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리고 저 눈동자. 붉은, 다이아몬드 동공을 가진 마물의 눈. 자신이 사냥하는 마물과 똑같은 눈. 말하는 입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긴 송곳니.
나는 몸을 기울여 오른쪽 눈을 감싸고 있는 천을 건드렸다. 그는 움찔 몸을 떨었지만 나를 제재하지는 않았다. 풀어낸 천 아래로 아주 길고- 깊은- 짐승의 발톱에 할퀸, 검붉은 딱지 그대로 굳은 상처가 드러났다. 눈알이 있어야 할곳은 상처만이 남아있었다.
"완전히, 실명한거야?"
그는 다시 천으로 눈을 가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을 연다.
"죽지 않았으니 된거지"
"...그게 뭐야. 뭐가 돼. 너 원래 이렇게 미련한 사람 아니었잖아"
"너는 미련했던 그 성격 그대로 아주 잘 몸을 혹사시키며 살아온거같네"
그의 눈이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네 그 몸. 너 스스로도 알겠지. 뼛가죽밖에 안남아서 움직이는게 신기해보이는 그 상태"
그의 말에 내 몸을 보던 나는 몸이 매우 가뿐하다는 것을 느꼈다. 겉모습은 딱히 달라진게 없는 것 같지만 매일을 괴롭히던 두통과 압정이 흘러다니는 것 같던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나 몸이 너무 가뿐해. 뭐야, 어떻게 한거야?"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신경경질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입구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는 무언가 자루같은 것을 들어올리려 하는 것 같았지만 그 자루 위에 누워있던 왕왕이가 방해되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이 새끼는 왜 마물이 성석에 집착하는거야. 아 안놔?"
ㅡ그르르르르르르르릉.
"왕왕아?"
험악하게 일그러진 채 그르렁거리던 마물은 귀를 쫑끗 올리고 날 보았다. 바로 나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부드러움을 느끼며 나는 얼굴을 비볐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내가 또 쓰러진 사이에 혼자 잘 버텼구나.
"...저 개새끼..."
다시 옆으로 와 앉는 지문의 표정은 그야말로 짜증나고 기막혀죽겠다는 듯 했다. 나는 그의 욕설에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나의 표정을 눈치챘는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너도 비능력자인 상태에서 눈 하나 잃어가며 이곳에서 4년동안 굴러봐. 인성 좆창나는지 안나는지-”
“..너, 너 말, 말 왜 이렇게 나쁘게-”
그는 콧방귀뀌며 자루를 건넸고 그 안엔 성석이 3개 들어있었다. 눈이 크게 떠졌다. 성석이라니. 다시는 못볼 줄 알았던 지상의 물건. 과거의 물건. 정말 내려왔구나 지상에서. 놀랍고 이상했다. 또한 더 놀라웠던 것은.
"원래는 한 무더기 가져왔어. 그런데 알다시피... 내 몸이 변하면서 대부분이 깨져버렸어"
나는 놀라움에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길어진 머리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갑자기 소량이지만 돌아온 신력에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기가 느껴졌다.
성석은 자연발생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성석이란 전사들이 광물에 자신의 힘을 주입해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이다. 그렇기에 누가 어느정도의 힘을 넣느냐에 따라 성석의 값어치는 각각 천지차이다. 그런데 이 남아있는 광석들을 보고 내가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성석들은 모두 나의 힘이 들어간 것들이기 때문이다.
성석은 말 그대로 전사들로부터 분리된 신력이기 때문에 더욱 마기에 취약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력보다 더 강한 마기와 접촉할 경우 바로 깨져버렸다. 전성기때 내 힘이 들어간 광석만 남아있단다는 것은 그의 힘이 많은 전사들의 힘을ㅡ
"처음 쓰러져있는 걸 발견했을 때 하나, 그리고 이번에 쓰러졌을 때 3개. 너에게 먹인 갯수"
"...그랬구나. 고마워"
"그런소리는 집어치우고"
마물의 목울림을 들은거같았다. 당장이라도 물어뜯고싶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저 송곳니 때문인가?
"이 꼴이 뭐야. 죽고 싶어서 그런가? 그냥 뒈지고 싶으니까 이렇게 했어?"
그가 내 손목을 꽉 잡았다. 손아귀의 억센 힘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죽으려고 했으면 이미 4년전에 죽었겠지"
"그래 근데. 왜-"
"...하지문. 이 공간자체가 나에겐 독이야. 너는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기를 운용하게 됐고 그러면 이 공간에 점점 익숙해졌겠지만 나는 그 반대야. 이 곳의 공기, 물, 땅. 모두 마기가 젖어있는 것들이고 나에겐 독이야"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손목을 잡고있던 힘도 풀렸다.
"유일한 식량인 마물들이나 식물들도 마찬가지야. 맹독에 절인 음식을 먹는거나 다름없어. 물도 독약을 마시는 것과 다름없고. 그렇다고 안 먹기엔 아사할 것 같고. 그래서-"
그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 나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나를 걱정해 괴로워하는 것 같은 그의 표정이 묘하게 나를 부추겼다.
"...그래서 일단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될 것같으면 먹고, 토하고, 쓰러지고를 반복했어. 살기 위해서 독을 마시고 그러면... 그 독에 의해 쓰러지고, 중독되고. 그러게, 뭐, 음"
절망에 허덕이는 듯한 그의 표정이 놀라웠다. 마치 자신이 죽어나가는 듯한 표정이.
"어서 돌아가자 이수라"
"어떻게 돌아가. 말도안되는 소리야"
"...내가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거같으니까"
뭔가 숨기는 듯한 표정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나, 난 안가”
와그작. 표정이 험악해졌다.
붉은 그의 동공이 나의 얼굴 위를 훑었다.
"왜"
"...지문아. 여기까지 와줘서 나는 정말 너무 고마워. 너가, 너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지도 몰랐고 정말...고마워. 그러니까 너가 꼭 돌아갈 수 있게 내 힘 닿는 끝까지 도와줄게. 너만은 꼭 내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할거야"
"뭐가 너만은이야"
"...나는 못가"
어마어마하게 험악해진 얼굴로 그는 하, 숨을 내뱉었다. 곧 그는 제 얼굴을 큰 손으로 덮었다.
"...나는 이미 죽기 해서 구멍에 뛰어들었었어. 그게 내 일이었어"
"그만"
"사람들은 날 받아들이지 않을거야"
"그만! 베타균열은 닫혔어 씨발!! 너가 말하던 그 빌어먹을 너의 그 전사로서의 책임은 모두 완수했다고!! 너에겐 빌어먹게 중요한 그 책임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됐잖아!"
"나는 난, 지문"
"그 새끼들은 너를 죽였어, 그런데 왜 너가 그들을 위해야하지? 넌 밉지않아 그 새끼들이?"
"...미워, 정말 정말 너무 미워 하지만"
또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이해도 해.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든 인류가 살 수 있는데 그 누가 그 선택을 옳지 않다고 할 수 있겠어. 그리고 만약 내가 돌아갔을 때 또 다시 베타 균열이 열리기 시작한다면? 나 하나 살겠다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볼 수는 없어. 난 그게 더 무서워"
"이수라!!!!"
그가 소리를 질렀다. 한 손으로 그러잡은 얼굴 사이로 엉망이 된 그의 표정이 보였다.
그가 손을 떼내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붉은 눈동자가 나를 압도한다.
"...그딴거 난 몰라. 너가 말하는 모든 것 이해 안돼. 못해. 그 모든 인간들의 목숨보다 너 하나가 훨씬 중요해."
지문은 거칠게 성석들이 든 자루를 들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난 어떻게든 너가 먹을 수 있을 재료들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볼테니까 너는 그 자리에서 절대 움직이지 말고 쉬고 있어"
"왕!"
왕왕아?
갑자기 내 품 안에 잘 안겨있던 왕왕이가 그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의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제발. 제발 곰곰히 생각하고 맞는 결정을 내려. 너를 위한 선택을 내리라고"
*
“씨발”
남자는 얼굴에 튄 마물의 붉은 피를 쓸어내린다. 굳은살 박힌 손바닥의 거친 표면이 까끌까끌했다. 그 옆에서는 작은 마물개가 뛰어다녔다.
그의 붉은 동공이 몇분만에 사체가 된 커다란 마물을 천천히 응시했다. 그의 눈 안에서 짜증섞인 감정이 세차게 위아래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든 단검을 바닥에 내던졌고 바닥에 주저앉아 사체의 몸 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장기 사이사이를 거칠게 휘젓던 그는 마침내 손을 꺼냈다. 검은 돌이 검붉은 피 가운데 번쩍였다. 그때 그의 옆 개가 세차게 놀라며 뛰쳐나갔다. 익숙한 비린내가 공중에 풍겼다.
하지문은 익숙한 인기척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앞에 길게 짙은 그림자가 진다.
“기다리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을텐데”
고개를 돌린 그의 일그러진 입매 사이 송곳니가 번뜩였다.
그런 그를 무미건조하게 바라보고 있던 존재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흰색에 가까운 긴 은발이 어깨를 타고 사르륵 흘러내렸다.
“빨리. 만나고 싶어”
미성의 목소리. 투명한 은색 눈동자가 말간 유리알같이 반짝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