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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호스티스 연쇄 자살사건
작가 : 민지민
작품등록일 : 2017.6.23

“난 자살하지 않았어. 절대...”, 지역 정치인의 비리를 수사 중 좌천된 강력계 형사 민혁수. 징계가 풀려 복귀하는 날, 자신의 죽음의 이유를 밝혀달라는 영혼(아영)을 만나게 된다. 혁수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거대한 힘이 진실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상처럼 외압이 열혈형사를 가로막고 수사는 난항에 봉착한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 때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출신의 인권변호사 김무혁의 등장으로 수사는 탄력을 받고 거대한 힘의 꼬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삽화:JewelSaviorFREE>

 
【3화】 은아영 (2) √ 방생
작성일 : 17-06-29 13:05     조회 : 56     추천 : 0     분량 : 7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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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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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진 오후.

 

 에메랄드 빛 캔버스에 반투명의 흰 유화물감을 몇 겹이나 덧바른 듯 하늘은 연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매일 보는 하늘이지만 그동안 왜 몰랐을까?’

 

 

 여태껏 몰랐었다.

 

 하늘이 저리도 고운 빛깔로 푸르렀는지를.

 

 소녀의 힘겨운 삶 속에는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 따위는 담겨 있지 않았던 탓이리라.

 

 

 “바다! 너는 왜 따라하고 난리야? 그렇게 하늘이 부럽니?”

 

 

 하늘의 고운 빛에 바다의 진 파랑이 허름해 보일 정도였다.

 

 왜 사람들이 연한 파란색을

 하늘색이라 부르는지 알 것도 같다.

 

 

 ‘하늘만큼 아름다운 연 파랑색을 찾을 수 없었을 테니까.’

 

 

 조금 진한 색이라는 것 말고는 쌍둥이처럼 베껴냈다.

 

 바다는 거울이라도 되려는지 고요한 하늘빛을 그대로 반사해내고 있었다.

 

 

 “밤이 오면 바다 너! 또 따라할 거지?”

 

 

 머리맡을 장식한 하늘과 하늘을 닮으려는 바다가 닿은 자리에 붉은 해 그림자가 번지고 있었다.

 

 이제 곧 저 해만 사라지면 어둠이 찾아들 것이었다.

 

 

 “너 왜 그래? 왜 얌전한 척하고 그래? 너 안 그렇잖아? 우리 엄마랑 아빠를 삼켰던 그 날처럼 으르렁 거려보란 말이야!”

 

 

 모래사장 위를 걷던 아영은 하늘과 바다가 마주선 수평선으로 시선을 던져 본다.

 

 자연이 만들어낸 장엄한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화가도 눈앞을 채운 색채보다 뛰어나게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영에겐 절대 아름다워 보일 리 없는 졸작일 뿐이었다.

 

 

 “거짓말쟁이. 위선자. 욕심쟁이야!”

 

 

 부모를 앗아간 철천지원수였다.

 

 아영은 바다에 대한 원망을 날려 본다.

 

 

 “멍청이. 바보. 똥개야!”

 

 

 애꿎은 바다에 대고 쓴 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어부였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

 

 

 ‘바다에 고마워해야 한단다. 바다가 우리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단다.’

 

 

 아빠의 말을 따를 수만은 없다.

 

 엄마 아빠가 전부였던 어린 소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녀석이었으니까.

 

 누구에게는 자연이 준 선물이겠지만 아영에게 그럴 수 없다.

 

 바다는 저주스럽고 얄미운 날강도일 뿐이었다.

 

 

 “아빠는 거짓말쟁이야!”

 

 

 자를 데고 그린 듯 오차 없이 그어진 수평선을 향해 괜한 짜증을 부려본다.

 

 

 “아빠는 바보야!”

 

 

 후련해지려다가 가슴 한편이 먹먹해져 온다.

 

 

 ‘아빠는 거짓말하지 않았으니까.’

 

 

 바다 덕에 아영의 세 식구가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아영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지금의 울분을 털어 낼만한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바다는 그대로 있다.

 

 있어왔을 뿐이다.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죄가 될 수는 없지 않는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리고 바다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안다.

 

 그저 바람이 시키는 대로 출렁였을 뿐이지 않는가.

 

 

 ‘바람 없이 파도는 일지 않으니까.’

 

 

 바다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바람은 보이지 않잖아.’

 

 

 짜증을 퍼부으려면 바람에게 향했어야 했다.

 

 

 “왜 대답도 않는 거야? 내가 그렇게 우스워 보여? 흑흑흑...”

 

 

 아영의 눈가에 금 새 눈물방울이 맺혀버렸다.

 

 무시당했다는 좌절의 뜻은 아니었다.

 

 어린 딸을 두고 떠난 어른들에 대한 원망도 아니었다.

 

 

 ‘그냥...’

 

 

 괜스레 눈물이 만들어지는 오후였다.

 

 아영은 애꿎은 바다만 탓하느라 바다 아래로 반쯤 잠긴 햇님에게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내 핀잔에 바람도 양심이 찔린 걸까?’

 

 

 바다를 대신해 바람이 사주한 파도가 철썩이라며 대꾸를 한다.

 

 바람은 바다의 일부분을 아영에게 밀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부턴가 시작된 바람 한 가닥이 소녀의 볼을 스치운다.

 

 또 한 번.

 

 바람을 타고 온 파도가 소녀의 발 앞까지 밀려들더니 하얗게 으깨어지고 사라기를 반복한다.

 

 

 “이 변덕쟁이에 골칫거리에 바보 같은 놈아!”

 

 

 아영은 바다에 대고 힘껏 목청을 흔들었다.

 

 

 “잊지 마!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 건 다 너 때문이야. 꼭 복수할 거야. 너한테.”

 

 

 바다는 본래 제 색이 무엇이었는지 잊었을 지도 모른다.

 

 

 ‘바다는 바보 멍청이거든.’

 

 

 아영은 바다 너 때문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너는 하늘을 베끼는 것 밖에 몰라. 힘도 없어서 바람한테 휘둘리기나 하고... 하늘이 버린 햇님을 아무 조건 없이 안아주는 자존심도 없는 멍청이잖아. 넌!”

 

 

 하지만 바다를 나무라는 방법은 놀리고 조롱하는 방법 외엔 없었다.

 

 

 “햇님이 벌써 가버렸어...”

 

 

 저 붉은 노을이 지면 하늘처럼 바다도 황금색으로 물든 해 그림자를 거둘 것이다.

 

 

 ‘태양이 숨어버리면 바다는 검은 하늘을 그대로 따라하겠지.’

 

 

 아영은 처량한 바다가 내민 손에 닿아 젖을까 서둘러 신을 벗었다.

 

 한 손에 한 짝씩을 들고는 맨발이 되어 다시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밟으며 걷기 시작했다.

 

 

 

 *

 

 

 

 할머니가 영원한 안식을 얻던 그날.

 

 그녀의 머리맡에 놓였던 상자 안에 들었던 아영의 생일 선물.

 

 할머니는 아영의 열일곱 번째 생일 날을 위해 부족한 생활비를 쪼개가며 모았던 돈으로 손녀의 생일 선물을 장만했다.

 

 손녀가 좋아하던 브랜드의 운동화였다.

 

 누군가에게는 하루 술값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영 네에게는 한 달 치 생활비, 할머니의 두 달 치 병원비에 맞먹을 거금을 주고 산 선물이었다.

 

 할머니가 떠난 후에 그녀가 남기고 간 상자를 열었을 때였다.

 

 아영은 심장에서 시작되었을 떨림으로 가슴을 쥐어짜야 했다.

 

 

 『아영아 할미가 더비싼거 못싸조서 미안해. 할미가 우리 아영이 남들처럼 맛나는거 마니 모태조서 미안해 할미가 너무 미안해.』

 

 

 선물상자 안에 처음 한글을 배운 초등학생처럼 서투른 솜씨로 쓰인 할머니의 글귀가 남겨져 있었다.

 

 글을 모랐던 할머니.

 

 학교라는 곳을 손녀의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곳 정도로만 알던 할머니였다.

 

 옆 집 연희 할머니와 교회를 나가고 싶었던 할머니였다.

 

 성경을 제 눈으로 읽고 싶던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던 손녀는 일 년 동안 울어야 모을 눈물을 모두 쏟아내었었다.

 

 

 

 *

 

 

 

 어느덧 어슴푸레한 어둠이 수평선을 덮었다.

 

 아영의 하얀 얼굴도 어느새 하늘 언저리처럼 푸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 위를 걷다가 바다 어딘가로 부터 떠밀려왔을 미역줄기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넌... 참 좋겠다.”

 

 

 아영은 쪼그려 앉아 뭔가에 골똘해 있었다.

 

 엉켜있는 미역줄기 옆으로 파도에 떠밀려왔을 바닷게가 허물을 벗고 있었다.

 

 아영은 예전에도 지어보았던 신기한 눈을 만들고 있었다.

 

 탁구공만한 게가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래 전 아빠와 함께 모래 위를 거닐던 그 날의 상념에 젖어든다.

 

 

 

 *

 

 

 

 “아빠.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됐어.”

 

 

 조개껍데기처럼 생긴 것이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동그랗게 만든 눈을 한 여섯 살 아영이 다가가자 죽은 듯 멈춰버렸었다.

 

 조개가 움직이는 것에 마냥 신기했는지 가까이로 가더니

 손가락 끝을 세워 더듬어 보았다.

 

 

 “아빠. 이거 뭐야?”

 

 

 아영이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쥐면서 물었었다.

 

 

 “두 마리가 된 게 아니라. 게가 탈피를 하는 거야.”

 

 “탈피? 탈피가 뭐야?”

 

 “몸은 자라는데 껍데기는 크지 않으니까 껍질을 벗는 거야. 탈피를 하면 몸이 커진단다.”

 

 “옷 벗는 거야?”

 

 “음... 옷? 옷이라... 새롭게 태어나는 것하고 같으니까 옷이라면 새 옷이겠는데?”

 

 

 위험을 느꼈던지 죽은 듯 멈췄던 게가 벗으려던 껍질을 이고서 힘들게 옆 걸음질을 하고 있었다.

 

 바다 쪽으로 기어가는가 싶더니 파도에 떠밀려 아영의 발밑까지 다시 미끄러져 왔다.

 

 아영은 무릎을 굽혀 앉고는 탈피 중인 게를 쿡쿡 찔러보았다.

 

 

 “아영아. 그러면 안 돼.”

 

 

 아빠가 아영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왜? 난 귀여워서 만져준 건데...”

 

 “안 돼. 지금 목숨을 걸고 껍질을 벗는 중이거든.”

 

 “목숨? 얘는 껍질 벗다가 죽어?”

 

 “그래. 우리가 방해하면 죽을 지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는 빠져주자. 그리고 보니 이제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를 시간이네.”

 

 

 

 *

 

 

 

 탈피.

 

 열일곱이 된 소녀는 허물을 벗는 게를 보다 문득 자신의 처지와 빗대게 된다.

 

 

 “아... 나도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너처럼. 그런데 무섭기도 해.”

 

 

 대답이 없을 줄 알지만 아영은 허물을 벗고 있는 게에게 말을 걸어본다.

 

 

 ‘그래서인가...’

 

 

 꿈지럭 거리던 등껍질의 요동이 잦아지더니, 새하얀 몸이 쑥하고 절반 가까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힘내요. 꽃게 씨. 이제 새 옷 입고 멋진 삶을 살아야 되잖아요. 제발 힘내란 말이에요.”

 

 

 아영은 허물 밖으로 빠져나올 게를 힘차게 응원해 주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뼈가 커진다. 근육과 세포가 자라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갑각류는 아예 뼈 자체가 없다.

 

 딱딱한 껍질이 뼈 역할을 하는데 그 껍질은 사람의 뼈처럼 자라지를 않는다.

 

 그러니 커지는 몸을 주체할 수 없게 되고 그 때가 되면 게들은 껍질을 벗어야 한다.

 

 작은 껍질을 벗는 탈피를 이루어야 비로소 다음 단계 성장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탈피는 아이스크림 껍질 벗기듯 쉬운 일이 아니다.

 

 목숨의 위협하는 위험과 극악한 고통과 싸워 이겨내야만 한다.

 

 무방비상태에서 천적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죽음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신경과 세포를 겉껍질에서 모두 분리해 내고 나와야 하니 처절한 통증의 고통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보통 게들이 죽는 경우 중 가장 많은 경우가 탈피 때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안 돼. 그러면 게가 죽는단 말이야.”

 

 “응?”

 

 

 탈피하는 게를 도우려던 아영 말고는 아무도 없어야 할 바닷가 모래 위였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옅은 어둠과 함께 깔려와 아영의 귓불을 흔들었다.

 

 아영은 아빠와 함께였던 그날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다 얘들은 성격이 까칠해서 지들 분에 못 이겨 죽어버리기도 하거든.”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보이던 남자는 후덕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아영을 보더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저씨 누구...세요?”

 

 

 전체적으로 거친 얼굴매무새와는 달리 꼬부라져있는 눈매는 매우 선해 보였다.

 

 

 “나? 난... 뭐라고 하지? 음... 방랑하는 낚시꾼이랄까?”

 

 

 

 

 

 ***

 

 

 

 

 

 벌써 보름째였다.

 

 아영은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근처를 지날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파도가 치는 바닷가 모래사장의 끝, 바위에 걸터앉아 낚시를 하는 것 같았지만 고기를 잡으려는데 목적이 있어보이진 않은 남자.

 

 

 “이상한 아저씨네...”

 

 

 낚싯대 옆에 둔 양동이에 고기가 차면 바다로 놓아주고, 다시 잡고 놓아주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왜 저러지? 혹시 변태인가?’

 

 

 모래사장에서 몇 마디 나눈 이후로 한번은 남자와 방파제 위에서 마주쳤던 적이 있었다.

 

 남자는 낚시가방을 맨 채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같아 보였다.

 

 쥐고 있던 양동이 안을 본 적 있었는데 물고기 한 마리 없이 텅 비어있었다.

 

 다른 낚시꾼들처럼 배를 타고 섬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좋은 물고기를 잡으려면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그는 피라미만한 잡어들만 우글거리는 터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륵 잠이 듭니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이른 일요일 아침이었다.

 

 아영은 섬 집 아기를 부르고 있었다.

 

 예쁜 빛깔의 조개껍질을 주워 모으며 백사장을 걷는 길이었다.

 

 시선을 내리깐 채로 걷다보니 남자가 앉았던 바위 근처까지 다다랐다.

 

 어느새 남자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이상한 아저씨가 또 저기 있네.”

 

 

 남자는 멀리서 보았던 것처럼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잡았던 물고기들을 놓아주려던 참인가?

 

 양동이 손잡이를 쥐고는 구부정하게 굽혔던 몸을 세우고 있었다.

 

 

 “아저씨!”

 

 

 아영이 궁금한 눈을 만들고는 남자를 불러보았다.

 

 남자는 소리의 출처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살며시 아영이 있던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 전처럼 남자는 아영을 멀뚱히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남자의 눈은 반달처럼 둥글게 접혀 있었다.

 

 

 “왜 잡은 걸 다시 놔주는 거 에요?”

 

 

 귀여운 눈을 한 소녀의 궁금증에 남자는 미소로만 답했다.

 

 커다란 덩치에 굵은 손, 덥수룩한 수염을 턱 밑에 달고 있던 남자.

 

 눈 밑으로 손가락 세 마디 정도?

 

 입술 옆까지 예리한 칼로 베인 흉터가 있었는데 험악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선해 보이는 깊은 눈매와 강아지처럼 커다란 검은자위 때문이었으리라.

 

 

 “여기 사니?”

 

 

 남자는 바위에서 풀쩍 뛰어 내리더니 아영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네.”

 

 

 남자는 아영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오고 있었다.

 

 둘 사이가 두 뼘 정도로 좁혀지자 아영은 뒤로 한 걸음을 걸어 멀어졌다.

 

 아영의 시선이 남자가 손에 쥔 양동이로 향했다.

 

 안으로 빙빙 돌고 있는 서너 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세요?”

 

 “뭐하긴 낚시 중이지. 넌 뭐하니?”

 

 “전 그냥...”

 

 

 이렇게 가까이에서 남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눈 가의 자글자글한 주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둔탁한 목소리로 미루어 짐작컨대... 소녀의 아버지 벌 정도?

 

 삼십대를 훌쩍 넘긴 중년의 나이쯤으로 보였다.

 길게 기른 수염 때문인지 본래 나이보다 조금 더 들어 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낚시 하면서 왜 잡은 고기는 다시 놔주고, 또 잡고 풀어주고 하는 거 에요?”

 

 

 아영은 낚싯대에 미끼를 걸어 던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애써 잡은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는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잡은 걸 왜 놔줄까?’

 

 

 열여덟 소녀의 눈에 남자의 행동은 이상하게만 여겨졌다.

 

 

 “왜? 그러면 안 되니?”

 

 “그냥 이상하잖아요. 고기 잡으려고 온 사람이 잡은 걸 다시 버리니까.”

 

 “왜 버린다고 생각해?”

 

 “그럼 그게 뭐에요?”

 

 “음... 뭐라고 설명해줘야 되나...”

 

 

 남자는 아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다시금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저씨가 죄가 좀 많아서... 그래서 이렇게 방생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래.”

 

 “방생? 방생이 뭐에요?”

 

 “잡혀있는 물고기 놔주는 게 방생이지.”

 

 “아저씨 좀 이상해.”

 

 “뭐가?”

 

 

 애초에 적당한 답을 줄 수 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버릇처럼 낚싯대를 잡자마자 이 곳을 찾은 것이었다.

 

 예전처럼 같은 자리에서 낚싯대를 던졌던 것이었다.

 

 고기를 잡으려고 왔다기보다는 낚싯대를 잡자 떠오르는 데로 엑셀을 밟은 것이었다.

 

 

 “잡은 걸 왜 또 놔줬다가, 또 잡고. 그러면 물고기들이 얼마나 신경질 나겠어요.”

 

 

 그냥 떠오르는 데로 아무렇게나 둘러 한 말이었다.

 

 아영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따져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러네.”

 

 

 아영은 애써 날카로운 눈빛을 만들어 본다.

 

 멀뚱히 바라보던 남자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인자한 표정 그대로를 유지하고만 있었다.

 

 

 “허허허허...”

 

 

 남자의 너털웃음 뒤 편안해진 표정에 치켜 뜬 아영의 시선도 조금씩 느슨해지고 있었다.

 

 

 “한 번 해 볼래?”

 

 

 남자가 손에 쥔 양동이를 아영에게 내밀었다.

 

 무의식 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영은 남자의 말에 이끌리듯 양동이 손잡이를 쥐었다.

 

 

 “너도 한 번 놔줘 볼래?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야.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이 잡은 고기를 놔주는 거니까... 이게 진짜 방생인데?”

 

 

 아영은 몇 걸음 뒷걸음을 치며 잔파도가 치는 바다에 발을 담갔다.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몇 걸음을 더 걷자 무릎까지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다시는 잡히지 말고 멀리 도망쳐. 알았지?”

 

 

 양동이를 거꾸로 뒤집고는 물고기들을 쏟아내었다.

 

 한동안 아영의 주위로 빙그르르 돌던 작은 물고기들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잘 가. 또 잡히지 말고.”

 

 

 바다 멀리 사라지는 물고기를 보며 아영은 상념에 젖는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생명을 구했다는 기분에 가슴 안으로부터 뿌듯한 뭔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 이래서 저 아저씨가 그랬던 거구나?’

 

 

 이제야 남자의 이상한 행동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남자의 차가운 얼굴모양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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