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계는 -몇백년 후 후손들이 이름붙인-, 이른바 ‘제 1 종말의 날’을 맞이한다.
첫 번째, 괴물들이 나타났다.
마물이라 이름지어진 그것들은 외형도 소리도 행동도 모든 것들이 개체마다 상이했다. 거대한 벌레같은 형태를 가진 채 웅웅거리는 날개로 날아다니며 촉수같은 주둥이로 인간들을 빨아먹고 그 가죽들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들이 나타났다.
짐승같은 머리와 거대한 이빨로 인간들의 머리를 와그작 깨뜨려버리는 것들이 있었다. 또는 그저 기형의 세포덩어리처럼 생겨 정체모를 액체들이 뿜어져나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녹이는 것들도 있었다.
일반적인 개의 크기인 것도 있었고 그 나라에서 가장 높았던 빌딩의 크기인 것도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것들은 정체불명의 입구에서부터 유입되었다.
창공에 갑자기 뚫리는 인간의 지식으론 알수없는 작은 블랙홀같이 생긴 동그란 원.
그 원은 끔찍한 마물을 내뱉고는 바로 사라졌다. 살아남은 인류는 그것을 균열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세상에 내뱉어진 마물들의 유일한 공통점.
극렬한 공격성. 낮은 지능. 그리고 인간 포식.
두 번째. 마물의 등장시기와 비슷하게 세계 그 어느곳에서도 해석할 수 없는 검은 문장이 몸에 새겨진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정체모를 언어의 문장은 각기 다른 모양으로 각기 다른 곳에 문신처럼 새겨진 채 태어났다. '신력'을 가진 인간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흔한 능력으로는 일반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능력.
운동선수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반사신경. 악력. 속도.
아주 극소수의 빈도로 타고난 신체능력 외 특이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도 태어났다.
그들의 ‘신력’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능력.
곧 문장들은 신의 문장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 신의 문장들을 가진 인간들을 중심으로 세계는 다시 정부를 세우고 그들만의 성전을 세웠다.
그들은 전사가 되어 인간을 지키고 세계를 지키기 시작했다.
세계는 점차 안정되었다. 조직적으로 마물과 대항하기 시작한 전사들의 노력으로 마물들은 인명 피해 없이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또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가만히 웅크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인간들은 또다시 살아남았고 또 살기남기 위해 도시를 재건했다. 다시 건물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시장이 형성되었다. 일반인들은 전사들을 숭배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재정을 마련했다. 그런 인간들을 전사들은 지켰다.
그러나 그 평화는 ‘제 1 종말의 날’ 이후 몇백년 후 발생한 ‘제 2 종말의 날’에 산산조각난다. 마치 컴퓨터 시스템이 고장이 난 것 마냥 균열들은 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물만을 내뱉곤 바로 사라지던 기존의 균열과 달리 새로운 검은 구멍들은 그 어떤 것도 내뱉지 않았다.
-그것들은 빨아들였다. 주위의 모든 것을.
주로 인간을.
그 균열들은 한번 열리면 사라지지 않았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제멋대로의 크기만큼 자리를 잡은 균열들은 그대로 고요하게 뿌리박았다. 그 공간에.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바로 빨아들일 준비를 하며.
후에 그 새로운 균열들은 '베타 균열'이라 불리게 됐다.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기존의 마물을 내뱉던 균열들은 '알파 균열'로.
그 구멍이 어디로 통하는지. 빨려들어가면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세계의 8구역 중 3,4 구역은 완전히 멸망했으며 1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2,5,6,7 구역은 인구의 반 이상을 8구역은 30퍼센트가 사망했다.
제 1구역만이 비정상적인 생존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는 모든이에게 수긍되는 결과였다. 제 1구역은 ‘그녀’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죽고 살아 남으며, 어제 옆에 서있던 친구가 죽어 없어졌다는 것을 오늘 확인하며, 자신의 가족들의 생존여부조차 알 수 없는 채 그들은 연구하고 연구했다.
그 결과 어느 날 어느 시간, 1구역 비전투계 전사, 수석 연구원이자 ‘4대 아이어(Eyeer)’는 ‘그 구멍들은 모두 한 공간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라는 가설을 세웠다. 또한 그 새로운 구멍들은 마물을 내뱉던 구멍들과 완전히 동일한 성분으로 이루어져있다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 구멍들은 모두 짙은 ‘마력’으로 이루어져있었다.
마물들의 힘인 마력.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힘. 전사들이 가지고 있는 신력과 반대되는 힘.
아주 드물게. 빨아들이는 구멍이 닫히는 일이 나타났다.
오랜 관찰 끝에 연구원들은 말했다. 없어진 구멍들의 공통점들은 모두 그 구멍 속으로 전사들이 빨려들어갔거나 신력이 담긴 물건인 신물들이 방대하게 빨려들어갔을 때 일어났다는 것이다. 짙은 마력이 응축돼 발생한 그것들은 한 성분의 농도가 짙어지면 그 성분이 옅은 쪽으로 이동해 균형을 이루려 하는 것처럼 신력을 빨아들이면 사라진다.
방법을 알아낸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마물들이 날뛰는 지상에서 구멍 속으로 신물들을 내던질 수는 없었다.
게다가 구멍을 닫히게 할 수 있는 신력의 크기란-
작은 구멍 하나를 메꾸기 위해선 6명 정도의 일반 전사들이 신력이 요구된다라는 사실이 나왔다. 절망적이었다. 또한 그 ‘요구된다’라는 가설의 가정은 그들이 구멍안으로 떨어졌을 때를 뜻했다. 그들의 힘과 생명력을 통째로 집어넣었을때만 비로소 발휘될 힘의 크기말이다.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숫자. 인류는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열심히 싸웠으나 마주한 것은 답이 존재하지 않은 문제였다.
인류는 절망에 울부짖었다. 그 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그녀는?
말로 형언할 정도의 강력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신력.
제 1구역을 지키고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사.
그 어떤 강한 마물이더라도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 제압가능한 전사.
모든 전사들이 다같이 달려들어도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우스갯소리와 함께 칭송받던 그녀. 멸망에 이르러가는 다른 구역들과 달리 한자리 수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는 제 1구역의 가장 강한 전사.
ㅡ그녀가 구멍이에 들어간다면?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한 곳을 응시했다.
그녀가 희생해준다면?
절망에 빠진 그들의 눈에 한줄기 빛이 비추었다. 고통에 얼룩진 그들의 두 눈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단 한 곳으로.
모두의 시선을 받은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기꺼이 몸을 던졌다.
ㅡ‘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가 구멍에 들어간 순간 눈이 멀 것만 같은 밝은 빛이 세계의 모든 구멍들 안에서부터 뿜어져나왔고 하수구에 물이 빠지듯 소용돌이치며 소멸했다.
그렇게 인류는 구원받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