추었다.

　자신이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덤벼들어도 손가락 하나 닿을 수 없던 녀석이 충분히 피할 수 있던 공격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도 하지 않았다. 하지문은 기가 찼다.

　"[로케이션 공이, 구현]"

　그녀의 흰 손가락이 까딱, 움직인다.

　튕겨나갈때도 꼭 붙들고 있었는지 떨어진 뱀의 두 팔 안에서 개의 모습이 보였다.

　깽?

　개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힘에 의해 인위적으로 들어올려져 그녀쪽으로 끌어당겨진다.

　자신의 품 안을 벗어나 공중으로 떠오르는 개를 뱀은 바라만 볼 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당황하며 버둥거리던 개는 그녀를 발견하자 귀를 쫑긋 세우고 애처롭게 울었다. 결국 그녀의 품안에 폭 안겼을 때는 마치 몇년만에 상봉한 가족마냥 울어댔다. 얼마나 서러운 소리를 내는지, 인간의 말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개를 품에 안고 얼굴을 부비는 그녀의 팔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문은 그 모습에 한숨이 새어나왔다. 생각보다 더 저 개에 의지하는 모습에 마음이 착잡하다. 그때였다.

　그녀의 품 안에 들어있던 개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뱀쪽을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그녀의 품 안에서 뛰어내렸다.

　뱀 쪽으로 전력질주 한다. 모든 이가 벙찐 사이 그녀의 외침이 울렸다.

　"왕왕아!"

　"......"

　왕!

　개는 소리치며 그녀를 보았다. 마치 그녀보고 보란듯이. 개는 뱀의 발 밑으로 들어와 머리를 부빈다. 그를 내려다보던 뱀은 팔을 뻗었다.

　"건들지마!!!"

　"안돼! 이수라!"

　뛰쳐나가려는 그녀를 붙들려 했지만 실패한다. 하지문은 쏟아지는 짙은 신력의 농도에 숨이 막혔다. 그의 몸이 주저앉았다. 눌리는 압력에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헉, 그는 숨을 겨우겨우 내뱉었다.

　뱀은 천천히 개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팔에 와 부딪히는 그녀의 무기.

　엄청난 소리와 함께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뱀의 몸은 뒤쪽으로 몇발자국 밀려갔으나 이내 멈추었다. 그녀의 무기를 한 팔로 막아선 뱀은 미동도 없었다.

　수라는 손에 쥔 막대를 꾹 쥐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뭐야"

　"....."

　뱀의 팔이 수라를 밀쳐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콱 깨물고 바닥에 안착한다. 대치하고 있는 상태로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피가 난 아랫입술이 열린다.

　"ㅡ[관통]"

　뱀은 무감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 앞에 올렸던 자신의 손을 꾹 쥐어 오므렸다.

　파챵!

　파챵!

　파챵!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린다. 하지문은 날카로운 파열음에 귀를 막았다. 온 공간을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진동한다. 힘의 진동에 온 몸이 떨렸다.

　뱀의 긴 머리가 바로 옆 공중에서 터지는 진동파들로 인해 휘날린다.

　그녀가 계속 중얼거리는 모습이 보였지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귀에 꽂히는 날카로운 소리만이 계속해서 공간을 채웠다.

　파챵!

　파챵!

　그녀가 도약해 뱀과 또다시 부딪힌다.

　그녀의 공격을 뱀은 막고 맞받아친다. 뒤로 밀려난 그녀는 다시 달려들어 중얼인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 자신도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거친 숨에 얼굴이 일그러지고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팔. 그녀의 밀어붙임에도 미동도 없던 뱀의 얼굴에 미세하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막대의 끝이 뱀의 명치를 내려찍었다. 숨을 들이키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뱀. 막대로 목을 누르려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로케이션 일이 구현]"

　뱀의 눈썹이 조금 찌푸려진다. 밀려나던 그녀의 팔이 다시 힘을 갖고 밀기 시작한다. 금빛 막대가 뱀의 목을 꾹 누르기 시작한다.

　하지문은 방대한 양의 흩뿌려지는 신력에 어질어질한 정신을 붙잡으며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뱀은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였다.

　어마어마한 살기를 가진 전사. 검은 긴 머리가 진동에 휘날린다. 금처럼 휘황찬란 빛을 내뿜으며 일렁이는 여자의 동공.

　ㅡ울컥.

　아주 작게, 기분나쁜 소리가 그들 사이에 울렸다.

　커지는 뱀의 눈. 그 안에 비치는 그녀가 토해 낸 붉은 핏덩어리.

　수라는 조금 풀린 눈으로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을 손가락으로 찍어 확인했다. 검붉은 피가 그녀의 입 밖으로 줄줄 흘러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